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프랑스 와인
프랑스에 와서 개인적으로 '잘 변화했다'고 여겨지는 것 중의 하나는 어떠한 대상에 대한 편견이나 벽을 많이 깼다는 점이다. 나는 미각이 섬세한 편도, 술을 잘 하지도 못하는 편이라 '포도주'에 대해서는 언제까지고 잘 알 수 없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해왔다. 하지만 3년 전, 동료 가이드들과 함께 떠났던 세미나에서 나의 선입견은 깨질 수 있었다. 와인을 전공한 가이드가 각 지역을 대표하는 와인과 도메인, 품종, 제작 방식 등에 관한 주제 발표를 했을 때, '알고' 마셨던 첫 잔의 향기와 맛을 지금도 기억한다.
'로마네 꽁띠'는 한 해에 생산하는 양이 6000병 정도밖에 되지 않아 그 가격과 희소성이 가장 높다 알려진 와인이다. '황금의 언덕', 꼬뜨 도르 지역의 본 로마네 마을에서 피노 누아 품종으로 만들어지는데, 물론 나는 마셔본 적이 없다. 하지만 와인 한 병을 만들기 위해서 생산자들이 흘리는 땀과 노력, 그 포도 알갱이 안에 담긴 햇살과 토양과 비, 바람의 향기를 입 안에 머금는다는 것 자체가 어떤 와인을 마시더라도 나를 감동케 한다.
프랑스에는 와인 전문점들도 많지만 슈퍼마켓에서도 충분히 훌륭한 와인을 만날 수 있다. 보통 5-10유로 사이의 가격이면 가볍게 친구들과 나누어 마실 수 있는 테이블 와인을 구입할 수 있고, 그렇게 내가 접하는 와인의 라벨을 하나씩 이해하다 보면 나에게 맞는 와인을 찾아내게 된다. 프랑스에서 와인은 사치도, 허세도 아닌 생활의 일부이기에, 취향에 맞는 와인을 발견하는 재미를 누렸으면 한다.
2. 대지의 기운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요리, 포토푸 Pot au Feu
넓은 경작지에서 나는 곡물, 야채, 과일은 물론 초목에서 자라는 가축들, 위로는 차가운 바다, 아래로는 따뜻한 바다로 둘러쌓여 해산물 자원도 풍부한 프랑스. 다양한 재료만큼이나 이를 활용한 요리가 유명한 식도락의 나라이기도 하다. 예약을 하지 않으면 식사가 어려운 레스토랑들도 많지만, 언제고 편하게 찾아 푸근한 인심을 느낄 수 있는 곳들도 많다. 개인적으로는 잘 차려입고 가서 격식을 차리는 곳보다는, 편안하게 맛깔스런 요리를 즐길 수 있는 곳을 더 선호하는 편이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는 때면 언제고 가장 먼저 떠오르는 요리는 포토푸(pot au feu). 프랑스식 갈비찜, 혹은 국물 대신 야채가 어우러진 갈비탕 정도로 비유하면 어떨까. 소고기와 도가니 부분을 야채와 푹 쪄낸 요리로, 담백한 맛이 일품이다. 디종(Dijon) 특산품으로도 유명한 겨자를 살짝 곁들이면 알싸한 향이 고기의 맛을 더욱 돋궈주고, 프랑스식 피클인 꼬니숑(cornichon)은 새콤하게 입 안을 정리해 준다. 부드러운 고기와 야채, 그리고 한 잔의 레드 와인이 어우러지는 식탁 앞에서, 소박하면서도 정겨운 우리네 감성이 떠오른다. 가장 프랑스적이면서도 꾸미지 않은 담백한 매력의 포토푸는 늘 추천 메뉴에서 빠지지 않는다.
