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코스타리카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 여행

거울속의 내모습 2016. 5. 14. 22:45

 

단타 리버 폴스에서 수영을 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즐기는 여행자들.
중앙아메리카의 스위스로 불리는 코스타리카에서 대자연의 신비를 보기 위해서는 화산지대를 찾아가야 한다.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Arenal Volcano National Park)은 이 나라의 대표적인 화산지대로 다양한 식생이 살아 숨 쉬는 곳이다. 전날 비가 내려 미끄러운 경사면을 등반하느라 기진맥진했지만, 분화구 호수와 폭포수에서 함께 한 여행자들과 수영을 즐기며 지친 심신의 피로를 씻으며 대자연을 만끽했다.

글·사진김후영_여행 작가협찬아비앙카 항공(www.avianc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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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대 중반 대학생 시절, 배낭 하나 달랑 메고 나 홀로 방문했던 코스타리카를 20년이 흘러 중년의 나이가 되어 다시 찾아왔다. 20년 전 미국 플로리다의 마이애미에서 저렴한 항공권을 구입해 떠났던 코스타리카는 내가 중남미 지역 중 가장 처음으로 방문한 나라였다. 그때와 달리 이번 코스타리카 여행에서는 이 나라의 자연을 좀 더 느끼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라 포르투나(la Fortuna)라는 이름의 작은 도시로 향했다. 이곳은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을 방문하는 출발점이자 다양한 즐길 거리가 성행하고 있었다. 소문대로 라 포르투나는 현재 코스타리카를 방문하는 상당수의 여행자들이 즐겨 찾는 곳이었다. 도시 자체는 큰 매력이 없었지만 여행편의시설은 놀랄 정도로 잘 갖추어져 있었다.

 

 

 

추토 화산 아래에 놓인 행잉 브리지.

촉촉이 젖은 차토 화산 정상 오름길

오전 10시에 출발하는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 투어에 참가하기 위해 레드 라바(Red Lava)라는 여행사 앞에 모였다. 하루 일정의 화산 등반 투어로 오전 10시에 시작해 오후 8시에 끝나는 풀 데이 투어(full day tour)였다. 캐나다, 프랑스, 스위스 등지에서 온 여행자들이 한 팀으로 구성되었고 나를 제외하고는 모두 커플이었다. 가이드인 카를로스는 젊고 유머러스한 친구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했다.

날씨는 흐렸지만 오히려 산행하기에는 이런 날씨가 좋을 수도 있겠단 생각이 들었다. 먼저 차량을 이용해 멀지 않은 곳에 자리한 그린 라군 폴스 파크 앤 로지(Green Lagoon Falls Park & Lodge)를 방문했다. 이곳에는 비지터 센터(Visitor center)가 마련되어 있어 화산 국립공원 방문을 등록할 수 있다. 모두 등록을 마치자 본격적인 산행이 시작되었다. 그리고 얼마 안 있어 가랑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추토 화산 경사면에 나무뿌리가 엉켜있는 모습.
이번 데이트립 투어는 아레날 화산 국립공원 내에 자리한 차토 화산(Cerro Chato)의 분화구에 고인 그린 라군(Green Lagoon)이라 불리는 분화구 호수를 방문하고 주변을 둘러보는 일정이었다. 물론 중심활동은 등산이었다. 차토 화산은 3500년 전에 마지막으로 용암을 분출한 뒤 현재는 휴화산으로 머물러 있다.

차토 화산은 아레날 화산 바로 옆에 자리한 작은 화산으로 라 포르투나를 방문하는 여행자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아레날 화산의 경우에는 보다 긴 일정이 필요하고 정상까지 오르려면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하다. 그렇다고 차토 화산 등반이 만만한 것은 아니다.

우리 일행은 먼저 차토 화산의 정상까지 올라가야 했다. 오르는 길은 여타 산행처럼 부드럽게 시작했다. 대지는 보슬비로 촉촉이 젖어있었고 주변에는 구름이 마치 안개처럼 끼어 있는 초목과 수풀이 밀림의 장관처럼 눈앞에 드러났다. 고도를 높여 오르자 다양한 식생이 모습을 드러냈다. 가이드인 카를로스가 구아바 나무를 가리켰다. 12㎝까지 자라는 구아바 열매는 중앙아메리카의 대표적인 열대과일로 초록빛을 띠며 씁쓸하면서도 부드러운 단맛을 낸다고 한다. 구아바는 속살이 하얀색과 붉은색 두 종류가 있으며, 구아바 나무는 꽃술이 풍성한 아름다운 하얀 꽃을 피운다.

