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에서 해가 제일 먼저 뜨는 곳은 성산일출봉이다. 실제로 성산일출봉은 제주도 맨 오른쪽 끝에 걸쳐 있다. 그럼 제주도에서 제일 늦게 해가 지는 곳은 어디일까. 제주시 한경면 고산리의 수월봉이다. 지도를 보면 성산일출봉이 뭍에서 툭 튀어나온 것처럼 수월봉도 해안에서 비쭉 불거져 있다. 수월봉 너머 바다로 해가 잠기면 섬의 하루도 비로소 저문다. 물에 뜬 달이라는 이름처럼 수월봉(水月峰)은 어스름한 저녁이 어울리는 오름이다.
여자 산 vs 남자 산
수월봉을 거느린 고산리는 제주도에서 오지로 통하는 마을이다. 제주시 사람에게 물어보면 열에 아홉은 고산리가 제일 멀다고 꼽는다. 육지 사람은 좀처럼 이해가 되지 않는 말이다. 제주도 지도를 펼치면, 섬 왼쪽 꼭짓점의 고산리보다 섬 동남쪽 끄트머리의 섭지코지나 섬의 맨 남서쪽 끝 송악산이 제일 멀어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제주시에서 택시나 대리운전을 부르면 고산리 요금이 제일 비싸다. 실제 거리는 제주공항을 기준으로 수월봉과 섭지코지가 45㎞ 정도, 송악산은 43㎞ 정도 떨어져 있다. 제주시와 고산리를 잇는 도로 사정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우리가 느끼는 것보다 제주도가 서쪽으로 더 길게 누워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고산리 사람은 수월봉이 놓인 자리를 ‘거북이 대가리’라고 부른다. 제주도를 거북이 모양이라고 보면, 거북이가 슬쩍 고개를 내민 것처럼 생긴 해안 지형에 수월봉이 서 있다.
수월봉을 가려면 고산2리의 고산육거리를 지나야 한다. 고산육거리를 중심으로 주변이 허허벌판이다. 고산리 북쪽에 당산봉(148m)이 서 있긴 하지만, 오도카니 솟은 당산봉만 빼면 죄 들판이다. 이른바 고산평야로 불리는 지역으로 감자ㆍ마늘ㆍ양파ㆍ무ㆍ대파 따위를 대규모로 경작한다. 고산평야는 예부터 유명한 감자 산지였지만, 요즘엔 콜라비ㆍ브로콜리 등 서양 작물을 훨씬 더 많이 키운단다. 고산평야가 들어선 고산1리와 고산2리의 주민은 약 2200명으로, 대부분 밭농사를 짓고 산다. 제주에서는 고산평야 일대를 ‘차귀벵듸’라고 한다. ‘차귀’는 옛날 이 일대를 가리키는 지명이고 ‘벵듸’는 ‘너른 들판’을 뜻하는 제주어다. 당산봉 서쪽 아래에 자구내 포구가 있다. 자구내 포구에서 차귀도 들어가는 배가 뜬다.
제주도 좀 다녀봤다고 말하는 사람이면 고산평야에 들자마자 낯선 무언가를 알아차려야 한다. 제주도 들판에만 있는 특별한 무언가가 이 벌판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눈치채셨는가? 바로 돌담이 없다. 제주 사람은 ‘밭담’이라고 부르는 들판의 돌담이 고산평야에서는 보이지 않는다. 개간지를 인공적으로 구획한 것처럼 고산평야의 들판은 흔한 돌담 하나 없이 정갈하게 나뉘어져 있다. 여기엔 물론 까닭이 있다.
그 까닭이 고산평야가 끝나는 해안에 있는 수월봉이다. 하나 수월봉은 대단한 볼거리가 못 된다. 오름이라기보다 섬 서쪽 해안에 얹힌 언덕에 더 가깝다. 독자적인 화산 분화구의 꼴을 갖추지 못한 채 해안 언덕에 기대 비스듬히 누워 있기 때문이다. 해발고도도 77m밖에 안 된다. 주변 지역의 고도가 해발 5∼6m이니, 생김새만 보면 구릉이라고 해야 맞다. 주변 풍광을 압도하는 산방산이나 다랑쉬오름 따위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한 행색의 오름인 것이다. 그나마 언덕 꼭대기에 등대처럼 서 있는 고산기상대 덕분에 주변의 들판과 대비될 따름이다.
오름 트레킹을 염두에 뒀다면 차라리 당산봉을 권한다. 정상에 오르면 고산평야 일대는 물론이고, 바다로 비죽 불거진 수월봉이 훤히 내다보인다. 앞바다에 떠 있는 차귀도와 와도가 손에 잡힐 듯하고, 생이기정 위에서 내려다보는 에메랄드빛 바다도 잊기 힘들다. 고산리 사람은 오똑 솟은 당산봉을 ‘남자 산’이라 하고, 완만한 곡선의 수월봉은 ‘여자 산’이라고 한다. 하나 두 오름은 서로 가까이 있을 뿐, 전혀 상관없는 낱개의 오름이다.
