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톱스테이션 갔다 오는 길에 버스터미널 들러서 버스노선표에서 코임바토르가는 시간을 확인했다. 아침 7시와 오후 3시30분 차가 있다. 7시 차를 타면 하루만에 우띠를 갈수 있을것 같다. 호텔매니저한테 아침 6시에 체크아웃할거니 아침을 싸달라고 했다. 터미널에 데려다줄 차도 준비해달라고 했다. 인도에서 항상 듣는 소리를 또 듣는다. 노오오오 프라블럼!!!
4시30분에 일어나서 샤워하고 짐싸서 로비에 가니 신기하게도 시간맞춰 다 챙겨놓았다. 6시도 되기전에 출발했다. 매니저가 직접 차를 몰아 데려다준다. 터미널가면서 물어봤다. 언제오면 탑스테이션을 제대로 볼수 있냐고? 지금이 시즌이란다. 헐...그럼 1년에 제대로 볼수 있는 날이 별로 없단 이야기다.
이유를 산을 내려오면서 알게 되었다. 터미널에 도착하니 코임바토르가는 버스가 없단다. 그 노선에 손님이 없어서 노선자체가 없어졌단다. 그럼 타임테이블에서 지우던지 해야지. 직원이 터미널에 있는것도 아니고 인포메이션 센터는 대중교통에 대해선 아는것 하나 없는 여행사 직원이나 있는데 말이다. 우리같은 여행자는 어쩌란 말이냐고...
황당해하고 있는데 터미널에서 노숙하고 있던 아저씨가 우두말리펫으로 가는 버스가 5분전에 출발했으니 지금 쫓아가면 잡을 수 있을거라고 매니저한테 이야기한 모양이다. 매니저가 빨리 차에 도로 타란다. 타면서 설명을 해준다. 매니저는 거의 007 본드씨처럼 운전하기 시작한다.
난 두발을 앞으로 쭉 힘주어 뻗고 손잡이를 꼭 잡았다. 꼬부랑길 돌아설때마다 요동을 친다. 그 와중에 내리면 바로 주려고 돈을 챙겼다. 여행지에서 만난 이해타산적인 관계에서 확실한 감사의 인사는 돈이다. 내가 이 상황에서 감사를 표시할 방법이 돈밖에는 없다.
우리가 문나르에서 머문 호텔은 차밭안에 있고 시설도 좋은 호텔이라 인도물가로 볼때 특별히 잘사는 사람이 아니면 묵기 힘들것이다. 이런 호텔들은 교통이 불편하다. 혼잡한 시내를 벗어나서 휴양오는 부자들을 위한 숙소이다보니 우리같은 관광객은 숙박비외에 지출이 크다. 모든 투어나 외부출입을 호텔에 의존해야하니 자연 모든 지불비용이 올라간다. 매니저가 투어도 알선해줘서 이미 상당부분 챙겼겠지만 이렇게 마음써주기 싶지않은 일이다.
매니저가 본드씨로 변신해서 달리는 버스기사한테 손짓하며 버스를 세우라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니 버스가 달리다말고 선다. 감동이다. 정신없는 와중에도 감사의 인사를 잊지 않고 건냈다. 거리상으로 볼때 과하게 줬지만 그래야 내맘이 편하다. 매니저의 순발력이 아니면 우리는 시간을 낭비하게 된다. 정해진 시간을 가진 여행자에게 시간은 돈보다 소중하다.
버스에 올라타니 앞자리는 거의 차있고 뒷자리가 비어있다. 뒤에 앉으려니 여행초반에 팔을 다친 아픈 기억이 떠오른다. 남편도 걱정되는지 앉았다가 옮기자고 한다. 자리에 앉고보니 버스안이 눈에 들어온다. 창문이 유리창이 아니라 플라스틱셔터같은 걸로 죄다 막혀있다. 스텐이나 금속인줄 알았는데 만져보니 고무처럼 몰캉하다. 산지대라 추워서 창문을 단 모양인데 기발하다.
중간에 어떤 여자가 문을 여니 찬바람이 쌩쌩 들어온다. 뒷자리에 아이도 있거만 남생각은 안한다. 아마 꼬불탕길이라 멀미하나보다 생각이 든다. 다들 추운데도 아무도 뭐라는 사람이 없다. 중간에 사람들이 내려서 앞으로 옮겼더니 기사 뒷자리는 여자만 앉는 자리란다. 영어하는 청년말이 기사쪽 4번째 열까지는 여자들을 위한 자리란다. 왼쪽 좌석은 남자들이 앉아도 상관없단다.