산행길은 점점 어둡고 음습한 지대 속으로 빠져 들어갔다. 각양각색 정글의 소리가 우리 일행을 반갑게 맞이하는 것 같았다. 토양은 거무튀튀했고 좁은 산길을 제외하고는 원시림으로 뒤덮인 열대습윤지(rainforest)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나무마다 이끼가 끼어 있거나 덤불로 둘러싸여 있었고 잡풀이 큰 나무에 듬성듬성 나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바닥은 지면으로 드러난 여러 나무의 뿌리가 얽히고설켜 있었다. 오히려 이러한 뿌리는 계단의 버팀목 구실을 하기에 가파른 오르막길에서는 큰 도움이 되었다.

정글 같은 모습을 보여주는 이 지역의 특성은 연중 비가 많이 내리고 수많은 특이식물과 생물이 서식한다. 게다가 일부 식물은 약재로도 사용된다. 대나무 같은 모양의 팔미토(Palmito) 나무도 발견했는데, 이 나무는 야자나무의 일종으로 비가 많이 내리는 기후적 특성에 의해 일반 야자수보다 가늘고 빈약하게 자란다.

 

 

 

여행자들이 추토 화산 등반을 마치고 산 아래 계곡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이 숲에는 나무늘보도 살고 있었다. 나무늘보는 중남미에 널리 분포하는 빈치류의 동물로 세상에서 가장 느리게 움직이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 동물의 털은 원래 회갈색이지만, 이곳의 나무늘보는 환경조건에 따라 털에 이끼가 많이 달라붙어 녹색을 띤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자연적으로 보호색을 띠는 셈이다. 또 이곳에는 부챗살 모양으로 넓은 잎이 무성한 세크로피아(Cecropia)라는 이름의 나무도 발견할 수 있었다. 비교적 쉽게 눈에 띄는 이 나무의 잎은 나무늘보의 주요 양식이 된다고 한다. 숲에서 나무늘보와 만나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마음이 들었다. 여행 중 야생동물과의 조우는 꿈같은 일이다.

다시 길을 걸은 지 얼마 되지 않아 카를로스가 손바닥 위에 무언가를 올려놓고 보여주었는데, 자세히 보니 매미의 유충이 성충이 될 때 탈피하는 껍질인 선퇴였다. 코스타리카의 매미 중에는 몸 전체가 옥색인 것도 있어 곤충 채집가 사이에서는 유명하다. 일행 중 한 명은 발 밑으로 기어가는 겨자색에 검은 줄무늬가 그려진 5㎝ 정도의 기다란 지네를 발견하기도 했다.

정상에서 그린 라군까지의 미끄럼 길

약 두어 시간 산을 오른 후 해발 1140m 높이의 추토 화산 정상에 도달했다. 이곳에서 미리 준비해 온 샌드위치와 샐러드, 음료수로 점심식사를 했다. 식사를 마칠 무렵 한쪽에 난 좁은 산길에서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커플 여행자를 만났다. 그들은 '그린 라군에서 올라오는 길이 온통 진흙이라서 조심하지 않으면 미끄러져 다칠 수 있다'고 귀띔해 주었다. 아니나 다를까 정상에서 그린 라군으로 내려가는 길은 산악유격훈련을 방불케 했다. TV에서 방영 중인 <정글의 법칙>이나 <진짜 사나이>의 어느 고생길과 비교해도 더 힘들 것만 같았다. 이 곳은 계단이 놓인 형태의 내리막길이거나 어느 정도 손쉽게 내려갈 수 있는 정상적인 산길이 아닌, 진흙으로 뒤덮이고 돌이 듬성듬성 놓인 가파른 내리막길이었다. 어떤 구간에서는 1.5m 가까이나 되는 높이에서 뛰어내려야만 했다.

 

 

 

아레날 화산 전망대에 앉아 구름에 가린 화산 봉우리와 주변을 감상하는 방문객들.
중간에 꽤 몸집이 큰 나무가 쓰러져 있는 모습도 보였다. 가이드는 불과 며칠 전만 해도 잘 자라고 있던 나무였지만, 어제 큰비가 내려 나무가 쓰러지고 산길의 토양이 깎여 나가면서 엉망이 되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질퍽한 내리막길을 내려가기 위해서는 양손을 주변의 나뭇가지나 바위, 돌을 집고 최대한 몸의 균형을 유지하면서 조심스럽게 움직여야 했다. 신발은 물론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된 것은 당연했다.