화산학 교과서
수월봉은 볼품없는 오름이지만 대단한 오름이다. 1만8000년 전 수월봉이 분화함으로써 고산평야도 형성될 수 있었다. 다만 오늘의 모습만으로는 수월봉의 진면목을 헤아릴 수 없다. 수월봉을 오롯이 이해하려면 상상력이 필요하다. 수월봉은 본래 화산체의 5분의 1 정도 면적만 남은, 거대 화산체의 동쪽 가장자리이기 때문이다.
1만8000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자. 지금의 수월봉 앞바다에서 거대한 화산 폭발이 일어난다. 거대한 화산이 솟아올랐을 터이다. 그런데 오랜 시간을 거치며 바다가 넘어왔고 본래의 화산체 대부분이 깎여 나갔다. 긴 세월 끝에 남은 화산의 흔적이 지금의 수월봉이다. 하여 지금 수월봉에는 분화구가 없다. 바닷에서 솟아나 바다에 묻혔기 때문이다. 수월봉의 해안 단면은 오늘 이 순간에도 아주 조금씩 파도에 의해 깎이고 있다.
수월봉처럼 물에서 분화한 오름을 ‘수성화산’이라고 한다. 제주도의 수성화산이라면 성산일출봉과 송악산이 제일 먼저 떠오른다. 하나같이 제주의 해안 풍경을 각자의 자리에서 장악하는 오름이다. 수월봉도 본래의 화산체가 지워지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볼품없는 꼴은 아니었을 터이다.
수월봉 용암은 분화하자마자 바닷물과 섞였다. 뜨거운 용암과 차가운 바닷물이 섞이면서 용암은 바닷속에서 굳거나 작은 알갱이가 되어 사방으로 날아갔다. 뭍으로 날아든 화산암 알갱이는 긴 세월을 거친 뒤 흙이 되었다. 고산평야에 밭담이 없는 이유다. 고산리에서는 애초부터 돌이 없었다. 돌이 없어서 담을 쌓지 못했다.
밭담이 없는 대신 고산리에는 ‘캐초관’이라는 별난 직업이 있었다. 옛날에는 차귀벵듸 어귀에 출입문을 두고, 캐초관이 문을 지키게 했다. 밭주인도 캐초관이 허락을 해야 문을 통과해 제 밭에 갈 수 있었다. 밭담이 없어 제 밭과 남의 밭의 구분이 흐렸던 시절, 캐초관은 농부들의 치열한 이해를 조정하는 역할을 맡았던 것이다. 캐초관은 수확이 끝나면 차귀벵듸의 농부로부터 일정 정도의 곡식을 받았다고 한다.
수월봉의 숨은 역사를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 수월봉에서 내려와 해안으로 나가면 된다. 수월봉 아래 해안 절벽에 진짜 수월봉의 모습이 숨어 있다. 수월봉은 뭍에서 보면 밋밋한 언덕이지만, 해안에서 보면 거대한 해안 절벽이다. 이 깎아지른 해안 절벽이 수월봉의 옛 모습을 낱낱이 증명한다. 양파를 반으로 쪼개면 속살이 훤히 드러나는 것처럼, 해안 절벽의 단면이 옛 화산의 속살을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어서이다. 약 70m 높이의 해안 절벽에는 온갖 모양의 화산재층이 켜켜이 포개져 있는데, 이 기기묘묘한 모양의 절벽이 해안을 따라 약 1.5㎞ 이어진다.
수월봉 정상 아래에서 북으로 자귀내 포구까지 이어지는 이 해안길을 ‘엉앙길’이라고 한다. ‘엉’은 제주어로 ‘절벽’이고 ‘앙’은 ‘아래’다. 그러니까 엉앙길은 ‘절벽 아래 길’이다. 제주관광공사가 운영하는 수월봉 지질트레일은 물론이고, 제주올레 12코스도 엉앙길을 통과한다. 수월봉은 2010년 ‘화산학 교과서’라는 평가를 들으며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으로 지정됐다. 물론 옛 비밀을 속속들이 품은 해안 절벽 덕분이다.
절벽의 눈물
수월봉 아래 엉앙길을 걸어 자구내 포구까지 간다. 엉앙길은 걷기에 좋은 길이다. 평탄한 데다 시멘트 포장이 돼 있어 휠체어도 다닐 수 있다. 엉앙길은 온갖 모양의 지층이 쌓인 해안 절벽도 볼 만하지만, 해안에 들어선 갖은 모양의 갯바위도 볼 만하다. 바위가 나무기둥처럼 서 있는 주상절리도 있고, 바위가 네모 모양을 그리며 갈라진 거북등절리도 있다. 검은 화산암 해안 너머로 보이는 수월봉 해안 절벽과 수월봉 정상 기상대의 모습은 이국적인 정취마저 빚어낸다.
