텅 빈 마음과 지친 몸을 이끌고 발리 우붓으로 갔다. 발리 영혼의 우물 같은 곳에서 일상을 살아나갈 기운을 새로 얻었다.
엘리펀트 사파리 파크 로지에서 코끼리를 타고 사파리 내를 트래킹하는 ‘사파리 라이드’.
코끼리의 키와 같은 높이에 룸을 만들어 로지 내 다른 곳으로 코끼리를 타고 이동할 수 있는 코끼리 쇼퍼(Chauffeur) 서비스.
엘리펀트 사파리 파크 로지의 타로 스위트 리빙 룸. 사파리 특유의 분위기가 자연 속에 녹아 들어간 기분을 느끼게 해 준다.
EPHANT SAFARI PARK LODGE
발리를 여행하려고 결심한 사람들의 대부분은 에메랄드빛 해변을 떠올린다. 나 역시 그들 중 하나일 뿐이었다. 발리 덴파사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열대기후 섬 특유의 ‘훅’ 하는 습기가 ‘훅’ 하고 폐로 들어온 것은 아주 잠깐이었다. 구불거리는 산길을 달려 북쪽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길이 꽤 멀게 느껴진 것은 아마도 창밖이 칠흑같이 어두웠기 때문이리라. 정적 속의 지루함을 읽은 운전사가 말했다. “우붓보다 더 산속으로 들어가느라 오래 걸려요. 코끼리들이 살 수 있도록 야생에 가까운 환경이어야 하니까요.” 출발하기 전, 우리가 묵을 호텔이 ‘엘리펀트 사파리 파크 로지(Elephant Safari Park Lodge)’라는 것은 이미 알고 있었다. 그러나 나는 코끼리도 사파리도 로지도 정확하게 무엇인지 예측할 줄 모르는 서울 여자일 뿐. 진입로가 점점 좁아지는가 싶더니 막다른 길 끝에서 마침내 호텔이 나타났다. 로지(오두막)라는 이름 때문인지 보통 뻥 뚫려 웅장한 분위기를 내곤 하는 호텔 로비들과는 달리 아담한 규모의 호텔 입구는 어울리지 않게 커다란 문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이 문을 통과하면 이제부터 코끼리들이 이곳의 주인이에요. 코끼리들이 지나다녀야 하니 문은 커야 하고요.” 다음 날이 밝고 나서야 그 말을 이해했다. 40여 마리의 코끼리들이 사는 이곳은 호텔 룸과 식당 등을 제외하곤 모두 코끼리들의 동선에 맞춰져 있었다.
조식을 먹으러 가기 전에 코끼리들의 아침 목욕을 돕는 일로 하루가 시작됐고, 식사 내내 바로 앞 호수에서 수영을 즐기는 코끼리들이 어린이 투숙객들을 등에 태우고 잠수 놀이에 열중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아침을 먹고 나서는 코끼리들의 오전 산책을 돕는 데 동원됐다. 발리어로 ‘마훗’이라 불리는 코끼리 조련사들과 함께 코끼리 등에 올라타고 드넓은 사파리를 한 바퀴 돌았다. 갓 스무 살쯤 된 맨발의 마훗과 산책 내내 많은 이야기를 했다. 모든 코끼리는 평생 단 한 명만의 마훗을 받아들이고, 한 명의 마훗은 오직 한 마리의 코끼리만 조련한다. 그들은 서로 교감할 수 있고 그날의 기분이나 건강 상태도 알 수 있다. 코끼리들도 운동을 해야 한다. 1t이 넘는 몸무게이므로 투숙객들이 등에 타는 것은 코끼리들에게 전혀 피곤한 일이 아니다. 태어날 때부터 인간과 어울린 녀석들이라 새로운 사람 만나는 것을 좋아한다고 한다. 이곳에 사는 코끼리들은 정부에서 관리하는데, 호텔은 인가를 받아 관광산업 겸 코끼리 보호 프로그램을 공동 운영하는 셈이다. 그래서 이곳 코끼리의 상아를 자르거나 새끼가 태어날 때는 해당 공공기관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 이쯤 들으니 꽤 안심이 됐다. 만약 동물원에서 봤던, 지치고 우울한 코끼리였다면 내심 이 호텔에 투숙하는 것이 불편할 것 같았다. 그러나 온종일 사파리 내를 어슬렁거리며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장난을 거는 녀석들을 보니 섣부른 근심이 쉽게 걷혔다. 아주 어린 코끼리 한 마리가 내게 야생의 입냄새(!)를 풍기며 조악한 꽃 목걸이를 제 코로 걸어주었을 때도 이 동물들이 인간에게 이용당한다는 전혀 들지 않았다.
