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63빌딩 수족관을 찾아갔습니다. 자연과 동물에 관심이 많았던 저를 위한 부모님의 선물이었습니다. 푸른 빛을 띄며 어두컴컴한 수족관 안에서 작은 내 몸의 열 배, 스무 배가 넘는 큰 물고기가 스윽하고 지나가고 날카로운 이빨을 가지고 있는 상어가 등장했을 때 어린 나는 그만 자리에 주저앉아 눈물을 보이고 말았습니다. 어린 소녀와 자연과의 첫만남은 이렇게 시작되었습니다. 어렸던 소녀에게 어마어마한 크기로 다가오는 자연은 두려움의 대상이었습니다. 이후 성인이 되어 다시 찾은 수족관, 훌쩍 자라버린 나는 유유히 헤엄치는 큰 물고기들을 바라보며 입을 다물지 못합니다.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는 순간, 인간이 자연과 마주하는 순간이 이와 같지 않을까요?
죽기 전에 꼭 한 번 방문해야 하는 곳.
한 번 보면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자연 경관의 모습.
대자연의 경이로움과 신비함을 만나는 곳.
터키 여행의 하이라이트.
달표면에 착륙한 것 같은 외계행성 그리고 요정들의 고향.
카파도키아를 표현하는 수식어는 셀 수 없이 많습니다.
누구든 가슴속에 품어놓은 나만의 버킷리스트가 있습니다. 그 중 하나, 인간의 꿈, 하늘 위에서 바라본 세상은 어떨까요? 열기구를 타고 하늘 위로 오르는 순간, 두려움이 설렘으로 바뀌며 대자연의 경이로움을 만날 수 있는 곳, 바로 카파도키아입니다.
카파도키아는 이른 아침부터 분주합니다. 해가 뜨지도 않은 새벽, 아침도 거른 채 다양한 국적을 가진 여행객들은 자그마한 차량에 몸을 싣고 어디론가 떠납니다. 사람들이 모인 곳에는 우리가 상상하는 크기 이상의 열기구가 몸을 부풀리며 여행객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열기구를 타고 약 1500피트 상공에 올라 하루의 해가 떠오르는 모습을 바라봅니다. 열기구 바구니 안에서 여행자들은 풍경을 바라보며 환호와 탄성을 내뱉습니다. 매일 이른 새벽이면 형형색색의 열기구가 하늘을 가득 채웁니다. 발 아래 펼쳐지는 낯선 풍경들, 그 어디서도 볼 수 없는 기암괴석들은 수백만 년 동안 자연의 풍화에 부서지고, 깎이고, 다듬어지며 만들어 진 결과물입니다. 화성 탐사선이 찍은 화성의 표면과 흡사합니다. 마치 지구가 아닌 어느 외계행성에 불시착한 듯, 초현실적인 풍경을 선사합니다.
지상에서 발이 떨어질 때의 아찔한 두려움은 곧 상공에서 설렘으로 바뀔 것입니다. 우리가 자연과 마주할 때 느끼는 감정입니다. 오직 바람과 열만을 이용하여 열기구는 하늘로 더 높이 두둥실 날아오릅니다. 처음에는 높은 곳까지 올라갔다 내려가기를 반복하며 지상의 풍경이 손에 안 잡힐 듯 멀어졌다가 가까워집니다. 그리고 계곡을 지날 때에는 바위에 스칠 듯, 안 스칠 듯 다가가면서 스릴 있게 비행하기도 합니다.
짜릿짜릿한 상공에서 한 시간여의 열기구 체험, 더 이상 어떠한 말이 필요한가요?
오직 "아!" 감탄사 하나면 충분합니다.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사랑하는 친구, 연인 그리고 가족과 함께 나누어보세요.
그리고 열기구를 못 타더라도 아쉬워 마세요. 지상에서도 이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만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여기가 끝이 아니랍니다. 지상에 내려오면 이보다 더 놀라운 경관이 곳곳에 펼쳐져 있는 곳이 바로 카파도키아입니다.
