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목화의 성 파묵칼레, 역사의 도시 셀축 - 터키 레알팩 투어

거울속의 내모습 2015. 6. 3. 21:37

 

오늘도 터키는 아름답습니다. 늘 혼자서 감탄하며 바라보던 풍경과 장소들을 다른 여행자 들과 함께 나누고 공유하며 살아가는 삶은 생각 이상으로 행복하고 뿌듯합니다. 이제까지 터키에서 지내온 시간들을 추억해 보면 세계 곳곳에서 찾아온 다양한 분들과 함께 호흡하며 지냈던 나날들이 가득합니다. 터키가 아니었다면 만날 수 없었던 사람들, 함께할 수 없었던 장소와 시간들.. 터키에서의 다양한 기억과 경험들로 조금씩 성숙해가는 제 자신을 보면 제 인생 최고의 축복은 터키에서 살아갈 수 있었던 그 자체가 아닌가 하고 생각해 봅니다.

동시에 이곳에서 늘 고민하는 것은 어떻게 해야 내가 느낀 이 나라의 아름다움을 다른 사람들에게 잘 전달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멋진 터키의 풍광을 보며 한껏 즐거워하는 여행자들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처음 터키 땅을 밟았을 때 나의 모습이 저랬던가?' 하고 제 지난 기억들을 되돌아보게 되기도 합니다. 터키에 갓 도착한 분들의 눈망울을 가만히 보면 큰 기대감에 늘 초롱초롱하고 입가엔 즐거운 웃음이 가득합니다. 그 분들을 처음 뵙게 되면 가장 먼저 드리곤 하는 질문이 있는데요,

"터키에서 어떤 곳을 제일 보고 싶으셨어요?"

이에 항상 돌아오는 대답도 있습니다.

"음… 파묵칼레요!"

파묵칼레. 현지인들은 이를 '파무-깔레'에 가깝게 발음하곤 합니다. 이름만 들어도 무언가 폭신폭신하고 깔깔한 느낌이 나지 않나요? 파묵칼레는 터키 서부 지역의 한 작은 마을을 일컫는 명칭인데요, 특별한 이름만큼이나 아름다운 전경을 가진 곳으로 명성이 자자합니다. 방금 말씀 드린 것처럼 터키를 찾는 많은 분들이 가장 기대하는 지역이기도 하지요. 많은 분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마을답게 참으로 아름답습니다.

첫 눈에 보기에는 새하얀 눈이 쌓이고 쌓여 이루어진 세상 같지만, 사실 하얗게 보이는 저 바닥은 아주 오랜 세월 동안 석회가 천천히 쌓이고 굳어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모습이랍니다. 한 마디로 '석회암'으로, 무려 1만 5천 년의 세월에 걸쳐 느리게 생성된 것입니다. 어느새 하얗게 세어버린 우리 아버지, 어머니의 머리카락, 주름진 얼굴이 1만 5천년의 석회붕과 함께 겹쳐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파묵칼레'는 터키어로 '파묵'과 '칼레'를 하나로 합쳐 부르는 이름으로, '파묵'이 목화를 뜻하고 '칼레'는 성을 뜻하니 둘이 합쳐 < 목화의 성 > 이라는 의미입니다. 옛 사람들에게는 이 흰 세계가 눈처럼 새하얀 목화를 층층이 쌓아 올린 보송보송한 성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재미있는 이름입니다. 현대의 여러분 눈에도 그렇게 보이시나요?

사실 파묵칼레 일대는 지하에서 솟아나는 따뜻한 온천수가 풍부합니다. 이 온천수는 특히 탄산칼슘 성분을 많이 포함하고 있는데요, 마을 중심부에 위치한 언덕의 남동쪽 경사면 아래로 이 온천수가 흘러 내리면서 물 안의 칼슘 성분이 공기 중의 산소와 결합하면 우리 눈에 보이는 계단식의 흰 석회층이 만들어집니다.

물론 지금도 따뜻한 온천수는 계속 흘러내리고 있습니다. 그 덕에 흰 석회층 위로 꿈처럼 흘러 넘치는 푸른 온천수가 빚어내는 절경을 오늘날에도 감상할 수 있답니다. 다만 현재는 온천수가 과거에 비해 많이 줄어들었기 때문에 석회층 위로 흐르는 물의 양을 인공적으로 조절하고 있습니다.

