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마추픽추를 발견하다

거울속의 내모습 2017. 1. 16. 23:30

스페인이 잉카제국을 정복할 당시 마추픽추만큼은 발견하지 못했다. 마추픽추는 20세기에야 미국인 빙엄에 의해 세상에 알려지게 된, 무려 400년 가까이 숨겨져 있던 공중도시다. 영원히 풀리지 않을 것만 같은 그 수수께끼를 찾아서 떠나기로 했다.

   
 
물이 없던 온천 마을기차를 타고 가고 싶었으나 가격이 비쌌다. 혼자서 가는 것과 여행사를 통해 가는 것을 비교했다. 혼자서 가는 게 20달러 정도 절약할 수 있지만, 매우 힘들다. 결국, 여행사를 선택. 가격은 1박 2일 130달러였다.

쿠스코에서 마추픽추 가는 길은 굉장히 험난하고 멀지만, 풍경만큼은 정말 아름답다. 아침부터 오후까지 차로 달렸다. 중간에 잠깐 들러서 점심을 먹었다. 차가 다닐 수 없는 길이 있어 걸어야 했다. 기찻길을 따라 걷고, 계단을 오르고, 아슬아슬 다리 위를 지나기도 했다. 마추픽추의 숨겨진 도시를 향해 걷고 또 걸었다.
   
순박한 웃음의 원주민과 라마.
 
   
400년간 숨겨진 도시 마추픽추.
밤늦게야 하룻밤 머물 마을에 도착했다. 그런데 가이드를 잘못 만났나 보다. 제대로 통솔 하지 않아서 같이 차를 탔던 사람들이 흩어지기도 했다. 우리가 머무르는 마을 이름은 아구아스깔리옌떼스. 뜨거운 물, 온천 마을이란 뜻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숙소에 물이 안 나왔다. 가이드는 마을 전체가 단수라고 한다. 식당에선 2시간을 기다린 뒤 밥을 먹을 수 있었다. 그런데 그 곳에서 안 사실, 우리 숙소만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이었다.
   
와이나픽추에서 바라본 마추픽추.
식사가 끝나갈 때쯤, 이번엔 가이드가 표가 매진이라는 소리를 한다. 돈을 더 내면 다른 방법으로 표를 구해주겠단다. 나는 이미 예매했기 때문에 상관없었지만, 다른 사람이 문제였다. 자정까지 다른 여행자들과 열심히 싸웠다. 결국, 모든 여행자가 표를 받아냈다.

다음날 새벽 5시. 와야 할 가이드가 안 왔다. 조식이 포함된 여행이었는데, 조식도 주질 않았다. 버스를 타고 가면 마추픽추까지 15분이 걸리지만 9달러나 내야 했다. 결국, 같은 숙소 여행자들과 걷기 시작했다. 시간이 너무 촉박하다. 서둘러야 한다. 해발 2,000m에서 시작된 계단은 2,400m까지 이어져 있다. 겨우 6시 45분 정도에 산 정상에 도착했다.
   
9달러를 아끼기 위해 걸은 길.
숨겨진 신비의 도시 숨이 멎을 것처럼 헐떡거리며 정상에 오르니, 정말 숨이 멎을 것 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가이드 때문에 망친 기분이 순식간에 잊힐 만큼 아름다웠다. 이렇게 높은 산봉우리에 어떻게 이런 도시를 만들 수 있단 말인가?

1911년 미국의 빙엄은 산꼭대기에 숨겨진 도시가 있다는 것을 주민에게 듣게 되고, 11살짜리 꼬마 가이드를 따라 올라갔다. 빙엄이 발견할 당시의 모습과 지금의 모습은 다르다. 당시에는 숲으로 뒤덮여 있었으나, 오랜 복구 노력 끝에 당시의 모습 그대로를 볼 수 있게 되었다.
   
