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요람에서 무덤까지 – 터키인의 生과 死

거울속의 내모습 2015. 6. 3. 21:26

8살 때 외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종이학을 곱게 접어 유리병에 넣어 주셨던 감동의 선물과 햇살이 가득한 날 마당에 앉아 강아지와 함께 놀던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모습 그리고 함께 고추장을 만들었던 따스했던 어린 날의 기억들은 지금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그런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그때는 죽음이 무엇인지 몰랐었던 어린아이에 불과했습니다. 어머니는 슬피 우셨고 상황을 이해할 수 없었던 나는 굳은 표정의 가족들과 함께 외할머니 댁으로 갔습니다. 자주 놀러 가서 익숙한 곳이지만 붉은 등과 향이 피워져 있었던 그 날의 그 곳은 낯설게만 느껴졌습니다. 다들 정신이 없었고 나는 방에 혼자 남겨진 채 시간을 보냈습니다. 화장실에 가기 위해 거실로 나온 순간 방 문틈 사이로 하얀 옷을 입고 주무시는 듯 누워있는 할머니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때가 할머니를 볼 수 있었던 마지막이었습니다. 이제 할머니는 사진 속에서만 만나 뵐 수 있습니다. 아마도 그때가 제가 죽음을 인지했던 순간이었고 그 순간의 기억은 아직도 생생하게 남아있습니다.

누구에게나 삶은 하나입니다. 태어나서 처음 겪는 일들로 삶은 구성됩니다. 그리고 하나뿐인 삶은 소중합니다.

오늘도 어떤 가정에는 축복을 받으며 소중한 생명이 태어나고, 어떤 가정에는 생을 마친 이와의 슬픈 이별을 준비합니다. 태어나고 다시 흙으로 돌아가는 모습은 모든 살아있는 생명이라면 치르게 되는 통과의례입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와 종교가 공존합니다. 터키에서 그들이 살고 있는 현지 중심에서 함께 어울려 지내며 그들의 문화를 체험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들을 보내고 있습니다. 어떤 문화가 옳고 그른 것인지 또는 우월과 열등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세상에는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것을 매 순간 느낍니다. 아마도 짧은 여행이라면 만날 수 없었겠죠. 현지인의 가족 행사에 이방인이라 할 수 있는 제가 초대를 받고 함께 웃고 즐길 수 있는 시간들이 온 것을 보니 뿌듯하기도 뭉클하기도 합니다. 오늘은 책에서는 만날 수 없는 터키인 삶의 희노애락의 순간을 공유하고 싶습니다.

다양한 문화를 직접 확인하는 시간, 터키인들의 삶의 중심으로 여러분들을 초대합니다.

터키를 여행하게 되면 무의식적으로 기억에 남는 문양이 있습니다. 푸른색의 조약돌 같이 생긴, 관광지 또는 기념품 가게에서 유난히 많이 볼 수 있는 장식품 입니다. Nazar boncuğu (나자르 본주), 우리에게는 <악마의 눈> 이라고 불려지는 물건입니다. 푸른색, 검정색 눈동자처럼 보이는 이것의 강력한 힘이 나쁜 기운으로부터 즉 악마들에게서 나를 보호해 준다고 믿는 부적과도 같은 물건입니다. 현지인들은 이것을 자신의 몸, 가정집의 현관, 차량 내부 또는 상점 입구에 걸어 놓습니다.

나자르 본주가 걸려있는 집의 현관문이 열리고 자그마한 체구의 아이와 어머니가 함께 외출을 준비합니다. 유난히 큰 눈망울을 가지고 있는 이곳 아이들의 모습은 천사와도 같습니다. 사랑스러운 아이들을 바라보는 부모의 마음은 모두가 같겠죠? 아이의 행동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 카메라에 담는 어머니의 행동이 분주해집니다.

터키인들은 주말이 되면 대부분의 시간을 가족들과 함께 보냅니다. 관광지를 벗어난 공원 또는 이슬람사원 (Cami) 주변에는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를 나온 현지인들로 북적입니다.

수 많은 사람들 무리 속에 왕자님 복장을 하고 있는 아이들이 보입니다. 처음에는 '오스만제국 왕가의 후손인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한 두 명도 아닌 하루에 대, 여섯 명의 아이들을 만나고 집으로 돌아온 날, 문득 궁금했습니다. '왜? 왕자님 복장을 입고 있을까? 무엇을 하는 아이들일까?' 바로 이러한 복장을 입고 있었던 남자아이들은 화동도 아니었고 방송에 출연하는 아역배우도 아니었습니다. 할례식을 준비하는 아이들이었습니다.