그러고보니 케랄라주에서 로칼버스를 처음 탄다. 계속 택시를 타거나 기사딸린 차를 이용해서 케랄라주 로칼버스 상황을 몰랐다. 타밀나두에서는 기사 바로 뒷자리는 항상 우리자리였는데 케랄라주는 엄격하다. 케랄라주정부가 까다롭게 법을 만들고 서민생활을 통제하는것이 유별나다.
새해 6월부터는 술집이 없어질거란다. 몇년후에 다시 왔을때 어떻게 변해있을지 궁금하다. 날이 밝아지고 해가 둥실 떠올라 따뜻해지니 다들 감옥같은 창문을 밀어올린다.
나도 밀어올렸다. 세상이 달라보인다.
우두말리펫으로 가는 길에 야생동물보호구를 지난다. 30킬로에 이르는 보호구안을 버스타고 달리는 길은 야생사파리투어같다. 몇십만원을 쓰면서도 느끼지 못했던 페리야르국립공원의 야생체험을 다 보상해준 기분이다. 천원내고 즐기는 야생사파리에 아침이 상쾌하다. 우리가 머물던 문나르에서 산을 거의 다 내려올 즈음부터 왼쪽에 병풍같이 산들이 펼쳐진다. 어제 우리가 갔던 톱스테이션도 보인다.
해가 뜨고 기온이 상승하면서 불어오던 바람이 차가운 바위산에 부딪혀 구름으로 변한다. 구름은 바람이 밀어올려 산 정상을 금방 둘러싼다. 해와 구름과 바람이 짧은 시간에 영화 한편을 찍어낸다. 놀라운 자연의 힘이다. 조금전까지 보이던 산은 금방 구름옷을 입는다. 어제 톱스테이션에서 구름속 숨박꼭질한 이유를 알듯 싶다. 산에서 1박 캠핑광고를 산입구에서 봤는데 캠파이어하면서 해뜨고 직후에 확트인 경치를 조망할수 있는듯 싶다. 잠시 들러서 볼수 있는 광경은 아닌듯 하다.
도로는 포장이 되어있지만 차 두대가 겨우 스쳐지나갈 정도로 폭이 좁다. 친나르야생동물 보호구안 도로를 달리는 기분이 제대로다. 멀리 서고트산맥의 준령들을 감상하며 와일드사파리를 제대로 즐겼다.
공작 두마리가 도로를 지나 숲으로 들어간다. 야생멧돼지 가족이 아침산책을 나와 연못가에서 물을 마신다. 차가 휙 지나가는 바람에 사진을 못찍었다. 눈에 담고 마음에 저장했다. 야생동물보호구는 케랄라주와 타밀나두주에 걸쳐있다. 같은 야생동물보호구를 케랄라에서는 친나르보호구라 하고 타밀나두에서는 아나말라이 호랑이보호구라 부른다.
주경계에 도착하자 버스가 멈춰서고 경찰이 올라온다. 남자경찰과 여자경찰이 올라와서 남자는 남자들을 살피고 여자는 여자들을 살피고 내려간다. 제복을 입고 딱딱한 표정에서 살벌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검문이 끝나고 케랄라주를 넘어 타밀나두주로 들어오니 아나말라이호랑이보호구라는 표시가 보인다. 보호구가 끝나는 지역까지 야생사파리투어 느낌으로 달린다. 이제 호랑이는 기대도 안한다. 인도국립공원이 자연보호만은 제대로 하는듯 싶어 기분이 뿌듯하다. 적어도 보호구안에서는 동물과 자연이 주인인 곳이다.
우두말리펫터미널에 도착해서 코임바토르로 가는 버스로 갈아탔다. 로칼버스는 도시나 동네마다 상황이 다르다. 몇군데에서 타보았지만 일관성이 없다. 탈때마다 확인하고 순발력을 총동원해야한다. 코임바토르가는 버스에 올라타니 졸리기 시작한다. 산에서 가파른 길을 찬바람속에 경치즐기며 내려왔다가 산아래 평지 따뜻한 마을에 내려오니 졸린다.
한참 자고나니 코임바토르에 도착했다. 우띠가는 버스를 물어보니 사람들마다 4번을 타란다. 이동네 터미널은 무지 큰데 영어하는 사람이라곤 찾아볼수가 없다. 5성급호텔이나 관광지들에서는 가족끼리도 영어를 쓰는데 서민들 생활속으로 들어오면 나는 귀머거리가 된다.
