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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파타고니아] 남극의 관문을 거쳐 파타고니아의 베이스캠프로

거울속의 내모습 2016. 7. 23. 19:26

 

               

 

 

        칠레 푼타 아레나스 버스 터미널의 모습.

늦은 밤 남미 대륙의 끝 남극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 푼타아레나스(Punta Arenas)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버스를 이용해 파타고니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는 푸에르토나탈레스(Puerto Natales)로 이동할 예정이다. 자정을 넘겨 도착한 비행기는 어둠 속에 승객들을 내려놓았다. 아직 시차에 익숙지 않은 피곤한 몸을 이끌고 픽업 차량을 이용해 시내의 호텔로 들어섰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버스 터미널은 마중 나온 사람들과 떠나려는 배낭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푼타아레나스는 칠레 최남단의 도시이자 남극으로 가는 관문으로 유명하다. 마젤란 해협에 위치한 이 도시는 칠레가 마젤란 해협을 장악하기 위해 세운 계획 도시였다. 포르투갈 모험가 마젤란은 1520년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넘어가는 마젤란 해협을 발견했다. 이후 해협은 대서양과 태평양을 잇는 중요한 범선 항로 역할을 했다. 그 중심에 자리 잡은 푼타아레나스는 이곳을 지나가는 배들이 쉬어가는 항구도시로 발전했다. 이 영광은 1914년 파나마 운하가 완성되면서 한순간에 빛을 잃는다. 대륙을 관통하는 짧은 지름길을 외면하고 대륙의 남단까지 내려올 배들은 없기 때문이다. 찾는 이 없는 한적한 포구로 변해가던 이곳이 다시 주목을 받기 시작한 것은 남극 개발에 대한 경쟁이 본격화하면서부터다. 2003년 칠레 정부는 남극 연구소를 산티아고에서 푼타아레나스로 옮기고, 남극 반도에 기지를 둔 대부분의 나라들도 이곳을 거쳐 자신들의 기지로 물자와 인력을 공급한다. 또 남극여행을 위한 크루즈의 기항지이자 남극으로 향하는 비행기의 출발지가 되기도 한다. 우리의 장보고 기지와 세종 기지를 가기 위해서도 이곳을 거친다. 마젤란 해협의 중심도시가 남극 연구와 관광의 전진 기지로 변신한 것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북쪽에 위치한 토레스 델 파이네 국립공원의 입구에 해당된다. 수만년 전 빙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만들어 낸 아름다운 산과 호수의 절경이 그곳에 펼쳐져 있다.

늦게 잠들었지만 일찍 일어났다. 이른 새벽 호텔 식당에는 나만을 위한 아침 식사가 정성껏 차려졌다. 토스트와 과일 그리고 시리얼과 우유로 간단하지만 호텔 측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진다. 여행객의 피로를 숙소에 묻어두고 야트막한 언덕을 따라 버스터미널이 모여 있는 거리로 내려왔다. 예정했던 시간에 푸에르토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는 없었다. 성수기가 지나면서 버스시간표에 있던 버스는 사라진다. 미리 확인하지 않은 탓이다. 시간표를 받았다 해도 현지 사정을 미리 확인하는 것이 필요했다. 다행히 다음 시간에 버스가 있다고 한다. 여행은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을 때가 많다. 변화된 상황 자체를 즐기는 것도 여행의 매력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좋다.
 
 
        푸에르토 나탈레스 호텔 앞 전경. 사람과 개들이 평화롭게 햇살을 즐기고 있다.

갑자기 찾아온 여유 덕에 시내 산책에 나섰다. 스페인어로 모래곶을 의미하는 푼타아레나스는 예전부터 붉은 대지와 푸른 바다가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아름다운 도시로 사랑받아 왔다. 한때 대서양과 태평양을 넘나드는 배들이 가득 정박해 있었고, 허름한 옷차림의 항해사, 광부, 물개 사냥꾼, 탐험가, 양털 붐으로 부를 쌓은 멋쟁이들로 거리는 활기찼을 것이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는 아메리카 대륙 최고의 국립공원을 여행하려는 등산객들이 모여드는 여행 중심지의 명성에 비해 조용하다.

그러나 이른 아침 거리와 항구는 차가운 바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다만 항구 너머 태평양과 대서양이 만나는 바다의 푸른색은 여전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다. 

