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기 타고 해외여행 한번 간 적이 없었고 요즘 초등학생 수준도 안될 거라는 영어실력의 시골청년 조휘욱.
그런 그의 완주에 대한 열정만으로 떠난 88일간의 미국 횡단 여행은 <로스엔젤레스를 시작 -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 - 라스베가스 - 후버댐 - 그랜드캐년 - 모뉴먼트밸리 - 콜라라도 덴버 - 포트 콜린스 - 링컨 - 오마하 - 시카고 - 클리브랜드 - 나이아가라폭포 - 캐나다 토론토 - 몬트리올 - 퀘벡 - 다시 미국의 ‘메인’ 주 - 보스톤 - 뉴욕>까지였고 미국과 캐나다 18개 주를 지났으며 총이동 거리는 약 7501km(자전거 6691km + 히치하이킹 약 810km)였다.
‘후회 없는 인생, 성공적인 인생을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지금도 자주 한다. 후회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 내가 선택한 것은 도전이었고, 도전을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 자전거로 미국을 횡단하는 계획이었다.
나는 마른 체형에 빈혈은 물론, 피를 흘리면 현기증이 나며 쓰러지는 사람이다. 거의 공황장애에 가까운데 이 덕분에 군대에서 두 번이나 쓰러진 경험이 있는 허약체질의 정석이라고 할 수 있다. 내 몸은 그렇다 치고, 미국에는 아는 사람도 없다. 수중에 있던 500만원으로 가장 저렴한 항공권을 예매하고 미국을 횡단하기엔 부실하기 짝이 없는 MTB를 구입(사실 MTB와 유사한제품), 여행을 위한 용품 구입에 있어서 나는 사치와 여유를 부릴 수 없었다. 항공권과 여러 준비물로 여행 총 경비의 절반 가까이를 써버렸으니 말이다. 장비가 남들에 비해 좀 저렴하고 부실하면 어떤가, 행복한 도전을 준비하는 나에게 장비란 그다지 문제가 되지 않았다.
‘황량한 사막에서 텐트를 치고 밤하늘의 별을 바라보며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이해하지 못할 팝송을 들으며 생각에 빠지면......’ 이 얼마나 멋진 생각인가. 여행을 계획하고 출발하기까지 5개월의 시간동안 이런 행복하고 멋진 생각에 실제로 걱정해야 할 것들은 모두 뒷전 이였고 출발 하루 전에서야 비로소 현실을 느끼기 시작했다. 영어도 못하는 내가 자전거와 텐트만 가지고 미국에서 3달을 버티며 LA에서 뉴욕까지 가야만 예약된 비행기를 타고 돌아올 수 있는데, 이 상황이 하루 전부터는 큰 심리적 압박으로 다가왔다. 입국심사는 잘 할지, 내 짐을 잘 찾아서 자전거는 이상 없이 조립을 할 수있을지...... 혼자 떠나는 먼 여정 앞에선 이런 사소한 것들까지 나를두렵게 만들었다.
어쨌든 출발
일본 나리타 공항에서 환승하여 드디어 미국에 도착 했다. 비행기를 타고 환승하고 입국심사와 내 짐을 찾는 것은 약간의 번거로움이 있었을 뿐 걱정했던 것처럼 큰 문제가 되진 않았다. LA 국제공항의 한적한 곳으로 나와 자전거를 조립하는데 벌써부터 지나가던 사람들의 응원이 이어졌다. 기분 좋게 자전거를 조립하고 여유롭게 미국에서의 첫 페달 질을 해 나아갔다.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들이 대한민국 시골에서 자란 나에겐 너무나 아름답고 신선하게 느껴졌다. 도로와 신호등의 구조부터 건물의 느낌, 지나가는 사람들의 표정 등 생각보다 더운 날씨였지만 나의 기대감을 만족시키기엔 충분했다. LA국제공항에서 산타모니카 해변으로 향하는데 날씨가 생각보다 더웠다. 습도가 높지 않아 불쾌하진 않았지만 5월의 산타모니카 해변은 한국의 여름이나 마찬가지였다. 30kg 이상의 짐을 실은 자전거에 적응하기도 전에 더위에 힘이 빠졌지만 미국에서의 첫 날, 눈앞에 펼쳐지는 모든 풍경이 그렇게 신선할 수 없었다.(중략)
사막의 시작 ‘Mojave’
한인타운 내의 찜질방을 찾아 하룻밤을 보내고 첫 목적지인 데스밸리 방향으로 향했다.
