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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송평인 칼럼]‘괴물’ 국회선진화법이 만든 희한한 총선 .&2.[권순활의 시장과 자유]경제-기업 계속 짓밟는 ‘5류 정치’

거울속의 내모습 2016. 4. 7. 16:15

어떤 黨이 반 넘어도 무의미… 다수 여당도 단독입법 못하니
치열한 정책대결도 사라져… 국민에 책임지지 않은 여야
“살다 살다 처음 보는 공천”… ‘180석이 기준’ 된 국회권력
제2당보다 제3당에 유리할 수도 

송평인 논설위원

유권자들은 광복 후 처음으로 어느 정당을 과반으로 만들어줘도 의미 없는 총선을 앞두고 있다. 직전 2012년 총선만 해도 유권자들은 한 정당에 과반 의석(150석)을 부여한다는 현실 가능한 목표를 위해 투표했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5분의 3 의석(180석)이 아니면 의미가 없고 한 정당이 180석을 차지하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 권력 분점이 사실상 예정된 상황에서 어느 특정한 정당의 후보를 지지한다는 의미는 퇴색할 수밖에 없다.

지난 총선에서 복지를 둘러싸고 벌였던 치열한 정책 대결 같은 것은 사라졌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내가 새누리당의 정책을 지지해 새누리당 후보를 뽑아준다고 해서 그 정책이 국회에서 반영된다는 보장이 없다. 내가 더불어민주당의 정책을 지지해 더민주당 후보를 뽑아준다고 해서 그 정책이 국회에서 통과된다는 보장도 없다. 각 당의 각기 다른 정책에 관심을 기울여야 할 아무런 이유가 없다. 명확히 인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는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종류의 총선을 치르고 있다. 

총선이 대통령과 집권당에 대한 평가라는 것도 옛날 얘기다. 청년들은 일자리가 없어 실의에 빠지고 서민들은 전월세가 치솟아 더 먼 교외로 밀려나는데도 야당의 ‘경제실패론’에는 별 반향이 없다. 국회선진화법은 정책 실패의 원인을 대통령과 집권당에 돌리는 것도 어렵게 만들었다. 대통령과 집권당은 야당 때문에 법을 통과시키지 못했다고 주장하고 야당은 합의할 수 없는 법을 만들어와 그랬다고 주장한다. 유권자로서는 법을 시행해보지도 않았으니 어느 쪽 말이 맞는지 알 수 없다. 책임정치 자체가 실종됐다.

의원은 세비 1억5000만 원 외에 보좌진 인건비 등을 포함해 연간 7억 원이 넘는 돈을 지원받는다. 의원이 되면 공항 귀빈석 이용 등 200여 개의 특전이 주어진다. 국회선진화법에서는 야당도 여당에 하등 뒤질 바 없는 영향력을 지닌다. 권한은 많고 국민에게 책임질 필요는 없으니 친박이니 비박이니, 친노니 비노니 하면서 안면몰수하고 싸우는 것이다. 많은 사람이 살다 살다 이런 막장 공천은 처음 본다고 말한다. 이런 총선에서 유권자는 의원을 뽑기 위해 동원되는 거수기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그제 집으로 배달된 선거관리위원회의 후보자 관련 자료를 훑어보면서 의원들만 좋은 투표를 왜 해야 하는지 나 자신을 설득하기 힘들었다.  

국회선진화법을 되돌리지 않고는 선거도 국회도 정상화할 수 없다. 새누리당은 국회선진화법 개정을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나 새누리당이 180석 이상을 얻어 국회선진화법을 고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헌법재판소는 가능한 한 이번 국회 임기가 끝나는 5월 말까지는 국회선진화법에 대한 결정을 내릴 계획이다. 그러나 헌재에 너무 큰 기대를 걸지는 말자. 몇몇 새누리당 의원이 국회의장을 상대로 제기한 것은 헌법소원이나 위헌법률 심판이 아니라 권한쟁의 심판이다. 헌재는 권한쟁의 심판에서 위헌 결정을 내린 적이 없다. 국회의장이 법률에 따라 거부한 직권상정을 국회의원에 대한 권한 침해로 결론 내리기도 어렵지만, 그런 결론을 내린다 하더라도 그 전제가 된 법률을 위헌이라 하기는 더 어렵다.

하지만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국민의당의 분당을 이끌어낸 것도, 국민의당이 더민주당과의 단일화를 거부하게 만든 것도 국회선진화법이다. 국회선진화법은 뜻밖에도 제3당이 제2당보다 더 중요한 정당이 될 수 있는 길을 열어놓았다. 국민의당은 정확히 이런 길을 보고 창당됐다.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이 합해서 180석 이상을 차지할 경우 국민의당이 더민주당을 제치고 새누리당과 국회 권력을 분점하게 된다.