일단 화장실부터 다녀와서 알아보자고 화장실에 갔다. 터미널이 워낙 커서 그런지 화장실입구 돈받는 테이블이 무슨 사무실같다. 5루피내고 들어가서 일보고 나오는데 아저씨가 네팔? 그런다. �o미? 코리아야...사우쓰 코리아. 내가 아무리 햇빛에 그을렸다해도 그렇지. 동남아여인에서 인도공주로 신분상승한지 며칠이나 되었다고...급기야 네팔여인으로 둔갑을 하다니...인도공주의 후손이 남인도의 따가운 햇살에 네팔여인이 되고 말았다.
아저씨 두분이 넘넘 반가와 하신다. 근데 도통 알아들을수가 없다. 내가 우띠간다고 하니 뉴터미널로 가란다. 뉴터미널 어떻게 가냐고 물으니 버스 32H를 타란다. 아까 저쪽 아저씨는 4D타라고 하던데...오토릭샤타겠다 했더니 그러지말고 그늘의자에 앉아서 시내버스 기다려서 타고 가란다. 내가 앉으니 선풍기까지 틀어주신다. 아주 붙잡아 앉히고는 보낼 생각을 안하신다.
남편이 담배를 피니 인도담배하고 바꿔피자고 하기도 하고 우리를 넘 신기해한다. 돌아보니 관광객이나 외국인이라곤 우리밖에 없다. 아저씨들은 나한테 이것저것 이야기하는데 도통 알아들을수가 없다. 오토릭샤불러서 타고가야겠다 했더니 불러주겠단다. 5분쯤 지나서 오토릭샤는 터미널안에 못들어오니 버스타고 가란다.
더이상 기다릴 수가 없어서 인사하고 나와서 오토릭샤타고 뉴터미널로 가자고 했다. 뉴터미널에 도착해보니 깨끗하게 잘 정비되어 있다. 새로지은 건물이라 다행히 깔끔해보이는 식당도 있다.
터미널안으로 들어가는데 왠 남자가 다가오더니 우띠가냐고 묻는다. 그렇다했더니 택시로 가라한다. 4명모으면 1인당 5백루피씩 내면 된단다. 점심 먹는동안 두사람 더 모아놓겠다고 한다. 좁은 차에 4명이 타고가면 불편하겠다 싶기도 하고 기다리기도 지루해서 그냥 우리둘이 2천루피내겠다고 했다. 아저씨가 좋단다. 차는 일반자가용이 아니라 작은 승합차라 6인승이다. 앞에 일행이 타고 있어서 우리는 뒤에 다리를 뻗어올렸다. 코임바토르에 나온 김에 손님태워가려는 차인듯 싶다.
우리는 싸게 탄건줄 알았는데 우띠 도착해서 택시요금표를 보니 오히려 비싼 요금이다. 팁준걸로 생각했다. 앞자리 기사 옆에 앉았던 아저씨는 몇십루피 내고 내린다. 택시까지 현지인요금 외국인요금이 있다니 재미있는 곳이다.
기차역에 들러 내일 쿠누르가는 토이트레인표를 사려고 하니 토이트레인 차표는 출발 40분전에 판메한단다. 일단 호텔을 알아보기로 했다. 우띠에 오늘 도착할 확신이 없어서 예약을 못했었다. 그동안 휴양형 리조트에 묵느라 속세를 떠났던 터...현지 물정도 알아볼겸 우띠에선 여행자숙소에서 묵어보기로 했다.
내일아침 토이트레인도 타야하니 기차역근처에서 자기로 했다. 론리플래닛에 나온 평이 좋은 숙소에 전화하니 방이 하나 남았단다. 기대하고 갔다. 방문을 열고 보는 순간 그냥 나왔다. 두번째 좀 나아보이는 숙소에 갔다. 그냥 나왔다. 세번째 3성급이라 별이 붙은 곳은 그나마 제일 나았다. 제일 나아보이는 2천루피짜리 방으로 정하고 하얀 침대시트를 하나 더 달라고 했다. 이동네는 담요를 그냥 덮고 자나본데 나는 그럴수가 없었다.