Angeles National Forest를 넘고 Palmdale이라는 작은 도시를 지나니 넓은 들판이 이어지고 더운 날씨와 맞바람에 가다 서다를 반복하여 겨우 Mojave에 도착했다. Mojave까지 오는 길은 벌써부터 ‘사막’을 느낄 수 있었고, 40도 가까운 날씨에 자전거를 타고 가는 것은 내가봐도 어리석어 보였다. 주유소 가게 앞에 잠시 앉아 있는데 젊은 부부가 오더니 내 자전거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세팅이 좋다고 여러 번 말하며, 로스엔젤레스에서 여기까지 온것도 놀랍다고 말했다. 그리고 뉴욕까지 갈 예정이라고 하니 못 믿겠다는 표정으로 행운을빈다고 말해주고 갔다.
앉아 있었다.
해가 중천에 이른 정오,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직진해서 계획대로 데스밸리로 갈 것 인가. 아니면 Las Vegas로 바로 갈 것 인가. 무섭게 뜨거워지는 태양이 두려웠다. 한 시간이넘게 멍하니 앉아 생각을 해 보았지만 어디로든 쉽게 발이 떨어지질 않았다. 한참의 고민 끝에 한국에서부터 계획해 왔던 데스밸리 정복의 꿈이 자꾸 생각났고, 벌써 지쳐서 녹초가 되었지만 이틀 만에 계획을 지키지 못하고 쉬운 길로 간다면, 나약한 내 자신에게 화가 날 것도 같으며 시간이 지난 뒤 언젠가는 데스밸리로 가지 않은 것을 후회 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나는 오후 2시쯤 두려운 마음을 다잡고 지친 몸을 일으켜 데스밸리로 향했다.
끝없는 사막에서의 이틀 밤
끝없이 뻗은 도로를 계속 달리고 또 달려도 그 끝은 보이지 않았다. 심신은 지치기 시작했고 출발 몇 시간 만에 “아, 정말 아니다......”라고 몇 번이고 중얼거린 것 같다. 이미 가지고 있던 물은 뜨거워져 아무리 마셔도 갈증은 가시질 않았다. 주유소 가게만 나타나길 바라며 계속 달렸고 정말 지쳐 한계에 닿아 갈 때쯤 요란한 음악을 틀어놓은 주유소 가게가 나타났다.이 가게에서 물을 2리터는 마셨던 것 같다. 서부 사막에서 마신 얼음물과 시원한 음료수 맛은 정말 최고였다. 출발하기가 두려워 한 시간 이상을 그 요란한 음악을 들으며 또다시 멍하니
겨우 다시 페달을 밞았고 얼마 가지 않아 또다시 잔인할 정도로 곧게 뻗은 도로가 끝없이 펼쳐졌다. 달리고 달릴수록 나는 이런 도로가 끝이 없음을 깨닫게 되었고 해가 저물어 갈 무렵부터는 도로변에 앉아 게으름을 피우기 시작했다. 종종 지나가는 차들에게는 아무 생각 없이 구원의 눈빛만을 보내며 한 시간을 보냈다. 차도 거의 다니지 않는 사막에서의 해는 그렇게 저물어가고, 주위 풍경과 공기마저 나에게 묘한 두려움을 가져다 주었다. 여행 중 ‘위급한상황이 생기면 이렇게 대처를 해야겠다’고 여러 상황을 생각해뒀지만, 인기척이라고는 전혀없는 이런 사막의 적막이 주는 두려움은 미처 예상하지 못했다. ‘빨리 잠이나 자자.’라는 생각으로 텐트를 치고 들어가니 의외로 마음이 조금 편해졌고 피곤함에 바로 잠이 들었다. 이튿날 이른 아침, 텐트로 비쳐지는 뜨거운 태양에 도망치듯 정리를 하고 또 사막에서의 하루가 시작됐다. 지나가는 차들이 나에게 손을 흔들어주고 종종 멈춰선 차들이 물과 음료를 건네며 파이팅을 외쳐 주었다. 이런 황량한 사막의 풍경에 조금씩 매력을 느끼며 지치지만 천천히 전진해 갔다. 달리고 달렸지만 지평선 끝까지 펼쳐진 도로 앞에서 자연스레 이 나라의 땅덩어리를 실감하게 되었고 정오에 가까워 질수록 온도는 급격히 상승하는 것이 느껴졌다.
