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를 달릴 때도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고 알아서 피해간다.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준 이들도 적지 않다. |
미지의 땅으로 날아가다
본격적으로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것은 쿠바행 항공권을 구입한 2015년 5월 이후였다. 홀로 자전거를 타며 기초 체력을 길렀고, 그해 8월에는 직장인 자전거 모임에 가입해 자전거 바퀴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방법 등을 익혔다. 모임에서 전문적인 기술을 익힌 뒤에는 여행 계획을 보다 구체화했다. 페니어(자전거에 부착하는 가방)를 달고 다니기 위해 짐받이를 설치하고, 핸들바 가방도 부착했다.
쿠바에 도착하자마자 조립을 마친 자전거. 여행 기간 동안 ‘알초’라는 애칭을 붙여줬다. |
미리 예약해 둔 숙소에 도착했을 땐 이미 자정이 넘어 있었지만 잠자리가 바뀐 탓일지, 앞으로의 여행이 설레서인지는 몰라도 밤새 한 숨도 자지 못했다. 결국 새벽에 일어나 자전거를 조립하기 시작했는데, 운송될 때 사고가 났는지 기어 쪽의 부품이 깨져 있었다. 다행히 운행에 지장을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첫날부터 험난한 여정을 예고하는 것 같아 불안했다.
Santiago de Cuba의 혁명광장에서 출발 기념으로 사진 한 컷 찰칵! |
이튿날 아침, 정수 형의 자전거 역시 조립을 마치고 터미널로 향했다. 자전거 여행 출발지로 삼은 ‘Santiago de Cuba’로 가는 버스에 올라 정확히 15시간 44분을 달려 도착했다. 늦은 시간이라 인근 숙소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여행 기간 중 필요한 식료품과 생필품을 사는 등 자전거 여행을 위한 준비를 모두 마쳤다.
시내를 빠져나와 도로에 입성하기 전, 가야 할 방향을 미리 확인한다. |
낯선 땅에서 치른 호된 신고식
출발 당일(11월 8일) 아침, 숙소에서 아침을 두둑이 챙겨 먹고 Santiago de Cuba 바닷가를 출발지로 삼아 드디어 라이딩을 시작했다. 최상의 컨디션인 첫날이라 ‘올긴(Holguin)’ 지역까지의 142km를 목표로 잡았다. 하지만 날씨가 예상했던 만큼보다 훨씬 무더웠고, 길이 오르내림이 심해 체력 소모가 많았다.
한참을 달리다 날이 어두워진 오후 7시쯤에는 한 언덕을 오르다 미끄러져 도로에 넘어지는 사고가 나기도 했다. 또한 이날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길거리에서 노숙을 했는데, 정수 형은 야영장비를 가져와 편하게 잠을 잤지만 필자는 ‘쿠바가 뭐 춥겠어’라는 생각으로 맨몸으로 해먹에 누워 잠을 청했다. 결국 새벽에 날씨가 너무 추워 티셔츠를 3개나 껴입고 동이 틀 때까지 잠을 설쳤다. 쿠바에서의 ‘신고식’을 제대로 치르고야 만 것이다.
도로를 달릴 때도 차량들은 경적을 울리지 않고 알아서 피해간다. 우리를 향해 엄지손가락을 세워준 이들도 적지 않다. |
겨우겨우 Las Tunas에 도착해 허겁지겁 주린 배를 채우고는 정수 형과 앞으로의 일정을 상의했다. 형은 '이렇게 가다가는 최종 목적지인 ‘아바나(Habana)’는 커녕 중간 지점에서 일정을 마치고 집에 가야 할 판'이라며 '중간 중간 버스를 이용해 여정을 이어가자'고 제안했다. 일정상 11월 18일까지는 Habana에 도착해야 하는 형으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쿠바의 날씨는 좋다가도 갑자기 폭우가 내리기 일쑤다. 하지만 일정을 맞추기 위해서 비를 뚫고 나아가야했다. |
‘코발트빛’ 카리브해를 달리다
쿠바에서 자전거를 타면서 확연하게 느낀 점은 쿠바인들은 대부분 친절하다는 것이다. 먼저 'Hola'를 외치면 차에 탄 사람이건, 마차를 모는 사람이건, 집 앞에 앉아있는 사람이건, 아이들이건 모두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응답했다. 거기다 환한 미소까지 더해주니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다리에 절로 힘이 솟았다.