방에다 짐을 풀고 돈찾으러 나갔다. 남편이 어제 찾아준 빳빳한 새돈을 아까와서 쓸수가 없다. 헌돈도 찾을겸 시내구경도 할겸 걸어나갔다. 시장구경도 하고 돈도 찾고 동네한바퀴 돌며 식당을 찾는데 마땅한 식당이 없다. YWCA호텔이 보여 들어갔다. 세계적인 단체이니 음식도 국제적일것 같아서 들어갔는데 식당은 지극히 인도적이다. 점심도 시원찮게 먹었는데 저녁도 시원찮게 먹었다.
이른 저녁을 먹고 나오는데 해가 진다. 갑자기 춥다. 왜 이렇게 추운가하고 고도를 확인하니 2200미터다. 아까부터 약간 어질어질했던 이유도 알듯하다. 문나르도 낮은 지대는 아니었는데 오늘 하루 고도를 1200에서 500이하로 내렸다가 2200으로 다시 올리니 나름 몸이 힘들었나 보다. 새벽부터 몸을 혹사시키니 주인 잘못만난 몸이 불쌍하다.
시장들렀다 과일이나 사서 들어가자고 하니 남편이 GPS를 확인하더니 안가본 길로 돌아가잔다. 내가 보니 강건너편에 시장이 빤히 보이거만 남편은 반대쪽으로 돌아가면 시장을 만난단다. 만나긴 만났다. 뺑돌아서 만났다. 낯선 길을 가거나 방향을 모르는 산에서는 GPS가 큰 도움이 된다. 하지만 한번 간 길이나 방향이 짐작되는 길에선 모든 사고가 동원되는 내 동물적 감각을 GPS가 당하지 못한다.
내 머리는 지극히 단순해서 감성적이나 지성적인 부분은 약하지만 한번 지난 길에서 필요한 부분을 사진처럼 캡쳐해서 머리에 넣어둔다. 강건너편 시장위치가 정확히 들어오고 짧은 지름길이 눈에 보인다. 안가본 길 가겠다는 남편하고 실랑이하기 싫어서 그냥 따랐다.
해가 떨어지면서 뚝 떨어진 기온은 빠르게 걸어도 몸이 데워지지 않는다. 겨우 시장에 도착하니 우띠 시장안은 크기가 정말 크다. 크기도 크지만 여태 본 인도시장보다 깔끔하기도 하다. 닐기리 차로 유명한 지역이라 다른 동네들하고 달리 부티가 난다. 먼저 쥬스가게에 들어 과일쥬스부터 사먹었다. 오늘 하루 부실하게 먹어 과일이라도 제대로 먹자 싶다.
과일가게에 들러 파파야 구아바 빨간바나나 사서 호텔로 돌아오려고 오토릭샤를 잡으려는데 잡히지가 않는다. 겨우 한대를 잡아탔다. 안태우려고 뭐라뭐라 하는데 그냥 탔다. 왜 일케 툭툭잡기 어렵냐했더니 오늘 기사들이 파업하는 중이란다. 시티팔래스호텔로 가자하니 또 뭐라뭐라 영어연습을 한다. 되지도 않는 영어로 오른쪽을 가르치면서 레프트? 한다. 그냥 스트레이트라고 했다. 호텔위치는 우리가 아니깐 그냥 가자는대로 가자고 했다.
문나르차밭에서 큰산 몇개를 지나 닐기리차지역으로 옮겨오느라 힘든 하루였다. 체력도 방전했지만 추위는 더 힘들다. 새벽부터 제대로 먹지도 못하고 고생 제대로 한 날이다. 우띠가 좋으면 2박할까 했는데 호텔상태가 하루 더 머물라고 붙잡지를 않는다.히말라야 산속 허름한 롯지에서도 잘자는 나인데 이럴때는 이해가 안된다.
허미경는 대한민국의 아줌마이자 글로벌한 생활여행자다. 어쩌다 맘먹고 떠나는 게 아니라, 밥먹듯이 짐을 싼다. 여행이 삶이다 보니, 기사나 컬럼은 취미로 가끔만 쓴다. 생활여행자답게 그날그날 일기쓰는 걸 좋아한다. 그녀는 솔직하게, 꾸밈없이, 자신을 보여준다. 공주병도 숨기지 않는다. 세계 각국을 누비며 툭툭 던지듯 쏟아내는 그녀의 진솔한 여행기는 이미 포털과 SNS에서도 두터운 팬층을 확보하고 있다. 여행일기 남인도편은 2015년 12월말~2016년 1월초까지 다녀온 남인도여행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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