평균 시속40km로 한참을 간 내리막길. 너무 더운 날씨에 내리막길은 더 이상 바람을 느끼는 휴식의 시간이 아닌지 오래다. “제발 그만......그만......” 숨이 확 막혀오기 시작했다. 바로 데스밸리로 향하는 절정의 구간이었던 것이다. 지금까지는 너무 힘들고 지치면 멈춰서 그냥 멍하니 앉아있으면 되었지만 이제부터는 앉아서 가만히 있어도 쓰러질 것 같았다. 평소 더위에는 자신이 있었지만, 마치 찜질방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는 느낌이랄까? 생각이란 것은 할 수도 없었고 오로지 괴로움만이 느껴지던 그 순간......
주위에 그늘이 없어 할 수 없이 자전거 패니어(자전거 장착용 가방) 밑으로 들어갔다. 수백 미터 마다 한계를 느끼는 것 같아 멈춰서기 바빴다. 패니어 밑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바라보던 중 지나갔던 차가 다시 돌아와 나에게 괜찮은지 물어보았다. 남아공에서 온 이 두명의 말 뜻은 이해하기 힘들었지만 말투에서 나를 많이 걱정해 주는 게 느껴져 고마웠다. 줄게 없어서 미안하다고 하며 행운을 빈다고 말해 주었다.
만 하루 만에 가게가 보였다. 물론 그늘진 곳도 하루 만에 본 것이다. 집은 몇 채 보이지만 사람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그곳의 이름은 Trona. 음료 6병을 사 마시고 빈 병을 또 물로 가득 채우고 출발했다. 총 6리터의 물. 물의 무게만 약6kg. 소지품치곤 큰 무게였지만 살아서 여기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어쩔 수 없었다. 다음 가게는 95마일(약150km) 뒤에 있다는 가게 종업원 말에 나는 생사의 갈림길을 볼 수 밖에 없었다. 좀처럼 발이 띄어지지 않았던 것도 당연한 일이다. 결국 마을 끝 자락에 문 닫은 가게 앞 그늘에서 라면을 끓여 먹을 수 밖에 없었다. 덥지만 나에게 힘이 되는 것은 라면 뿐이었으니까...... 한참을 쉬고 출발했지만 끝없이 뻗은 도로와 더위에 100미터 전진하기도 힘들었다.
오후 2시. 폭염은 절정이고 10km정도의 쭉 뻗은 오르막길이 보였는데, 솔직히 이때는 이미 거리 감각이 없었다. 끝없이 뻗은 도로들을 계속 달리다 보니 이게 몇 km인지 감을 잡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태양 아래에서는 도저히 쉴 수 없었고 뜨거워진 물은 먹어도 효과가 없었다. 몇 십 미터만 숨을 헐떡이며 페달을 밟으면 목이 완전히 말라 버렸다. 급하게 침을 삼키려고 해도 넘어 가지 않아 인상을 쓰고 노력해야 침이 겨우 넘어갔다. 순식간에 목이 막히는 것을 느끼고 고통스럽게 침을 삼켜야 하는 지금, 페달 몇 번 밟고 뜨거워진 물을 한 모금 마셔 목을 적시고.. 불 가마 같은 땅바닥에는 앉을 수도없어 슬리퍼 한 짝을 깔고 앉아 쉬고, 이렇게 겨우 오르막을 거의 다올랐을 때쯤 반대차선에서 오던 차가 멈춰 섰다. 오전에 만났던 남아공 흑인 두 명이었다. 정말 안쓰러운 얼굴로 날 쳐다 보며 데스밸리가 아직 멀었냐고 물으니...... 상당히 미안한 표정으로 솔직히 아직 멀었다고 말했다.
