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제국의 화려함을 엿보다, 오스만 투어

거울속의 내모습 2015. 6. 3. 21:39

"지금 우리 비행기는 곧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할 예정입니다." 기장님의 안내방송이 조용했던 비행기 안을 채우고 깊은 잠에 빠졌던 승객들이 하나 둘 잠에서 깨어나며 기지개를 폅니다. 한국에서 12시간이나 걸리는 지구 반대편 나라, 터키. 제가 이 곳에 온지도 이제 3년이 넘었습니다. 비행기 위에서 이스탄불 시내의 모습을 내려다 봅니다. 요 몇 년 사이에 태어나고 자란 한국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이스탄불, 매일 보는 모습이지만 이스탄불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밖을 내려다 보면 뱃속에서 무언가 꼬물꼬물 거리는 이상한 기분이 느껴집니다. 마라토너가 출발선 앞에서 출발신호를 기다리는 순간처럼 말이죠. 빼곡하게 채워진 집들 사이로 보이는 뾰족한 첨탑을 가지고 있는 이슬람 사원들이 하나, 둘씩 시야에 들어옵니다. 터키에서만 만날 수 있는 독특한 스카이라인을 보며 처음 이곳에 왔을 때를 떠올려봅니다.

공항에 처음 도착한 나를 맞아주었던, 지금은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는 친동생 같은 내 동료, 그 친구와 함께 트램을 타고 덜컹덜컹 내가 지낼 집으로 향합니다. 차창 밖 풍경을 보며 내가 지낼 곳의 모습을 하나하나 눈에 담는데 "아으아~아아~~~~~" 하는 소리가 갑자기 울려 퍼지는 것 아니겠어요? 마치 고성방가 같은 소리가 잦아들기는커녕 여기 저기서 마치 자신의 소리를 들어달라고 외치는 듯 하였습니다.

내가 사는 나라,
하루에 다섯 번 '아잔'이 울려 퍼지는 나라,
다른 나라에서는 만날 수 없는 경험을 할 수 있는 터키, 지금 그곳에 살고 있습니다.

이스탄불은 서울의 약 1.5배 면적에 무려 약 2000만 명의 사람이 모여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 차창 밖으로 이스탄불의 모습을 멍하니 바라봅니다. 그 순간 우리가 탄 트램이 끊어진 성벽 사이를 통과합니다.

이 성벽이 테오도시우스 성벽, 콘스탄티노플 성벽입니다. 413년 비잔틴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2세 때 지은 성벽입니다. 총 길이 6.5km에 이르는 성벽, 이중으로 되어 있고 11개의 성문과 195개의 감시 탑이 있는, 천여 년 동안 비잔틴제국을 외부로부터 지켜온 철옹성입니다.

처음 터키에 도착했을 때 살았던 집은 성벽 앞에 위치한 동네였습니다. 친구들에게 나는 유적지 앞에서 산다며 들떠서 자랑하기도 하였습니다. 유적과 거주공간의 구분이 없는 터키에서의 삶은 특별했습니다.

성벽 앞 집에 걸려있던 누군가의 빨래,
성벽에 누군가 사랑하는 친구를 떠올리며 그린 낙서,

엄청난 유적지인 것은 분명한데 방치되어 있는 곳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보수를 하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정도 유적은 유적도 아니라는 것일까요? 아니면 주민들의 삶이 유적과 조화롭게 묻어있길 원했던 것일까요? 이곳 사람들에게 오래된 것은 그저 예부터 지금까지 이어지는 것인 듯 했습니다. 과거의 역사가 아닌, 모두가 역사와 함께 현재진행 속에서 살고 있었습니다.

트램이 테오도시우스 성벽을 지나가며 나는 1453년 5월 29일의 순간을 떠올립니다. 대포가 터지는 굉음과 폭발의 소리와 함께 깃발을 휘날리며 말을 타고 달려오는 오스만 제국의 병사들의 우렁찬 함성 소리가 들리는 듯 합니다. 그 때 백마를 타고 늠름하게 이 성벽을 들어왔던 21살의 젊은 술탄, 메흐메트 2세 (Mehmet II, 1432-1481, 재위: 1444-46, 1451-1481 ).

