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이 세월호 참사 2주년 계기수업용 교재로 발간한 ‘기억과 진실을 향한 416교과서’에 대해 “교육자료로 부적합하다”며 사용 금지 조치를 어제 내렸다. 전교조가 만든 초등, 중등용 교재는 박근혜 대통령을 괴물로 암시한 듯한 내용과 통영함 다이빙벨 등에 대한 근거 없는 의혹을 옮겨놓았다. 이는 좌우 이념을 떠나 허위 사실을 주입하는 것이며 교사의 양심을 저버린 행위다.
전교조가 사회적 이슈에 대해 균형 잡힌 시각을 갖게 한다는 명분 아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반대, 세월호특별법 제정 촉구 등 계기수업을 강행해 논란을 일으킨 것이 한두 번이 아니다. 교육기본법 제14조 4항은 ‘교원은 특정한 정당 또는 정파를 지지하거나 반대하기 위하여 학생을 지도하거나 선동해서는 안 된다’고 명시했으나 전교조는 법도, 교육부의 지시도 무시하고 편향적 계기수업을 계속해 왔다.
이번 교육부의 416교과서 사용 금지 지시도 전교조가 따를지 의문이다. 교육부는 전교조의 법외노조 판결에 따라 학교복귀 명령을 거부한 전교조 전임자에게 직권면직 등을 조치하도록 17개 시도교육청에 지시했지만 제대로 시행된 곳이 없다. 총선과 대선을 겨냥해 정치운동으로 교실을 오염시키고 어린 학생들에게 편향된 가치관을 심어주려는 전교조에 정부가 이번에는 제대로 제동을 걸어야 한다.
2.사설]더민주 오너 문재인, “당 정체성 바꿀 생각 없다”
그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4·13총선 공천이 끝나자 기다렸다는 듯이 전면에 나서 “요즘 우리 당 정체성 논쟁은 관념적이고 부질없다”는 말로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를 겨냥했다. 김 대표가 제기한 정체성 시비를 문제 삼은 것이다. 김 대표는 전날 비례대표 공천 파동 이후 당 복귀 기자회견에서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 정당으로 가는 길은 요원하다”며 무려 6번이나 정체성을 거론했다. 당의 정체성에 대한 실세와 임시 대표의 큰 인식 차는 계기만 되면 정면충돌할 소지가 크다.
“미국 민주당처럼 진보 보수까지 껴안는 대단히 스펙트럼이 넓은 정당을 모델로 삼아야 한다”는 문 전 대표의 말을 보면 자신은 집토끼(기존 진보층)를 붙잡고, 김 대표는 산토끼(보수층)를 껴안게 하는 양동 전략인 듯하다. 하지만 당의 정체성에서 괴리가 큰 쌍두마차가 잘 굴러갈지 의문이다. 말이 역할 분담이지 문 전 대표의 전면 등장은 김 대표를 견제하고 친노·운동권이 주도권을 다시 잡기 위한 사전 포석이다.
김 대표는 어제 “누가 운동권을 배제한다고 그랬느냐”며 “기본적으로 국민이 바라는 정체성 쪽으로 당이 흘러가야 한다”고 톤을 낮췄다. 5선 비례대표를 받아 노욕을 채우는 대신 더민주당의 중도 구색 맞추기에 충실할 모양이다. 문 전 대표는 원하는 대로 됐다고 좋아할지 모르겠으나 멀리 보면 그런 정체성을 가진 정당으로는 다수당도, 내년 12월 이후 집권당도 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김 대표가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정치적 반란’ 소리를 들어가면서 투쟁에 나선 심정을 이해할 수는 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을 필두로 한 친박계가 당헌·당규에 규정된 상향식 공천의 원칙을 무너뜨리는 것을 당 대표로서 보고만 있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원만한 해결을 위한 양보가 무능력 무기력으로 비치면서 김 대표의 리더십에 의문이 제기됐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재의 요구조차 하지 않은 채 공천 의결을 거부한 김 대표 역시 당헌·당규를 위배한 것은 마찬가지다. 결국 김 대표나 친박계 모두 승자는 없고 패자만 남은 상처투성이의 해당(害黨) 행위를 한 셈이다.
