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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맑다. 산 아래 작은 마을에 비치는 햇살이 구름에 가려져 있는 저 산봉우리, 피츠로이(Fitz Roy)에도 비추길 기대하며 길을 나선다. 마을을 벗어나자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현판이 보인다. 피츠로이 트레킹 표지판이다.
마을을 벗어나면 새로운 세상으로 안내하는 피츠로이 트레킹 표지판을 만날 수 있다. |
트레킹은 왕복 25㎞로 9시간에서 10시간 정도가 소요된다. 엘 찰튼(El Chalten)에서 리오 블랑코(Rio Blaco) 야영장까지 10.4㎞로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고, 리오 블랑코 야영장에서 피츠로이를 전망할 수 있는 트레스 호수 구간까지 2㎞로 1시간 정도 걸린다. 피츠로이를 등에 지고 있는 트레스 호수는 피츠로이의 빙하가 녹은 물이다. 거울 같이 맑은 물에 피츠로이가 비쳐지는 모습으로 유명하다. 구름과 하늘을 가득 담은 호수는 꿈과 현실의 경계를 잊게 한다. 어느 곳이 물인지, 어느 곳이 하늘인지 알 수 없는 호수. 그곳에서 피츠로이를 바라보는 것이 트레킹 코스의 정점이다.
피츠로이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조금 험한 돌무덤을 가로질러 능선을 따라 돌산을 넘어야 한다. |
피츠로이 트레킹은 해발 1400m가 제일 높은 곳이기에 고산병을 걱정할 필요 없다. 다만 피츠로이 전망대에 이르는 길은 조금 험한 돌산을 넘어야 한다. 트레킹의 시작은 완만한 능선으로 힘들지 않은 길이다. 하지만 변덕스러운 날씨와 파타고니아의 지배자인 바람이 발걸음을 지치게 하는데 다행히 날씨가 화창하다.
상어 이빨처럼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마다 사람들의 경외심과 두려움이 만년설로 덮여 있다. |
출발하는 걸음이 가볍다. 이 길에서 매서운 바람이나 심술궂은 비를 만나지 않는다면 그다지 어렵지 않은 트레킹을 할 수 있다. 한 보폭씩 내딛으며 자연을 느낀다. 발 아래 세상이 함께 살고 있는 지구의 땅인지 신기하다. 낯선 기운이 몸을 감싸고 무심코 던진 시선마다 또 다른 설산이 맺힌다. 멀리서 비슷한 높이로 우뚝 솟은 봉우리들은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지만 제일 높게 솟은 것이 피츠로이(3405m)고 그보다 조금 낮은 것이 세로토레(3012m)다. 상어 이빨처럼 날카롭게 솟은 봉우리마다 사람들의 경외심과 두려움이 만년설과 함께 덮여 있다.
긴 호흡으로 천천히 산에 접어든다. 그림 같은 풍광 속 저 멀리 또 다른 트레커가 보인다. 그들을 보니 이곳이 꿈이 아니라 현실 세상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파란 하늘 아래 저 멀리 쌓인 빙하가 맞닿아 파란 하늘처럼 보인다.
까맣게 그을리거나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나무들. 타다 만 것처럼 까맣거나 허물을 벗은 듯 하얗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 따라 흔들린다 |
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울창한 숲길이다. 까맣게 그을리거나 하얀 속살을 그대로 드러낸 나무들이 보인다. 자연발화로 인한 것인지 인간의 실수가 빚은 화재인지는 알 수 없지만 건조한 초원은 작은 불씨도 큰 불로 이어질 수 있다. 다행히 피해면적은 크지 않은 듯했다. 타다 만 것처럼 까맣거나 허물을 벗은 듯 하얗고 앙상한 나뭇가지들이 바람 따라 흔들린다.그나무들 넘어 피츠로이가 보인다.
산 정상은 제 모습을 보여주기 싫은 듯 구름이 엉켜 감싸고 있다. |
산 정상은 선뜻 그 자태를 보여주기 싫은 듯 구름이 엉켜 감싸고 있다. 산으로 다가가는 숲의 길은 스치는 바람과 흩날리는 비로 시시각각 풍경이 바뀐다. 순간 검은 먹구름이 머리 위를 뒤덮는다. 조금 전 눈부신 햇살은 인사도 건네지 않고 사라졌다. 계절이 뒤섞인 풍경은 봄을 낳고 가을로 접어들며 여름을 안겨준다. 서 있는 땅은 화창하고 앞에 보이는 땅은 구름에 젖어 있다. 산 계곡에 구름이 머물다 흩어지고 햇살도 모습을 감췄다 드러낸다.
꿋꿋이 한 발자국 내딛는다. 멀리서 보여주지 않던 피츠로이는 다가가니 구름을 걷어낸다. 수많은 사람이 찾고 찾는 이유가 이 신비로움 때문일 듯싶다.
태초 그 모습 그대로 자리 잡아 시간을 거스르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검은 산봉우리. 언제나 구름을 물고 있는 모습에 원주민들은 ‘연기를 뿜는 산’이라 불렀다. |
피츠로이로 가는 걸음은 한걸음을 내딛고 다시 뒤를 돌아보게 한다. 앞에 펼쳐지는 모습이 등 뒤의 풍경과는 다른 모습을 선사하기 때문이다. 검은 산봉우리는 언제나 구름을 물고 있다. 그 모습에 원주민들은 ‘연기를 뿜는 산’이라 불렀다. 고집쟁이 산은 태초 그 모습 그대로 자리 잡아 시간을 거스르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다.
바람이 실어오는 풍광은 결 따라 달라지는 초원의 모습을 선사한다. |
전망대에 이르기 위해서는 자갈이 넘치는 길을 올라가야 했다. 설상가상 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다리가 휘청거린다. 혼자 힘으로 자신을 지탱하기 힘겨울 정도로 세다. 등으로 바람을 막아 서고 잠시 주저앉았다. 홀로 오르는 사람들은 걸음을 떼기 힘든 듯 제자리에 멈춰 바람이 지나가길 기다리고 있다.
비슷한 높이로 우뚝 솟은 봉우리들. 제일 높게 솟은 것이 피츠로이(3405m), 그보다 조금 낮은 것이 세로토레(3012m)다. |
잠시 후 바람이 잦아들면서 조금 더 위로 올라갈 수 있었다. 돌 무덤을 가로질러 능선을 따라가다 보니 능선 위에서 호수가 보인다. 하늘에 떠 있는 구름과 구름을 품어 안은 호수. 지구 반대편에서 이 길의 이 풍경을 꿈꾸며 날아왔다. 이제껏 힘겨움이 한 번에 잊히는 아름다움이다.
숙소 앞 정류장에서 엘 찰튼에서 엘 칼라파테로 가는 버스가 승객들을 기다린다. |
잠시 더 머물며 지구 반대편에서 시간과 공간여행을 즐겼다. 익숙하고 가까운 자연에서도 낯섦이 있고 이렇듯 멀고 먼 자연에서도 친근함이 있다. 크게 심호흡을 하고 다시 뒤돌아보며 숙소로 내려왔다.
엘 칼라파테로 가는 휴게소 앞 표지판. 서울에서 1만7931㎞ 떨어져 있다. |
엘 칼라파테 숙소 레스토랑에서 제공되는 현지식. |
버스 시간을 확인하고 여유시간에 맥주 한 잔을 했다. 맡겨둔 짐을 찾아 정리하며 또 다른 여행의 채비를 서두른다. 엘 칼라파테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친 몸으로 버스에서 잠을 청한다. 피츠로이와 세로토이에 대한 아쉬움을 저 멀리 남겨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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