콘스탄티노플 함락은 '그저 야심에만 찬 풋내기, 선대 술탄이 남긴 영토를 현상 유지만 하면 다행인 그릇'이라고 평가되던 그를 영웅으로 바꾸어 놓은 전쟁이었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출신이 천한 노예였습니다. 위로 있었던 두 명의 형제가 병과 암살로 죽게 되자 11살의 어린 나이에 술탄의 자리에 올랐다가 능력을 보이지 못하자 아버지에게 자리를 빼앗기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친어머니를 여의자 아버지는 새 여자와 그 사이의 아들에게만 관심을 보였고 아버지의 측근들에게는 무시를 당하며 모두의 기억 속에서 잊혀져 버린 남자, 바로 메흐메트 2세의 삶이었습니다. 누구보다 독하고 강해지려 노력했을 것입니다. 그가 금은보화보다도 그토록 가지고 싶어했던, 바로 그곳이 이스탄불입니다. 이 성벽을 넘기 위해 무려 57일이라는 대 공방전이 펼쳐졌다고 합니다.

이스탄불에서 관광객으로 늘 북적이는 장소, 술탄아흐멧 광장,
천 년의 시공간 사이에 지금 나는 서 있습니다.

처음 이스탄불에 왔을 때 내가 느낀 감정은 역동과 친화력이었습니다. 이스탄불에서는 의자에 조용히 앉아 사색을 즐기기란 조 금 어려운 것이 사실입니다. 풍경에 취해 자리에 앉아 쉬려고 하면 늘 옆에 다가와 말을 거는 터키사람들, 그리고 내 시선을 사로 잡아버리는 애교덩어리 고양이들. 모두가 그들의 언어와 표현방식으로 다가옵니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위대하다.
신은 오직 한 분이시고, 그분 이외에 그 누구도 없도다.
무함마드는 그가 보낸 사도이니라..
예배 보러 올지라.
성공의 길로 올지라.
신은 오직 한 분이시다.]
- 아잔의 내용 -

또 한 번의 아잔(Azan)이 울려 퍼집니다. 아잔이 울려 퍼지자 사람들의 행동이 분주해집니다. 모두가 약속이라도 한 듯이 소리가 울려 퍼지는 그 곳을 향하여 갑니다. 이름 때문일까요? 처음에는 익숙하지 않아 놀라곤 했던 그 소리가 이제는 들을 때마다 마음이 아련해지는 이유는 왜 일까요?

아야소피아 박물관 맞은편에 있는 술탄 아흐메트 1세의 자미, 우리에게는 블루모스크라고 불리는 것이 더 친숙한 곳입니다. 1616년 오스만제국의 14번째 술탄, 아흐메트 1세(Ahmet I, 1590-1617, 재위: 1603-1617)가 지은 것입니다. 이 때는 오스만제국의 위세가 가장 크면서도 평화적인 시기였기 때문에 제국의 위력을 나타내기 위해 비잔틴 문화를 대표하는 아야소피아 맞은편에 그보다 더 아름답고 화려한, 자신의 이름을 딴 모스크를 지을 것을 명령했습니다.

터키에서 유일하게 첨탑이 6개가 있는 모스크, 제국의 위상을 보여주려 했던 아흐메트 1세는 '황금'(Altın, 알튼)으로 첨탑을 세울 것을 명령하나 이를 듣고 한 나라의 재정을 걱정했던 대신들은 황금과 발음이 비슷한 숫자 '6'(Altı, 알트)으로 기지를 발휘해 6개의 첨탑이 세워졌다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습니다.