해안 절벽 중에는 물기를 머금은 것도 있다. 바닷물이 튀어 묻는 것이 아니라 절벽이 스스로 토해내는 샘물이다. 눈물이라도 흘리는 것처럼 물기가 흥건한 절벽도 있다. 이 물기 어린 절벽에 슬픈 전설 하나가 전해 내려온다.
옛날 ‘수월이’와 ‘녹고’라는 남매가 병든 어머니와 함께 살았다. 어느 날 스님이 어머니 병을 고치려면 약초 100가지가 필요하다고 알려줬다. 남매는 99가지 약초를 구했는데 마지막 약초 오가피는 구하지 못했다. 남매는 오가피가 수월봉 절벽에 있다는 얘기를 듣고 수월봉으로 갔다. 동생 수월이가 절벽에 매달려 오가피를 캐고 오빠 녹고가 위에서 손을 잡아주었다. 오가피를 건네는 순간 수월이는 녹고의 손을 놓쳤고 절벽 아래로 떨어져 죽었다. 녹고는 너무 슬퍼 자리를 떠나지 못하고 17일 동안 눈물을 흘렸다. 그 눈물이 절벽 바위 틈으로 흘러 ‘노꼬물’이 되었다.
수월봉은 바다에 비치는 달의 모양에서 비롯된 이름이기도 하지만, 오누이 수월이와 녹고의 전설에서 비롯한 이름이기도 하다. 제주 사람은 예부터 수월봉을 ‘노꼬물오름’이라고 불렀다. 1994년 발간된 고(故) 김종철 선생의 『오름 나그네』에서도 수월봉은 노꼬물오름으로 표기돼 있다. 자료를 더 뒤지면 ‘고산’ ‘고근산’이라는 이름도 나온다. 제주 오름 기행이 재미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어찌 보면 통일된 이름 하나 갖추지 못한 관리체계가 한심하기도 하지만, 달리 보면 제주 오름은 아직도 해석할 여지가 많이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확실한 한 가지는, 전설에서처럼 수월봉 절벽은 가파르다는 사실이다.
해질 녘 다시 수월봉을 올랐다. 제주 사람도 수월봉의 두 가지는 인정한다. 하나가 일몰이다. 섬에서 가장 마지막에 해가 지는 곳이기도 하지만, 수월봉은 아름다운 일몰으로도 유명하다. 겨울이면 차귀도 뒤로 넘어가는 해를 볼 수 있어 해넘이 행사가 열리기도 한다. 수월봉 하면 떠오르는 다른 하나는 바람이다. 바람 많기로 이름난 제주도에서도 수월봉 바람은 알아준다. 제주도 관광책자에서 수월봉을 ‘바람의 언덕’이라 소개하는 까닭이다. 수월봉에 끈 없는 모자를 쓰고 오는 관광객은 수월봉을 처음 올랐거나 모자를 버리러 왔거나 둘 중의 하나라 봐도 무방하다.
구름이 끼어 일몰이 화려하지는 않았지만, 여름의 수월봉 밤바다는 전혀 다른 의미로 화려했다. 환하게 불 밝힌 한치 배 덕분이었다. 여름은 제주도에서 한치가 올라오는 계절이고, 차귀도 바다는 제주도에서도 한치로 유명한 바다다. 검은 바다에서 깜빡이는 고깃배를 한참 지켜봤다.
● 여행정보=수월봉 지질 트레일은 모두 3개 코스다. 수월봉 정상에서 자구내 포구까지 이어지는 2.5㎞ 길이의 수월봉 엉앙길 코스, 당산봉 능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3.1㎞ 길이의 당산봉 코스, 차귀도를 한 바퀴 도는 4.1㎞ 길이의 차귀도 코스가 있다. 수월봉 입구 탐방 안내소에 요청하면 해설사가 무료로 안내를 해준다. 064-772-3334. 제주올레 12코스도 수월봉 정상∼엉앙길∼당산봉 정상∼생이기정으로 이어진다. 자구내 포구에서 차귀도 들어가는 배를 탈 수 있다. 오전 9시30분부터 매시 30분에 출발하는데, 차귀도에서 1시간 정도 머무를 수 있다. 섬 서쪽 볼레기언덕 위에 서 있는 등대까지 갔다오면 시간이 딱 맞는다. 어른 1만6000원. 064-738-5355. 오는 13일부터 21일까지 ‘2016 제주도 세계지질공원 수월봉 트레일 행사’가 열린다. 전문가와 함께하는 지질 탐방, 차귀도 탐방 및 선상 유람 등 프로그램이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