그렇게 40여 분을 내려온 뒤 우리 일행은 그린 라군과 마주했다. 마치 사막에서 고달픈 행군을 하다 오아시스를 만난 기분이었다. 이 화구호는 추토 화산의 분화구에서 용암이 분출된 뒤 활동이 멈추면서 바닥이 막히고 그 위로 비가 내린 뒤 물이 고여 호수가 형성된 것이다. 드디어 도착했다는 안도감은 잠시, 인적이 없는 곳이어서 곧 적막함이 엄습했다. 누군가 우스갯소리로 네시호의 괴물이 살 것 같다고 말했는데 적절한 표현이었다. <쥬라기 공원>의 공룡이 나타날 것만 같은 분위기라면 너무 과장된 표현일까, 보이지 않는 호수에는 우리가 알지 못하는 신비로운 무언가가 숨겨져 있을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런 발칙한 상상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일행 대부분은 조금의 망설임도 없이 웃옷을 벗어 던지고 수영복 차림으로 호수에 뛰어들었다. 물속에 뛰어드는 순간 아마도 호수 속 괴물에 대한 상상은 꼬리를 내리고 사라졌을 것이다. 스산한 날씨와 물의 찬 기운에도 불구하고 남녀 불문 대범하게 물속으로 첨벙 뛰어들어가는 용기가 대단했다.

 

 

 

나무 위에 매달린 로프를 타고 스릴을 만끽하는 모습.
그린 라군에서 수영과 휴식으로 잠시 여가를 보낸 뒤 우리 일행은 다시 산길을 걸었다. 다행히 평지길이었지만 얼마 안 있어 이번 여정에서 가장 미끄러운 지역을 돌파해야만 했다. 게다가 다시 내리막길의 시작이었다. 이곳 역시 어제 내린 비로 산길이 엉망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어디서도 불평은 터져 나오지 않았다. 모두들 묵언 수행이라도 하는 것일까, 묵묵히 미끄러운 내리막길에 에너지를 집중해 쏟아붓고 있는 듯한 의연한 모습 속에서 서광이라도 비칠 듯한 기세였다. 그렇게 두 시간 동안 얄궂은 산길을 다시 내려왔다. 온몸에 진흙을 묻히며 미끄러지기가 다반사였다. 하지만 줄곧 고달프지만은 않았다. 내려오는 길에 ‘타잔 놀이’를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얻었기 때문이었다. 가이드인 카를로스가 높디높은 나무 위에서 아래로 길게 늘어뜨려진 줄기를 잡고 허공을 나는 시범을 보였다. 그러자 다른 일행도 앞다투어 타잔 놀이에 합류했다. 그 모습이 훈련소에 입소하면 누구나 할 법한 유격훈련과 같았다.
 

 

 
 
아름다운 코스타리카의 노을.

연인들의 파라다이스를 연상케 하는 은밀한 풍광

재미난 유격 시간을 보낸 뒤 산을 좀 더 내려오자 신기하게도 맑은 햇살이 비추며 우리 일행을 맞이했다. 음습하고 어둡던 정글탐험의 종료를 고하는 순간이었다. 지면도 더는 질퍽하거나 울퉁불퉁함 없이 부드럽고 편안하게 발길을 인도해주었다. 우리 일행은 얼마 지나지 않아 시냇물이 흐르는 작은 계곡에 도착해 진흙으로 더러워진 옷과 신발을 깨끗이 씻었다. 그러고 나서 기분 좋게 평지를 걸어 흔들다리인 행잉 브리지(hanging Bridge)를 건넌 뒤, 단타 리버 폭포(Danta River Falls)에 도달했다.

산을 오르는 여행자들.
폭포는 철저히 그 모습을 숨기고 있었다. 작은 체구의 폭포였지만 80년대 로맨스 영화 <블루 라군>이나 <파라다이스>의 배경이 될 법한 은밀한 풍광을 간직하고 있었다. 몇몇 일행은 다시 수영복 차림으로 물속에 들어가 이번에는 폭포수 뒷공간까지 가보았다. 떨어지는 물줄기를 코앞에 두고 폭포 맞은편의 풍광을 대면하는 순간이었다. 폭포에서의 여가는 땀 흘려 수고한 지옥 같은 산악행군에 대한 일종의 보상이었다.