블루모스크는 외부뿐만 아니라 내부에서 또 다른 매력을 발산합니다. 260여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이 실내를 비추며 이즈니크에서 생산된 2만천여장의 푸른색 타일들이 빛과 어우러져 실내에 푸르름을 발산합니다. 이 곳에 블루모스크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도 이 때문입니다.

눈을 감고 무릎을 꿇고 신을 향해 내 몸을 낮춥니다. 지금 이곳에서는 가진 자도, 덜 가진 자도 모두 신 앞에서 평등해지는 공간입니다. 들어올 때는 이방인이었으나 경건함 속에서 어느덧 시간이 흐른 후 무슬림 여인처럼 히잡을 두른 내 모습이 낯설지 않음을 느꼈습니다.

두 문화가 공존하고 있는 술탄아흐멧 광장은 이스탄불의 단면을 보여주는 장소입니다. 비잔틴제국 때 세워진 성당이 오스만제국에서는 사원이 되었고 지금은 박물관이 되었습니다. 마주하고 있는 블루모스크까지 가기 위해서 천여 년이라는 역사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건물을 단 오분이면 걸어서 갈 수 있습니다. 실제 거리는 가까운데 왜 두 종교의 거리는 멀기만 할까요? 두 종교의 갈등이 천여 년이라는 시간이 아니라 오분이면 다가갈 수 있을 만큼 가까워진다면 좋을 텐데요.

오스만 제국의 왕을 '술탄'이라 칭합니다.

술탄들의 거처 '톱카프 궁전', '대포 문'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성벽에 과거 대포가 있었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약 21만평의 부지에는 4개의 정원이 있습니다. 정원도 그곳에 있는 건물도 모두 이 곳을 거쳐간 술탄의 취향에 따라 제 각각의 느낌을 자아냅니다. 1453년 꿈에도 그리던 이스탄불을 장악한 술탄 메흐메트 2세가 만든 궁전, 15세기 중반부터 19세기 중반까지 400여년 간 오스만제국의 술탄 24명이 이 곳을 거쳐갔습니다.

오늘도 수많은 관광객들이 찾아가는 그곳에 누구든지 호기심을 가질만한 공간이 있습니다. 아랍어로 '금지', '금남' 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하렘(Harem)입니다. 베일 아래 감춰져 있는 여성의 모습에 흥미를 느끼지 않았을 유럽남성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아라비안 나이트> 혹은 <천일야화>로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했던 그곳, 하렘은 예술가들에게 있어 상상력을 자극 하는 곳입니다.

하렘에 발을 들인 순간 떠오르는 색, 잿빛 즉 무채색이었습니다. 입구에서 처음 본 방의 이름은 환관 내시의 방입니다. 하렘으로 향하는 키를 들고 있었던 거세를 한 흑인 환관이 이곳을 지키고 있는 모습을 상상하니 등골이 오싹해지는 기분입니다. 밝고 화려함을 상상했던 나의 눈 앞에는 좁고 어두컴컴한 골목, 울퉁불퉁한 돌 바닥, 200-300개가 넘는 방과 조그마한 창살이 달린 창문뿐이었습니다. 울퉁불퉁한 돌 바닥에 자꾸 발을 헛딛여 신경이 쓰입니다. 술탄은 이곳에 들어갈 때면 밑에 은이 달려있는 신발을 신었다고 합니다. 돌 바닥과 신발의 마찰음이 '덜그럭' 하렘 내부에 울려 퍼지게 되고 그 소리를 들은 여성들은 모두 술탄의 행차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또는 술탄의 눈에 띄지 않도록 자신의 모습을 감추어야 했습니다.

삐끗! 발이 또 다시 돌 틈 속에 빠져버립니다.
햇빛을 보기 위해 고개를 들었습니다.