부드러운 석회층 위로 은은히 흘러내리는 따뜻한 물에 발을 담그면 나도 모르게 아, 하는 탄성과 함께 입가에 슬며시 미소가 머금어집니다. 석회층을 보호하기 위하여 신발과 양말은 벗어둔 채 오로지 맨발로 입장하여야 하는 공간인 덕에 이 곳에서는 누구나 즐겁고 순수한 어린아이가 되어버리지요.

'다 큰 어른이 저기 들어가서 뭐 해..'하고 처음에는 쭈뼛쭈뼛하던 분들이 마침내 씩씩하게 양말을 벗어 던지고, 손에는 카메라를 든 채, 깔깔 웃으며 파묵칼레를 온 몸으로 즐기는 모습을 보면 저도 덩달아 행복해집니다. 푸른 하늘을 담은 온천수에 발을 담그고 그 아래로 펼쳐지는 아기자기한 파묵칼레 마을의 전경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치 내가 동화 속 주인공이 된 듯 한 착각에 빠져들어 이곳에서의 시간이 어떻게 흘러가는지 모를 정도입니다. 발 끝으로부터 온 몸으로 서서히 전해지는 온기에 제 마음 역시 포근해집니다.

이 곳의 온천수는 현대인들 뿐만 아니라 옛 사람들에게도 질병 치료에 효험이 크다고 알려졌었기에 고대 로마 시절에는 이 곳이 온천욕을 겸한 일종의 휴양 도시 역할을 하기도 했었습니다. 오늘날로 비교하자면 '수안보 온천', '유후인 온천'처럼 말이죠. 많은 귀족들과 일부 로마 황제들이 몸을 편안하게 하거나 질병을 다스리기 위해 이 곳을 찾아온 덕에 한 때는 매우 부유한 도시가 되기도 했습니다. 물론 당시의 흔적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파묵칼레의 석회붕 바로 뒤에 위치한 '앤티크 풀'은 일종의 야외 온천인데요,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을 보실 수 있답니다!

보이시나요? 따뜻한 온천수가 솟아나는 바닥 사이로 1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유적의 파편들이 가득한 모습이요! 과거 이곳에 일어난 지진으로 인해 근처에 있던 건물과 기둥들이 무너지며 현재 앤티크 풀의 모습이 완성되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는 이 곳의 별칭은 바¬로 '클레오파트라의 욕장'이랍니다.

클레오파트라는 부하들에게 자신의 아름다움과 젊음을 되돌릴 수 있는 신비의 영약을 찾아오라고 명령을 내린 적이 있는데, 그 중의 한 부하가 떠다 바친 이곳의 온천수를 얼굴에 바른 후 젊음을 되찾았다고 합니다. 그녀는 신비한 온천수의 효능에 깜짝 놀라 먼 이집트에서 이 곳까지 한걸음에 달려와 온 몸을 풍덩! 담그며 온천욕을 즐겼다는 재미있는 전설이 있기 때문에 이러한 별칭을 가지고 있습니다.

클레오파트라가 미용을 위하여 즐긴 온천이라는데 그냥 지나칠 수 없겠죠! 수영복을 착용하고 따스한 온천에 몸을 푹 담그면 그간 쌓인 여행의 피로가 깨끗이 사라진답니다. 고대의 기둥 사이를 유유히 헤엄치며 하루 동안 클레오파트라가 되어보는 아주 특별한 경험, 여러분과 함께라면 더욱 좋을텐데요.

아주 오래 전 이 곳은 단지 석회붕과 온천수로만 유명했던 것이 아니라 '히에라폴리스'라는 이름의 거대한 고대 도시이기도 했습니다. 신약 성경의 골로새서에 언급되는 '히에라볼리'가 바로 이 곳이기도 하지요. '히에라'는 성스러운, '폴리스'는 도시를 뜻하니 둘이 합쳐 < 성스러운 도시 > 입니다. 온천수와 석회층이 빚어내는 아름다운 풍광뿐 아니라 이와 공존하는 신비한 고대 도시 히에라폴리스의 가치 때문에 파묵칼레는 히에라폴리스와 함께 현재 유네스코 지정 세계문화유산으로 등극되어 있습니다.

