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내 잎이 다 떨어져 가지가 앙상해진 무화과나무를 무심히 지나쳤습니다. 여름 내내 그렇게 푸르렀는데 저렇게 바짝 메마를 수 있다니! 그 무성했던 초록 잎사귀들은 전부 어디로 갔지, 생각하며 떠나가려던 찰나 가지 끝 희미한 무언가가 눈에 밟힙니다. 재촉하던 발걸음을 잠시 멈추어 나무를 유심히 들여다보니 그제서야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합니다. 메마른 가지 사이마다 살짝, 하지만 단단히 앉은 연두빛 작은 생명들이..
죽은 줄로만 알았던 겨울 나무에서 봄을 품은 작은 열매들이 자라나고 있었습니다. 이토록 조그마한 생명들이 사람도 견디기 힘든 혹독한 추위에 맞서 아직 아득하기만 한 봄을 묵묵히 기다리고 있다니 그저 고맙고 또 놀랍습니다. 죽음과 같은 고요 안에서 서서히 피어나는 작은 생명의 시작은 초록색이었습니다. 아, 바로 그 색이네요. 언제였더라, 멀고 먼 터키의 동부 끝자락에서 눈을 떴을 때 꿈처럼 보았던 드넓은 초록 평원의 색!
그저 한없이 먼 곳으로 떠나고 싶었던 때가 있었습니다. 아무도 나를 알지 못하는 낯선 곳에서 그 동안 내 자신조차 알 수 없었던 진짜 나와 새롭게 마주하고 싶었던 그런 때가.. 차가운 현실을 도망치듯 떠나 이곳저곳 떠돌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터키의 동쪽 땅이었습니다. 마음 고운 사람들이 가득하다는 그 곳은 얼마나 따스할까, 한 줄기 희망과 같은 온기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하며 도착한 그 곳은 매우 넓고 아름다웠지만 동시에 거칠었습니다.
대체 터키 땅이 얼마나 넓냐구요? 대략 남한의 일곱 배 면적쯤 됩니다. 하지만 대륙을 잇는 기차가 발달하지 않은 탓에 항상 장거리 버스를 습관처럼 타는 터키인들! 그들은 세 시간 이하 거리를 운행하는 버스는 버스 취급도 하지 않습니다. 적어도 여섯 시간은 탑승해야 '나 버스 탔습니다' 하고 말할 수 있을 정도이지요. 그 덕에 광활한 터키 동부를 여행할 당시에는 '내가 평생 타야 할 버스들을 지금 몰아서 다 타고 있구나' 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힘들었던 기억은 없습니다.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태어나 처음 본 이국의 멋진 풍경에 온 시선과 마음을 빼앗겨 피로를 느낄 틈이라곤 단 한 순간도 없었으니까요. 별이 쏟아지는 밤을 지나 드넓은 초원 위로 떠오르는 아침 해의 황금빛 잔영, 초록빛 들판 위 그림처럼 뛰어 노는 폭신폭신한 하얀 양들, 햇빛에 피부가 검게 그을린 양치기 총각이 흰 이를 모두 드러내며 활짝 웃던 얼굴, 푸른 하늘에 낮게 걸린 솜 같은 구름들이 산자락에 드리우는 그림자의 굴곡... 그런 것들. 그간 텔레비전과 사진으로만 접했던 이 모든 것이 내 앞에 한 편의 영화처럼 펼쳐지는데 어찌 눈을 감고 있겠습니까.
하나라도 더 보고 싶은 마음에 한국에서 계획해온 일정은 매우 빡빡했고, 이를 반도 채 소화하지 못했을 무렵 심한 몸살 감기에 걸려 앓아 누운 적이 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침대 밖으로 한 발짝도 나가지 않고 땀만 줄줄 흘렸더니 다행히 어느 정도 몸이 호전되었습니다. 더 이상 일정을 지체할 수 없었기에 일단 떠나고 보자는 생각으로 열 시간짜리 야간 버스에 채 낫지 않은 몸을 실었습니다. 다행히 더 이상 아프지는 않았지만 기침만은 끝까지 따라오더군요. 동부의 먼 땅을 달리기 시작한 버스에 불이 꺼지고 모든 이가 잠든 그 무렵까지 강한 기침은 계속되었고, 입을 꽉 다문 채 있는 힘껏 터져 나오는 그것을 참아보려 애썼지만 전혀 소용없는 일이었습니다.