하렘의 공간에 있었던 시간 나는 잠시 그 순간의 여인의 삶으로 돌아간 듯 합니다. 향락과 유희로 가득했을 것만 같았던 그 공간에서 한번이라도 술탄의 눈에 띄려 애쓰던 여인들의 눈빛이 보이는 듯 하였습니다. 선택 받은 자에게는 화려하고 호화로운 삶이 따랐지만 선택 받지 못한 여인에게는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이 따랐던 양면의 색깔이 공존했던 하렘, 외부와 단절된 공간에서 격식과 지켜야 할 의무가 있고 충성과 배신이 따랐던 곳, 오늘도 무채색의 그 공간에서 다양한 관광객들은 각자의 상상의 나래를 펴며 하렘에 색을 입혀갈 것입니다.

명실상부한 제국의 핵심이었던 톱카프 궁전,
1856년 돌마바흐체 궁전에게 영광을 넘기다.

복잡한 술탄아흐멧 광장을 지나 보스포로스 해협 쪽으로 이동하면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는 궁전이 있습니다. 돌마바흐체 궁전입니다. '가득찬 정원'이라는 뜻으로 바다를 메운 곳에 세워졌기 때문에 이러한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돌마바흐체 궁전은 바로크, 로코코 양식 등 서구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을 모델로 만든 곳입니다. 근대화로 쇠락해가는 오스만제국의 부활을 위해 약 14톤의 금, 약 40톤의 은 그리고 유럽각지에서 가져온 가구와 장식품, 명화로 화려하게 장식하였지만 이 때문에 재정부담이 커져 제국의 몰락을 재촉해버린 비운의 궁전입니다.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려고 했던 화려함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많은 관광객들의 눈을 즐겁게 해주는 장소입니다.

6명의 술탄이 이 화려했던 돌마바흐체 궁전에서 생활을 하였고 오스만 제국의 화려함은 역사 속으로 잠든 채 터키는 공화국을 맞이하게 됩니다. 터키의 초대대통령, 무스타파 케말 아타튀르크(Mustafa Kemal Atatürk, 1881-1938, 재위 : 1923-1938)가 관저로 사용하였고 이곳의 집무실에서 사망하였습니다.

↑ 사진 출저_ 위키피디아

↑ 사진 출저_ 위키피디아

돌마바흐체 궁전 앞 카페에서 보스포로스 해협을 바라보며 깊고 진한 터키 커피를 마시곤 합니다. 하루의 해가 지는 것처럼 영원할 것 같았던 오스만제국도 역사 속으로 저물어 갑니다.

덜컹! 쿵!
비행기 바퀴가 활주로에 닿으며 마찰음이 일어납니다. 다시 현실 속으로 돌아왔습니다. 혼자 생각에 잠긴 사이 비행기는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에 도착했습니다.

영국의 역사학자 토인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스탄불은 인류 문명의 살아있는 옥외 박물관이다."

또한 나폴레옹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만일 세계가 하나의 나라라면 그 수도는 이스탄불일 것이다."

두 대륙 위에 서 있는 세계유일의 도시, 이스탄불. 많은 나라들이 이스탄불을 중심으로 뻗어있습니다. 화려했던 오스만제국의 역사가 살아 숨쉬는 터키, 비행기에서 내려 핸드폰의 노래를 재생시키니 '터키행진곡'의 경쾌한 리듬이 이어폰을 가득 채웁니다. 공항을 나서는 발걸음에도 힘이 들어갑니다. 새로운 일들이 가득한, 앞으로 내가 지낼 곳 터키. 오늘은 이스탄불에서 어떤 일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요?

글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사진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신영아

글쓴이 이나래가이드는…

유럽여행에서 우연히 유로자전거나라를 만나고 가이드의 열정에 반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스탄불 여행에서 그들의 숨겨진 역사에 놀라고, 역동적이면서 친절한 사람들의 정에 이끌려 터키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지어주신 이름처럼 '나래'를 펼치고 오늘도 열심히 곳곳을 날고 있다. 터키에서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며 이곳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유로자전거나라 가이드로 하루하루 설렘 속에 보내고 있다.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관련여행 : 유로자전거나라 오스만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