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의 동부 스페인 접경에는 성곽 마을이 유독 많다. 지도에서 보면 점 하나에 지나지 않아도, 오랜 세월 국경을 지켜온 마을이다. 깎아지른 돌산 위에 몸을 숨긴 작은 마을 몬산투, 절벽 위 둥근 성곽이 마을을 감싸는 수르텔랴, 양떼가 노니는 초원 뒤로 봉긋 솟은 언덕 위의 벨몽테의 고요하고 애틋한 중세의 시간 속을 거닐었다. 시간이 멈춘 듯 비현실적인 풍경에 감탄이 쏟아졌다.
가장 포르투갈다운 마을, 몬산투
지붕 대신 거대한 바위를 머리에 인 집. 이 기묘한 사진 한 장에 이끌려 먼 여행을 떠났다. 포르투갈 수도 리스본에서 세 시간쯤 달렸을까. 차창 밖으로 무한 반복되는 광활한 들판과 올리브나무 풍광에 지루해질 무렵 대평원 위에 불쑥 솟은 돌산이 시야에 들어왔다. 일행이 들뜬 목소리로 외쳤다. “몬산투(Monsanto)다!”
반질반질한 돌길을 따라 돌집이 촘촘하게 이어졌다. 세 집 건너 한 집마다 지붕 위에 코끼리만 한 바위가 얹혀 있다. 집의 일부가 된 바위는 몬산투의 흔한 풍경이다. 바위에 짙게 내려앉은 이끼에선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신기한 풍경에 반해 넋을 잃고 바라보는데, 한 할아버지가 말을 걸어왔다. “미라도우루, 미라도우루!” 마법사의 주문 같은 단어를 반복하며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뒤를 따라가자 탁 트인 공터가 나왔다. 걸음을 멈추고 아래를 내려다 봤다. 바위와 어우러진 오렌지빛 지붕 집들 너머 들판까지 한눈에 담겼다. 나중에야 알게 됐지만, 미라도우루는 포르투갈어로 ‘전망대’란 뜻이다.
몬산투의 돌덩이들은 우주에서 운석이 떨어진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거대하다. 사실 바위는 땅에서 솟아올랐다. 먼 옛날 마그마가 굳으며 형성된 암석층이 오랜 시간 침식과 풍화를 거쳐 화강암 산이 된 까닭이다. 이 척박한 화강암 산 중턱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15세기부터다. 그 후로 수차례 스페인의 공격을 받았지만, 몬산투 사람들은 바위처럼 우직하게 마을을 지켜냈다. 세월이 흘러 1983년 ‘포르투갈 사람이 뽑은 포르투갈에서 가장 포르투갈다운 마을’로 선정되면서 몬산투가 세상에 알려졌다.
바위랑 같이 사는 몬산투 사람들
사진 속 집채만 한 화강암을 얹고 있는 집의 정체는 ‘페치스쿠스 에 그라니토스’라는 식당이었다. 갑자기 내리는 비를 피해 식당으로 들어섰다. 놀라운 것은 식당 안에도 바위가 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게 아닌가. 몬산투에서 자란 야생 버섯 요리를 권하는 오너 셰프 주앙에게 몬산투 돌집에 대해 이것저것 물었다.
“바위랑 같이 사는 게 불편하지 않냐고요? 전혀요. 선조들은 바위가 이 땅의 주인이라 여겨 부수거나 옮기지 않았어요. 오히려 거대한 돌을 지붕 삼고 벽 삼아 집을 지었지요. 암석과 암석 사이를 막아 천연 냉장고, 그루타(Gruta)도 고안해 냈죠. 지금도 여름에 그루타 안에서 맥주를 마시면 얼마나 시원한지 몰라요.”
그제야 왜 포르투갈 사람들이 몬산투를 ‘포르투갈에서 가장 포르투갈다운 마을’이라 부르는지 알 것 같았다. 포르투갈답다는 수식어에는 돌을 운명처럼 품고 사는 이 나라 특유의 정서가 녹아 있으리라. 식당을 나서자 비에 젖은 골목과 집들은 한층 진한 색감을 뿜어냈다. 돌담을 타고 자란 넝쿨 장미의 향도 짙어졌다. 말없는 돌에서도 온기가 느껴지는 듯했다.
탐험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의 고향 벨몽테
몬산투에서 자동차로 1시간쯤 달리면 양떼가 한가로이 풀을 뜯는 초원 뒤로 봉긋 솟은 언덕 위에 벨몽테(Belmonte)에 이른다. ‘아름다운 언덕’이란 뜻의 이름은 지리적인 위치와 포르투갈에서 가장 높은 ‘세하 다 에스트렐라(Serra da Estrela)’ 산이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전망에서 유래했다. 벨몽테의 볼거리는 중세 분위기가 물씬 나는 마을과 벨몽테 성이다. 대항해시대를 빛낸 탐험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Pedro vares Cabral)’의 고향으로도 유명하다.