모든 승객한테 민폐가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하고 있을 때 갑자기 불이 꺼져 깜깜한 오른쪽 통로에서 손 하나가 쑥 들어왔습니다. 깜짝 놀라 옆을 보니 조그마한 소년 하나가 걱정스러운 얼굴을 하고 제 옆에 서 있었습니다. 스무 살은 되었을까, 바싹 마른 체구에 걸친, 적어도 한 치수는 커 보이는 사이즈의 와이셔츠, 그리고 바싹 졸라맨 나비 넥타이.. 야간 버스의 소년 차장이었습니다.
잠든 손님들이 깰까 나지막한 목소리로 제게 무언가를 말하는데 도통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죠. 손에 흰 무언가를 들고 연신 받으라는 제스추어를 취하길래 얼떨결에 일단 받아보니 하얀 종이컵이 제 손안에 들어왔네요. 받아 들자마자 따스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이 따스한 것이 무언가 싶어 얼굴을 바싹 대고 확인해 보니 코 끝으로 전해지는 깊은 향기... 터키식 차이로군요.¬
소년 차장은 버스 제일 앞자리에서 연신 기침을 뱉어내는 동양 여자아이가 몹시 걱정스러웠던 것입니다. 그런 저를 몰래 지켜보던 소년은 더 이상 안되겠다 싶었는지 종이컵을 구해와 따스한 홍차를 얼른 만들어 빠르게 전해주고 갔던 것이지요. 홍차의 향을 확인한 순간 무언가 부끄럽기도 하고, 깜깜한 공간에서 어설픈 손길로 차를 뚝딱뚝딱 만들어 몰래 건네주었을 소년 차장을 생각하니 고맙기도 하고.. 살짝 붉어져오는 볼을 어둠 속에 감추며 차이를 홀짝 홀짝 마셨습니다. 소년의 예쁜 마음처럼 차이는 따스했고, 덕분에 저도 야간 버스 안에서 편안히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수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기억 속에 생생한 종이컵의 온기.. 제게 있어 터키의 동부는 차이만큼이나 마음이 한없이 따뜻한 사람들 그 자체로 기억됩니다. 비록 지금은 나라 내부와 외부의 사정으로 인해 선뜻 다가가기 쉽지 않은 땅으로 변하였지만 그 깊숙한 곳에 숨겨져 있는 보석보다 영롱한 사람들의 마음씨, 깊은 역사와 아픔을 함께 간직한 고대의 유적들.. 전부 제 기억 속에 생생히 살아있기에 추억 속의 그 작은 마을들, 그리고 사람들을 생각하면 마음 한 구석이 절로 아릿해 옵니다.
어디서도 보지 못한 새로운 나를 만나고 싶어서, 그리고 또 한편으로는 치유 받고 싶어서 아무것도 모른 채 가이드북 하나만 들고 찾아갔던 터키의 동부. 그 광활한 땅에서 제가 제일로 보고 싶었던 것은 어느 궁전이었습니다.
아마 지금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도 비슷한 경험이 한 번쯤은 있으시겠지요. 지구 어딘가의 낯선 장소를 담은 사진 한 장에 반하고, 오랫동안 그 곳을 꿈꾸다 마치 자석처럼 이끌려 끝내 그 곳을 직접 찾아가고야만 그런 경험.. 제게도 그런 장소가 있습니다. 푸른 겨울 하늘 아래 펼쳐진 모래빛 아름다운 꿈의 한 조각, 우연히 만난 이 곳의 사진에 반해 몇 날 며칠 동안 잠을 설쳤는지 모릅니다. 터키의 최동부이자 이란의 국경에 바로 접한 '도우베야즛' 이라는 도시에 위치한 이 건물의 이름은 '이삭 파샤 궁전' 입니다.