샤크사이와만의 웅장함.
사실 이곳은 잉카 도시라기보다는 케추아 도시라고 해야 한다. 잉카는 왕을, 케추아는 서민을 부르는 단어다. 천 명이 넘는 서민들이 여기에 살았으나, 나중에 아마존으로 피신했다. 1911년 발견 당시 케추아 두세 가족이 살고 있었다.

문제의 가이드 말고 다른 사람이 영어로 설명해주었는데 매우 흥미로웠다. 여러 그림을 들고 다니며 장소를 이동할 때마다 자세히 설명해줬다. 돌의 재질을 보면 이곳에 살던 사람들의 신분을 알 수 있다. 매끈하고 네모난 돌은 신분이 높은 사람, 정교함 없이 투박한 돌은 서민 케추아가 살던 집이다.
   
우연히 발견하게 된 온천탕.
며칠 전 시티 투어로 태양의 신전을 방문했다. 그곳엔 돌 사이의 틈이 전혀 없으며, 표면은 굉장히 매끈하다. 잉카가 머물던 곳이었기 때문이다. 케추아가 살던 곳, 당시의 호텔, 신전 등을 돌아다니다 보니 내게 초능력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물건에 손을 대면 그 물건의 모든 역사가 눈에 보이는 그런 초능력 말이다. 초능력은 없지만, 눈을 감고 그때를 상상해봤다.

마추픽추는 케추아어로 ‘오래된 봉우리’를 뜻한다. 와이나픽추는 젊은 봉우리다. 마추픽추 반대편 봉우리가 바로 와이나픽추이다. 나는 10달러를 더 내고 와이나픽추도 신청했다. 와이나픽추 정상에 올라 멀리서 마추픽추를 바라보았다. 중간에 가이드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마추픽추를 처음 봤을 때, 심장이 멎을 거 같던 그 순간은 평생 잊지 못한다. 기차를 타고 편하게 버스에 앉아 올랐다면 감동이 이렇게까지 크진 않았을 거다.

차로도, 도보로도 가기 힘들었던 곳에 200톤이 넘는 돌들이 이 공중도시를 짓는데 쓰였다. 케추아들은 이곳에 삶의 터전을 마련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발견하지 못했던 곳에서 그들만의 삶을 꾸렸다. 혹시 우리가 모르는 어딘가에 여전히 숨겨진 공중 도시가 있지는 않을까?
   
하룻밤 텐트 칠 곳을 제공해 준 원주민.
다시 시작된 고산 라이딩 앞으로 일주일간 해발 3,400m에서 시작해 3,000m까지 내려간 다음 무려 4,300m까지 다시 올라가야 한다. 내가 정말 이걸 할 수 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정이다. 고산병으로 고생한 내가, 안데스 산맥에서 무사히 자전거를 탈 수 있을까? 나도 잘 모르겠다. 우선은 시도해 보자.

쿠스코를 빠져나오는데 무지막지한 역풍이 불었다. 자전거를 탈 때 가장 위험한 것 중 하나가 바로 강한 바람이다. 자전거가 휘청거렸다. 트럭이라도 지나가면 더 흔들려 위험하다. 결국, 자전거를 끌고 가야 했다.

해가 지기 전 우르꼬스Urcos 마을에 도착했다. 성당에 들어가 텐트를 쳐도 되냐고 물었지만 거절당했다. 경찰서에서도 거절했다. 경찰서에 있던 사람이 어딘가를 추천해줘 따라갔다. 그곳에 텐트를 쳤다. 집주인은 스페인어를 할 줄 몰랐다. 케추아 사람이고 케추아 언어를 한다. 이름을 수첩에 적어달라고 했으나 고개를 저었다. 글을 모르는 거 같다. 갑자기 펜을 내민 내 손이 미안해졌다. 착한 집주인은 차와 빵을 주며 친절히 대해줬다.

달콤한 잠에 피로를 녹이고 다음 날, 시내를 벗어나던 내 눈에 신기한 장면이 들어왔다. 화사한 옷을 입고 끝이 노란 천을 머리에 쓴 원주민들이 단체로 서 있었다. 알고 보니 사회복지 시스템 중 하나였다.

