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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살림 악화”… 포퓰리즘 복지 사양한 스위스 국민들. &2.주경철]영국과 폴란드 의회, 그리고 국회

거울속의 내모습 2016. 6. 8. 22:39


     ‘무조건 月300만원씩 지급’ 국민투표… 반대 77%로 부결


모든 성인에게 조건 없이 월 300만 원의 기본소
득을 보장할지를 놓고 국민투표가 실시된 5일(현지 시간) 스위스 제네바의 한 투표소에서 유권자들이 투표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제네바=신화 뉴시스


스위스 국민은 ‘공짜 복지’ 대신 경제를 선택했다. 5일(현지 시간) 스위스에서 ‘모든 성인에게 조건 없이 매월 2500스위스프랑(약 300만 원)을 지급한다’는 안을 국민투표에 부친 결과 반대 76.9%, 찬성 23.1%로 부결됐다. 국민 10명 중 8명이 반대한 것이다.

법안은 비록 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누릴 수 있도록 국가가 매달 성인에게 2500프랑씩을, 18세 미만 어린이와 청소년에게는 625프랑(약 74만8000 원)씩을 준다는 내용을 담았다. 

모든 국민을 대상으로 조건 없는 기본소득을 똑같이 나눠 주는 국가가 지구상에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세계의 이목이 쏠렸다. 그러나 기본소득 지급 아이디어는 포퓰리즘(인기영합주의) 논란만 불러일으켰을 뿐 스위스 국민에게 도입 필요성을 납득시키지 못했다. 인구 800만 명의 스위스는 10만 명 이상이 서명한 제안은 국민투표로 부치게 돼 있다.

재계는 노동 의욕 저하를 이유로 반대했고 노조도 현재 누리고 있는 사회보장 제도가 감축될 것이라며 반대했다. 스위스 16개 대형 노조가 속해 있는 스위스노동조합연맹(SBG)의 조제 코르파토 사무국장은 “기본소득은 매력적으로 들리는 아이디어지만 실현하기가 너무 어렵다”며 “모든 것을 불확실성으로 몰아넣는 기본소득 정책보다는 차라리 사회보장 시스템을 강화하는 데 돈을 집어넣는 것을 원한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말했다.

스위스는 1인당 국민소득(GNI)이 8만4720달러(약 1억140만 원·2014년 기준)로 복지 등 사회안전망도 세계에서 으뜸이다. 월 2500스위스프랑은 스위스의 월 최저생계비(2219스위스프랑)를 기준으로 산출됐다. 이는 스위스 1인당 국민소득의 35.4%에 해당하는 큰돈이다. 2014년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이 2만8180달러(약 3342만원)인 점을 고려하면 한국의 모든 성인에게 매달 100만 원가량의 돈을 지급하는 제도인 셈이다.


정부와 국민 사이에서는 기본소득이 근로자의 노동 의욕을 저하시키고 나라 살림을 악화시키는 ‘퍼주기 식 포퓰리즘’이라는 목소리가 높았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지지자들이 기본소득제를 도입하는 대신 연금과 실업수당 폐지를 제안했지만 국민은 재원 부족과 실현 가능성에 대해 불안감을 드러냈다”고 평가했다. 

정치권에선 대부분의 정당이 유권자들에게 반대표를 던질 것을 촉구했다. 스위스 정부도 이 제도가 도입되면 연 2080억 프랑(약 250조 원)이 필요하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이는 현재 연방정부 지출 규모인 연 670억 프랑의 세 배다. 재원을 마련하려면 연금과 실업수당뿐 아니라 기존의 사회복지 관련 예산을 대폭 줄이거나 폐지해야 하고 증세 또한 불가피하다. 