영국의 과학 전문지 <네이처>의 논문을 인용한 <내셔널 지오그래픽>에 따르면, 코끼리는 사람과 닮은 데가 아주 많은 동물이다. 다년간 야생 코끼리를 관찰한 결과, 코끼리는 가족끼리 강한 유대관계를 이루고 친구를 사귀는 것을 좋아하며, 사람과 같은 뇌 반응과 감정 표현을 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들의 가족과 무리를 잘 지켜준다면 돌고래 이상으로 사람과 어울려 살 수 있는 동물이라는 내용도 쓰여 있다. 언젠가 다시 이 호텔에 오게 된다면, 그 이유는 오직 코끼리들을 다시 만나기 위해서일 거란 생각을 했다. 체크아웃을 할 때 나는 호텔 시설이나 식당에서 먹었던 음식이 뚜렷이 기억나지 않았다. 그보다는 코끼리들과 조금 더 친해지지 못한 게 아쉬웠다. 나같이 건조한 여자가 말 한 마디 나누지 않은 코끼리와 그렇게 빨리 정이 들 줄은 몰랐다.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의 풀빌라는 룸에서 수영장까지 오픈된 구조라 자연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의 탁 트인 로비.
로비에 앞서 입구에는 웅장한 돌기둥이 도열해 밤 풍경이 더욱 운치 있다.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의 모든 룸에는 우붓지역 예술가들이 직접 그린 작품이 벽장식으로 걸려 있다.
MANDAPA A RITZ-CARLTON RESERVE오후엔 새로운 호텔로 향했다. 우붓 지역에 10여 년 만에 문을 연 글로벌 브랜드의 럭셔리 리조트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Mandapa, a Ritz-Carlton Reserve)’. 리츠칼튼 호텔보다 한 단계 더 높은 레벨의 리조트에게만 내준다는 ‘리저브’란 이름은 전 세계에 단 3개뿐이다. 얼마나 대단할지 기대에 부풀었다. 우붓 다운타운 방향으로 차를 달려, 돌기둥이 양옆으로 웅장하게 도열한 진입로를 따라 들어갔다. 코끼리와 진정한 교감을 나눴다고 호들갑을 떨던 종전의 기억을 잊을 만큼 압도적으로 강렬한 로비. 벼랑 끝에 마주한 로비의 뚝 떨어지는 시선 아래, 발밑으로 옹기종기 빌라들과 사이사이를 채운 계단식 논 그리고 빌라를 감싸고 굽이치는 아융 강이 한눈에 담긴다. 띄엄띄엄 지어진 빌라에 들어서면, 이 세상에서 나 혼자만 덩그러니 옮겨놓인 듯한 기분이 든다. TV 리모컨을 틀기 전까진 그 어떤 인간의 소리도 들리지 않는 방, 강이 흐르는 소리도 새가 우는 소리도 간헐적으로 들리는 가운데, 마른 나뭇잎이 개인 수영장에 후두둑 떨어지는 소리가 그나마 가장 큰 소음이다. 누구나 이런 곳에 찾아들어 오기까지 각자의 사연이 구구절절하겠지만, 나 역시 이런 시간이 누구보다 절실했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안도감은 이 호텔에서 누릴 수 있는 가장 사치스러운 품목 중 하나다. 모로 누워도 남는 거대한 침대, 모두 이 지역 장인들이 수공예로 깎아 만든 나무 세면대(끊임없이 물이 닿는 세면대가 나무라니!), 빌라 밖에 따로 만들어진 리빙 룸, 작은 앞마당에 편안한 발코니 공간까지 어느 하나 여유를 방해할 만한 요소가 없다. 아침이면 잔디밭에서 요가를 하고, 오후에는 라이브러리에서 애프터눈 티를 즐기거나 리조트 내 에스파(ESPA)에서 발리니스 전통 마사지를 받다 보면 느리디 느린 하루에도 할 만한 일은 충분히 많다.