청명한 하늘 아래 깃털 같은 구름을 휘장처럼 두른 벨몽테 성의 자태가 위풍당당했다. 성 꼭대기엔 포르투갈 국기가 펄럭이고 왼편에는 십자가가 세워져 있다. 성을 지키는 이는 포르투갈 문장이 그려진 나무십자가가 탐험가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이 브라질을 발견했을 때 포르투갈 영토임을 표시했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1500년 13척의 범선을 이끌고 인도 희망봉으로 항해를 떠난 페드루 알바르스 카브랄은 항로를 벗어나 브라질에 이르렀다. 당시 브라질을 섬이라 여긴 그는 나무 십자가를 세워 ‘진정한 십자가의 섬’이라 명하고 포르투갈 영토임을 선언하고 희망봉을 향한 항해를 계속했다.
벨몽테 성 역시 국경을 강화하라는 돔 산초 1세의 명을 받아 건축됐다. 이후 알폰소 3세, 디니스 왕, 주앙 1세 등 역대 왕마다 강력한 요새로 개축을 거듭했다. 위용이 넘치는 외관과 성안에는 성벽 일부만 남아있었다. 남은 성벽의 창 너머로 본 벨몽테의 풍경은 지난 세월을 잊은 듯 평온했다.
걸어서 중세 속으로, 수르텔랴
수르텔랴(Sortelha)는 13세기 중세 성곽의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된 마을이다. 벨몽테에서 차로 30분 거리라 함께 둘러볼 수 있다. 수르텔랴 성은 원래 13세기에 돔 산초 1세가 스페인 수비를 위해 지었다. 1297년 국경선이 동쪽으로 옮겨지며 잠시 잊히기도 했지만 1640년 국토회복전쟁을 위해 재건됐다.
과연 듣던 대로였다. 작은 성문 하나 통과했을 뿐인데 중세 성곽 마을이 속살을 드러냈다. 머리 위에 왕관을 얹은 듯 뾰족한 총안과 돌을 쌓아 올린 탑, 괴물 모양 석상, 굽이굽이 물결치듯 마을을 빙 두른 성벽이 남아 있었다. 성벽으로 오르는 계단도 옛 모습 그대로였다. 천천히 성벽을 따라 마을 한 바퀴 빙 돌았다. 성벽 위에서 내려다 본 마을은 마치 오렌지색 지붕의 장난감 집을 심어 놓은 것 같았다. 대부분 집은 발코니가 있는 2층집으로 중세엔 1층을 동물 축사로 사용했단다. 저 안에 사람이 살고 있을까? 궁금해 하며 들여다보던 집의 문이 열리고 한 아주머니가 밖으로 나오며 “보아 타르데(Boa Tarde, 좋은 오후!)” 라고 인사를 건넸다. 그녀의 미소가 오후 햇볕만큼 따스했다.
마을 어귀 농가를 개조한 식당에서 이른 저녁을 먹기로 했다. 벨몽테를 건립한 돔 산초 1세의 이름을 딴 돔 산초 식당으로 산돼지, 사슴, 산토끼 등 직접 사냥한 고기로 요리한 음식으로 입소문이 자자했다. 국경 마을답게 식당 안은 스페인 사람이 반, 포르투갈 사람이 반이었다. 서로 다른 언어로 이야기를 나누는 손님들 덕에 식당 안은 왁자지껄했다. 성곽 마을에서의 시간을 되새기는 마음으로 천천히 식사를 즐겼다. 푸짐하게 차린 음식도 입에 꽤 잘 맞았다. 어느새 소음 같던 말소리가 내 귀엔 화음을 이룬 노랫소리처럼 들렸다.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여행정보
포르투갈 여행자들은 대개 수도 리스본에서 몬산투를 향한 첫 걸음을 뗀다. 몬산투를 비롯한 중부 성곽 마을들은 리스본에서 자동차로 3~4시간 거리. 워낙 외진 곳이라 렌터카를 이용하면 편리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할 경우 카스텔루 브랑쿠까지 가서 몬산투 행 버스로 갈아타야 한다. 리스본에서 카스텔루 브랑쿠까지는 오리엔테(Oriente) 기차역에서 IC 기차를 타는 게 편하다. 하루 평균 3회 운행하며 소요 시간은 약 3시간. 기차 시간표는 홈페이지(cp.pt)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카스텔루 브랑쿠 버스터미널에서 몬산투까지는 하루 1~2회 버스가 오간다. 소요시간은 약 1시간. 몬산투 버스정류소에 내리면 바로 마을 입구가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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