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전 8시. 생 미셸 광장 근처의 카페로 백팩과 에코백을 하나씩 걸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한다. 적은 날은 2명, 많은 날은 8명까지.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머리를 맞대고 몇 마디씩 주고 받은 후, 8시 30분이 되면 다 함께 일어나 미카엘 대천사 분수대 앞으로 나간다.
"안녕하세요, 유로자전거나라입니다!!"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퍼지고, 그렇게 손님들과의 만남 시간보다 조금 빠르게 유로자전거나라 프랑스팀의 하루가 시작된다.
아침의 광장은 설렘으로 가득하다. 약속 시간보다 일찍 도착한 이들은 주변을 둘러보며 사진을 찍고, 조금 늦은 이들은 지하철 계단을 뛰어 올라오느라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기도 한다. 외국인들이 한 무리씩 모여 무언가 준비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니 다가와서 무슨 일이라도 벌이는 것이냐, 질문하는 현지인들은 물론, 다른 나라에서 온 여행자들도 호기심 어린 눈길을 보낸다. 여행에의, 파리에의 설렘을 안고 모여든, 나이도 사는 곳도 스타일도 모두 다른 이들. 하나의 팀을 꾸려 이곳에 사는 사람들의 삶과 문화와 역사를 가까이에서 들여다보며 직접 체험하는 하루가 시작된다.
'파리에 가서 하고 싶은 것'
가이드 일을 하기 전, 내 수첩에는 '1. 에펠탑 바라보기 2.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 방문'이라고 적혀있었다. 영화 <비포 선 셋>의 열혈 팬이었기 때문에, 전편인 <비포 선 라이즈>와 더불어 그 영화를 몇 번이나 봤는지 모르겠다. 그런 내가 파리에서 두 번째로 하고 싶었던 것은 바로 그 영화에 등장하는 장소에 가보는 것이었다. 영화 말미에 사랑스러운 기타 연주를 선보이는 여주인공 줄리 델피의 가벼운 발걸음처럼, 오래 된 라틴 지구의 골목을 지나 도달한 아담한 서점. 그 앞에서 스콧 피츠제럴드와 제임스 조이스, 헤밍웨이의 이름까지 함께 떠올려본다. 영미권 문학을 대표하는 이들의 파리 체류 시기를 대변하는 중심지이자, 여전히 로맨틱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모두에게 열린 공간. 벽에 적힌 글귀를 오늘의 여행 메이트들과 나누며 조금씩 마음을 열어본다. '낯선이를 함부로 대하지 말라. 변장한 천사일 수 있으니!'
글귀를 곱씹으며 센 강 위에 놓인 작은 다리를 하나 건너, 이 도시가 시작된 시테 섬으로 진입한다. 어쩌면 진짜 천사가 살고 있을 것 같은, 프랑스 가톨릭을 상징하는 노트르 담 드 파리. 서쪽 정면만큼이나 아름다운 동쪽 후면이 아침 햇살을 받아 밝게 빛나고 있다. 올해로 851주년을 맞이한 이 성당은 오랜 시간동안 파리에서 일어났던 많은 일들을 함께 겪어왔다. 성당의 역사와 도시의 역사에서 많은 공통점을 찾을 수 있을 정도로 상징적인 장소이니만큼, 외관부터 내부까지 정말로 많은 이야기가 담겨 있다.
중세, 고딕 건축 양식, 성당의 구조, 프랑스 혁명 당시, 나폴레옹의 대관식이 있었던 때, 그리고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 담 드 파리>까지...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후 바라보는 성당은, 그저 남들이 '가봐야 할 곳'으로 손꼽는 장소를 벗어나 내가 정말 '아는' 곳에 있다는 만족감으로 그 아름다움이 더욱 크게 다가온다. 특정한 종교를 떠나서, 여행 중인 나라의 문화 중심지에 대해서 다방면으로 사고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파리가 숨기고 있는 이야기를 '발견'하는 큰 재미이고 매력이다.
'파리'라는 도시의 출발을 함께 한 시테섬에는 발길 닿는 곳곳이 사연으로 넘쳐난다. 파리 시립 병원, 경시청, 그리고 대혁명 시절, 왕과 왕비에게 국민들이 단두대 처형 판결을 내렸던 최고재판소와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 면류관을 보관하던 생 샤펠 성당, 마리 앙투아네트가 수감되었던 콩시에르주리까지. '옛날 파리'의 중심지답게, 고풍스러운 멋을 자랑하는 건물들이 센 강변의 풍경과 어우러져 운치를 더한다.
