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느리고 낯선, 미소의 나라 < 미얀마 시간 여행 >

거울속의 내모습 2016. 5. 22. 23:12

미얀마는 우리와 조금 다른 시간 축에 존재한다. 나라는 가난하지만 사람들은 가난하지 않고, 정신없이 빠른 세상의 속도도 이곳을 비켜간다. 오랫동안 닫아두었던 문을 열기 시작한 미얀마, 그곳에선 아직 꽃보다 사람이 아름답다.

이은숙 <리빙센스> 편집장을 끝으로 2014년 말 30년 잡지 인생을 마감했다. 예전과 달리 시간은 많은데 돈이 없어, ‘최저가로 해외여행 다녀오기’를 인생 목표로 삼고 있다.

미얀마 여행을 떠난다고 주위에 말하니 “미얀마? 아웅산 수지? 거기 뭐 보러 가는 거야?”라는 질문이 기본으로 따라온다. 업그레이드된 질문으로는 “옛날 ‘버마’ 말야? 요즘은 라오스가 뜨는데, 거기는 왜?”가 있고 “미얀마는 온통 사원과 탑뿐이라던데? 불교 신자야?”라는 것도 있다. 사실 처음부터 미얀마를 염두에 둔 건 아니었다. 30년 지기 친구들과의 첫 해외여행. 이런저런 나라들을 입에 올리다 누군가 무심코 “미얀마가 좋다고 하던데…” 한 마디 던졌고, “미얀마? 어떤 나라야?” 하고 각자 자료를 찾아본 우리 세 명은 이구동성 ‘OK!’를 외쳤다. 군부 독재로 외부세계와 단절되었던 탓에 전통적인 생활방식과 원시의 자연이 지켜진 나라, 수천 년 내려온 불교문화의 영향으로 위대한 문화유산을 지닌 나라, 게다가 물가 싸고 안전하고 친절한 나라. 속도와 편리함만 버리면 모든 게 완벽했다. 우리는 미얀마가 ‘아시아의 마지막 남은 보석’이라고 불리는 이유를 직접 확인해보기로 했다. 일정은 총 13박15일. 비행기를 갈아타는 태국 방콕에서 보낸 이틀을 빼면 미얀마 일정은 11박13일이 된다. 양곤, 낭쉐(인레 호수), 바간, 만달레이로 이어지는 소위 ‘국민 코스’를 여행지로 신택했다. 각각 서로 다른 매력을 지닌 도시들이라 어느 곳 하나 빼놓기가 어려웠기 때문이다.

| 양곤 - 공항 환전소에서 돈벼락을 맞다 |

방콕에서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이리저리 공항을 옮겨 다니고 시간을 지체한 다음 드디어 양곤 공항에 도착한 안도감도 잠시. 공항 환전소에서 돈다발을 품에 안고 멘붕에 빠졌다. 미얀마의 화폐단위는 짯(Kyat)으로 1짯은 우리 돈 1원과 비슷한 환율. 신용카드 사용이 불가능한 데다 3인분의 여행 경비를 현금으로 바꿔야 해서 어느 정도 예상은 했다. 하지만 100달러짜리 10장을 줬는데, 고액권이 떨어졌다며 5000짯 한 묶음 외에 100, 500, 1000짯 지폐다발을 받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다. 대략 124만 짯을 그렇게 받고 나니 가방 하나가 돈으로 빵빵해졌다. 그때부터 24시간 돈 가방과 한 몸이 됐다. 돈 가방을 옆에 끼고 밥을 먹고, 잘 때는 머리맡에 두었으며, 혹여나 가방과 멀어질까 봐 마사지 받기를 망설였다. 4인실 숙소를 함께 썼던 독일인 룸메이트는 자신이 경계를 당했다는 사실을 알기나 할까! 양곤은 미얀마의 실질적인 수도. 양곤의 심장은 세계 최고 황금 불탑 쉐다곤 파야다. 시내 어디에서든 쉽게 보이는 100m 높이의 금빛 찬란한 탑은 미얀마 사람들의 성지. 여행객도 많지만 참배하는 미얀마 사람들로 늘 북적인다. 미얀마 사람들의 삶을 엿보고 싶다면 양곤 일대를 한 바퀴 도는 순환열차가 제격. 수줍게 미소를 건네는 현지인들도 만나고 중간에 내려 시장 구경하는 즐거움도 빼놓을 수 없다.