영국 경제 주간지 이코노미스트는 “부유한 사람이든 가난한 사람이든 무조건 똑같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은 천문학적 재원이 필요할 뿐 아니라 소득에 따라 차별 지급해 온 기존의 사회복지 시스템까지 무너뜨릴 위험이 크다”고 비판했다. 스위스 정치권 일각에서는 과도한 복지 때문에 국가 부도 직전까지 갔던 이탈리아, 그리스처럼 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왔다. 샤를 위플로스 제네바 국제경제학회장은 “사람들에게 아무 조건 없이 돈을 준다면 누가 일하려 하겠느냐”며 노동 의욕 저하와 실업자 양산으로 경제가 큰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기본소득은 5년 이상 거주한 외국인에게도 지급하도록 돼 있어 ‘공짜 복지’를 노린 이민자들이 대거 스위스로 몰려올 가능성도 우려됐다. 우파 성향의 스위스국민당(SPP) 루치 슈탐 의원은 BBC 인터뷰에서 “스위스가 섬나라라면 가능할 수도 있는 일이다. 만일 모든 개인에게 돈을 지급한다면 수십억 명의 사람이 스위스로 들어오려고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2013년 이 법안을 발의한 ‘기본소득을 위한 지식인 모임’은 ‘인공지능(AI)’의 발달로 일자리가 줄어드는 상황에서 인간과 로봇이 품위 있게 공존하려면 기본소득이 유일한 해법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투표에서 부결됐지만 실망스러운 결과는 아니라는 것이다. 체 바그너 대변인은 “4명 중 1명이 찬성했다는 것은 대단한 결과”라며 “특히 젊은 유권자들은 이 논의가 이어지길 원한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스(NYT)는 5일 스위스 국민투표에서 기본소득을 ‘사양(No Thanks)’했지만 다른 여러 국가나 도시들이 비슷한 개념을 검토하고 있거나 시험 프로그램을 시작했다고 보도했다. 핀란드는 내년부터 1만 가구(전국 130여만 가구)를 대상으로 월 550유로(약 70만 원)를 지급하는 ‘부분 기본소득’ 제도를 2년간 시범 실시한 뒤 전국으로 확대할지 여부를 결정한다. 네덜란드도 중부 대도시 위트레흐트를 비롯한 19개 자치단체가 모든 시민에게 매달 기본소득 900유로(약 120만 원)를 지급하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영국 싱크탱크인 왕립예술협회는 매월 308파운드(약 52만 원)를 지급하는 기본소득안을 마련했다. 뉴질랜드에서도 기본소득을 제공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파리=전승훈 특파원 raphy@donga.com 기자의 다른기사 더보기 기자 블로그 /이유종 기자    






  주경철]영국과 폴란드 의회, 그리고 국회


변방에서 강대국 도약한 영국… 의회 통해 국력 모은 결과
한때 잘나간 폴란드의 추락… ‘민주적 의회’가 거부권 행사해
국정을 마비시켰기 때문… 근대국가의 흥망성쇠는  
국회 특성에 따라 좌우된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

중세만 해도 영국은 양을 쳐서 양모를 수출하는 유럽의 변방 국가였다. 그랬던 나라가 근대 들어 일취월장으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해 19∼20세기에는 초강대국으로 성장하고 세계의 패권을 차지했다. 그렇게 된 요인이 무엇일까.

무엇보다 효율적이고도 공평한 방식으로 국력을 모을 수 있는 국제(國制)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그 핵심은 의회에서 찾을 수 있다. 명예혁명(1688년)으로 공동 국왕에 추대된 윌리엄과 메리에게 의회는 권리선언을 제시하고 비준을 요구했다. 여기에 서명한 국왕은 자신들의 권리를 제한하는 데 동의한 것이다.

국가 운영에 필요한 경비는 매년 의회의 의결을 거쳐야 하며, 군인들의 봉급 역시 연봉 방식으로 결정한다는 것이다. 그 내용은 결코 추상적이지 않고 매우 구체적이다. 적어도 3년에 한 번은 반드시 의회를 열어야 한다는 규정을 통해 국왕의 독재를 방지하고, 한 번 열린 의회는 3년 이상 지속할 수 없다는 규정을 통해 의회의 독재를 방지했다. 이처럼 국민의 자유는 거창한 원칙을 천명하기보다 현실적 장치를 마련해 보장했다.