페루 정부는 이곳에 있는 원주민에게 두 달에 한 번 200솔(77달러)을 준다. 모두 카드를 갖고 있었다. 은행 직원이 ATM에서 일일이 그들의 카드를 받아 돈을 꺼내주고 있었다. 정부가 케추아 원주민들을 위해 복지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는 게 신기해 보이기도 했고 감사하기도 했다.
   
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장면.
아침은 길에서 감자와 달걀로 해결했다. 시내를 벗어나니 서서히 오르막이 시작됐다. 해가 뉘엿할 때까지 한참을 달렸다. 꼼바빠따Combapata 마을에 도착해 경찰서에 갔으나 이번에도 텐트를 칠 수 없단다. 아무래도 페루에선 경찰서에 텐트 치는 게 안 되나 보다. 마을의 한 슈퍼 주인에게 허락을 받아 창고에 텐트를 쳤다.

다음 날 아침 슈퍼 주인이 차와 빵을 줬다. 상쾌한 기분으로 마을을 빠져나왔다. 저 멀리 분홍색의 바탕에 노란색으로 쓰여진 ‘Feliz Viaje’란 글이 보였다. ‘행복한 여행 되세요’란 뜻이다. 오늘도 행복한 자전거 페달 길이 펼쳐지겠지.4,300m 고지를 넘다 페달이 힘든 만큼 풍경이 멋지다. 길옆에는 더벅머리와 어벙한 표정의 라마들이 내게 인사한다. 오늘은 해발 4,000m까지 올라가야 한다. 너무 힘들어서 자전거 끌고 가다가 잠깐 쉬었다. 그런데 문득 망가진 스포크가 눈에 들어왔다. 다음 도시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는 상황. 히치하이크를 해야 할까? 우선은 시험 삼아 계속 자전거를 타고 가기로 했다. 오르막에선 끌고, 내리막에선 타기를 반복했다.

도대체 마을이 있는 건가? 하고 걱정 될 때쯤, 온천탕을 발견했다. 5달러짜리 숙소에 짐을 풀고 주변을 둘러보기로 했다. 물이 땅 밑에서 솟아나는 것처럼 거품이 일어나고 있었다. 냄새도 굉장히 이상했다. 야외에 큰 온천탕이 있고, 건물 안에도 개인 온천탕이 있었다.

숨쉬기 힘든 해발 4,000m에서 온천탕에 들어가니 호흡이 더욱 힘들었다. 얼마 있지도 못하고 샤워하러 갔지만, 찬물만 나왔다. 더워 죽다가 추워 죽는 줄 알았다.

저녁에 혼자 스포크를 갈아 보려 했지만 장비가 없어서 결국 포기했다. 숙소가 너무 낡아서 치안이 걱정됐다. 밤중에 누가 침입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가능해 보였다. 자전거를 문에 기대어 놓고 잠자리에 들었다.
   
폐가에서 가장 무서운 밤을 보냈다.
다음 날 아침, 해발 4,000m부터 자전거를 타기 시작했다. 오늘은 굉장히 중요한 날이다. 해발 4,300m 고지까지 올라가야 하기 때문이다. 안데스 산맥에서 자전거를 타다 보면 길이 점점 멀어질수록 포장도로가 풍경에 잠겨 안 보인다. 멀리 보면 길이 없는 것 같지만, 가다 보면 결국은 길은 있다. 결국, 내 생애 자전거로 올라간 가장 높은 곳에 도달했다. 해냈다는 성취감에 두 손 번쩍 들고 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었다.

다음 도시에서 고장 난 스포크를 고쳤다. 다시 페달을 밟았다. 마을을 벗어나는데 길에 모래들이 잔뜩 뿌려져 있었다. 지나가는 차들이 모래를 뿜었다. 그런데 곧 모래를 깐 이유를 알게 됐다. 자전거 바퀴에 녹은 아스팔트가 겹겹이 싸여 있었던 것. 바퀴가 아스팔트인지, 아스팔트가 바퀴인지 구별할 수 없을 정도다. 충격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또 다른 문제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밤이 찾아오고 있었는데 아직 길 한복판이다. 게다가 천둥번개가 몰아치고 있다.

