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암석에 올라 한탄강을 굽어보다
종자산 정상 부근의 바위에 오르면 포천의 산봉우리와 한탄강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신희수 기자 |
(취재협조=포천시청 문화관광과)
포천의 숨은 곳을 찾아서
때는 7월초. 본격적인 여름 휴가철에 접어들자 본지 사무실에도 괜한 싱숭생숭함이 짙게 드리웠다. 어디로든 떠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서로 눈치만 볼 뿐, 누구 하나 먼저 자신 있게 입을 연 사람은 없었다. 이런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전혀 예상치 않던 인물이 선뜻 말을 건넸다.
'여름이니까 좋은 데나 갔다들 와라.' 편집장의 한 마디. 하지만, 그 말을 반기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얼핏 듣기에는 달콤한 말이지만, '갔다 와서 기사를 써라'라는 그 안에 숨은 의미를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어찌 됐건, 그렇게 정해진 ‘위장 휴가’를 최대한 즐기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찾기 시작했다. ‘여름이니까 바다 근처로 갈까, 아니면 섬으로 갈까, 그것도 아니면 깊은 산 속으로 갈까’ 수많은 생각이 겉돌았지만, 결론은 하나였다. ‘가까운 곳이 최고다!’. 휴가철에 통용되는 진리를 되뇌며 수도권과 가까운 대상지를 선정했다. 바로 포천이었다.
사실 포천만한 곳도 없다. 전체 지형 중 왕방산·운악산·청계산 등 자연생태 1등급 지역이 많은 면적을 차지하고 있으며, 한탄강과 영평천 등 수질이 깨끗해 그야말로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지역’이다. 특히 포천과 연천을 지나는 한탄·임진강 권역은 지난해 12월 국가지질공원으로 인증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수도권과 가까운 것이 가장 큰 장점이다. 서울에서 2시간이면 닿을 거리여서 전국의 여느 유명지를 찾아 힘든 발걸음을 하는 것보다는 훨씬 좋은 선택이 될 수 있다. 우리는 그중에서도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나섰다. 조건은 하나 더 있었다. 바로 700m 이하 높이의 산. 이번 특집의 공통적인 주제이기도 했지만, 이번에 동행할 ‘특별한 분’을 위해서였다.
본지에서 7년여를 일하면서도 단 한 번도 산행 취재에 동행한 적이 없다는 관리부의 ‘김 과장님’을 설득했지만, 첫 동행부터 힘든 산행을 하기에는 분명 서로에게 부담이었다. 그리하여 찾은 곳이 종자산(643m). 잘 알려지지 않은 산이지만 높이로만 봤을 때는 힘들지 않을 것이 분명해 보였다. 마침 종자산 끝자락에 아름다운 폭포까지 자리하고 있다고 하니 우리로서는 최선의 선택이었다.
종자산 능선과 이어진 지장봉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이 모여 떨어지는 재인폭포. Ⓒ신희수 기자 |
에메랄드빛 폭포를 감상하다
떨어지는 폭포 가까이에 앉아 한참을 감상한다. Ⓒ신희수 기자 |
산행을 한두 시간 미루고 우선은 즐기기로 한다. 재인폭포 주차장에 다다르니 평일인데도 차가 여럿 서 있었다. 재인폭포는 연천군의 명소 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이다. 종자산 능선과도 이어진 지장봉에서부터 흘러내린 물이 이곳에 모여 한꺼번에 떨어지게 된다. 약 18m의 높이에서 떨어지는 웅장한 폭포를 보기 위해 많은 이들이 이곳을 찾는다.
폭포 하류에서 잠시 물장난을 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한여름에도 물이 얼음장같이 차갑다. Ⓒ신희수 기자 |
바닥에 널린 바위를 하나 둘 헤치고 할 수 있는 최대한 가까이 폭포 앞에 섰다. 아까보다도 훨씬 크게 느껴지는 규모와 옆 사람의 말도 잘 안 들릴 만큼 더욱 거칠어진 소리에 다시 한 번 압도됐다. 한참을 떨어지는 물줄기를 넋 놓고 바라보다 발이라도 담가야겠다 싶어 하류로 따라 내려갔다. 푸르디푸른 폭포수는 얼음장같이 차가웠다. 한여름에 느끼는 짜릿한 시원함. 이런 느낌에 사람들이 계곡을 찾는 것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해가 중천에 떠 있는 지도 모르고 한동안 물놀이를 즐겼다.