하나의 열기구에 보통 5-6명의 건장한 남성 직원이 늘 함께 작업합니다. 열기구가 하늘로 떠오르기 직전의 순간 모두에게는 두려움 또는 설렘의 표정이 가득하나 파일럿을 포함한 직원들은 긴장의 기운이 감돕니다. 커다란 열기구가 뜨고 내릴 때 파일럿과 이 모든 직원들은 하나가 되어 협동심을 발휘합니다. 1초도 긴장을 늦춰서는 안 되는 순간, 안전하게 열기구가 착륙하고 직원들의 표정도 한결 밝아집니다. 무사귀환을 축하하며 파일럿과 함께 모두 축배의 잔을 듭니다.
모두가 웃고 즐기는 순간 묵묵히 뒤에서 열기구를 정돈하고 있는 직원들이 있습니다. 비행 후 파일럿은 모든 박수와 찬사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뒤에 묵묵히 일을 하는 직원들이 없었다면 모든 사람들의 안전은 보장되지 못합니다.
순간 제가 하고 있는 일을 떠올려봅니다. 가이드란 직업은 현장에서 늘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고 함께 소통하며 투어가 끝날 때 박수를 받습니다. 하지만 그 박수는 저만을 위한 박수가 아닙니다. 여행을 떠나기 전 그들과 먼저 만나 여행을 안내하고 일정을 짜는데 도움을 준 사무실에서 묵묵하게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는 직원들이 없었다면 제가 이런 박수를 받지는 못하였겠죠. 모든 일이 그렇듯 협동이 없다면 우리는 일을 성공리에 마무리할 수 없습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을 한 드라마 <미생>에서는 현장직을 강조하는 직원과 사무직을 강조하는 직원이 토론하는 장면이 명장면으로 꼽히었습니다. 현장직, 사무직 어떤 것이 더 중요하고 덜 중요하고를 따지기 보다는 모두 필요하기에 존재하지 않을까요? 우리는 이 사회에서 하나의 울타리 안에서 협동하며 살아가고 있으니까요.
카파도키아를 즐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좋아하는 것은 '걷기' 입니다.
이 곳은 자연의 풍화침식 작용으로 다양한 모습을 가지고 있는 계곡들이 생겼습니다. 계곡 사이의 오솔길을 따라 걸으며 자연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시간을 가져봅니다. 혼자라서 길을 잃을까 불안하신가요? 이렇게 중간중간 계곡의 이름이 쓰여진 이정표만 따라간다면 문제 없습니다. 준비물은 편안한 복장과 운동화, 마실 물과 간식거리, 카메라와 풍경을 즐기는 여유로운 마음가짐이면 충분합니다. 스쳐 지나가는 자연에 조금 더 귀 기울이고 마음에 드는 장소가 나오면 앉아서 휴식을 취하면 됩니다.
주변에 보이는 모든 것이 바위입니다. 그런데 그냥 바위가 아니라 누군가 인위적으로 구멍을 파 놓은 흔적들이 보입니다. 이 곳의 돌은 그냥 돌이 아닙니다. 흙과 비슷하다고 할까요? 손톱으로 혹은 뾰족한 무언가로 콕콕 긁으면 돌가루가 툭툭 떨어집니다. 카파도키아의 지형은 원래 부드러운 사암이 대부분이었습니다. 수백만 년 전 화산에서 분출된 용암으로 형성된 응회암층이 사암 위를 덮어버렸고 응회암 위로 용암이 흘러 넘치면서 단단해지며 새로운 지층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지층이 오랜 세월 동안 풍화 침식 작용으로 오늘과 같은 신비로운 모습으로 변화된 것입니다. 사암과 응회암은 경도가 낮아 이 곳에 있던 사람들은 어렵지 않게 동굴을 만들어 그곳에서 거주할 수 있었습니다. 동굴내부는 여름이면 시원했고 겨울에는 따뜻했기 때문에 훌륭한 거주공간이 될 수 있었습니다.