'루파라', 시테섬에서 시작된 도시를 지키기 위해 지어진 성벽의 이름. 그 주변으로 출몰하던 '암 늑대'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 위에 지어진 프랑스 왕가를 위한 궁전, 루브르. 이곳은 프랑스 대혁명이 지나고, 왕실 소장품을 국민에게도 공개하라는 요청에 의해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시공을 넘나드는 예술작품 및 유물들을 품은 박물관이 되었다. 연간 900만 명 이상이 방문하는 명소 중의 명소. 파리를 찾는 지적 호기심 넘치는 이들에게 이보다 매력적이고 욕심나는 공간이 또 있을까. 총 3개의 관, 4개의 층으로 이루어진 루브르 박물관은 결코 하루, 혹은 이틀동안 '모두' 볼 수 없을 정도의 규모를 자랑한다.
루브르 박물관과 서양 예술사의 흐름을 짚어볼 수 있는 작품들을 선정해 둘러보는 시간은 그 어떤 때보다 집중력이 필요하다. 수많은 관람객들 틈에서 안전과 관람 규칙을 준수하며, 우리 문화권과는 사뭇 다른 역사적, 종교적 배경으로 탄생하게 된 예술가들의 작품을 어렵지 않게, 지루하지 않게 설명하고 안내하는 두 시간. 예술과 인간, 인간과 종교, 종교와 예술의 얽히고 섥힌 관계를 파헤쳐가며, 성경과 그리스 로마 신화와 역사적 사건을 담은 작품 앞에서 그 배경과 담긴 이야기를 풀어내는 과정이 쉽지는 않다. 하지만 '흐름'을 함께 느끼고 감탄하고, 때로는 자신만의 기준으로 작품을 마음에 담으며 '공간' 자체를 즐기는 손님들을 볼 때에는 보람이 더한다.
한국에 있을 때, 네덜란드 작가의 전시회 도슨트 일을 한 적이 있다. 플라스틱을 이용한 키네틱 아트였는데, 과학과 예술의 경계선에 있는 특이한 이력의 인물이었다. 그의 작업, 인생, 예술관에 대한 설명을 진행하기 위해서는 현대미술의 주요한 개념과 리처드 도킨슨의 책을 바탕으로 살을 붙이는 습득의 시간이 필수였다. 도서관에서 책을 찾아 읽고 관련 작가들의 작품을 인터넷으로 찾아보면서, 난생 처음 접하는 용어와 개념에 괴로웠지만 그래도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전시회가 시작되고 첫 해설을 끝낸 뒤, 엄청난 희열이 밀려왔다. 어쩌면 나도 '예술'이라는 것을 이제 조금은 받아들일 준비가 된 것은 아닐까 하는 마음에...
물론 전공자가 아니고 정식으로 누군가에게 가름침을 받은 것이 아니라서 지금도 스스로 한계를 느낄 때가 많다. 지난 겨울, 루브르 박물관 산하의 학교에서 진행하는 미술사 수업을 들으며 조금이라도 컴플렉스를 극복하고자 했지만, 미술은 여전히 나에게 가장 큰 과제로 남아있다. 어째서인지 나는 늘 '예술가'를 동경해왔기에, 나에게 창의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하지만 가이드가 된 지금, 그들을 조금이라도 알아보는 '눈'을 가질 수 있게 된 것에 상대적으로 만족한다.
공간과, 그곳을 채운 작품을 보며 서유럽 사람들이 생각하는 미의 기준을 만나는 박물관 관람을 마치자 급격하게 허기짐이 밀려온다. 아무리 마음의 양식을 채웠을지라도 걷고 또 걸으며 찾아낼 이야기가 더 남아 있기에, 에너지를 채우는 시간도 중요하다.
점심식사 후, 지금 파리 사람들의 모습을 엿볼 수 있는 시청 광장으로 간다. 과거에는 오가는 이들이 삶의 고충을 토로하던 곳이라는 의미로 '고충 광장'이라 불리기도 했던 이곳은, 현재 파리시에서 주관하는 다양한 문화 행사장으로서의 역할을 중점으로 하고 있다. 파리 시장과 프랑스 대통령, 그리고 자유, 평등, 박애를 기본 이념으로 한 다양한 정책들을 소개하며 '프랑스적 사고'에 대해 짚어볼 수 있는 곳이다. 파리라는 돛단배에 오른 파리 시민들이, 흔들릴 지언정 가라앉지 않을 수 있는 원동력은 무엇일까.