폭포에서 나와 우리는 화산 국립공원 아래에 자리한 농장 주변의 평지를 걸으며 주변 나무숲을 오가는 이곳의 산새들을 관찰했다. 그중에는 나무줄기 아래로 길게 늘어진 채 허공에 대롱대롱 매달려있는 둥지 위에 사는 몬테수마 오로펜돌라(Montezuma Oropendola, 한국에서는 큰매달린둥지새라고 불린다)라는 새가 있었다. 부리와 꽁지가 노란색인 이 새는 ‘틱틱 글릭글락글루’라는 독특한 울음소리로 주변을 쩌렁쩌렁하게 울렸다. 옆에선 작고 귀여운 벌새(Humming Bird)가 수풀 사이를 해치며 저공 비행하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나무껍질이 스스로 벗겨지면서 다채로운 색을 내는 레인보우 유칼립투스 나무도 보였다. 버드 오브 파라다이스(bird of Paradise)라는 이름의 꽃은 예전에 방문하였던 파푸아뉴기니의 국조와 이름이 같았는데 빨강, 노랑, 초록 삼색이 어우러진 단단한 꽃으로 비가 내려 꽃에 물이 고이면 새가 날아와 꽃잎에 고인 물을 마신다. 마치 솔방울 모양으로 길쭉하게 피어오른 붉은색의 생강꽃 역시 두드러질 정도로 자연의 아름다움을 간직하고 있었다.

이번 화산 국립공원 투어의 마지막은 아레날 화산 전망대(Volcano Arenal Obsertory)였다. 이곳은 아레날 화산의 전경을 볼 수 있는 곳인데, 아쉽게도 화산 정상에는 구름이 짙게 걸쳐있어 전경을 볼 수는 없었다. 정상이 구름에 가려진 상황이었지만 그 웅혼한 기상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한쪽으로는 아레날 호수의 일부가 보였다. 붉게 타오르는 노을 속에 호수 주변의 풍광은 한 폭의 그림 같았다.

화산 국립공원의 투어는 이것으로 끝이었다. 하지만 아직 피날레는 남아있었다. 우리 일행은 이 일대의 투어에 참가한 다른 여행자들과 함께 차를 타고 이동하여 인근의 온천지대로 이동했다. 이곳은 따뜻한 온천수가 강줄기처럼 위의 용암지대로부터 흐르는 곳이었다. 모두 한 손에 음료수를 들고 하루 동안 겪었던 대자연의 체험을 서로 이야기하며 깊어가는 밤, 여행의 낭만을 꽃 피웠다. 마치 내가 20년 전 세계 각국에서 모인 여행자들과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다시 찾은 코스타리카의 밤은 그렇게 무르익어갔다.

 

 

추토 화산 방문을 마치고 인근 옥외 천연온천장에서 음료를 마시며 온천욕을 즐기는 여행자들.

[여행 정보]코스타리카 가는 길

한국에서 코스타리카까지 가는 직항편은 아직 없다. 아시아나 항공과 함께 스타얼라이언스 제휴사인 아비앙카(www.avianca.com) 항공은 1919년 설립된 콜롬비아의 대표 항공사로 근래 타카항공과 합병하면서 중남미에서 가장 규모가 큰 항공회사가 되었다. 현재 콜롬비아의 보고타, 엘살바도르의 산살바도르, 페루의 리마를 베이스로 운항한다. 아비앙카 항공을 이용하여 한국에서 코스타리카로 가려면 먼저 로스앤젤레스까지 가서 산살바도르를 경유하여 코스타리카의 수도인 산호세로 가면 된다. 참고로 로스앤젤레스~산살바도르 구간은 매일 3회 직항편이 있으며, 산살바도르~산호세 구간도 매일 3회 직항편이 있다.

 

 

 

아비앙카 항공.

기타 정보

현지교통 산호세 시내의 시외버스터미널에서 버스를 타고 라 포르투나로 갈 수 있다. (4시간30분 소요)

숙소 라 포르투나는 관광지이기에 수많은 숙소가 자리해 있다. 저렴한 유스호스텔이나 게스트하우스를 비롯해 저가의 호텔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비자 대한민국 여권소지자는 관광목적으로 90일간 비자 없이 체류할 수 있다.

환전 코스타리카의 화폐 단위는 콜론(Colon)이며 100콜론은 한화로 약 215원이다.(2016년 4월 기준)

여행 시기 내륙의 산악지역은 비교적 서늘하지만 해안지대는 습하고 덥다. 베스트 여행시즌은 건기인 12말부터 4월까지며 이 시기에 온화한 날씨와 청명한 하늘을 기대할 수 있다. 9~10월에 가장 많은 비가 내리고, 해안가에서는 7~8월에 종종 허리케인이 찾아오기도 한다.

 

김후영_여행 작가 / emountain@emount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