과거에도 많은 사람들이 이 곳에 와서 굴을 파고 거주했습니다. 단순한 거주지만 있었다면 이곳이 이렇게 유명해지진 않았을 것입니다. 이 곳이 <역사>의 현장이 된 것은 로마의 박해를 피해 온 기독교인들 때문입니다. 그들은 그 당시 이 척박한 땅에서 무엇을 보았을까요? 박해를 피해 온 신자들은 이곳에 굴을 파고 교회를 만들고 살아갔습니다. 또한 시간이 흘러 이슬람 세력을 피하기 위해 동굴 내부에 거주지 또는 교회를 만들고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며 살아갔습니다. 이후에는 속세를 떠나 조용히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에서 수도하기 원하는 수도사들이 모여서 살게 됩니다. 그러했던 장소가 18세기에 사람들에 의해 발견이 되고 세상에 알려지며 현재 끊임없이 미스테리를 풀어가고 있는 곳, 1985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소중한 우리의 보물입니다.
길을 따라 걷다 보면 사람의 발길이 닿기 힘든 곳에 있는 교회와 거주지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부에 들어가보니 오랜 세월이 지나 훼손된 프레스코화가 보입니다. 성인과 천사의 모습이 그려진 것으로 보아 성경의 이야기를 담은 성화임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성화를 천장과 벽에 그려가며 그들은 무엇을 전하고 싶었을까요? 아무도 나를 찾지 못하길 바라는 마음에 동굴 속으로 삶의 터전을 옳길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절박함 그리고 신을 향한 간절함이 느껴집니다.
바위 안에 사람만 살라는 법은 없겠죠? 작은 크기의 네모다란 홈들은 수 백 년 전에 만들어 놓은 비둘기집입니다. 여전히 지금까지 남아있습니다. 세월이 지났지만 카파도키아의 모든 풍경은 그 날 그 순간 그대로 남아있습니다. 하지만 언젠가는 자연의 힘에 의해 조금씩 모습들이 바뀌고 결국 사라져버리는 순간도 오겠죠?
마치 병풍을 펼쳐놓은 것 같은 계곡을 지나가다 보면 창의력을 유발하는 재미난 모습의 바위가 있는 마을에 도착하곤 합니다.
Paşabağ (파샤바)는 벨기에 작가 <피에르 클리포드>에게 영감을 줘 우리에게 잘 알려진 <개구쟁이 스머프>라는 작품이 탄생할 수 있게 해 주었다고 합니다. 경도가 다른 두 바위의 풍화침식 속도가 달랐기 때문에 현재 이러한 재미있는 버섯모양의 바위가 남겨졌습니다. 우리의 눈 앞에 자연이 만든 위대한 작품을 보며 모두 감탄을 자아냅니다. 파란 하늘과 땅 위에 우뚝 솟은 바위의 색은 대조가 되어 이곳이 지구인지 어느 외딴 행성에 불시착한 것은 아닌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킵니다. 그래서 카파도키아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1>의 촬영 장소이기도 합니다.
Devrent (데브란트), <상상의 계곡>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자연이 만들어낸 바위의 모습이 바라보는 각도에 따라 재미난 모습으로 보이는 곳입니다. "저기 낙타가 보인다!" "낙타 옆으로 펭귄 한 마리도 보인다." 당신의 눈에는 눈 앞에 펼쳐진 바위가 단순한 바위로만 보이시나요?