아코디언 소리 가득한 음악을 들으면서 광장에서 커다란 비누방울을 만드는 아저씨와 그 주변에 뛰어노는 아이들을 바라보며 에드먼드 화이트의 '게으른 산책자'를 떠올린다. 원어로는 '플라뇌르(flaneur)'라고 하는데, 사유하며 느리게 걷는 산책자를 일컫는 말이다. 투어 프로그램으로 하룻동안 여러 장소를 방문하지만, 그곳에서 보고 느끼는 시간만큼은 시계가 천천히 흘러가도록 완급을 조절하는 것 역시 가이드의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해주는 듯한 표현이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촘촘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파리. 온전히 도시의 품에 안겨서 두 발로 땅을 딛고 그대로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즐겁다.
생각의 가지가 뻗어나가 너무 멀리 가기 전에, 프랑스 혁명의 시발점인 바스티유 광장으로 향한다. 1789년 7월 14일, 대혁명의 시작. 그리고 1830년 7월 27,28,29일에 있었던 영광의 3일, 7월 혁명을 함께 기념하는 이 광장에서는 곳곳에 그 흔적을 간직하고자하는 노력을 엿볼 수 있다. 바스티유 감옥이 함락된 날을 기념하고자, 과거에 감옥이 있던 자리를 그대로 표시해 둔 바닥의 선이며, 건물 벽에 석판으로 만들어둔 지도와 기념 문구 등을 찾아본다. 많은 이야기를 숨기고 있어 그것을 보려는 자들에게는 한 없이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는 여기, 파리. 자신들의 역사에 연관된 중요한 것들을 유지하며 의미를 부여하고, 놀라울 정도의 상징으로 그것을 더욱 특별하게 만드는 이들. 다른 나라의 역사와 문화를 전하며 아이러니하게, 혹은 당연하게 '내 나라'를 생각한다.
고민거리를 안고 도착한 파리에서도 가장 '파리다운' 동네, 마레지구. 그 한켠에 자리한 보주광장에서 보내는 오후의 휴식시간은 달콤하지 그지없다. 광장을 둘러싼 고풍스러운 저택, 잔디밭에 누워 오수를 만끽하는 파리지앙, 삼삼오오 모여 이야기 나누는 사람들, 먼지를 일으키며 신나게 뛰어노는 아이들... 슬픔이나 근심, 걱정을 저절로 잊게할 정도의 평화로움이다. 느릿하게 흘러가는 뭉게구름을 하릴없이 바라보며 에디트 피아프의 목소리를 듣는다. 잠시 시간이 멈춘 것처럼, 눈 앞의 모든 풍경에서 현실감이 사라진다.
꿈같았던 쉬는 시간이 지나고, 하루의 마무리를 향해 다시금 지하철 1호선을 탑승한다. 센 강과 함께 흘러가며 주요한 역사의 축을 이루고 있는 노란색 노선. 맨 앞 칸에 타면 지하철 철로가 펼쳐지면서, 정말로 시간 여행을 하는 듯한 기분이 든다. 여섯 개의 정류장을 지나 도착한 곳은 시내의 여러 광장 중에서도 단연 그 규모와 의미로 손에 꼽히는 콩코드 광장이다.
'혁명 광장'이라 불리우던 시절에는 주요 인사들의 단두대 처형이 공개적으로 이루어지던 곳이었으나, '국민왕' 루이 필립 시기에 '화합하다'라는 뜻의 '콩코드'로 이름이 바뀌었다. 오벨리스크와 에펠탑이 나란히 서 있는 모습을 볼 수 있는 이국적인 분위기는 물론, 샹젤리제 거리가 시작되고 저 멀리, 2차 개선문의 모습을 함께 담을 수 있는 뷰 포인트이기도 하다.
사계절의 흐름을 가장 멋지게 볼 수 있는 곳이며, 별가루를 뿌려놓은 듯 조명이 빛나는 야경이 아름다운 광장. 연말에는 샹젤리제에 늘어선 크리스마스마켓을 바라보며 콩코드 광장에 그 시기에만 설치되는 관람차를 타고 저 멀리의 에펠탑과 개선문의 야경까지 함께 담을 수 있다. 코끝이 쌔한 바람이 새어들어오지만, 지방에서 올라 온 어느 프랑스 가족과 함께 작은 장난감 상자같은 그 관람차 안에서 내려다본 파리는, 어린시절 내가 꿈꾸었던 파리 그대로의 모습이었다. 시간이 흘러도 크게 변하지 않고 그대로 나를 반겨줄 도시가 있음에 감사한다.