아이들이 있는 곳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지 않고 잠시 쉬어가며 펜과 노트 등을 선물했다. |
작은 휴게소에서 만난 ‘Goyito’라는 친구가 우리를 Camaguey 지역까지 안전하게 이끌어줬다. |
지난 8일 산티아고 데 쿠바를 떠나 11일 만에 드디어 아바나에 도착했다. 차로는 15시간 정도면 충분할 거리를 자전거로 11일을 걸려 온 셈. 이마저도 정수 형 말대로 두 구간을 버스를 이용하지 않았다면 여전히 해안도로 어딘가를 달리고 있었을 것이다.
사탕수수 줄기를 직접 짜 즙을 내는 모습. 갈증 해소에는 사탕수수 즙이 최고다. |
‘체 게바라의 도시’인 산타 클라라에는 여기저기 체의 형상물이 서 있다. |
홀로 꿋꿋이 밟아 나가는 페달
11월 21일 새벽 5시 20분. 숙소 주인 아주머니의 노크를 받고 일어나 아침식사를 해결하고 충분한 물과 여분의 간식을 챙겨 나왔다. Maria la Gorda까지는 약 190km. 이 거리를 나머지 일정동안 갔다가 다시 돌아오기에는 너무 빠듯할 것 같아 택시를 타고 이곳까지 향했다. 3시간 20분 정도 걸려 도착한 뒤 다시 자전거에 올라 해변길을 따라 라이딩을 시작했다.
라페로 향하는 길에서 잠시 쉬어간다. |
100m의 아찔한 높이를 자랑하는 ‘바쿠나야구나’ 다리(Puente de Bacunayagua). 이 다리가 생시면서 길이 30분 가량 단축되었다. |
La Fe에서부터는 국도가 시작돼 도로사정이 훨씬 좋아졌다. Guane에서 Vinales까지의 약 73km 구간은 지역 특성상 물이나 간식 등을 사 먹을 곳이 중간 중간 위치해 있지 않아 체력 안배에 신경을 써야 했다. 특히 Cabeza에서 Pons로 향하는 도로는 지금까지와는 완전히 다른 형태인 폭이 좁고 오르내림과 굽이가 많은 길이 이어졌다. 끝이 없는 오르막과 내리막 덕에 온몸이 땀에 흥건히 젖었고, 허벅지의 피로는 더해갔다.
날이 너무 더울 때는 아름다운 카리브해에서 잠시 쉬어간다. 이것이 자전거 여행의 매력 아니겠는가. |
La Fe로 가는 도중 만난 야생 소. 단단한 뿔이 인상적이었다. |
여정의 마지막, 다시 아바나로!
하지만 이튿날에도 날은 계속 우중충했다. 비는 내리지 않았지만, 비가 내렸던 탓에 몹시 후텁지근한 공기가 짙게 깔려 있었다. 아바나까지의 거리는 92km. 부지런히 달리면 해가 서쪽으로 넘어가기 전에 아바나에 다다를 수 있겠지만, 동쪽으로 향하다 보니 서쪽을 향해 불어대는 바람을 헤치고 가야했다.
이국적인 쿠바의 풍경이 자전거 여행 내내 눈을 즐겁게 해준다. |
트리니다드 마을의 전경. |
아바나는 쿠바의 수도인 만큼 면적이 커서 예약한 숙소까지 가는 거리도 만만치 않았다. 지칠 대로 지친 몸을 이끌고 숙소에 도착했을 때는 후련한 마음보다는 갑자기 지긋지긋한 기분이 들었다. 하지만 한숨을 돌리고 나서 다시 자전거를 보니 이내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한 달여간 손과 발이 되어 쿠바 전역을 달려준 나의 애마에게 애정 어린 마음을 전하며 쿠바 자전거 종주를 자축했다. 달콤한 럼주 한 잔과 함께.
본격적인 출발에 앞서 숙소 주인 내외와 기념 촬영. |
'그간 험한 오르내리막길도 불평 한 마디 하지 않고 잘 견뎌주었구나. 한국에 돌아가면 손과 발, 심지어 모세혈관까지 아무 탈이 없도록 모두 잘 손질해줄게. 많이 고생했으니 당분간은 푹 쉬고 봄이 돌아오면 또 함께 하자꾸나. 고맙다 나의 애마, 알초!'
최인섭 서울시청산악회 / cisalp@seoul.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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