본 폭포 외에도 여기저기 작게 물이 흘러 떨어지는 곳이 많다. Ⓒ신희수 기자 |
베일에 싸인 산에 들다
시계를 보니 어느덧 점심시간이 훌쩍 지났다. 여전히 햇볕은 나를 태울 듯 강렬히 내리쬐지만 더 이상은 늦출 수 없어 종자산 들머리인 포천 중2리로 향했다. 이곳에 위치한 ‘해뜨는마을’ 건물 옆으로 등산로가 이어져 있다. 이를 알리는 안내판이 서 있긴 하지만 세월이 너무도 흐른 탓인지 내용이 흐릿해졌다. 무심코 지나칠 수도 있기 때문에 잘 확인해야 한다.
사전에 종자산에 대한 정보를 찾아봤을 때도 자세한 내용을 찾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었다.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은 이유에서였다.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는지만 나와 있을 뿐, 등산로가 정확히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 길이 없었다.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산행을 출발했는데, 역시 처음부터 어려움과 맞닥뜨렸다.
본격적인 종자산 산행. 초입부터 가파른 길이 이어진다. 특히 저 철제계단은 차라리 사다리에 가깝다. Ⓒ신희수 기자 |
본격적으로 산 속 깊이 들어서니 햇빛도 비집고 들어오지 못했다. 그래도 퍽퍽한 공기는 계속 이어졌고 벌써부터 온몸에 땀이 흥건했다. 결국 산행 시작 20분 만에 한 번 쉬었다 가기로 했다. 여름철 산행에서는 평소보다 더 자주 쉬고, 물을 충분히 섭취해야 한다.
'이거라도 쐬면 그나마 좀 괜찮아요.' 준비성이 철저한 김 과장님은 배낭 속에서 휴대용 선풍기를 꺼내 몸을 식혔다. 내색은 하지 않았어도 이번 산행을 꽤나 염두에 둔 모양이다. 덕분에 일행 모두 잠시나마의 행복을 느끼고 다시 산행을 이어나갔다.
어느 정도 숲길을 계속 오르니 어느새 철제계단이 등장했다. 그런데 계단의 경사도가 한 눈에 봐도 급해보였다. 일행이 오른 등산로가 종자산으로 오르는 길 중 가장 경사진 편이다. 정상과의 거리가 얼마 되지 않는 만큼 가파른 것이다. 편안함과 속도 중 속도를 택한 우리는 그 대가를 톡톡히 치러야 했다.
철제계단은 계단이라기보다 차라리 사다리에 가까웠다.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다. 바위가 많은 지형은 로프에 의지해 올라야 했다. 초반부터 너무 무리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어 수시로 뒤를 돌아봐 김 과장님을 확인했다. 그때마다 들려온 대답은 낭랑한 목소리의 '괜찮아요!'였다. 서당개 3년이면 풍월을 읊는 다더니. 역시 경력은 무시하지 못한다.
암벽구간은 로프를 잡고 올라야 한다. Ⓒ신희수 기자 |
석굴이라고 불리는 이곳은 종자산의 전설과도 연관이 있다. 전설에 따르면 예전 이 지역 인근에 한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자식을 낳지 못해 종자산 중턱에 있는 이 굴에서 백일기도를 올린 후 아이를 갖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때문에 지금의 이름인 ‘종자산’이라 불리게 되었다. 전해져 오는 이야기지만 예부터 이 지역 사람들에게 종자산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신비스러운 석굴에서 떨어지는 폭포수에 머리를 감으며 더위를 식히고 다시 산행길에 올랐다.
정상으로 향하는 마지막 비탈. 한 줄기 햇빛이 우리를 인도한다. Ⓒ신희수 기자 |
한탄강이 보이는 정상에서
30분 정도를 더 오르자 정상부근에 다다랐다. 정상부로 갈수록 암석지대가 많아져 수풀 사이로 시원한 전경이 보이기 시작했다. 종자산이 위치한 포천의 북쪽 지역은 한탄강을 따라 여러 높고 낮은 산이 솟아 있다. 그만큼 전경도 시가지의 모습보다는 산, 들, 강이 한데 어우러진 자연 풍경이 펼쳐진다. 특히 푸른 들판 사이로 굽이굽이 흘러가는 한탄강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세월을 잊은 듯 시간이 속절없이 흘러간다.