그 결과가 어떠했는지 한 가지 사례를 보자. 17세기 중반만 해도 영국 해군이 네덜란드 해군에 대패할 정도였다. 그러나 100년이 지난 후 최초의 세계대전이라 일컫는 7년전쟁(1756∼1763)에서는 영국이 압승을 거두어 거의 전 세계의 식민지 패권을 차지했다.

근대 세계에서 전쟁은 결국 돈 문제로 귀결된다. 영국 정부는 17세기에 고작 250만 파운드의 세액을 운용하는 데 그친 반면, 18세기에는 2000만 파운드의 조세 외에도 1억3000만 파운드의 국채를 운용했다. 정부가 이런 거액을 이용할 수 있게 된 데는 의회가 자금의 용처와 액수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매년 예산 사용을 감사함으로써 국민의 신뢰를 확고히 했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정반대의 사례라 할 만하다. 동유럽에서 가장 강력하고 문화적으로 발전했던 이 나라는 17∼18세기 국력이 크게 기울더니 급기야 러시아 오스트리아 프로이센 등 주변 강대국들에 유린당하다 못해 세 차례에 걸쳐 분할돼 아예 지도에서 지워져 버렸다. 이 나라가 주변 국가들의 먹잇감으로 전락한 요인은 무엇일까. 스스로 망국(亡國)의 방향으로 나아가는 국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여기에서도 의회(sejm)가 핵심이다.

1572년 폴란드 국왕 지그문트 2세 아우구스트가 후계자 없이 사망했을 때 귀족들은 의회에서 자유선거로 국왕을 선출하기로 결정했다. 귀족이 왕을 추대했으니, 국왕이 귀족들의 권한을 억압하지 못하도록 조치를 한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왕은 자신의 행동과 권한을 제한하는 계약에 서명해야 했다. 

국왕의 수족을 묶어둔 다음 의회가 국왕 대신 국정을 잘 운영했는가? 그렇지 않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귀족 의원들은 의회에서 ‘거부권(liberum veto)’을 행사할 수 있었다. 어느 한 의원이라도 거부권을 행사하면 안건이 부결되니 실제로는 만장일치여야 안건이 가결되었다.  

처음에는 누군가가 거부권을 행사하면 해당 안건만 부결되었는데, 갈수록 사태가 악화되어 급기야 한 번 거부권이 행사되면 그때까지 가결되었던 모든 안건이 전부 자동 부결되기에 이르렀다. 결국 의회가 아무 일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주변 강대국들이 자국에 불리한 결정을 못하도록 만들려면 폴란드 의원 몇 명만 구워삶아 거부권을 행사하도록 하면 충분했다.  

1573년부터 1763년까지 약 150번의 의회 회기 중 3분의 1 정도는 단 한 건의 안건도 가결되지 않고 끝났다. 국왕도, 의회도 아무런 일을 못하니 국정이 마비되는 것이야 당연한 일이다. 의회에서 국왕을 선출하고 각 지역 대표인 의원들의 의견을 철저히 보장해 준다고 하니 마치 ‘민주적’인 제도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은 귀족들의 이기적 행태를 보장한 ‘봉건적’ 성격의 제도에 불과하다. 역사가들은 선출왕제도와 거부권이 폴란드 망국의 중요 원인이라는 데에 동의한다.

말 많고 탈 많던 대한민국 19대 국회가 끝났다. 후대 역사가가 19대 국회를 어떻게 판단할지 모르겠지만 느낌으로는 역대 최악의 국회였던 것 같다. 새로 개원하는 20대 국회는 국민을 편안하게 모시고 국가의 재도약을 위해 헌신하는 훌륭한 국회가 되기를 바란다. 근대국가의 흥망성쇠는 대체로 국회의 성격에 많이 좌우된다.

주경철 객원논설위원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