먼 옛날 전성기에는 인구가 무려 10만에 육박했던 거대한 도시, 히에라폴리스. 하지만 끊임없는 지진과 투르크족의 침입으로 인해 14세기경 도시는 완전히 멸망하였기에 지금은 그 이름조차 낯설게 느껴집니다. 지면 아래 꽁꽁 숨어 있는 고대 도시의 흔적 한 조각을 되살리기 위해 오늘날의 학자들은 머리를 맞대고 고군분투하고 있고, 그 덕에 우리는 히에라폴리스의 언덕을 거닐며 과거의 찬란한 영광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제가 가장 사랑하는 공간은 바로 고대의 극장입니다. 그리스 시절 산의 경사면을 그대로 활용하여 만든 극장은 아직도 우아하고 멋스럽습니다. 객석에 살포시 앉아 과거 배우들이 섰을 야외 무대를 내려다 보면 옛 사람들의 지혜에 감탄하게 됩니다. 왜냐구요? 무대 뒤편에 인위적으로 배경을 만들어 넣은 것이 아니라 그들이 삶을 영위하던 히에라폴리스의 먼 모습 자체가 자연스러운 극의 배경이 되도록 극장을 설계했기 때문이지요. 멀리 한 폭의 수채화처럼 펼쳐지는 히에라폴리스의 전경은 때로는 저녁 노을에 타는 듯 붉게 물들어 관객의 마음을 조용히 울렸을 것이고, 때로는 아침의 햇살에 눈부시게 빛나는 도시의 영광을 그대로 재현해 관객의 마음을 벅차게 만들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날 우리에게도…

극장을 뒤로 하고 언덕을 따라 내려가면 히에라폴리스의 북쪽 가장 끝에 뾰족뾰족하고 긴 나무들이 늘어서 있는 것이 보이는데요, 그 나무들 뒤로는 '네크로폴리스'가 존재합니다. 이는 어마어마한 규모의 옛 공동묘지이지요. 히에라폴리스와 네크로폴리스, 한 겹 얇은 성벽을 사이에 둔 채 서로 마주한 삶과 죽음입니다.

과거 히에라폴리스에서 병을 치유하리라는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먼 곳으로부터 여행을 떠나왔던 사람들이 결국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한 채 이 자리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 곳까지 찾아온 당신에게 어떤 간절한 사연이 있었는지, 고향에 어느 소중한 사람을 두고 멀고 낯선 이 곳에 홀로 잠들어 있는지 재차 물어도 돌아오는 답은 없습니다. 그저 누군가의 묘를 스쳐 지나가는 한 줄기 바람 소리 뿐.. 망자들의 휴식처는 고적합니다. 마치 시간이 얼어붙은 것처럼 말이죠.

네크로폴리스를 떠나, 이번에는 터키 서부의 또 다른 이웃 도시로 여러분을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파묵칼레에서 서쪽으로 약 200km 떨어진 곳에 '셀축'이라는 이름의 작은 마을이 있습니다. 인구 약 3만 명의 소박한 마을이지만, 셀축 자체가 가지고 있는 유적들은 그야말로 핵폭탄 급입니다. 어디 한 번 줄 세워 볼까요? 성경에 언급되는 고대 도시 '에페스', 사도 요한의 무덤 위에 세워졌다는 '성 요한 교회', 고대 세계의 7대 불가사의에 해당하는 '아르테미스 신전 터', 성모 마리아가 여생을 보내었다는 '성모 마리아의 집', 박해를 피해 동굴에서 잠들었던 사나이들이 잠에서 깨어보니 기독교인들의 세상이 되어 있더라는 '잠자는 7인의 동굴'… 이름만 들어도 경이롭습니다! 이 모든 것이 셀축이라는 작은 마을에 모여 있다는 사실이 믿겨지시나요?

꼬불꼬불한 산길을 넘어 '셀축'이라 쓰인 마을 표지판을 지나면 드디어 에페스 유적이 서서히 보이기 시작합니다. 에게해와 맞닿아 있는 터키 서부는 기후가 온화하여 아주 오래 전부터 사람들이 거주를 시작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특히 고대의 그리스인들이 본토를 떠나와 이 근방에 식민 도시를 많이 건설하였는데요, 그 중의 한 곳이 바로 에페스입니다. 신약 성경의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에베소'라는 곳이 바로 이 도시이지요. 현대 터키인들은 이 곳을 '에페스'라고 부르고 있고, 한 때 사도 요한과 바울이 머물렀던 곳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으며 클레오파트라와 안토니우스가 함께 방문했던 도시이기도 합니다.