할례는 사내아이가 성인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는 절차 중 하나이며 위생 상 불결해 질 수 있는 부분을 제거함으로써 신 앞에서 청결한 몸과 마음을 유지하려는 경건한 종교 활동입니다. <할례를 하였다>는 곧 <진정한 남자가 되었다>라는 의미로 성인사회에 속할 수 있는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남자다움과 용기를 시험할 수 있는 단계로 보통 터키에서는 4세에서 15세 사이에 할례를 원칙으로 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런 복장을 입고 있는 귀여운 남자아이가 여러분 옆을 걸어간다면 "어른이 된 것을 축하해" 하고 인사를 나눠보는 것은 어떨까요? 아마도 이 아이는 아직 자신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겠지만요.

유난히 꽃을 좋아하는 터키사람들 때문인지 동네 곳곳에 꽃가게가 있습니다. 가정을 꾸미기 위해 꽃을 사가는 여성들과 퇴근길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꽃을 사가는 남성들의 모습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성인이 된 남녀가 만나 서로 사랑하고 평생을 함께 할 반려자가 되기로 약속을 합니다.

사람들이 많이 찾는 쇼핑센터와 거리에는 파티복, 웨딩드레스를 판매 또는 대여하는 상점이 많습니다. 소중한 순간 신부의 웨딩드레스는 유난히도 화려하고 아름답습니다. 화창한 날 드레스를 입고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웨딩 화보 촬영을 합니다. 특히 파묵칼레 또는 카파도키아의 멋진 자연경관을 배경 삼아 찍는 사진은 그들이 누릴 수 있는 행운 아닐까요?

터키의 결혼식은 우리나라 결혼식처럼 간소하지 않습니다. 약혼식도 있고 결혼식은 보통 이틀 동안 진행됩니다. 우리의 초 스피드, 초 간단 결혼문화와는 많이 다릅니다. 메인 결혼식의 전날 Kına gecesi <헤나의 밤>가 열립니다. 서양의 처녀파티와 같은 개념으로 신부와 신부의 친구들, 오직 여자들만 모여서 화려한 파티복을 입고 한껏 치장한 채 함께 음식을 나누고 춤을 추는 시간을 갖습니다. 터키의 경우 헤나가 악운으로부터 지켜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기 때문에 신부의 손바닥을 헤나로 물들이며 장식해줍니다.

한쪽에 대기하고 있던 친구들과 친척들이 초를 양쪽에 들고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면서 나오고 홀 중앙에 의자를 놓고 신부를 앉게 합니다. 그런 후 신부의 머리 위에 빨간색의 천을 덮고 친구들이 노래에 맞추어 주변을 돌기 시작합니다. 신부의 얼굴은 베일에 가려져 더욱더 신비한 모습을 자아냅니다. 이 의식이 진행되는 동안에는 구슬픈 노래가 흐르며 모든 사람들은 신부가 울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과거에는 여자가 시집을 가면 친정에 돌아오기 어려웠기 때문에 결혼식 전날 밤에 신부가 눈물을 흘리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슬픈 마음을 달래기 위해 천을 덮고 그 시간 동안 신부가 편히 울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부는 이 시간 동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결혼식 당일이 다가옵니다. 우리는 보통 아버지의 손을 잡고 신부가 등장하지만 터키는 신랑과 신부가 동시에 입장을 합니다. 그리고 터키 결혼식에서 절대 빠질 수 없는 것이 바로 춤입니다. 음악이 켜지며 입장을 한 신랑 신부는 그대로 손과 허리를 맞대고 부르스를 추기 시작합니다. 그러면 하객들도 마치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모두 무대로 나와서 함께 춤을 춥니다. 결혼식에서만 들을 수 있는 리듬이 반복되는 신나는 음악에 맞춰서 서로 새끼손가락을 걸고 한쪽 방향으로 돌면서 같은 동작을 반복합니다. 우리의 강강수월래 같은 터키의 춤입니다. 터키의 결혼은 춤으로 시작하여 춤으로 끝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한바탕 신나는 춤 파티가 끝이 나면 터키 결혼식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축의금 전달식이 시작됩니다. 우리처럼 축의금을 봉투에 넣어 전달하는 것이 아닌 직접 신랑 신부, 그들의 옷에 주렁주렁 달아준다는 것이었습니다. 신랑과 신부의 목에 머플러와 같은 천이 둘러지고 하객들은 그 천에 현금이나 금 동전을 붙여줍니다. 이 축의금 전달식은 하객이 수 백 명이면 수 백 명 모두 직접 인사하며 붙이고 기념촬영이 끝날 때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축의금의 액수도 다양합니다. 금액이 높으면 높을수록 위에 붙인다고 합니다. 목과 어깨에 느껴지는 무게가 무거워질수록 이 결혼을 축하해주기 위해 찾아온 이들이 많음을 의미하기 때문에 신랑 신부는 힘들어도 이 시간을 기쁘게 즐길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결혼식에도 나라마다 다양한 재미있는 그들만의 문화가 있다는 것을 느꼈던 순간이었습니다.