다음 도시까지는 15km나 떨어져 있다. 밤에 자전거를 타지 않는 나로서는 불가능한 거리다. 우여곡절 끝에 한 현지인의 빈집에서 텐트를 치고 잘 수 있게 되었다. 폐가에서 자는 공포체험 같았다. 쥐가 계속 이상한 소리를 내는 바람에 더 무서웠다.

하지만 결국, 밤은 태양 빛에 걷히기 마련. 오늘은 세상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호수에 가는 날이라 마음이 부풀었다. 오늘 가야 할 곳이 바로 푸노라는 해발 3,800m에 위치한 곳이다.
   
현지 배를 타고 티티카카 호수를 즐기는 사람들.
티티카카 호수위에 사는 사람 “티티카카.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래, 거기서 수영하면 세상에서 가장 높은 물 위에 떠 있는 거야. 언젠간, 꼭 해볼 거야.” 영화 <후아유>에서 이나영의 대사다. 그래서 한국 사람들에겐 세계에서 제일 높은 호수로 알려졌다. 하지만 사실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는 남미 안데스 산맥의 ‘오호스델살라도’라는 화산의 분화구 호수다. 해발 6,890m다. 그다음은 티베트에 있는 호수, 그다음은 중국, 다다음도 중국, 다다다음도 중국이다. 티티카카는 순위 밖이다.

비록 세상에서 가장 높은 호수는 아닐지라도 티티카카에는 특별한 게 있다. 바로 호수 위에 사람이 살고 있다는 것. 이 호수에는 우로스라는 44개의 갈대로 만들어진 인공 섬이 있는데 이곳에 사람이 살고 있다. 갈대가 무려 3m나 쌓여 있어 물에 가라앉을 걱정이 없다. 갈대가 오래되면 그 위에 새로운 갈대를 얹는다. 그렇게 우로스 인공섬을 유지할 수 있다.

물 위에서 살고 있다니, 굉장히 독특했다. 배를 타고 우로스 섬 중 한 곳에 도착했다. 원주민들이 노래를 부르며 환영해줬다. 집들의 원래 목적은 방어용이었다. 그래서 위협이 닥치면 움직일 수 있다. 갈대로 만든 현지인의 배를 타고 느긋하고 주변을 구경하다가 다른 큰 인공 섬에 도착했다. 그곳엔 조그마한 양식장도 있었다. 심지어 고양이와 개도 살고 있었다. 내가 알지 못하는 세상이 이렇게나 신기하다.

푸노에서 12달러짜리 호텔을 발견해서 2주간 머물렀었다. 개인 화장실도 있고 방에 햇볕도 잘 들었다. 청소도 자주 해줬다. 내 아메리카 여행 중 최고의 숙소였다. 블로그에 밀린 여행기 작성 중 문득 볼리비아 비자가 궁금해졌다. 도대체 이 볼리비아 비자의 유효기간은 뭐지? 혹시나 해서 검색을 했는데, 이런 세상에!

비자 받은 후 30일 내로 볼리비아에 들어가야 했다. 오늘은 비자 받은 지 32일째 되는 날. 급한 마음에 근처 볼리비아 대사관 찾아갔으나 하필 토요일이다. 비자를 10월 10일 받았고, 오늘이 11월 10일. 어쨌든 한 달로 우기면 가능하지 않을까 싶어서 급한 마음에 버스를 타고 국경선까지 서둘러 가기로 했다.

그렇게 얼떨결에 볼리비아 국경에 와버렸다. 만약에 일이 최악으로 꼬여서 볼리비아 입국 못 하면 어떻게 하지? 남미까지 와서 그 유명한 볼리비아에 있는 우유니 사막도 못 보고 가는 건가? 에이 설마, 그럴 리 있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