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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시평]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 ”의 변천사

거울속의 내모습 2018. 7. 25. 16:54

[중앙일보 시평]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 ”의 변천사


이념형 참모들에 포위된 대통령
시민단체 끊어내야 정부가 산다
반도체와 석유화학 호황도 끝물
소득주도성장은 깨끗이 포기해야


인터넷 댓글 분위기가 확 변하고 있다. 6월 지방선거 때까지 최고의 유행어는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해”였다. 지금은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안 하면 안 돼?”가 대세다. 소득주도 성장과 최저임금 부작용에 따른 실망감이 배어 있다. 최근엔 폭염과 탈원전 후유증까지 겹치면서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이제 그만해”라는 댓글까지 출현하고 있다. 실망감을 넘어 짜증과 분노가 묻어난다. 
  
문재인 대통령도 소득주도 성장이 ‘주홍글씨’가 된 탓인지 거리를 두기 시작했다. 그제 청와대 회의에선 포용적 성장을 새 정책기조로 내세웠다. 포장지를 바꾸면서 대통령은 두 정책이 유사하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잘못된 이야기다. 소득주도 성장은 이단(異端) 경제학의 생체실험이다. 정부가 임금 등 시장가격에 개입해 인위적으로 소득을 끌어올리면 경제가 성장한다고 우긴다. 반면 포용적 성장은 시장가격과 경쟁에는 손대지 않고, 이에 따른 양극화는 시장 밖에서 교육과 복지 등을 통해 완화하는 정통 경제학이다. DNA부터 완전히 다르다. 
  
앞으로 문 대통령이 내용물까지 포용적 성장으로 바꿀지는 의문이다. 참여연대와 민주노총 등 이 정부 주요 주주들의 반발 때문이다. 지난달 27일 청와대의 규제혁신 점검회의가 돌연 연기된 것도 참여연대가 은산분리 완화와 빅 데이터 규제 완화에 제동을 건 탓이었다. 실제로 이튿날 참여연대는 “그 두 규제 완화는 관료와 업계의 요구”라는 반대 논평을 냈다. 이들 단체는 매일 3~4개씩 논평·비평·성명을 내며 온갖 정책에 간섭한다. 비판과 견제를 넘어 아예 완장을 차고 설친다. 
  
이에 대해 같은 참여연대 출신의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반박에 나섰다. 그는 인터뷰에서 “시민단체의 근본주의적 성향 때문에 현 정부가 실패할 수 있다”며 “대통령이 지지층의 비판을 받더라도 규제 혁신을 위한 정치적 결단을 고민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로 문 대통령은 최저임금 인상에 대해 “너무 많이 올리면 주는 사람이 힘들어지는 게 아니냐”며 고민했다고 한다. 이런 고뇌가 청와대 담장을 넘어 새어 나오자 진보진영이 즉각 차단에 나섰다. 지난 18일 진보인사들이 집단으로 “정부의 사회경제 개혁 포기를 우려한다”며 공개 압박한 것이 대표적 장면이다. 이들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과 이라크 파병으로 지지계층이 등을 돌려 폐족 신세에 몰렸던 노무현의 정책전환 트라우마를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다. 
  

하지만 경제 환경이 암울해지고 시간도 정부 편이 아니다. 정책 선회는 빠르면 빠를수록, 시장과 경제주체들에게 보다 선명한 신호를 주는 게 좋다. 우선 반도체 수퍼호황부터 시들해지고 있다. 삼성전자가 반도체 장기 고정 거래선을 다시 챙기는 등 치킨게임에 돌입할 조짐을 보이면서 그제 증시가 곤두박질했다. 중국의 반도체 굴기까지 감안하면 반도체 특수는 더 이상 기대하기 어렵다. 
  
국제 유가가 치솟으면서 유화산업도 휘청대고 있다. 시장은 그동안 셰일가스 채굴 비용을 고려해 배럴당 60달러를 저항선으로 여겨 왔다. 하지만 두바이유가 배럴당 72달러를 돌파했다. 미국은 이란의 호르무즈 해협 봉쇄 위협에 오히려 느긋해하고 중국이 초조한 표정이다. 미국은 셰일가스 혁명으로 원유 수출국으로 변신한 반면 중국은 세계 최대 원유 수입국이기 때문이다. 이런 역학 구도 탓에 유가 고공행진 전망이 힘을 얻고 있다. 
  
세계 금융시장 역시 심상치 않은 분위기다. 가장 불길한 신호는 기준금리 인상으로  미국의 장단기 금리가 역전되는 조짐이다. 미국에선 1970년 이후 여섯 차례의 장단기 금리 역전이 발생했는데 그 뒤 어김없이 경기침체가 뒤따랐다. 또한 세계 경제위기는 항상 부채위기에서 비롯됐으며 그 방아쇠는 언제나 미국의 금리 인상이 당겼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지금은 정부가 소득주도 성장의 실패를 솔직하게 고백하고, 다가오는 쓰나미에 함께 대비하자고 호소할 때가 아닌가 싶다. 당장 최저임금의 부작용을 메우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만약 야당이 국회에서 ‘세금주도 성장’이라 반발하면 재정 투입이 어렵게 된다. 그래서 기획재정부가 국회 동의가 필요 없는 기금운용 꼼수를 동원해 열심히 3조8000억원을 긁어모으고 있지만 곧 한계에 부딪힐 수밖에 없다. 
  
