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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도로 운동권黨’의 김종인, 무슨 낯으로 표 달랄 건가

거울속의 내모습 2016. 3. 24. 23:42


사퇴의 배수진까지 쳤던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가 어제 기자회견에서 당 잔류를 밝혔다. 그는 “현재와 같은 일부 세력의 정체성 논쟁을 해결하지 않으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 요원하다”면서도 선거가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나름의 책임감’ 때문에 대표직을 계속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비례대표 2번은 “당을 끌고 가기 위해 필요해서 선택한 것”이라고 했다. 더민주당은 김 대표를 2번에 배정해 헌정사상 비례5선을 보장한 비례대표 공천안을 확정했다. 

김 대표가 말한 ‘정체성’이란 뿌리 깊은 친노 운동권 체질을 의미한다. 그는 “미래의 정권을 지향한다면 기본적으로 국민의 정체성에 당이 접근하려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며 “이 당의 방향을 정상화하는 데 최선의 노력을 하도록 결심했다”고 말했으나 성공할 가능성이 희박하다. 그러니 마치 총선과 대선 패배를 미리 내다보고 “나는 최선을 다했지만 일부 세력이 정체성을 고집해 어쩔 수 없었다”는 ‘알리바이용’으로 짐짓 내세운 건 아닌지 의문이다.

어떤 이유든 김 대표가 중앙위원회의 비례대표 결정을 수용한 것은 백기투항이다. 문재인 전 대표는 어제 울산에서 “지도부가 자의적으로 하지 않고 중앙위가 결정한 것은 정당 민주주의 혁신을 보여준 사례”라고 주장했다. 김 대표는 1월 “친노 패권주의가 당에 얼마만큼 깊이 뿌리박고 있는지를 보겠다. 이것을 수습할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으면 여기에 오지도 않았다”고 했지만 되치기당한 셈이다. 일각에선 ‘친노의 벽은 못 넘고 노욕(老慾)만 채웠다’고 비난한다. “내 말대로 안 하면 떠난다”고 했던 말이 무색하게 맥없이 주저앉았으니 이제 그의 으름장을 겁낼 사람도 당내엔 없을 것이다.

이번 사태를 통해 더민주당의 실제 주인은 친노 운동권이고, 문 전 대표는 상왕(上王) 같은 존재임을 국민이 알게 됐다. 김 대표와 문 전 대표는 ‘총선 승리와 정권 교체를 위한 당의 확장성’에 의기투합했다. 문 전 대표가 총선 이후 대선까지 내다보고 김 대표를 당의 전면에 내세워 자신의 대권 가도를 닦겠다는 뜻이다. 하지만 ‘도로 운동권당’의 얼굴마담이라는 본색이 드러난 마당에 김 대표가 앞으로 어떤 선거 공약을 내놓든 유권자가 신뢰할 수 있겠는가.      




   [허문명의 프리킥]“문재인이 더민주 개혁의 걸림돌”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회 대표의 ‘셀프 공천’으로 떠들썩했던 21일 오전 6시 김 대표에게 “왜 2번이냐” 문자를 보냈다. 3시간 뒤 전화가 왔다. “번호가 중요한 게 아니다. 지금 이 사람들이 기득권을 지키려고 나를 꺾으려 한다. 정 이렇게 나오면 난 떠난다.” 그냥 해보는 말이 아니라는 게 금방 느껴졌다.


金밀어내기 예정된 수순

그제 저녁 1980년대 운동권 출신 40, 50대 몇 명과 만났다. 서울대 총학생회장 출신도 있었고 시국사건으로 투옥된 사람도 있었다. 지금은 학계에 있거나 사업가로 변신한 사람들로 ‘친노(친노무현) 운동권’의 속사정을 자세히 알고 있었다. 이해관계가 없다 보니 친노를 향해 솔직한 ‘돌직구’ 발언들이 쏟아졌다.

“문재인 의원은 사람은 착하지만 지도자감이 못 된다.” “조국, 문성근 등 문재인이 믿는 사람들은 겸손함, 봉사정신, 품성을 단련하지 못한 관념적 운동권들이다. 더민주 집권의 걸림돌이다.” “중앙위원회에서 김종인의 비례대표안을 거부하는 발언을 한 박우섭 인천 남구청장도 파벌투쟁 경험이 많은 사람이다.” 