막장으로 치닫던 공천 드라마에 김 대표는 옥새 반란으로 맞섰지만 결국 25시간 만에 친박계와 타협했다. 김 대표는 당 ‘정체성’ 문제로 컷오프(공천 배제) 당한 유승민, 이재오 의원을 구해 정치적 승리를 거뒀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끝까지 간다”는 자신의 말을 지키지 못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한국갤럽 3월 넷째 주 여론조사에서 전주에 비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36%)이 4%포인트, 새누리당 지지율(39%)이 2%포인트 하락한 것도 국민은 대통령과 보수여당 모두에 실망했다는 의미다.
이번 공천 과정을 통해 국민은 입만 열면 개혁을 외치고 “국민만 바라본다”는 새누리당도 총선 결과보다 자파(自派) 세력 늘리기에 혈안이라는 것을 똑똑히 목격했다. 선거 결과에 따라 책임론과 함께 당권과 대권을 둘러싸고 권력투쟁이 벌어질 게 뻔하다. 오만과 독선으로 구태를 거듭하는 보수 기득권 집권 세력이 또 무슨 말로 개혁을 외칠지 궁금하다.
[최영훈의 법과 사람]김무성 對 이한구… 이세돌 對 알파고
새누리당은 ‘여의도 공천 잔혹사’를 다시 썼다. 낯 뜨거운 장면이 속출했다. 이한구 공천관리위원장은 인공지능 로봇을 빼닮았다. 친박·비박을 구분해 피아를 갈랐고 보복 학살이라는 한 방향으로만 기계처럼 움직였다. 막무가내여서 입력한 대로 작동했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세돌 9단과 격돌한 알파고(AlphaGo)와 달리 조악한 인공지능 같다.
김무성 대표(무대)의 ‘신의 한 수’, 아니 급소인 ‘빈삼각’에 돌을 놓은 ‘옥새 반격’에 청와대와 친박 핵심은 속수무책이었다. 옥새의 정확한 명칭은 당인(黨印)이다. 공천장에 당인과 대표 직인을 찍어야 선관위에 낼 수 있다. 어제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에선 도장 행방을 놓고 입씨름까지 벌였다. 참 가관이다.
이세돌은 3연패 뒤 절체절명의 4번째 대국 후반부 중원에서 끼워 넣는 회심의 한 수를 둬 알파고를 버그 상태에 빠뜨렸다. 이후 알파고는 이해할 수 없는 두어 수를 뒀다. 그랬던 것처럼 ‘한구 로봇’도 한순간에 마비됐다. 극히 드문 예외를 빼곤 프로 기사라면 빈삼각에 돌을 놓지 않아 당황한 모양이다.
절정기의 조훈현 9단은 감각적인 수로 의표를 곧잘 찔렀다. 제비라는 별명처럼 그의 행마는 날렵하고 유려하다. 조훈현이 1988년 벌어진 제1회 응씨배 준결승에서 중국 최강자 린하이펑 9단을 상대로 발이 느린 빈삼각을 세 번이나 두고 승리했다. 고수가 꺼리는 빈삼각에 둬 급소에 ‘정문(頂門)의 일침’을 가한 것이다.
바둑에 입문하면 “빈삼각은 두지 마라”라고 가르친다. 로봇 한구는 무대가 옥쇄(玉碎·깨끗이 죽음)하듯 어리석게 ‘빈삼각 반란’을 감행하리라 상상조차 못한 것 같다. 의외의 수에 고수는 흔들려도 곧 정신을 차린다. 반면 영혼 없는 로봇은 마비 상태로 빠져든다. 로봇 한구뿐 아니다. 집권 여당 전체가 그 꼬락서니다.
작가 서영은은 작년 봄 소설문학에 ‘묘수’라는 단편소설을 발표했다. “이세돌과 알파고의 대국에서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이기고 지는 문제가 아니다. 그의 땀, 그의 외로움이 알파고를 넘어서는 인간의 존엄이라는 사실이다. 짐으로써 이세돌은 인간의 존엄함을 세상에 보여줬다. 기계는 입력 자체다. 뒤에서 누군가 조종한다. 그런 인공지능 로봇이 결코 대신할 수 없는….”
묘수는 바둑소설이 아니다. ‘목숨까지 부인하는 절체절명의 위기, 그때 죽음이 삶으로 뒤집히는 역설을 경험하고 진짜 믿음이 뭔지 알 수 있다’는 대단히 심오한 종교소설이다. 이세돌은 마지막 5번 대국에서 유리한 백을 마다하고 굳이 흑을 자청한다. 새누리당의 패자뿐인 추악한 공천 내전(內戰)을 보면서 기계와의 승부를 넘어선 이세돌의 아름다운 패배를 다시 새겨본다.
최영훈 수석논설위원 tao4@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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