리저브란 특별함은 서비스에서도 두드러진다. 감동은 지나친 친절함으로 포장된 기계적인 서비스 대신 정확한 타이밍에 딱 맞는 배려와 유머러스한 인사, 인간적인 미소로부터 나왔다. 또한 모두 네 개의 식당이 있는데 매끼니 감동할 정도로 저마다 음식이 환상적이었다. PR 담당자가 주문한 나시고랭 접시에 실례를 무릅쓰고 숫가락을 대기도 했고, 음식 사진 찍는 걸 남세스러워하던 사람이 에그 베네딕트의 노른자를 터트리는 동영상까지 찍었다. 그저 며칠 머물렀을 뿐인데, 돌아오는 날 즈음에는 우붓의 일상에 어느 정도 적응한 듯했다. 애인 품처럼 포근한 침대라면 응당 늦잠을 자야 옳을 텐데 알람도 없이 일찍 일어나 개운하게 수영도 하고, 조식 뷔페에서 아귀처럼 배터지게 식탐을 채우는 대신 방금 짠 주스만 두어 잔 들이켰다. 모든 사소한 행동조차 억지로 기운을 쥐어짜내 겨우 실행하는 것만으로도 생색 내기 바쁜 내게 이런 변화는 가히 우붓의 기적이라 할 만했다. 리조트에 충분히 몸과 마음이 적응할 즈음, 구릉지가 많은 우붓의 한적한 마을을 트래킹했다. 우붓에 사는 모든 이들은 농부이자 아티스트라 한다. 그들은 민락마다 수공예, 은세공, 회화 등 세분화된 아트워크를 한다. 덕분에 우붓 다운타운에는 어느 대도시 소호의 농촌 버전 즈음으로 보일 법한 작은 로드 숍들이 즐비하고, 신선한 오가닉 재료로 만든 소박한 레스토랑이 꽤 많다. 떠들썩한 파티나 관광지의 흥분 없이도 잔잔한 재미를 찾을 만한 것들이 수두룩했다.
돌아오는 날, 득도라도 한 듯 지나치게 평화로워진 내게 ‘발리 어드벤처’라는 발리 지역 액티비티 에이전시는 아융 강 래프팅을 제안했다. 발리에서 난데없이 웬 래프팅인가 의아한 채로 물살에 내맡겨진 보트에 앉았다. 그러나 머리 위로 늘어진 나무 덩굴을 피하기도 하고 바나나를 따먹으러 내려온 원숭이를 구경하기도 하면서, 이런 강을 품은 우붓이라면 바닷가 해변을 굳이 찾아가야 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래프팅으로 대미를 장식한 채 서울로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나는 전에 없는 숙면에 빠졌다. 인천공항에서 깨어나 보니, 너무 긴 꿈을 꾸었나 싶었다. 이 꿈이 깨지 않았으면 하고 안타까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든 심신이 너덜거릴 때 훌쩍 떠나기만 하면 내게 우주의 생기를 넘치게 수혈해 줄 우붓이 있다는 것을 온몸으로 확인했으므로.
TRAVEL TIP
럭셔리 호텔 & 리조트 홍보사 ‘아일랜드 마케팅’은 엘리펀트 사파리 파크 로지, 발리 어드벤처의 한국사무소를 맡고 있다. 또 2015년 가을에 오픈한 만다파 리츠칼튼 리저브의 허니문과 가족 상품을 홍보하고 있으며, 오프닝 프로모션으로 2016년 2월까지 리저브 스위트룸 예약 시 객실 상황에 따라 1베드 풀빌라 업그레이드를 진행한다. 또 얼리버드 프로모션, 2박 투숙 시 디너 1회, 3박 투숙 시 1박 무료 등 다양한 혜택을 제공한다.
문의 3276-2332
EDITOR 이경은
ART DESIGNER 유경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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