오스만 제국 시절인1685년 이 지역을 다스렸던 '졸락 아브디 파샤'에 의해 건설이 시작되었고, 이후 1784년 그의 손자인 '메흐멧 파샤'에 의해 궁전이 완공되었으니 약 99년에 걸쳐 만들어진 건물입니다. 터키의 다른 유적들에 비해 비교적 짧은 3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는 궁전인 덕인지 아직까지도 아름다운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어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고 있기도 하지요. 아름다운 궁전의 내부로 들어가면 주방, 샘터, 여인들의 공간인 하렘, 정무를 보던 공간 등이 보수작업을 거쳐 일반 대중들에게 그대로 개방되고 있습니다.
황량하다 못해 신비로운 색조를 띄고 있는 초록 언덕 위에 우뚝 서 있는 궁전의 모습은 비단 과거의 저 뿐만 아니라 터키 동부를 여행하는 모든 이들의 마음을 아직도 두근거리게 만들고 있습니다. 지는 해와 함께 바라보는 이삭 파샤 궁전, 그리고 그 뒤로 펼쳐지는 도우베야즛 시가의 전경은 보는 이의 가슴 한 켠을 아련히 울리는 이상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뿐만 아니라 이 도시는 터키 최고봉인 해발 고도 5137m의 '아라랏 산' 을 함께 가지고 있어서 만년설로 만들어진 흰 모자를 쓰고 있는 산 할아버지의 모습을 마을 어디에서든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이 산의 허리에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가 닿았다는 전설을 간직한 터가 아직도 남아 있습니다.
도우베야즛 시가의 모습은 터키 서부의 도시들에 비해 매우 좁고 어딘가 한층 어두운 느낌을 물씬 풍깁니다. 보수적인 분위기 탓에 길에서는 여성들을 찾아보기 쉽지 않지요. 하지만 거리를 꽉 메운 현지인들 특유의 선이 강한 얼굴과 뚜렷한 눈매에서 터키의 동부만이 가지는 특유의 생명력과 역동성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두우면서도 어딘가 활기찬, 그야말로 묘한 마을입니다. 처음 만나는 낯선 마을과 좁은 골목들의 모습에 당황하여 어쩔 줄 몰라 헤매던 어느 차가운 아침, 위기에 빠진 저를 구해낸 사람은 어느 작은 소녀였습니다.
머리에는 히잡을 두른 채 등에는 책가방을 매고 있던 그 소녀는 아마도 학교에 가던 모양이었습니다. 이곳 저곳 헤매는 제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소녀는 크고 까만 눈을 깜빡이며 한참이나 저를 바라보다 마침내 제 손을 가만히 잡았습니다. 우리는 짤막한 영어 대화를 통하여 멀지 않은 장소에 위치한 깔끔한 숙소를 함께 찾아낼 수 있었습니다. 이별의 순간, 그 소녀는 잠시 머뭇거리다 책가방을 풀어 무언가 뒤적이더니 작은 공책 한 권을 꺼내 제 눈 앞에 펼쳐 보였습니다. 손때가 가득 탄 노란 공책 안에는 놀랍게도 삐뚤빼뚤 연습하며 써내려간 한글이 가득했습니다!
사실은 한국을 정말 사랑한다고 조그만 목소리로 속삭인 소녀는 굿바이, 라는 마지막 인사만 건네고 빠르게 뛰어가 사라졌습니다. 그 아침에 제가 잡았던 고사리 같은 작은 소녀의 손은 지금쯤 얼마나 커져 있을까요. 아름다운 아가씨로 성장했을 그 소녀를 그 때 그 곳에서 다시 만나게 된다면.. 아마도 반갑게 웃어 주겠지요?
