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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친구의 눈, 친구의 발 .&2.대한민국이 빚진 여섯 형제의 나라 사랑

거울속의 내모습 2016. 12. 1. 23:02

 친구의 눈, 친구의 발




정상의 인기를 누리던 가수에게 갑작스러운 병이 찾아왔습니다.
점점 시야가 좁아지더니 결국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리고 시각장애 1급 판정을 받았습니다.
1990년대 틴틴파이브로 전성기를 누렸던 가수 이동우 씨의 이야기입니다.

결혼한 지 100일도 채 안 되어 일어난 비극이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얼마 후 아내도 뇌종양 판정을 받았고,
수술 후유증으로 왼쪽 청력을 잃었습니다.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겨운 나날들이 지속되자
이동우 씨는 삶의 허무함을 느꼈습니다.
그저 물이 되어 하늘로 증발해버렸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게 소원이 하나 있다면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딸의 얼굴을 보는 것뿐이었습니다.

그런 그에게 어느 날, 눈을 기증하겠다는 연락이 왔습니다.
놀랍게도 기증자는 몸이 굳어가는 희귀병을 앓고 있는 임재신 씨였습니다.
그리고 그는 외동딸을 둔 한 아이의 아빠였습니다.

누구보다 눈에 의지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TV에서 딸의 얼굴을 한 번만이라도 보고 싶다는
이동우 씨의 사연을 접하고, 기증하고 싶다는 전화를 건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남은 5%를 주면, 당신은 100%를 갖게 되잖아요."

사실 이동우 씨의 병은 이식해도 낫지 않는 병이었습니다.
기증자의 진심에 이동우 씨는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습니다.
"저는 이미 받은 것이나 마찬가지예요.
세상과 소통하는 맑은 눈을 주셨으니까요."

이들은 이후 둘도 없는 친구가 되어 함께 여행을 떠나기도 합니다.
친구의 눈으로 보고, 친구의 발로 걸으며
두 사람은 함께 새로운 세상을 만나고 있습니다.



갑자기 찾아온 불행 앞에서 절망하는 것이 보통의 우리입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두 부류의 사람이 생깁니다.
잃은 것, 없어진 것을 한탄하는 데 시간을 쏟는 사람과
오히려 남아 있는 것에 감사하며 시간을 보내는 사람입니다.

비록 눈은 잃었지만, 세상을 다르게 보는 눈이 생겨 감사하다는 이동우 씨...
비록 몸은 움직일 수 없지만, 눈으로 볼 수 있음에 감사하는 임재신 씨...
'감사'하는 마음 하나로 '희망'의 기적을 만들고 있습니다.


# 오늘의 명언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고,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감사하는 사람이다.
- 탈무드 -






  대한민국이 빚진 여섯 형제의 나라 사랑




조선의 명문가에서 여섯 명의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모두 과거에 급제하여 관직의 임무에 온 힘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나라가 일제에 의해 국권을 상실하고 식민지로 강제 편입되자
형제는 독립운동에 동참하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국내에서 하는 독립운동의 한계를 느낀 형제들은
대대로 내려온 집과 땅을 포함한 엄청난 재산을 처분하여
만주로 떠나 독립운동을 하기로 했습니다.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나라를 되찾겠다는 마음 하나로 만주로 망명한 형제는
좀 더 체계적인 독립운동을 위해 학교를 설립하였습니다.
학교 출신들은 청산리 전투와 봉오동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게 되었습니다.
그 학교가 바로 신흥무관학교입니다.

1945년, 꿈에도 그리던 조국의 광복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만주로 떠나 함께 함께 독립운동을 했던 여섯 형제 중
살아남아 조국 땅을 밟은 건 오로지 다섯째 이시영 선생뿐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의 빚진 여섯 형제분의 이름을 잊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첫째 이건영(李健榮, 1853~1940)
중국의 상해에서 독립운동을 하시다 병사하셨습니다.

둘째 이석영(李石榮, 1855~1934)
가장 많은 독립자금을 보냈지만, 중국 빈민가를 전전하다가
결국 아사하셨습니다.

셋째 이철영(李哲榮, 1863~1925)
신흥무관학교 교장을 맡아 일하다 병사했습니다.

넷째 이회영(李會榮· 1867~1932)
독립운동을 하다 일흔이 다 되어가는 나이에
일제의 잔혹한 고문에 의해 중국의 뤼순감옥에서 순국하셨습니다.

다섯째 이시영(李始榮·1869~1953)
임시 정부 재무총장직을 맡았으며
대한민국 초대 부통령을 하셨습니다.

여섯째 이호영(李頀榮·1875~1933)
만주, 북경 등지에서 독립운동을 하다가
1933년 소식이 끊기며 행방불명이 되었습니다.



여섯 형제는 개인의 이익보다는 나라를 독립시키려고 평생을 헌신했습니다.
그분들의 고귀한 희생이 있었기에, 오늘의 우리가 있습니다.
이제, 우리 후손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나라를 물려주기 위해서
그리고 다시는 대한민국에 이런 일이 벌어지지 않도록
우리가 모두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목적을 달성하지 못하였다 하더라도 목적의 달성을 위하여 노력하다가
그 자리에서 죽는다면 이 또한 행복이다.
- 우당 이회영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