점점 깊은 사막 속으로 들어 갔다. 차들은 몇 십 분에 한대씩 지나가고 오후 4시쯤 되니 온도는 조금 내려간 것 같았지만 벌써 지칠 대로 지쳤고 반복된 오르막길과 내리막길로 인해 계속 거북이 라이딩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조금씩 해는 저물어가고 또 다시 두려움이 밀려왔다. 어쩔 수 없이 히치하이킹으로 마을까지 간 뒤에 자야겠다는 생각에 지나가는 차들을 세웠지만 자전거를 실을 수 없어 그냥 보내야 했다. 다행히도 1갤런(약3.78리터) 물을 한 통 얻을 수 있었고 그 사이 차 두 대가 지나갔는데 저기 멀리서 한 차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 보였다. 미국인 세 명과 한국인 여성분이었는데 한국어는 못한다고 했다. 태극기를 보고 반가워서 돌아왔다며 얼음 물과 자두, 음료, 팥죽 캔, 그리고 장거리 라이딩때 물에 타 먹는 약을 주며 뉴욕으로 간다는 나를 많이 응원해주고 동영상과 사진을 찍고는 떠났다. 나에게 정신적으로 큰 힘이 되었던 이분들의 차 뒷모습에 난 가슴이 뭉클해져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1갤런의 물은 생각보다 무거웠다. 자두와 팥죽이 너무 먹고 싶어서 길 가에 바로 텐트를 쳤다. 얼음 물도 생겼고 갖고 있던 물이 아직 꽤 있어서 고민 끝에 옷을 모두 벗고 온 몸에 들이 부었다. 그리고 잔잔히 불어오는 사막 바람이 온몸에 닭살이 돋을 정도로 시원하게 느껴졌다. 평생 잊지 못할 그 느낌......
텐트 안으로 들어와 얼음 물을 허겁지겁 마시고 자두와 팥죽을 먹었는데 잠시 후 구토가 올라왔다. 자두는 참 맛있었지만 덕분에 누워서 한참을 뒹굴러야 했다. 낮에 물과 음료를 많이 마시다 보니 밤마다 소변 때문에 잠에서 깨는데 이때 본 사막의 밤하늘은 정말 경이로울 정도로 아름다웠다. 하지만 피곤함에 제대로 그 장관을 느낄 겨를도 없이 다시 텐트로 들어갔다.
그리고 또 다음날, 아침부터 강렬히 내리쬐는 태양아래 다시 천천히 페달 질을 해 나갔다. 20km정도를 달려 갈림길이 나왔는데 데스밸리를 가려면 우회전을 해야 했고 좌회전을 해 5km쯤 가면 주유소 가게가 있다는 이정표가 보였다. 저 멀리 언덕 위에 가게가 보였지만 갔다가 다시 돌아 올 자신이 없었다. 트로나 주유소 가게 직원이 말했던 95마일은 아마도 데스밸리까지의 거리를 말했던 것 같았다.100km이상은 달려온 것 같았다. 눈 앞 멀리에 보이는 도로의 거리는 감 잡을 수 없었다.저 멀리 산을 넘으면 데스밸리인데 지난밤 먹은 자두 때문에 아직도 속이 울렁거리고 헛구역질이 계속 나와 벌써 탈진 직전이었다. 큰 이정표 앞으로 진 그늘은 이제 시원하게까지 느껴져 한참을 앉아있었다. 눈앞에 내가 넘어야 할 산은 너무 높게만 느껴져 결국 히치하이킹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내가 온 길로는 차가 거의 오지 않았는데 반대쪽 가게가 보이는 방향에서는 차가 종종 보였다. 자전거를 실을 수 없어 몇 대를 그냥 보낸 끝에 반가운 캠핑카가 한대 멈춰 섰다.캠핑카로 산을 넘고 긴 내리막길을 내려와 내렸는데 정말 뜨거웠다. 차에서 잠시나마 시원한 에어컨 바람을 맞아서인지 아직 오전인데도 그 차이를 실감할 수 있었다. 시원한 기념품 가게에서 음료수를 사고 그늘에서 또 한참을 쉬었다.