 

 

 

1. 바간은 우리나라 경주와 비슷하다. 이곳에서 미얀마 불교가 꽃을 피웠다. 탑과 사원은 모두 닮은 듯 다르다. 2. 쉐다곤 파야에서 기도하는 미얀마 사람들. 주위가 소란하든 말든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를 조아리는 그들의 기도가 신실하다. 3. 미얀마의 모든 사원은 맨발만이 허용된다. 일행 중 한 명이 찍어준 사진. 분위기 있게 나왔다.

| 낭쉐 - 픽업 왔다더니, 차는 어디에 있는 거야? |

 

 

 

양곤에서 사흘을 보내고 인레 호수로 유명한 낭쉐로 가기 위해 미얀마 국내선 비행기에 올랐다. 비행기에 문제가 있어 출발이 지연되니 호텔에 돌아가서 기다리는 게 어떠냐고 묻는 직원에게 항의해 즉석에서 항공사를 바꾸고, 곧 출발한다던 비행기에 탑승객 모두가 우르르 내렸다 다시 타는 소동을 겪은 후였다. 그래도 누구 하나 화내는 사람이 없었다. 우리도 결국 어이없는 상황에 키득거렸다. 게다가 비행기 옆 좌석 할머니의 친절로 공항에서 1시간여 거리인 낭쉐 시내까지 차를 얻어 타는 행운을 얻었으니, 세상사 모를 일이다.

낭쉐는 작고 아름다운 시골 마을. 미얀마의 대표적인 여행지 인레 호수를 둘러보기 위한 베이스캠프 같은 곳이다. 양곤보다 북쪽에 위치해 날씨도 좋다. 호수의 일출을 보고자 새벽 6시에 시작하는 보트 투어를 예약했다. 픽업해서 가니 걱정 말라는 동네 여행사의 설명대로, 숙소 앞에서 기다리는 아저씨를 따라나섰다. 그런데 차는 어디 두고, 앞만 보고 계속 걷는다. 설마하면서 따라가길 30여 분, 눈앞에 선착장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생각해보면 차 대신 뱃사공이 직접 데리러오는 게 이상할 것도 없다. 아무튼 미얀마는 반전이 있는 나라였다. 인레 호수는 해발 875m에 위치한 길이 22km, 폭 11km의 엄청나게 큰 호수다. 아늑한 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호수를 터전으로 약 10만 명의 인따족이 삶을 영위하고 있다. 그들은 호수 위에 집과 사원을 짓고, 발로 노를 저어 고기를 잡고, 심지어 물 위에 밭을 만들어 농사를 짓는다. 보트 투어는 하루 종일 작은 보트를 타고 호수 위의 사원과 시장, 특산품 가게 등을 둘러본다. 신비로운 탑들이 모여 있는 유적 마을 인데인 구경은 옵션이다. 새벽안개와 추위에 떨다 한낮의 햇볕에 시달려야 하지만 2만짯의 대여료가 아깝지 않다. 중간중간 특산품 가게에 내려주는데 상술이라고 거부감 가질 필요 없다. 공방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기 때문. 물건 또한 핸드메이드의 아름다움이 살아 있다.

 

 

 

1. 인레 호수 서쪽에 위치한 인데인의 탑들은 신비한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외부인의 접근이 어려웠다. 2. 인레 호수 보트 투어 중 들른 수상시장 선착장. 3. 패브릭 핸드메이드 공방의 휴식 시간. 작업장 분위기가 따뜻하다.

| 바간 - 호스카? NO! 에어컨 택시? OK! |

미얀마 여행의 하이라이트는 바간이다. 낭쉐에서 8시간 동안 심야 버스를 타고 도착한 바간은 지역 전체가 아름답고 거대한 불교 유적지다. 금빛 찬란한 쉐지곤 파고다, 미로처럼 어둡고 은밀한 담마양지 파토, 크고 아름다운 아난다 사원, 일몰이 아름다운 쉐산도 파야 등 3000개가 넘는 온갖 종류의 탑과 사원, 수도원 등이 42㎢의 넓은 평원 곳곳에 퍼져 있다. 안에 모셔진 불상과 벽화 등도 훌륭하지만 건축물의 양식을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흥미롭다. 바간을 즐기기 위해서는 호스카(마차)를 이용하는 게 정석. 마차를 타고 유적지 사이사이를 누비며 구경하는 것이다. 자전거를 빌려서 타고 다니는 사람도 많다. 코끼리 무늬 ‘몸뻬’를 입고 머리를 질끈 동여맨 채 자전거를 타는 반백의 유럽 여자들을 마주치면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하지만 우리는 피부를 소중히 여기는 저질 체력의 한국 아줌마들. 뙤약볕과 먼지를 피해 에어컨 택시를 대절했다. 하도 많이 파야를 봤더니 나중에는 이름조차 헷갈렸지만 현지인들처럼 기도하고 시주도 했다. 미얀마 부처님의 법력에 살짝 기대어 소원이 이루어지길!