마지막으로 결혼을 인정하는 담당공무원이 나와서 서약을 받고 혼인신고를 하는 절차가 따릅니다. 모두가 함께 보는 앞, 증인 앞에서 맹세하고 결혼식은 다시 한번 흥겨운 파티로 바뀝니다. 이렇게 오후에 시작된 예식은 늦은 밤이 되어 끝나곤 합니다.

우리의 결혼식이 떠오릅니다. 우리의 결혼식과 비교해보면 터키의 결혼식은 시끄럽고 정신도 없습니다. 준비할 때는 복잡하지만 1-2시간 후 끝나고 나면 모든 하객이 썰물처럼 빠지며 허탈하고 허무한 느낌마저 드는 한국의 결혼문화가 조금은 아쉬워지는 순간입니다. 결혼식을 주최하는 입장에서 단지 남에게 보여주기 위한 결혼이 아닌 그리고 식에 초대받은 사람들도 인사치레로 참석한 것이 아닌 양쪽 모두 신랑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축하해주기 위해 참석하는 결혼문화가 우리에게도 필요한 시기인 것 같습니다. 결혼시즌만 되면 하루에 두세 건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해 동분서주해본 경험이 모두 한번 쯤은 있을 것 입니다. 터키에서 하루에 두건 이상의 결혼식에 참석하는 것은 이 모습을 보셨다면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것입니다. 12시간 이상 춤을 출 수 있는 흥과 체력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가능하겠지만요.

가족이란 울타리 안에서 새로운 사람을 맞이하기도 하지만 때론 함께했던 사람을 보내야 하는 순간도 찾아옵니다. 이슬람에서 죽음은 종말이 아닌 영혼과 육체의 연결고리가 소멸함을 의미합니다. 또한 죽은 자를 화장하면 영혼의 안식처가 소멸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화장이 아닌 매장을 합니다. 매장하기 전까지 사자가 고통을 느낀다고 생각하는 이슬람의 장례에는 빠른 매장 (24시간 이내) 을 하며 사자의 얼굴이 사우디아라비아 메카 (이슬람교 제1의 성지)의 방향으로 향하게 고정시킨 후 매장합니다. 대부분 가족 묘로 서, 너 명이 매장될 수 있도록 묘실은 넓게 판다고 합니다. 골목길에는 표지판이 길을 안내해주고 있습니다.

터키에서는 집과 시내 가까운 곳에서 공동묘지를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시내에 있는 공동묘지에는 카페가 자리잡고 있습니다. 이 카페는 우리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관광지입니다. 망자들의 공간 위에 카페가 있는 것도 놀라웠지만 묘지가 있는 골목길에서 이야기를 나누며 편안하게 걷는 사람들의 모습도 새롭게 다가왔습니다. 사람들의 행동만 본다면 이 곳은 공동묘지가 아닌 평범한 돌담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게 죽음은 두려운 존재가 아닌 언젠가는 겪게 되는 인생의 통과의례이기 때문에 이 장소 역시 누구든 쉽게 찾아올 수 있는 일상의 한 공간이었습니다.

묘지 주변에 고양이가 유난히 많았습니다. 이제야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찾아오는 가족들을 보고 싶어하는 망자들이 고양이로 다시 태어난 것은 아닐까요?

사회에서 가장 작은 집단, 가족입니다.

가족과 함께 많은 시간을 보내는 터키사람들, 나라마다 문화가 다르지만 유난히 터키는 가족과 함께하는 일상의 순간이 많습니다. 핵가족화 되고 있는 우리의 사회에서 가장 가까운 곳에 있지만 그래도 소홀해지는 것도 바로 가족입니다. 타지에서 혼자 생활을 하다 보면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깨달게 됩니다. 늘 곁에서 위해주고 지켜주는 든든한 버팀목 가족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의 안부 인사를 전하는 시간을 가져보세요.

글 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사진 _ 유로자전거나라 이나래, 최동훈, 신영아

글쓴이 이나래가이드는…

유럽여행에서 우연히 자전거나라를 만나고 가이드의 열정에 반해 다니던 직장도 그만둔 채 지구 반대편으로 날아왔다. 짧지만 강렬했던 이스탄불 여행에서 숨겨진 그들의 역사에 놀라고, 역동적이지만 친절한 사람들의 정에 이끌려 터키에서 인생의 2막을 시작했다. 부모님께서 지어준 이름처럼 '나래'를 펼치고 오늘도 열심히 곳곳을 날고 있다. 터키에서 다양한 여행자들을 만나며 이곳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자전거나라 가이드로 하루하루 설렘 속에 보내고 있다.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더 많은 터키 이야기 : 유로자전거나라 터키 현지통신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