죽음의 계곡 ‘데스밸리’
5월부터 10월 까지는 여행을 삼가 해야 할 정도. 이름 그대로 죽음의 계곡. 여러 관광 포인트가 있겠지만 나는 도저히 여유를 가지고 구경을 할 수 없었다. 길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큰 모래 언덕이 보여 사진 한 장을 남기기 위해 열심히 뛰어 갔다. 종종 지나가는 차들이 멈춰서 사진을 찍지만 이 모래밭까지 와서 사진을 찍는 사람은 없었다. 너무 뜨거워서 뛰어서 다녀야 할 정도였으니까.
그렇게 데스밸리를 외치며 왔지만 약간의 여유도 없이 여길 벗어나야 된다는 생각만 들었다. 벌써 도망치듯2~3km를 달려왔지만 너무 덥다. “내가 왜 여기까지 온 걸까?”목이 타 들어갈 때마다 어제 얻은 약을 탄 물을 조금씩 마셔서 버틸 수 있었지만 더 이상은 달릴 수 없어 다시 또 패니어 밑으로 기어 들어가 쉬고 있었다. 재미있는 것은 여기선 가끔 그냥 눈빛만으로도 지나가는 차들을 멈춰 세울 수 있다는 것이다. 지나간 차들도 돌아와서 물을 주고 도와 줄게 없는지를 묻는다. 더워서 서있기도 힘든 날씨에 라스베가스까지의 남은 거리는 아직도 약 200km라고 생각하니 더욱 더 움직일 수 없었다. 태양은 머리 꼭대기에 있어 패니어 밑의 그늘은 없어지고 가만히 앉아 있다간 정말 사고가 날 것만 같았다. 주위에 작은 나무 가지들을 꺾어와 작은 그늘을 만들고 그 밑에서 난 죽은 듯 가만히 앉아있었다. 바닥이 뜨거워 여느 때처럼 슬리퍼 한 짝을 깔고 앉았는데 순식간에 슬리퍼가 뜯어져 버렸다.
미래는 생각할 수 없다. 멈춰선 차들에게 시원한 물과 음료만 얻어 마시며 또 한참을 생각 없이 있었다. 그리고 또 가족이 탄 차 한대가 멈춰 섰는데 말투를 봐선 멕시코 사람 같았다. 영어를 하지만 알아 듣기가 참 힘들었는데 대충 내용은 “여기 이렇게 있으면 매우 위험하니 자기 가족들이 가는데 까지 태워 준다”고 했다. 이 상황에서 나는 쓸데없는 고집을 부렸다. 어제부터 거의 한계에 접어든 상태에서 계속 달려와 조금 적응이 됐고 이제 평지에선 차를 얻어 타고 싶지 않았다. 슬리퍼가 끊어져 걷지도 못하지만 나는 계속 괜찮다고 말하고 혼자 갈 수 있다고 고집을 부렸다. LA에서 왔다는 이 가족에게 Las Vegas로 간다고 말했는데 계속 거부를 해도 극구 말리면서 타라고 했다. 미안한 마음에 거절한 것이지만 자전거까지 들어주며 친절하게 대해주었다. 앞 자리엔 자리가 없어 자전거와 같이 뒤 쪽 짐칸에 탔는데 햇빛에 노출된 다리는 타 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 자외선 차단지수가 가장 높은 썬 크림을 도배하듯 발랐지만 효과는 거의 없었고 결국 텐트의 후라이를 덮고 Las Vegas로 향했다. 어느 정도 달려 LA로 가는 갈림길에서 내려 줄 거라 생각했는데 그 가족은 나를 라스베가스까지 데려다 주었고 묻고 물어서 한국인의 가게 앞에서 나를 내려주었다.
나 때문에 Las Vegas까지 와 준 ‘레오’ 가족. 한국인이 있는 가게를 찾아와 한국인 아주머니와 통역을 해서 대화를 하는데 NewYork까지 간다는 내가 제 정신이 아닌 것 같다고 말했다. 한국인 아주머니도 왜 그렇게 힘든 걸 도전하냐고 계속 이해할 수 없다고 말씀하시면서 과일도 주시고 많이 걱정해 주셨다.
이렇게 나는 죽음의 계곡으로 불리는 데스밸리 사막을 지날 수 있었고, 데스밸리까지 가는 길은 미국 횡단 중 가장 힘든, 평생 잊을 수 없는 곳이었다.
조휘욱의 미국 자전거 횡단기 중에서
글: 조휘욱 www.cyworld.com/hinggo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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