참석자들이 대학 때 세칭 ‘이론가’들이다 보니 친노 운동권의 김종인 공격 배경에는 ‘헤게모니’론과 ‘통일전선 전략전술’이 있다는 말도 나왔다.

“헤게모니는 패권이란 뜻이다. 레닌, 마오쩌둥, 김일성 등이 구체화시킨 개념이다. 권력에서 중요한 건 헤게모니를 쥐는 것이며 이를 위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거다. 문 의원과 주변 운동권들의 행동을 보면 이 헤게모니 이론이 연상된다.”

“통일전선 전략전술은 자체 힘이 약할 때는 대중의 지지를 받는 인사, 조직과 손을 잡은 뒤 헤게모니를 잡고 그 이후에는 그들을 가차 없이 버린다는 이론이다. 친노는 김종인도 이용해 먹고 버릴 것이다. ‘김종인 밀어내기’는 예정보다 빨랐을 뿐 예정된 수순이었다.”

또 다른 참석자는 이렇게 말했다. “떼를 지어 반(反)김종인 공세를 펼치던 친노 세력이 돌연 ‘비례대표 순번은 김 대표 스스로 정하도록 하는 게 예의’라 말하는 것을 듣는 순간, 역해서 토할 뻔했다.” 

모임을 끝내고 김 대표와 다시 통화했다. “더민주당이 변하지 않으면 집권 못 한다. 그런데 안 변하려고 한다”는 말에서 피곤과 무력감이 느껴졌다. 전화를 끊으면서 권력의 달콤함에 빠져 얼굴 인상마저 느끼하게 변해버린 친노들 얼굴이 스쳤다. ‘운동권 정체성’에 안주하며 30% 지지를 벗어나지 못하는 야당을 바꿔 보려는 김종인에게 저항하는 그들이 가슴속 납덩어리처럼 느껴졌다. 운동권에서 신망을 한 몸에 받았던 고 조영래 변호사, 빈민운동가 제정구 의원 얼굴도 떠올랐다. 

한 의원의 말이다. “이제 인품이 훌륭하고 능력 있는 사람들은 정치를 기피한다. 좋은 사람들이 공급되지 않는다. 정치권의 품질이 떨어져 가는 이유다.” 여야의 막장 공천 과정을 지켜보며 이 말이 귓전을 때렸다.


당 정체성 바꿀 수 있을까

“당에 남겠다”는 기자회견으로 일단 종결된 더민주당 내분 사태를 보며 김 대표가 과연 친노의 저항을 뚫고 당을 개혁할 수 있을지 우려스럽다. 비례대표 2번 셀프 공천은 노욕(老慾) 비판을 불러들인 패착이었다. 단기필마 개혁에는 한계가 있다는 것도 보여주었다. 총선을 20일 남겨놓은 상황에서 당을 공황 상태로 만들 수는 없으며 아울러 긴 호흡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한 것 같다. 하지만 2번 파동으로 개혁의 동력을 잃어버린 그가 더민주당의 운동권 정체성을 바꿔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허문명 논설위원 angelhu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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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병준 칼럼]애들이 볼까 두려운 한국정치


정치가 인생론 교과서라면… 한국의 불량정치는 禁書 수준
與공천위장은 경쟁력 없고, 野책임자는 비례 4선의 철새
교과서 집필자부터 잘못 정했다… 권력욕-담합-억지의 정치판에서 대체 무엇을 배우겠는가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세상사 돌아가는 것을 보고 우리는 우리의 인생을 디자인한다. 즉 칭찬받는 일이나 될 것 같은 일은 하고, 욕먹는 일이나 되지 않을 것 같은 일은 피해가며 산다. 세상사 그 자체가 인생의 교과서다.

세상사 중에서도 정치는 특별히 중요하다. 싫건 좋건 늘 쳐다보게 되고, 알게 모르게 이를 통해 세상 사는 법을 배우기 때문이다. 인생론 교과서로 치면 가장 많이 읽는 부분이다.

그래서 말한다. 정치에는 교훈이 있어야 한다. 법을 만들고 자원을 잘 나누는 것으로만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그 자체로서도 보고 배울 게 있어야 한다. 정치에 무슨 그런 걸 기대하나 하겠지만, 역으로 정치이기 때문에 그래야 한다. 

흔히 마키아벨리를 이야기한다. 정치와 도덕이 같이 갈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마키아벨리는 군주가 곧 나라의 전부이던 시대, 그것도 그 군주가 정당한 목표를 가진 경우를 말했을 뿐이다. 지금은 다르다. 군주가 아닌 국민이 나라의 기둥이고, 국민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서는 세상이다. 정치의 교훈적 기능이 중요하다는 말이다.