에페스는 그야말로 화려합니다. 히에라폴리스가 지진으로 버려진 그 당시의 애잔한 모습으로 우리의 마음 한 구석을 아련하게 울렸다면, 에페스는 장엄했던 고대 도시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줍니다. 현재 발굴되어 공개되는 부분이 전체 도시의 약 20%에 해당하는 수준이라고 하니 과거 이 곳이 어떠한 규모를 가지고 있었는지는 생각조차 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이런 고대 도시에서는 풍부한 상상력이 필요합니다. 차가운 돌 한 조각이 말해주는 비밀 이야기를 듣기 위해서는 늘 적극적인 자세가 요구되지요.

이 곳은 에페스의 대극장입니다. 사도행전에 등장하는 은 세공인 데메드리오와 사도 바울의 대립 이야기가 얽혀 있는 곳일 정도로 오랜 역사를 가진 곳이지요. 하지만 여전히 극장이 주는 음향 효과가 훌륭하여 오늘날에도 중요한 행사가 있을 경우 실제 무대로 종종 사용되곤 합니다. 선인들이 물려준 고대의 유산을 지혜롭게 활용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면 부러울 따름입니다. 이천 년 역사를 가진 극장에 앉아 현대 소프라노의 고운 음성을 듣는 기분은 과연 어떠할까요?

물론 오늘은 연주가 없지만, 아쉬운 마음을 안고 무대로 한 걸음 내려가 푸른 하늘 아래 까마득히 높은 객석을 올려다 보니 내 자신이 고대의 여배우가 된 듯한 느낌에 흠뻑 젖어듭니다. 화려한 의상을 걸친 배우들의 카랑카랑한 노랫소리, 춤꾼들의 격정적인 몸짓에 얼굴에서 바닥으로 툭 떨어지는 땀방울 하나, 그리고 극에 반한 관중들이 외치는 열띤 함성과 터질 듯한 박수로 이 극장이 꽉 메워졌을 상상에 제 가슴도 그저 벅차오릅니다. 내친김에 가장 높은 객석까지 올라가 아래를 내려다 보면 저 멀리 우측으로 '아르카디안 대로'가 희게 빛납니다. 세계 최초로 가로등을 가지고 있었던 길이었고, 그 길의 끝은 푸른 바다까지 이어졌다지만 지금은 그저 고요합니다. 자신을 태움으로써 끝없는 어두움을 밝히던 횃불도, 길 끝에서 넘실대던 흰 파도의 바다도 지금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요.

살짝 살짝 깨진 에페스의 대리석 길은 끊어지는 듯 늘 다시 이어지면서 끝없는 과거로의 시간여행에 우리를 초대합니다. 어느 영화에서의 한 장면처럼, 이 길을 따라 에페스를 하염없이 헤매던 끝에 문득 고개를 들면 1800년 전 로마 제국 시절로 어느새 세상이 뒤바뀌어 있을 것만 같은 착각이 드네요. 따가운 햇살을 피해 낯선 계단을 한 걸음 두 걸음 올라 알 수 없는 문 안에 들어가면 그늘 속 수 만권의 파피루스와 양피지의 향이 확, 하고 느껴지면서 먼 옛날의 의복을 걸친 학자들이 손에 귀한 책을 들고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현대의 저를 쳐다보는 그런 상상… 이 곳에서는 가능합니다. 여기는 고대 세계의 3대 도서관 중 하나로 손꼽히는 '셀수스 도서관'이니까요.

그럼 상상을 계속 이어나가 볼까요? 옛 학자들의 모습에 깜짝 놀란 저는 셀수스 도서관을 도망치듯 빠져나와 대리석 길을 정신 없이 달려갑니다. 달려가던 도중 왼쪽으로 희고 튼튼한 건물이 보여 나도 모르게 그 벽면을 꽉 잡고 거친 숨을 몰아쉬는데, 고대의 복장을 한 주변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고 놀란 눈으로 저를 쳐다보네요. 마치 만져서는 안 되는 무언가를 만진 사람을 보는 듯 말이죠. 당황한 제가 벽면에서 손을 얼른 떼고 어리둥절한 채 위를 올려다 보니 돌 위에 조각된 엄숙한 얼굴 하나가 저를 내려다 봅니다. 앗, 눈이 마주치는 인간을 전부 돌로 만들어 버린다는 메두사가 벽면 끝에 새겨져 있는 게 아니겠어요!