국회선진화법은 당분간 고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현실적이다. 그렇다면 실패로 판명난 새누리당과 더민주당의 조합보다는 새누리당과 국민의당의 조합에 기대를 걸어볼 만하다. 어쩌면 국민의당과 필사적으로 야권의 주도권을 다투는 더민주당이 국민의당을 무력화할 방법으로 국회선진화법의 일부 개정에 찬성하는 예상치 못한 선택을 할 수 있다. 새누리당으로서도 잠재적 대권 후보인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를 견제할 수 있어 좋다. 여러 전제가 충족돼야 할 얘기이지만 이번 총선에서 그래도 의미를 찾는다면 이런 희미한 가능성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권순활의 시장과 자유]경제-기업 계속 짓밟는 ‘5류 정치’


정치인에 대한 불신은 어느 나라나 비슷한 모양이다. 얼마 전 일본 경제주간지 도요게이자이(東洋經濟) 온라인판에 실린 경제평론가 나카하라 게이스케의 글을 읽으면서 든 생각이다.

나카하라는 ‘정치가 여러분, 경제를 더 공부하세요’라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이렇게 썼다. “일본 경제를 활성화하려면 정관계와 산업계가 협력해 지혜를 결집해야 한다. 그러나 지금 일본을 보면서 불안한 것은 가장 생산성이 낮은 분야가 정치가 아닌가라고 느껴지는 점이다. 저(低)생산성 정치야말로 크게 바꿔야 한다.”


생산성 최악의 19대 국회
 

그래도 일본 정치권의 수준과 생산성은 한국보다는 훨씬 높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아베노믹스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경제 활성화 정책이 의회에서 발목을 잡혀 타이밍을 놓친 적은 없다. 폭력으로 국가의 기본 체제를 뒤집으려 했던 극단주의자들이 과거에 대한 반성도, 설명도 없이 ‘민주투사 출신 의원’으로 행세하거나 막말과 폭언으로 물의를 빚는 일도 상상하기 어렵다. 

4년 전 출범한 한국의 19대 국회는 과거 어떤 국회와 비교해도 세비만 축낸 한심한 국회였다. 발의된 법안의 가결률은 40.2%로 역대 최저인 반면 1개 법안당 평균 처리기간은 517일로 가장 길었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과 노동개혁법은 지금도 국회에서 잠자고 있다.

가결된 법안의 내용은 또 어떤가. 자유경제원이 사유재산권과 규제 완화 등 시장경제 원리를 기준으로 분석한 결과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경제 및 기업 관련 법률 650건 중 66%가 반(反)시장적 법안이었다. 의원들의 경제 분야 투표 행태로 본 정당별 이념성향은 새누리당이 좌파에 가까운 중도좌파, 더불어민주당과 정의당이 좌파로 분류됐다. 나는 ‘시장 만능’도 ‘정부 만능’도 믿지 않지만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표방하는 대한민국에서 경제에 관한 한 제대로 된 우파 정당이 하나도 없다는 분석 결과는 충격적이다.

경제를 살리려면 정부도 유능해야 하지만 국회의 협력이 필수불가결하다. 파급효과가 큰 정책치고 입법을 거치지 않고 정부의 힘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얼마나 되나. 주요 경제단체와 기업들이 경제 활성화 입법을 촉구하기 위해 전례 없이 서명운동에 나선 것을 기업 이기주의나 엄살로 치부한다면 현장에서 느끼는 절박감과 위기감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이다. 

장기투병 중인 이건희 삼성 회장은 1995년 ‘기업은 2류, 행정은 3류, 정치는 4류’라는 베이징 발언으로 파문을 일으켰다. 21년이 지난 지금 경쟁력을 다시 점검하면 어떻게 달라졌을까. 기업 본연의 경쟁력은 1.5류 정도로 높아졌다는 느낌도 들지만 한 번씩 터져 나오는 일부 기업인의 구태와 갑질 때문에 전체적으로는 여전히 2류로 평가한다. 행정은 다른 나라와 비교하면 2.5류 수준은 된다고 본다. 정치는 다섯 등급을 기준으로 하면 4류가 아니라 명백히 최하위인 5류로 추락했다. 

소득-일자리는 민간이 만든다

1주일 앞으로 다가온 총선에 출마한 후보들과 소속 정당은 모두 자신들이 경제를 살릴 적임자라고 주장한다. 정치인들이 선거철에 쏟아내는 말잔치에 크게 무게를 두진 않지만 한 가지는 명백하다. 소득 증가든, 일자리 창출이든 실제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주체는 정치인이 아니라 기업을 비롯한 민간 부문이라는 점이다. 이번 총선을 거쳐 구성될 20대 국회에서도 5류 정치가 경제와 기업을 짓눌러 사회의 전반적인 활력을 갉아먹는다면 한국의 미래는 없다.


권순활 논설위원 shkwo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