3. 달콤한 유혹! 디저트
프랑스식 레스토랑에서는 과거에 비해 많이 간소해진 식사 코스가 전식, 본식, 후식이다. 가볍게 입맛을 돋궈주는 전식과 든든한 본식을 지나, 많은 여성들이 가장 고대하는 후식! 디저트의 천국답게, 지역마다 계절마다 레스토랑마다 선보이는 후식의 종류는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더욱이 시간이 흐를 수록 요리사들의 창의력이 더해져 다양한 형태로 우리의 혀를 달콤하게 녹일 준비를 점점 더 철저하게 갖춰가고 있기 때문에 메뉴를 정하기 전에는 큰 갈등과 깊은 고민(!)을 하게 된다. 일단 주문을 할 때 디저트 메뉴를 먼저 보고 그에 맞춰 전식과 본식을 결정하는 정도. 느긋하게 앉아 여유롭게 코스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면 기꺼이 식탁의 꽃, 디저트를 앉은 자리에서 받아들겠지만, 여행 중에 매 끼니 후식까지 챙겨 먹기란 쉽지가 않다.
그래서인지, 점심시간이 지나면 시내 곳곳의 공원에 앉아 조그마한 동그라미를 먹는 현지인들의 모습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제는 프랑스 디저트의 대명사로 자리하게 된 마카롱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달걀 흰자로 머랭을 만들어 구워내고 그 사이에 달콤한 크림을 발라 만드는데, 여기에 첨가되는 맛과 향이 다양해서 선택의 폭도 넓은 편이다. 파삭, 부서지는 첫 느낌을 지나 부드럽거나 쫀득한 크림 혹은 쨈을 만나고 입 안에 가득 퍼지는 향긋한 달콤함에 중독된 이들이 너무도 많다. 물론 단 것을 즐기지 않는 이들이라면 커피 한 잔을 곁들이고자 하는 욕구에 사로잡히게 되겠지만, 나는 마카롱을 '파리를 닮은 맛'이라고 표현한다. 눈으로 보기만해도 아름답고 입 안에 넣었을때 찾아드는 황홀감,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난 후에 혀 끝에 남는 달콤한 여운까지.... 마카롱을 전문으로 판매하는 몇몇 브랜드들은 매장과 함께 살롱 드 떼(Tea room)도 함께 영업을 하고 있으니, 디저트 사냥꾼이라면 테이블에 앉아 본격적인 전투에 임하는 시간을 갖는 것도 좋겠다.
4. 미술,박물관 안에 자리한 카페
문화, 예술의 도시라는 명성이 아쉽지 않을 정도로, 아니 그 이상을 넘어선 다양한 미술,박물관이 자리한 파리. 그 안으로 들어가 수많은 예술가들이 남겨놓은 작품들 사이를 거닐며 영감을 얻기에 파리보다 좋은 도시는 없는 것 같다. 감각을 일깨우고 잠시 다른 세계로 들어가 사고를 확장시킬 수 있는 곳에서 또 다른 여유를 찾을 수 있는 곳은 바로 미술,박물관 안에 자리하고 있는 카페다.
세계 3대 박물관으로 손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의 유리 피라미드 광장 한 켠에는, 오가는 이들을 바라보고 다양한 포즈로 기념사진을 촬영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휴식을 취할 수 있는 '카페 마를리'가 있다. 루브르는 박물관 이전에 프랑스 왕가의 궁전으로 쓰였던 곳이니만큼, 건물 자체가 풍기는 고풍스러운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특히 테라스 석은 의자가 피라미드 광장을 바라보고 나란히 앉을 수 있도록 놓여있어, 밤의 루브르를 바라보며 샴페인이나 와인을 한 잔 정도 즐기기에 분위기가 더할나위 없이 멋진 곳이다.
과거 기차역으로 쓰이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이후에는 미술관으로 거듭난 오르세 미술관 5층에도 '카페 캄파나'가 자리하고 있다. 오르세를 상징하는 커다란 시계를 창문으로 둔 이 카페는 따스한 색감과 감성으로 부드럽게 흘러가는 인상파 작품을 만나본 후에 감상을 정리하기에 제격이다. 1900년대에 유행했던 아르누보 양식을 기반으로 꾸며졌기에, 그대로 연결된 계단을 따라 2층으로 내려가서 장식 미술관을 둘러보는 흐름에도 맞춰져 있다.