 

 

 

↑1. 마하간다용 사원은 1500명 승려가 신도들이 시주한 음식을 다 함께 먹는 대중공양으로 유명하다. 2. 우베인 다리에서 본 일몰 풍경. 3. YBM ECC 동대문 지부에서 쓰던 버스가 미얀마를 누비고 있다. 4. 미얀마는 우리와는 다른 남방불교 국가로, 전 국민 대다수가 불교를 믿는다.

| 만달레이 - YBM ECC 동대문 지부 버스를 타고 입성하다 |

마지막 도시 만달레이로 가는 미니버스. YBM ECC 동대문이라는 글자가 눈에 확 들어왔다. 한국에서 오래전 아이들을 영어 학원으로 나르던 승합차를 미얀마에서 타는구나. 그 꼬마들은 영어 잘 하는 어른이 되었으려나? 혼자 비실대며 웃었다. 만달레이 여행의 백미는 아마라푸라, 잉와, 시가잉 등의 근교 여행이다. 특히 미얀마를 대표하는 풍경인 우베인 다리와 1500명 승려의 탁발 의식이 유명한 마하간다용 사원이 있는 아마라푸라 지역을 첫손에 꼽을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마차를 타고 시공간을 이동하는 듯한 잉와 지역이 기억에 남는다. 미얀마에서 가장 인상적인 건 사람들이다. 부끄러운 듯 순박한 미소, 가난하지만 자긍심 있는 얼굴. 남자건 여자건 전통 치마 ‘론지’를 묶은 뒷모습은 또 얼마나 매력적인지. 정체 모를 과일을 한 입 베어물고는 호들갑 떠는 이방인에게 걱정어린 시선을 보내는 시장통 할머니, 구름이 걷히고 선명한 일몰이 시작되자 안타까워하며 다시 차를 돌리는 택시 기사. 미얀마 여행은 그들을 만나러 가는 것이다.

 

  

< TRAVEL INFORMATION >

1.어떻게 갈까? 항공과 국내 교통- 제주항공이나 진에어 등 저가 항공편이 풍부한 방콕 왕복을 끊고 방콕에서 에어아시아를 이용해 양곤 인, 만달레이 아웃을 추천한다. 미얀마 국내에서 장거리 이동은 국내 항공을 이용하거나 장거리 버스를 타면 된다. 문제는 시내 교통. 미얀마에서 여행객이 일반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는 매우 힘들다. 주로 택시를 이용하게 되는데 미터 요금제는 아예 없으니 타기 전에 반드시 요금을 흥정해야 한다.

2. 돈은 얼마나 들까? 여행 경비- 12일 동안 1인당 총 120만 원을 사용했다. 제주항공 방콕 왕복 33만원, 에어아시아 17만원, 미얀마 국내 항공 13만원, 장거리 버스 3만6000원 등 이동에 약 66만6000원, 숙박비 23만8000원, 식비와 택시비, 지역 입장료 등 30만원. 여행지에서는 늘 택시를 대절했고 먹는 건 아끼지 않았으니, 나름 쓸 건 다 쓴 여행이다. 인원이 3명이라 시내 교통비와 숙박비는 절약한 셈.

3. 뭘 사면 좋을까? 쇼핑 리스트 추천- 인건비 싸고 손재주 좋은 미얀마는 핸드메이드의 나라다. 가볍고 예쁜 대나무 칠기 그릇인 래커웨어는 대표적인 특산품. 큼직한 사이즈의 접시가 1만5000원 내외. 연꽃에서 추출한 실로 짠 로터스 실크와 면 제품도 좋다. 전 과정이 손으로 이루어져 싼 편은 아니지만 제값은 충분히 한다. 밀크 티백, 태피스트리도 인기 아이템이다. 정찰제는 없으므로 반드시 흥정을 해야한다.

  

글과 사진 : 이은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