이 곳은 '하드리아누스 황제의 신전'. 로마 제국의 전성기를 이끈 5현제 중 하나인 하드리아누스를 위하여 바쳐진 신전으로, 매우 아름답지만 건물 내부에 새겨져 있는 끔찍한 메두사의 얼굴이 큰 특징입니다. 신성한 신전 앞을 지나가는 사람들이 늘 겸손한 자세로 고개를 숙일 수 있도록 일부러 가장 위에 무서운 메두사를 조각해 둔 것으로 추정하고도 있지요.

이제 즐거운 상상을 마치고, 마지막으로 에페스에서 약 5km 떨어진 거리에 있는 산 위로 굽이굽이 올라가 볼까요. 아까의 떠들썩한 분위기는 사라지고, 무언가 한 없이 평온하고 고즈넉한 느낌이 가득한 장소에 새로이 도착했습니다. 이 곳은 터키어로 '메리예마나', 한국어로 번안하여 '성모 마리아의 집'이라 불리는 장소로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곳입니다.

돌로 만들어진 이 작은 집에는 마치 전설 같은 신비한 이야기가 얽혀 있습니다. 19세기 독일의 수녀였던 캐서린 에머리히가 꿈 속에서 '성모 마리아가 마지막 여생을 보낸 집'에 대한 계시를 받아 이를 상세히 기록한 후 사망하였고, 이후 나사렛파의 에우겐 플린이라는 신부가 이 장소에서 폐허가 된 집 한 채를 기적적으로 발견합니다.

놀랍게도 집의 모습은 캐서린 수녀가 기록한 모습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맞아떨어졌고, 과거 터키에 남아 있던 그리스 정교도인들이 매년 8월 15일 이 집에서 모임을 가졌다고 전해지는데 이 날짜는 '성모승천대축일'에 해당합니다. 사도 요한이 성모 마리아를 위하여 산 위에 집 한 채를 지었다는 기록만 남아있고 그 정확한 위치는 세월이 흐름에 따라 모두가 잊게 되었는데, 그로부터 거의 2000년이 지난 지금 꿈의 계시를 따라 그 집을 재발견한 셈이지요.

이후 논란이 있었지만 교황청은 1961년 이에 대한 분쟁을 종식시키고 이 집을 성지로 공식 선포합니다. 그렇기에 오늘날까지 많은 이들이 가슴 속 믿음을 안고 끊임없이 이 곳을 방문하고 있으며, 누구보다도 진지한 얼굴로 기도하는 이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곳이랍니다. 전 세계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좋은 소망과 아름다운 기도를 적어 남기고 간 벽을 바라보노라면 내 마음에도 어느새 잔잔한 평화가 찾아왔음을 느낄 수 있습니다. 언어가 달라도, 피부색이 달라도 결국 우리가 원하는 모든 것은 같겠지요. 가족, 행복, 사랑…

눈을 돌려 하늘을 바라보니 어느 새 저녁 해가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습니다. 이른 아침 일정을 시작했는데 오늘 하루도 어느 새 저물어 가네요. 집을 떠나 낯선 곳에서 바라보는 풍광이지만 결국 이 땅은, 이 하늘은 과거로도 현재로도 미래로도 끝없이 이어져 있겠지요. 지도 한 장과 약간의 용기만 있다면 이토록 오랜 역사와 수많은 전설을 가진 곳으로 자유롭게 여행할 수 있다는 것, 얼마나 멋진 일인가요. 현대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우리만이 가진 특권이겠지요…

터키라는 나라가 이 세상 어디에 존재하는지, 사람들은 무슨 언어를 쓰는지, 어떤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전혀 모르던 제가 지금 이 자리에 존재한다는 사실 자체가 작은 기적일지도 모른다고 혼자 생각해 왔습니다. 하지만 앞으로는 저 혼자만의 기적이 아닐 수도 있겠지요. 끊임없는 터키의 부름에 살짝살짝 아릿해 오는 당신의 마음, 왠지 모르게 쿵쾅쿵쾅 뛰는 심장, 반짝반짝 빛나기 시작하는 눈동자가 지금 제게 느껴집니다.

어쩌면 곧 당신을 터키에서 만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글 : 유로자전거나라 신영아
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신영아,이나래

글쓴이 신영아 가이드는..

경영학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나, 배낭여행으로 처음 만나게 된 터키의 매력에 매료되어 이스탄불에 정착하였다. 현재는 유로자전거나라의 가이드로 이스탄불,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앙카라를 넘나들며 터키에서 얻은 소소한 행복을 여행자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즐거움에 한껏 빠져 있다.

▼ 터키 레알팩 투어 미리보기

제공 :유로자전거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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