5. 밤의 파리
파리의 밤은 화려하지 않은 은은한 멋을 자랑한다. 휘황찬란한 간판이나 불빛 대신, 주황색 따스한 조명이 건물의 아래에서 위로 빛을 쏘아 올려주며 밤을 밝히기에 조금 더 개인적이고 낭만적이다.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센 강은 고요하게 흐르고, 그 주변으로는 사랑을 속삭이는 연인이나 청춘의 고민을 토로하는 젊은이들이 모여든다. 시테 섬이 시작되는 퐁네프 다리 아래의 꼭지점 부분이나, 프랑스 학술원과 연결되는 예술의 다리는 낮이건 밤이건 강변의 정취에 젖어든 이들이 삼삼오오 모여앉은 모습을 볼 수 있다.
파리를 가로지르는 센 강변으로는 도시의 주요한 건물들이 이 도시의 역사와 함께 흘러가듯 자리한다. 센 강 유람선을 타면, 시테섬과 생 루이 섬 아래쪽까지 훑으며 흐름을 그대로 읽을 수 있다. 그리하여 많은 여행자들이 야경을 즐기기 위해 배에 오른다. 일렁이는 강물에 비친 도시의 빛은 마치 고흐의 그림 속에 들어온듯한 신비로움을 가득 담고 있다. 강 바람을 가르며 낮은 각도에서 올려다보는 밤의 파리는, 절제된 화려함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6. 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파리
19세기 중, 후반에 걸쳐 도시 재개발을 통해 다시 태어난 파리는 계획 도시의 대명사이기도 하다. 방사형 도로와 나란히 늘어선 집의 지붕들을 내려다보기 위해서는 어딘가로 자꾸 자꾸 올라가고 싶은 마음이 저절로 든다. 이 미로같은 길을 헤매는 내 모습을 찾아보고 싶기도 하고, 하릴없이 멈춰서서 길을 지나는 누군가를 바라보며 상념에 잠기고 싶을 때, 그리 넓지 않은 파리 시내를 한 눈에 담기에 제격이다.
퐁피두 센터의 전망대는 그리 높지 않고 간편하게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갈 수 있어 체력적으로 부담이 없다. 어느 전망대에서나 보이는 에펠탑과 몽마르뜨르 언덕의 샤크레 쾨르 성당이 좌우로 중심을 잡아주고, 가까운 광장에 누워 일광욕을 즐기거나 바삐 걸음을 움직이는 사람들의 모습이 재미있게 다가온다.
노트르 담 대성당 전망대는 센 강이 좌우로 갈라지는 모습과 성당의 외벽을 장식한 가고일이 어우러지는 모습이 인상적인 곳이다. 851년의 역사를 간직한 의미있는 곳에서, 그 세월을 간직한 돌 계단을 밟고 올라서는 시간 자체는 특별하기 그지없다.
파리 시내에 유일한 고층 빌딩 몽파르나스 타워의 59층 꼭대기. 센 강의 좌안을 대표하는 전망대 명소이다. 360도로 펼쳐지는 주변의 풍광에 저절로 마음이 탁 트이는 기분까지 든다. 과거의 건물들과, 그 사이를 속속들이 움직이는 현재의 사람들이 빚어내는 조화는 충분히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7. 파리 근교, 일 드 프랑스 Île-de-france
'파리는 파리일 뿐, 프랑스가 아니다.'
프랑스 뿐만 아니라 유럽 자체가 과거 봉건제도의 영향으로 지역색이 강하기 때문에, 한 도시만 보았다면 그 '나라'를 보고 느꼈다 말하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파리라는 한 도시 안에 담긴 이야기들도 많지만, 그리 멀지 않은 근교로 나가면 파리와는 또 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 많다. 대표적으로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22km 거리에 자리한 베르사유 궁전. 프랑스의 가장 부강했던 역사와 문화가 그대로 남아있어, 화려한 건물과 실내장식을 만날 수 있다. 그 명성만큼이나 드넓은 정원의 광활함과 프랑스 대혁명을 맞이한 왕가의 이야기까지 곁들인다면, 파리와의 연관성을 찾으며 더 의미있는 시간을 보낼 수 있을 것이다.