상부에 다다를수록 사방으로 포천의 아름다운 전경이 펼쳐진다. Ⓒ신희수 기자 |
정상에 올라 바람을 맞고 있을 때 문득 저 멀리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산행을 시작하고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해 상당히 낯설게 느껴졌는데, 역시 사람이 아닌 작은 체구의 염소였다. 어쩐지 올라오는 길에 잔뜩 뿌려져 있던 작은 타원형의 물체들이 모두 이들의 배설물이었다. 염소는 정상에 서 있는 우리 일행을 의식하듯 빤히 지켜보며 '음메~' 연신 울음을 터트렸다. 마치 이 산이 우리의 것이 아닌 자신의 것이라는 듯한 경계하는 울음 소리였다.
아담한 정상에 외로이 서 있는 표지석. 2007년 10월에 세워졌다. Ⓒ신희수 기자 |
종자산은 이렇게 좀처럼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듯한 매력을 지니고 있다. 산 초입에서부터 정상까지 안전을 위한 최소한의 장치만 되어 있을 뿐 나머지는 자연 그대로다. 간혹 이정표도 제대로 서 있지 않아 혼란을 주기도 하지만, 잠시 길을 잃기도 하는 것이 이 산을 즐기는 방식이다. 종자산에는 고요한 자연이 살아 숨 쉰다.
정상에서 바라본 한탄강과 그 위를 지나는 교량. 지나가는 차가 많지 않아 한적한 모습이다. Ⓒ신희수 기자 |
Information - 산행정보
□종자산(643m)
한탄강을 끼고 병풍처럼 솟은 형상의 산. 연천군 연천읍과 포천시 관인면의 경계를 이룬다. 전설에 따르면 아기를 못 낳는 3대 독자 부부가 산 중턱의 굴 속에서 백일기도를 드린 후 아기를 낳았다 하여 ‘종자’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씨앗산’이라고도 불린다.
포천 내에서도 그리 유명하지 않은 산이지만, 산중턱에 있는 자연석굴과 급경사의 바위지대를 지나 주능선 봉우리를 타고 정상에 오르면 굽이치는 한탄강 줄기와 겹겹이 쌓인 주변의 산들을 시원하게 조망할 수 있는 산이다. 종자산의 북쪽 능선은 인근의 향로봉·삼형제봉·화인봉·지장봉으로 이어지며, 서남쪽 능선 끝자락에는 연천군의 관광명소인 재인폭포와 한탄강유원지가 자리하고 있다.
□산행코스
종자산의 산행코스는 많지 않은 편이다. 등산객들의 발길이 드문 산이라 여기저기 산길이 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존의 산길마저 수풀이 자라 길을 가리고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길을 잃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산행코스는 초입에 따라 크게 3가지로 나뉜다. 가장 일반적으로 중2리 늘거리에 위치한 ‘해뜨는마을’에서 시작되는 등산로가 하나 있고, 그보다 북쪽에 위치한 중3리 마을회관에서 시작되는 등산로, 중리저수지에서 시작되는 등산로가 각각 있다. 해뜨는마을에서 시작하는 등산코스가 가장 가파르고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경사가 원만해지지만 그만큼 거리가 늘어난다.
제1코스: 해뜨는마을~굴바위~종자산 정상~원점회귀
제2코스: 중3리 마을회관~삼갈래~주능선~정상~원점회귀
제3코스: 중리저수지~북쪽 능선~정상~원점회귀
□교통
종자산으로 가려면 우선 포천시외버스터미널에 도착해야 한다. 포천시외버스터미널 인근에 위치한 시내버스 정류장(신읍7통.기업은행앞)에서 5-2번, 59번, 59-1번, 60-1번 중 하나를 타고 ‘중2리.늘거리’ 정류장에서 하차하면 된다. 약 1시간 20분이 소요된다. 정류장에서 ‘해뜨는마을’ 방향으로 약 200m 걸어가면 종자산 등산로 초입이 나타난다.
권상진 기자 / dhunhil@emountain.co.kr
'♡ 사 진 ♡ > 국내여행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주오름기행] 기묘한 '화산의 속살' 뽐내려고 제주서 가장 늦게 해가 지네 (0) | 2016.08.14 |
---|---|
[산성산행] 몽골군을 물리친 신화의 현장, 죽주산성 (0) | 2016.08.12 |
이달의 추천길 <8월> 여름휴가, 아름다운 풍경 사람 사는 이야기가 담긴 걷기 길로 떠나자 (0) | 2016.07.24 |
여백 가득 채운 따뜻한 울림.. 경주 폐사지를 찾아서 (0) | 2016.07.19 |
이달의 추천길 <7월> 기차를 타고 만나는 걷기여행길 10선 (0) | 2016.07.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