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강혜원의 뚜벅뚜벅 라틴아메리카] 아르헨티나① 시·음악·카페,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행 키워드

거울속의 내모습 2016. 9. 26. 22:09

 

 

부에노스 아이레스(Buenos Aires). 직역하자면 ‘좋은 공기’라는 뜻이다. 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 아이레스에는 확실히 특별한 공기가 흐른다. 한때 그 어느 도시보다 영화로웠던 과거가 도시 곳곳에 살아 숨 쉬고 있고, 열정적인 예술가와 젊은이들이 기분 좋은 에너지를 발산한다. 많은 것을 기대하지 않고 이 도시에 입성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어느새 부에노스 아이레스와 사랑에 빠진 자신을 발견하게 될 지도 모른다.

 

 

 

 

 

 

부에노스 아이레스 여행은 대개, 슬픔과 비통함으로 얼룩졌던 아르헨티나 현대사의 현장인 5월 광장 ‘플라자 데 마요’에서부터 시작된다. ‘산 채로 돌아오라’라는 구호가 적힌 피켓을 들고, 하얀 스카프를 두른 어머니들이 조용히 광장을 돌고 있었다. 대통령궁을 목전에 둔 5월 광장에서 매주 목요일 오후 3시면 ‘흰 스카프를 두른 어머니들의 집회’가 열린다. 1976년 이사벨 페론 정권을 몰아낸 독재자 호르헤 비델라는 1979년까지 반정부세력으로 의심되는 학생, 정치인 등을 무차별적으로 납치, 고문하고 살해했다. 이렇게 희생된 사람의 숫자가 공식 발표로 1만2000여 명에 이른다. 비공식 통계로는 사망자만 3만여 명이다. 이후 30년 동안 매주 목요일 어머니들이 광장에 모여 사라진 가족들을 찾고 진실을 밝혀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아들들이 모두 ‘살아 있는 채’ 사라졌으니 ‘살아서 돌아오라’는 아득한 외침. 독재가 남긴 상흔은 나라를 가리지 않고 아픔이 되었다.
 
 
 

레꼴레따 묘지.

  레꼴레따 묘지.

아르헨티나, 특히 부에노스 아이레스는 빈부차가 큰 대도시 가운데 하나다. 도로 구획에 따라 풍경을 달리하는 모습을 만날 때 특히 그렇다. 부에 따른 계급사회를 적나라하게 목도할 수 있는 곳이 레꼴레따 묘지다. 레꼴레따 묘지는 아르헨티나를 대표하는 독립영웅과 전직 대통령, 명사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으로 1822년 정원을 개조해 만들었다. 6400여 개의 호화 장묘가 들어서 있는 이곳에 터를 얻으려면 수 억원의 비용을 치러야 한다.
 
 
 

 

 

노동자들의 어머니로 추앙받는 ‘에바 페론’의 묘 역시 이곳에 있다.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나 아르헨티나의 영부인이 되기까지, 그녀의 드라마틱한 일생은 영화와 뮤지컬에 담긴 바 있다. 에바 페론은 여성 노동자의 임금인상, 친권과 혼인에서의 남녀가 평등함을 헌법에 명시하는 등 여권신장 측면에서 큰 변화를 이뤄냈지만 한편으로는 독재에 준하는 ‘페론주의’로 많은 이들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극명한 평가의 주인공이기도 한 에바 페론의 납골당 앞에는 언제나 꽃이 놓여 있다.
 
 
 

 

 

포르테뇨(항구 사람들이라는 뜻, 부에노스 아이레스 사람을 이르는 말)의 여가 생활을 들여다보기 좋은 곳은 콜론 극장이다. 오페라 공연 시각이 가까워 오면 가족, 연인 등 정장차림을 한 포르테뇨가 극장으로 모여든다. 멋을 중시하는 포르테뇨는 때와 장소에 맞는 옷차림에 꽤나 신경을 쓰는 편이다. 넓은 공연장을 가득 채우는 이들의 열기에도 문화적 자존심이 엿보인다. 1907년에 지어진 오페라 하우스 콜론 극장은 음향 상태가 좋아 오페라 지휘자들이 선호하는 극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세계 3대 오페라 극장으로 손꼽히는 이곳에선 거의 매일 세계 정상급 오페라 및 오케스트라 공연이 열린다. 티켓 가격은 좌석에 따라 천차만별이다. 공연 티켓은 극장 1층 내부의 중앙 매표소에서 구입할 수 있는데 당일 공연 티켓도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으니 시간적 여유가 있다면 홈페이지의 공연 스케줄을 참고한 뒤 극장에 들러보자. 스탠딩석의 경우 무료이거나 티켓 가격이 저렴한 편이지만 공연 모습이 거의 보이지 않고 2~4시간 진행되는 공연을 즐기기에는 체력적으로 부담이 된다.
 
 
 

 

 

라틴 문학의 아버지인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배출한 도시답게 포르테뇨는 문학과 시에 깊은 애정을 갖고 있다. 조금 과장해서 말하자면 서점 혹은 카페나 바 등에서 포르테뇨에게 ‘보르헤스’를 아느냐고 묻는다면 백이면 백, 웃으며 화답할 것이다. 인구 당 서점의 수가 가장 많은 도시가 바로 부에노스 아이레스다. 730여 개의 서점이 성업 중인데 그 많은 서점 중에서도 ‘엘 아테네오’ 서점은 꼭 들러볼 만한 곳이다. 1919년에 지어진 오페라 극장을 개조한 아름다운 서점으로 해마다 100만 명 이상이 이곳을 방문하는 부에노스 아이레스의 여행 명소다. 무대가 있던 공간에 카페를 차리고, 책을 읽으며 쉬어갈 수 있는 공간으로 꾸렸다.
 
 
 

 

 

낡고 오래된 카페에 무작정 들어가보는 것도 이 도시의 공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다. 카페 토르토니는 사교계의 명사들이 모이는 공간으로도 유명한데, 1858년부터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다. 뜨거운 우유에 초콜릿을 넣어 만든 ‘수브마리노’를 마시며 여행자의 여유로운 한때를 느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