8. 가톨릭 문화의 상징, 존재만으로도 매력적인 몽생미셸
가톨릭의 장녀로 불리우는 프랑스. 파리의 노트르 담 대성당을 비롯하여 성지순례객들이 가장 많이 방문하는 곳은 프랑스 북부 노르망디와 브르타뉴 지방의 경계에 자리한 몽생미셸이다. 9세기 경, 오베르 주교의 꿈에 나타난 미카엘 대천사의 명령으로 바위섬 위에 지어졌다는 이야기를 간직한 이 수도원은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천공의 성 라퓨타'에 큰 영감을 준 곳으로도 유명하다. 유구한 역사와 지방 문화를 동시에 느껴볼 수 있는 몽생미셸은 연간 25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찾는 프랑스 명소 중의 명소로 손꼽히고 있다.
9. 크리스마스의 스트라스부르
매년 11월 중순이 지나면 프랑스는 크리스마스 준비로 조금은 들뜬 분위기가 된다. 가톨릭 문화권인만큼, 매년 부활절과 크리스마스는 우리나라의 설이나 추석처럼 이들에게 큰 명절 역할을 한다. 시내 곳곳에는 지역 특산품이나 수공예품, 방쇼(Vin chaud따뜻한 와인)를 판매하는 '크리스마스 마켓'이 들어서서 나들이 나온 이들의 인파가 가장 많이 몰리게 되는데, 프랑스에서 가장 크고 아름다운 크리스마스 마켓은 독일과 국경 지역에 자리한 스트라스부르이다.
광장마다 커다란 트리가 세워지고, 12월 25일과 한 해의 마지막 날을 조금 더 특별하게 보내기 위한 사람들이 저마다 추위와 방쇼 때문에 코끝이 빨개진 모습으로 모여드는 도시. 프랑스와 독일의 경계에 자리한만큼 두 나라의 문화가 닮은듯 다른 모습으로 공존하는 매력이 넘치는 곳이다.
시내 중앙에 자리한 스트라스부르 대성당은 그 존재만으로도 보는 이들을 압도한다. 단연 이 도시의 상징이며, 구심점 역할을 도맡고 있기에, 주변으로 주요한 미술관을 비롯한 볼거리들이 지리한다. 일(Ill)강 위에 촘촘히 자리한 알자스 전통 가옥들이 동화 속 마을에 온 듯한 인상을 심어주는 쁘띠 프랑스까지, 대중교통을 이용하지 않고도 도보만으로 둘러보기에 충분한 규모이다.
10. 꽃과 예술과 빛이 있는 지방 축제
남프랑스는 바캉스의 대명사로 통하기도 할만큼 휴양과 축제의 지방이다. '프로방스'라는 단어 자체가 주는 설렘, 그것은 단연 선연한 보랏빛이다. 특히 6월부터 8월까지는 라벤더가 피어나기 시작하며 향기로운 행사들이 곳곳에서 이어진다. 드넓은 대지 위로 물들어가는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은은한 그 향기를 폐부 깊숙히 담는 그 순간만큼은 고민이나 걱정이라는 것이 마치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한다.
7월에는 아비뇽에서 세계 최대 규모의 연극 축제가 열린다. 교황청 앞에서는 공식적으로 선정된 작품들이 공연되고 비공식 부분의 작품들은 길거리 어디에서나 쉽게 즐길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모여든 이들의 예술에 대한 열정이 작은 도시를 가득 채우며 여행의 즐거움을 더하게 한다.
매년 12월 초에는 프랑스 제 2의 도시, 리옹에서 4일간 빛 축제가 열린다. 중세시대, 흑사병을 이겨내기 위해 촛불을 들고 기도하던 풍습에서 시작된 이 행사에는 매년 400만명 이상의 관람객이 모여들어 크리스마스 시즌을 알리고 있다.
글 : 박송이
사진: 박송이, 임현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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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쓴이 박송이 가이드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던 대학시절, 아시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인도 50일간의 배낭여행 이후, 동경했던 프랑스에 도착했고 삶과 사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유로자전거나라 가이드가 되었다. 자유, 평등, 사랑 그리고 똘레랑스의 나라에서 적절한 자기애라는 모토로 자아와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중이다. 검은 고양이 민식이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는 만남 중 하나.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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