우리의 정치는 어떨까? 물어 무엇하겠나. 교훈을 담은 교과서가 아니라 금서(禁書)로 지정해야 할 정도의 불량서적이다. 정말 아이들이 볼까 두렵다.

솔직히 지난 대통령선거 때 좌절했다. 혁신에 혁신을 거듭해야 할 나라에 자기 성공의 이력이 약한 인물들이 대통령 후보가 됐다. 두 후보 모두 세상이 인정할 정도로 스스로 성공한 기업인도, 행정가도, 사회운동가도 아니었다. 그저 전직 대통령들의 큰 정치적 유산을 물려받은 자식이거나 측근이었다. 

사람들에게 어떻게 살라고 할까? 우리 정치가 만든 인생론 교과서를 보자. 제1장 ‘큰사람 되는 법’, 그 내용은 이렇다. ‘잘 태어나라’, ‘큰 유산 물려줄 사람 만나길 빌어라’. 금수저 흙수저 이야기로 속이 불편한 판에 정치마저 이 모양으로 가르치고 있다. 이러고도 온전한 나라가 될 수 있겠나? 

이번 공천정국을 보며 다시 좌절했다. 교과서로 치자면 집필자 선정부터 잘못됐다. 새누리당은 불출마 선언을 한 공천관리위원장이 공천권을 휘둘렀다. 하필이면 강력한 야당 후보(김부겸)가 존재하는, 그것도 낙선하면 큰 망신을 당하게 되는 전통적 여당 독주 지역구 출신이다. 이런저런 오해가 있을 수밖에 없다. 

더불어민주당은 비상대책위원장이 공천을 주도했다. 이런저런 전력에도 불구하고 당을 바꿔가며 비례대표만 4선을 한, 그야말로 세상 그 누구도 만들 수 없는 이력의 소유자이다. 정치의 교훈적 기능을 생각했다면 불러내지도, 나오지도 말았어야 했다. 그러고도 당연한 듯 비례대표를 한 번 더 하겠다고 해서 말썽이 일고 있다.

공천의 내용은 더욱 심하다. 여당과 제1야당 모두 선거의 승패만큼이나 당내의 세력구도 재편에 몰두하고 있다. 그러다 보니 특정인과 특정 계파를 어떻게 치고, 어떻게 살리느냐가 주된 이슈가 되었다. 당연히 국익도 공익도 공천의 기준이 아니다. 당의 정체성도 특정 계파나 특정인을 자를 때만 적용된다. 온통 계파정치의 논리에 음험한 담합과 억지, 노회함이 판을 주도하고 있다. 

신생 정당인 국민의당 또한 예외가 아니다.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지역을 중심으로 현역 의원 등 힘 있고 목소리 큰 쪽이 부당한 이익을 얻었다는 시비가 일고 있다.

다시 정치가 만든 인생론 교과서를 본다. 제2장 ‘출세하는 법’이다. ‘명분과 의리를 따라 살지 마라’, ‘이 편 저 편 오가는 것을 밥 먹듯 해라’, ‘힘 있는 자와 그 패거리를 찾아 붙어라’, ‘무슨 짓을 하고 살았든 고개를 당당히 들어라’.

국민도 무디어졌다. 불륜도 내 편이 하면 로맨스가 되는 진영논리 속에, 또 이기고 지고의 현실정치 논리 속에 옳고 그름의 문제가 사라지고 있다. 방송에서도 술자리에서도 누가 밀고 밀리고, 어느 쪽이 몇 석을 얻느냐는 이야기가 주류를 이룬다. 권력욕은 정치적 의지로, 정의롭지 못한 담합은 정치력으로, 노회함과 억지는 리더십으로 읽힌다. 

이래서는 안 된다. 현실정치 논리와 진영논리를 넘어 옳지 못한 것을 비판하고 바르지 못한 것을 심판해야 한다. 그러지 못할 것 같으면 TV도 끄고 신문도 치우자. 권력욕과 음험한 담합, 노회함과 억지로 가득한 이 불량한 정치가 아이들까지 오염시킬 것이기 때문이다. 다시 한 번 애들이 볼까 두렵다. 
  
김병준 객원논설위원 국민대 교수 bjkim36@daum.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