도우베야즛에서 차를 타고 더욱 남쪽으로 약 3시간을 달려 내려가면 '반' 이라는 도시에 닿게 됩니다. 이 곳에는 터키에서 제일 커다란 호수, '반 호수'가 존재합니다. 면적만 해도 약 3700 제곱 킬로미터, 평균 깊이가 171m이니 참으로 거대하지요? 크기뿐만 아니라 색상도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지중해 이상으로 푸르른 하늘 빛을 담은 호수는 어디로 시선을 돌리든 끊임없이 이어집니다. 호수의 중심부에는 '악다마르' 라는 이름의 작은 섬이 위치해 있어 보트를 타고 즐거운 피크닉을 떠날 수도 있답니다.
반 호수만큼이나 아름다운 전경을 가진 장소를 한 곳 더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이번 도시에서는 커다란 산과 함께 까마득한 절벽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그 절벽 위에는 긴 건물이 믿을 수 없을 정도로 아슬아슬하게 위치해 있습니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의 끝에 어떻게 저런 건물이 지어졌을까요? 이 신기한 건물의 정체는 터키 동부의 북쪽 끝 흑해에 접해 있는 '트라브존' 이라는 도시 외곽의 '쉬멜라 수도원' 입니다. 신비한 계시를 따라 찾아온 그리스의 수도사들이 만들어 내었다는 이 곳.. 절벽에 위치한 탓에 평지로부터 산 허리까지 급경사를 따라 약 30분을 숨가쁘게 걸어 올라가니 드디어 쉬멜라 수도원의 모습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옛 수도사들은 모두 떠나고 이제는 박물관화 된 건물이지만 내부에는 과거 그들이 깊은 믿음으로 정성스럽게 그려낸 성경 속 이야기들이 가득합니다. 남겨진 프레스코화들은 현재 훼손의 정도가 심하여 매우 안타깝지만, 처음 그려진 때로부터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모든 이에게 깊은 감동과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벽면에 성스러운 그림을 하나하나 그려 나갔을 옛 사람들의 손길, 간절한 믿음 하나를 가지고 멀리 산 아래로부터 무거운 돌과 나무를 짊어지고 날랐을 이들의 발걸음, 멀리 안개 낀 산 아래를 바라보며 종종 남겨진 가족과 마을의 안녕을 생각했을 옛 사람들의 눈빛.. 직접 보지 않았어도, 듣지 않았어도 생생히 그려집니다.
트라브존을 벗어나 더욱 동쪽으로 조금 더 달려가면, 혼자만 알고 있고 싶을 정도로 환상적인 신비로움을 간직한 옛 도시가 있습니다. '아니' 라는 이름의 옛 유적입니다. 지금으로부터 천 년 전 아르메니아 왕국에 속한 도시였던 '아니'는 끊임없는 외세의 침입과 대지진에 시달리며 완전히 폐허가 된 채 현재는 터키 영토에 편입되어 있습니다. 길고 아픈 역사를 가진 이 곳.. 하지만 철저히 파괴된 옛 도시의 흔적 위로 자연의 생명은 또다시 이어집니다. 파괴된 이후 어느 누구의 손길도 쉽사리 허하지 않았던 덕에 지금 이 곳은 초록빛 들풀들, 그리고 알록달록 예쁜 야생화들의 세상이 되었습니다.
산산조각 난 인간들의 덧없는 꿈, 그 허망한 파괴의 상처를 치유하는 풀잎의 부드러운 손길.. 이제는 초록 수풀에 파묻혀버린 옛 도시를 혼자 조용히 거닐다 보면 이 커다란 세계 안에서, 그리고 이 세계가 태초부터 이어 온 장엄한 세월 안에서 지금의 내가 손에 거머쥐려 애쓰는 것들은 얼마나 부질없고 쉽게 사라질 것들인지 깨닫게 됩니다. 지금 인간들이 그토록 갖고 싶어 안달 내며 싸우는 모든 것들은 언젠가 이 유적처럼 부서져 흔적 하나 없이 깨끗하게 가버리겠지요. 거대한 세계와 역사의 흐름 앞에서 고작 내 마음 하나가 떠안고 있는 고민들, 그리고 이제까지 껴안고자 싸워온 것들을 펼쳐 보니 너무나 작고 보잘 것 없어 그저 헛웃음이 나올 뿐이었습니다.