계곡과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있는 카파도키아에서 우뚝 솟아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곳, Uçhisar (우취히사르)입니다. 천연 요새로 적에 대항을 하였던 곳이 현재는 카파도키아에서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전망대가 되어 많은 여행객들을 찾아오게 만드는 인기 장소가 되었습니다. 밤에는 주변 호텔에서 하나 둘씩 켜지는 조명 때문에 아름다운 야경을 선사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 보았던 바위 축소판의 모습을 띄는 기념품들이 곳곳에서 여행자들을 유혹합니다. 중간중간 항아리의 모습도 보입니다. 항아리가 만들어 지는 모습을 직접 보기 위해 Avanos (아바노스)로 떠납니다. 이 곳은 카파도키아에서 도자기를 생산하는 유명한 마을입니다. 총 길이 1,355km의 터키에서 가장 긴 kızıl Irmak(크즐으르막) 주변에서 나는 질 좋은 흙은 도자기를 만드는 최고의 재료입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항아리에 고기와 야채 등 각종 재료를 넣고 뜨겁게 달구어진 가마에 오랜 시간 은근하게 조리하면 <항아리 케밥>으로 불려지는 카파도키아에서 즐길 수 있는 음식이 탄생합니다. 요리를 품고 있는 항아리를 정확한 손놀림으로 뚜껑을 '툭!' 하고 깨면 좋은 냄새가 우리의 식욕을 자극합니다. 식사 후 부른 배를 두들기며 나오는데 식당 앞에 주르륵 쌓여있는 사용 후 깨진 항아리의 모습이 처량하게 느껴집니다. 단 한번의 맛있는 식사를 위해 장렬하게 전사해버린 항아리들에게 박수를 보내고 싶습니다.
지금까지 상공과 지상에서 카파도키아를 만났다면 이번엔 지하입니다. 이 기암괴석 아래로 엄청난 지하세계가 펼쳐집니다. 우리에게는 <지하도시>라고 불려지는 Derinkuyu (데린쿠유)입니다. 지하 8층, 약 85m까지 좁은 계단을 통해 내려가며 지하 속에 모든 것이 잘 갖추어져 있음에 놀라고, 그 깊이와 규모에 놀라지만 그 곳에서 살았을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보면 마음 한 구석이 숙연해집니다.
자연경관은 눈 부시도록 아름답지만 실제 이 곳의 삶은 아이러니하게도 내 모습이 눈에 띄지 않기를 바라며, 계곡 깊숙이 지하 깊은 곳으로 내려가 살았던 사람들의 공간을 지금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내일의 해가 뜨면 자신이 살아 있을 지 죽임을 당할 지 모르는 공포에 사로잡혀 살았던 사람들, 그곳에서 자신들의 종교를 지키며 강한 결속과 믿음을 보여주었던 곳, 출구 앞에서 한 줄기의 빛이 내려옵니다. 이 곳을 나갈 때 사람들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흙이 뽀얗게 쌓인 신발을 보며 내가 오늘 걸은 거리를 생각해 보니 꽤 많이 걸어 다녔습니다. 풍경을 보느라 느끼지 못하였는데 이제서야 다리가 뻐근해지며 통증이 느껴집니다. 카파도키아의 하루 해가 저뭅니다. 오전에 걸어갔던 계곡의 바위에 붉은 색의 태양빛이 입혀지며 바위가 붉게 타오릅니다. "아! 이래서 로즈 밸리이구나!" 자연이 만들어 낸 작품과 인간이 붙인 이름이 절묘하게 맞아 떨어집니다.
신과 자연의 위대한 걸작 그리고 인간의 합작품, 카파도키아.
터키에 살면서 또한 행복한 것은 그냥 봐도 아름다운 카파도키아의 풍경을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고, 눈이 쌓인 사계절의 순간을 매번 느낄 수 있어서 입니다. 바위는 그대로인데 이와 어우러진 자연은 시간이 지나면서 바뀌니까요. 이렇게 세 번째 맞이하는 겨울이 지금 지나가고 있습니다.
글 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사진 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신영아
글쓴이 이나래가이드는…
유럽여행에서 우연히 자전거나라를 만나고 가이드의 열정에 반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스탄불 여행에서 숨겨진 그들의 역사에 놀라고, 역동적이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정에 이끌려 터키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지어준 이름처럼 '나래'를 펼치고 오늘도 열심히 곳곳을 날고 있다. 터키에서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며 이곳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자전거나라 가이드로 하루하루 설렘 속에 보내고 있다.
▼ 터키 레알팩 투어 미리보기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관련여행 : 유로자전거나라 레알팩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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