푸에르토나탈레스로 떠나는 버스는 제시간에 모습을 드러냈다. 성수기는 지났지만 버스 안은 각국에서 온 여행객들로 가득 찼다. 영어, 불어, 독어, 이탈리아어까지 온갖 언어가 기대에 들떠 섞이더니 이내 조용해진다. 이른 아침인 탓에 몇몇은 잠에 빠져들고, 몇몇은 창밖으로 펼쳐진 광경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라디오에서는 남미인들이 가장 사랑한다는 메르세데스 소사의 감미로운 노래가 흘러나오고 창밖으로는 적막한 대지가 쉴 새 없이 지나간다. 그렇게 4시간여를 달려 점심 무렵 드디어 푸에르토나탈레스에 도착했다. 푸에르토나탈레스는 북쪽에 위치한 토레스델파이네(Toress del Paine) 국립공원의 입구에 해당한다. 수만년 전 빙하가 휩쓸고 지나가면서 만들어 낸 아름다운 산과 호수의 절경이 펼쳐져 있다. 아르헨티나의 도시 엘칼라파테(El Calafate)와 연결돼 있어 페리토모레노 빙하지대와 세로토레·피츠로이 산악지대 트레킹에 나설 수 있다. 작은 어촌 마을이었던 이 도시가 파타고니아 여행의 베이스캠프가 되면서 관광객으로 북적거리게 된 것이다. 이번 여행은 이곳에 하루 머문 후 먼저 아르헨티나의 엘칼라파테로 넘어가 페리토모레노 빙하와 세로토레·피츠로이 산악지대를 여행한 후 다시 이곳으로 돌아와 토레스델파이네 국립공원을 트레킹할 계획이다.

버스정거장에는 마중 나온 사람들과 떠나려는 배낭 여행객들로 북적거린다.
 
 
       국립공원 트레킹 일정을 안내받기 위하여 찾아간 안내 센터.

숙소에 짐을 풀고 미리 예약해둔 국립공원 트레킹 일정을 안내받기 위해 안내센터를 찾았다. 안내센터 주변으로는 여행사, 숙박시설, 트레킹 및 캠핑장비 대여점과 다양한 캠핑 장비를 구입할 수 있는 아웃도어 장비 전문점이 즐비하다. 이곳의 날씨는 언제나 변덕스럽고 일교차가 심한 데다 비바람이 수시로 찾아오기 때문에 트레킹에 나서기 위해서는 방수와 방풍, 방한에 대한 준비가 철저해야 한다. 특히 트레킹 도중 직접 캠핑을 원하는 경우, 장비를 스스로 준비하거나 이곳에서 대여할 수 있다. 그러나 체력적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여행객은 산장에서 머물며 국립공원을 트레킹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서는 국립공원 홈페이지(www.torresdelpaine.com)에 미리 예약을 해야 한다.
 
 
       해지는 거리에서 여행자들이 한적한 여유를 즐기고 있다.

파타고니아 여행의 대미를 장식할 트레킹 일정을 확인하고 다음날 아르헨티나로 이동하기 위한 교통편을 찾기 위해 여행사에 들렀다. 여행객의 사랑방처럼 몇몇 여행자들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소파에서 방긋 웃는 아가를 돌보고 있는 여자는 이 여행사 대표의 부인으로 프랑스인이다. 여행 중에 칠레인인 남편을 만나 이땅 끝 마을에 정착했다며 파타고니아 아름다움을 열심히 설명해준다. 예약을 마치고 나서는데 프랑스 와인 못지않은 칠레 와인과 스테이크를 꼭 먹어야 한다며 레스토랑도 추천해 주었다. 와인에 대한 프랑스인의 자긍심에 웃음으로 답해주고 식사를 위해 시내로 나선다. 
 
 
칠레 와인과 스테이크를 먹기 위해 들른 레스토랑에서 여행객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거리는 쾌적하고 편안하다. 파타고니아의 굴곡진 역사조차 비켜간 듯 평화로운 분위기다. 배낭을 멘 여행자들이 한적한 여유를 즐기고 있고 피오르드 해안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거리를 가득 메운다. 추천해준 레스토랑을 찾아 든든한 스테이크와 와인 한 잔으로 오늘을 정리하며 내일을 기대한다. 내일은 아르헨티나로 이동해 페리토모레노 빙하로 들어간다.
 
 
       평화로운 항구도시 푸에르토 나탈레스의 해 저무는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