간밤에 내린 비에 젖어 촉촉한 흙길을 걷다 보니 한 무리의 떠들썩한 터키 젊은이들과 마주쳤습니다. 반짝반짝 호기심 어린 눈으로 저를 쳐다보던 그들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제게 다가와 서툰 영어로 쏟아지듯 말을 걸어왔습니다. 어쩐지 어려 보인다 했더니 터키의 대학생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환한 미소와 함께 간식으로 싸온 빵과 차를 제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따스한 마음을 거절할 수 없어 빵을 받아 들고 한 조각 베어 물었던 기억이 나네요.
이후 멀리 제가 보이지 않게 될 때까지 열심히 손을 흔들어 주었던 그들의 다정한 모습을 본 후 그제서야 깨닫게 되었습니다. 어둡게 무너져버렸던 이곳에서 누군가의 미소와 함께 새로운 삶과 작은 희망들이 또 다시 시작되었음을요... 이제 옛 추억도 점점 희미해져 갑니다. 뿌연 기억들 위로 메마른 무화과 나무 가지와 초록빛 열매가 겹쳐 보이네요. 다시 현실입니다. 이제 발걸음을 옮길 때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잠깐만요 여러분, 그 사실 알고 계셨나요? 무화과 나무에는 꽃이 영영 피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무화과 나무의 화사한 꽃들은 초록빛 열매 안에 가득 들이차 있기에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을요. 터키도 그렇습니다. 겉에서 홀깃 보기에는 절대 알 수 없지만 그 안으로 한 걸음 들어섰을 때 사람들의 밝은 미소와 친절한 손길이 가득했던, 제게는 마치 무화과 열매의 숨겨진 단면과 같았던 그 곳이 터키의 동부입니다.
말은 잘 통하지 않아도 눈빛으로 함께 마음을 나누었던 그 다정했던 사람들.. 그들과 꼭 닮은 까만 눈동자를 이스탄불에서 마주치면 지금도 마음 한 켠이 아련해집니다. 나를 치유해 주었던 그들, 웃게 해 주었던 그들, 따스하게 손 잡아 주었던 그들.. 앞으로 다시는 만날 수 없다 해도 제 기억 속 소중한 사람들은, 지금 저 멀리 동쪽 하늘 아래 어딘가에서 저와 같은 오늘을 살아가고 있겠지요.
..사람에 따라 별들은 모두 달라요.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별은 안내자예요. 어떤 사람들에게는 조그만 빛 외에 아무것도 아니고, 학자인 어떤 사람들에겐 별들이 문젯거리이고, 내가 말한 사업가에겐 금으로 보이겠죠. (...)
그런데 아저씬 다른 사람들과는 다른 별을 갖게 될 거예요. 아저씨가 밤에 하늘을 바라보면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살고 있고, 내가 그 별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을 테니까요. 그럼 아저씨에겐 모든 별들이 웃고 있는 것처럼 보일 거예요.
아저씬 웃을 줄 아는 별들을 갖게 되는 거예요!
-생택쥐페리, '어린 왕자' 中
글 : 유로자전거나라 신영아
사진 : 유로자전거나라 신영아,이나래
글쓴이 신영아 가이드는..
경영학을 전공한 평범한 대학생이었으나, 배낭여행으로 처음 만나게 된 터키의 매력에 매료되어 이스탄불에 정착하였다. 현재는 유로자전거나라의 가이드로 이스탄불, 파묵칼레, 카파도키아, 앙카라를 넘나들며 터키에서 얻은 소소한 행복을 여행자들에게 널리 전파하는 즐거움에 한껏 빠져 있다.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더 많은 터키 이야기 : 유로자전거나라 터키 현지통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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