'낙원의 들판'이라는 뜻으로, 과거에는 왕비가 마차를 타고 산책을 즐겼던 길이 반은 산책로로, 반은 쇼핑가로 꾸며져 있다. 단연 파리에서 가장 유명한 대로, 샹젤리제. 샹젤리제는 손에 쇼핑백을 들고 있지 않더라도 기분 좋은 거리임에 분명하다.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거대한 마로니에 가로수 길을 걸으며 '파리' 특유의 분위기를 잘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쩔 때는 '내가 여기를 걷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들뜨고, 오가는 이들의 표정을 보면 행복감이 더한다. 전 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뿜어내는 설렘이 이 길을 더욱 특별하게 만들고, '2,4km의 디즈니랜드'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리고 샹젤리제의 끝에는,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그의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개선문이 있다. 매일 저녁 6시에서 7시 사이에는 전쟁에 나갔다가 목숨을 잃은 무명 용사의 넋을 기리기 위한 의장 행사가 이루어지고, 전망대에 오르면 그 어디보다 아름다운 파리의 전경을 담을 수 있는 전망대가 있는 곳. 개선문을 둘러싼 12개의 방사형 도로는 계획 도시도 이토록 아름다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투어를 종료하는 장소이기 때문에 가끔 헤어짐이 아쉬운 손님들과 함께 사진을 찍으며 웃은 적은 있지만, 생각해보면 나 혼자 개선문을 기념하고자 남긴 사진이 없다. 비단 개선문 뿐만이 아니라 다른 장소들도 마찬가지다. 언젠가 시간이 많이 흘러서 내가 이곳을 떠났을 때에 이것이 아쉬움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스치기는 하지만, 선뜻 그 앞에 서서 렌즈를 바라볼 수 없는 것은 아마도, 이미 나의 마음에 담겨 이 모든 장소들이 선명하게 떠오르기 때문일 것이다. 비록 손에 잡히는 기록은 아닐지언정, 그 날 하루를 함께해주신 분들의 기억속에 파리의 풍경과 함께 기억될 수 있다는 것. 이 일과 파리가 내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다.
얼마 전, 가족 여행을 하던 12살 소년과 투어가 끝난 후에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보통 그 또래의 남자아이들은 핸드폰 게임에 열중하거나 이리저리 뛰어다니느라 가이드의 설명을 잘 듣지 않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그 아이는 하루 종일 열심히 내 이야기를 귀담아 들어주었고, 기특하고 고마운 마음에 몇 마디 나누다가 불쑥, '너는 꿈이 뭐니?'라고 물었다.
"건축가요. 여기 와서 의미 있는 건물들을 보고 이렇게 넓은 광장을 보니까, 우리나라에도 이런 곳이 많이 있으면 좋겠어요. 저는 광장에서 사람 구경하는 게 좋거든요."
저녁을 맞이하기 직전의 하늘은 여전히 푸르렀고, 왁자지껄 사진 찍느라 정신없는 많은 관광객들의 틈바구니에서 티 없이 맑은 소년의 꿈 이야기를 들었던 그 때. 내 삶에서 꾸었던 최초의 꿈은 무엇이었는가, 하는 질문이 들려오는 듯 했다.
프랑스의 과거를 지표삼은 개선문을 등지고 프랑스 대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1989년에 만든 3차 개선문은 마치 그들의 미래를 보는 것 같다. 자동차가 지상으로 다니지 않는 조용한 빌딩 숲, 그 사이에 만들어진 조용한 산책로. 투어가 끝나고 자유 일정에 뭘 하면 좋을지 고민하는 손님들에게 늘 라 데팡스 신개선문을 바라보는 이 15분 동안의 산책을 권한다. 그리고 가능하면, 일행과 떨어져서 각자 걸어보기를 추천한다.
하룻동안 프랑스인들의 과거와 현재를 있게 한 가장 중요한 사건, 프랑스 대혁명에 연관된 장소를 둘러보며 이 도시에 사는 이들의 지난 날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으니, 이제 이 아름다운 도시에서의 추억을 발판 삼아 더욱 아름다울 우리의 미래에 대해 생각할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겠냐고. 남의 나라, 남의 도시를 어떤 면에서는 '내 것'으로 만들 수 있는 의미를 찾는 여행... '고전'의 의미를 찾아 떠나는 여정이 아름다운 이유는 아닐까.
▶ 루브르 클래식투어 자세히보기
글쓴이 박송이 가이드는..
넓은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이길 수가 없던 대학시절, 아시아 배낭여행을 떠났다. 인도 50일간의 배낭여행 이후, 동경했던 프랑스에 도착했고 삶과 사람, 예술에 대한 관심과 애정으로 유로자전거나라 가이드가 되었다. 자유, 평등, 사랑 그리고 똘레랑스의 나라에서 적절한 자기애라는 모토로 자아와 세상을 새롭게 만나는 중이다. 검은 고양이 민식이와의 인연도 빼놓을 수 없는 만남 중 하나.
사진: 박송이, 임현승, 진병관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관련여행 : 루브르 클래식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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