문 대통령은 이제 참여연대·민주노총 등 시민단체와 정중한 거리를 두는 게 필요하다. 아무리 대선공약이라도 시장을 무시하고 이념을 앞세운 정책은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정권은 실패하고 나라와 국민도 불행해진다. 더 이상 ‘보수는 철학이 없고 진보는 정책이 없다’는 냉소가 반복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이제 그만해’라는 분노와 조롱의 댓글과도 마주치고 싶지 않다. 
  
이철호 논설주간

[출처: 중앙일보] [중앙시평]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 ”의 변천사







   중앙일보 [김현기의 시시각각] 노회찬의 마지막 고백, 반성


“정의당도 솔직하지 못했다”는 고백
실현 불능 공약·포퓰리즘 반성, 울림 커

지난 19일(현지시간) 밤 워싱턴 특파원 간담회 때 노회찬 의원 바로 맞은편에 앉게 됐다. 그가 극단적 선택을 하기 사흘 전이다. 노 의원이 언론과 마주한 건 이날이 마지막이었다. 매우 홀가분하고 밝은 표정이었다. 반주도 꽤 빠른 속도로 몇 잔 나눴다. 사람 속은 모른다지만 적어도 겉으로 보기엔 최후를 앞둔 사람의 모습은 아니었다. “워싱턴에 와서 보니 문재인 대통령은 종전선언을 하나의 선의에 의한 부담 없는 ‘입구 조치’로 보지만, 미국은 ‘맨입’에는 내줄 수 없는, 확실한 현찰을 하나 받아야만 내줄 수 있는 ‘카드’로 보더라”는 나름의 분석도 밝혔다. 주한미군 철수 문제가 화제로 오르자 목소리를 높여 “미군 철수는 정의당도 반대다. 이건 북핵 협상하곤 상관없는 것이다”란 말도 했다. 이상론에 치우치지 않는, 냉철한 현실 인식이 인상적이었다. 
  
그가 어떤 이유로, 어떤 고민 탓에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는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유서로 미뤄 ‘클린 정치인’의 경력에 4000만원의 돈을 받은 사실이 드러나는 게 견딜 수 없는 심적 부담감이 됐을 것이란 추정을 할 뿐이다. 노 의원의 자살 후 ‘노동자·서민의 대변자’ ‘진보정치의 아이콘’ ‘울림이 컸던 말의 품격’ 등 생전의 활동을 기리는 보도들이 이어지고 있다. 그와는 별개로 개인적으론 마지막 워싱턴 간담회 때 그가 남긴 자그만 ‘반성의 변’이 뇌리에 남아 있다. 
  
노 의원은 최저임금을 내년에 10.9% 올리기로 하면서 소상공인들이 반발하고 있는 데 대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원내대표와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공방을 지긋이 듣고 있더니 이렇게 말을 꺼냈다. 
  


“민주당도 솔직하지 못했고, 우리 정의당도 솔직하지 못했다. 이걸(최저임금을) 올리고 안 올리고 하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 노동시장 개편과 함께 맞물려 가야 했다. 문제의 핵심은 경쟁자가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린 경제활동인구의 28%가 자영업자인데, 미국은 7%다. 이런 경쟁 속에선 카드수수료를 1%대로 낮추거나 상가임대차보호법을 고쳐봐야 해결이 안 된다. 음식점 창업해 1년 못 버티고 망하는 게 전체의 70%다. 미용사 국가 자격증을 가진 이가 60만 명이다. 우리 국군 수와 똑같다. 이들은 하루 20명의 고객을 받아야 먹고산다고 한다. 하루 1200만 명이 가야 한다. 우리나라 여성이 2400만 명이니 A조, B조 짜서 이틀에 한 번씩 미장원 가야만 이들이 먹고산다는 얘기가 된다. 이게 말이 되느냐. 이런 걸(노동시장의 기형적 구조를) 다뤘어야 했는데 그냥 우리 정의당은 2019년까지, 문재인은 2020년까지, 안철수·유승민은 2022년까지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하겠다고 했다. 한마디로 우리 모두 실현 불가능한 공약을 이야기한 셈이다. 포퓰리즘이었다. 선거 때는 그렇다 치자. (선거 후에는) 설득력 있는 정책으로 가야 하는데 지금 과연 그런가.” 
노 의원의 공과에 대해선 여러 의견이 있을 수 있다. 실제 이날 노 의원은 특파원들과의 일문일답에서 “돈을 받은 적이 없다”고 끝까지 거짓을 말했다. 청탁과 대가가 없었다고 돈 받은 게 정당화될 순 없다. 피의자가 자살하면 수사를 접는 관행도 옳지 않다. ‘표적수사’라 비난한 정의당의 태도도 정당치 못하다. 노 의원 스스로 유서에 썼듯 책임질 건 져야 한다. 
  
다만 훨씬 무겁고 큰 혐의를 받는 몸통 정치인들이 아무렇지 않듯 활개 치는 게 현실이다. 앞뒤 살피지 않는 포퓰리즘 정책이 남발하는 정치판에서 “솔직하지 못했다”는 노 의원의 솔직한 마지막 고백과 반성은 우리에게 여러 의미에서 무겁고 큰 숙제를 남겼다.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출처: 중앙일보] [김현기의 시시각각] 노회찬의 마지막 고백, 반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