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나운 모래폭풍을 이겨내야만 살 수 있는 척박한 곳이지만 2000년 전 고대 문화유적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가 있다. 아라비아 반도 사막의 나라 요르단 하심왕국(The Hashemite Kingdom of Jordan). 사우디아라비아,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시리아, 이라크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작은 나라다. 작렬하는 태양과 열기,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 자갈밭에서 양을 치는 유목민, 모래바람에 하늘과 땅을 분간하기가 힘든 황량한 벌판, 기묘한 바위산과 협곡들…. 풍경은 외계에 온 듯 낯설다. 고요하다가 폭풍이 일고 비바람이 치다 다시 평온해지는 사막의 변주 앞에 인간은 무력하다. 세상의 주인은 인간이 아니라 자연이라는 걸 실감한다.
요르단 와디럼은 3억년 전 지각변동으로 해발 1200m에 생겨난 사막지역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산과 붉은 모래로 뒤덮여 있어 마치 외계 행성에 온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
■ 모래폭풍을 만나다
수도 암만에서 차를 몰아 남으로 남으로 달렸다. 목적지는 아라비아 상인들의 교역 통로였던 와디럼(Wadi Rum). 해발 1200m, 약 3억년 전 지각변동으로 생긴 바위산과 붉은 모래로 뒤덮인 사막 지역이다.
“아랍어로 ‘와디’는 비가 오면 강이 되지만 비가 내리지 않으면 마른 계곡이 되는 땅을 말합니다. ‘럼’은 모래산을 뜻하지요. 원래는 물속에 잠긴 바다였는데 침식과 융기를 거치면서 산과 협곡이 생겼고 모래사막이 되었습니다.”
현지 관광 해설사 압둘라(47)는 와디럼을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사막이라고 자랑했다. 그의 말대로 사막 군데군데 초록 나무들이 자라는 게 신기했다. 땅속에서 물이 조금씩 솟아나기 때문이란다.
끝없이 이어지는 사막도로(Desert Highway)를 따라 얼마나 달렸을까. 갑자기 빗방울이 떨어졌다. 차를 운전하던 마헤르(45)가 “3개월 만에 처음 빗방울을 본다. 리비아 쪽에서 불어오는 모래바람은 해충을 없애주기 때문에 감사해야 할 일”이라며 환하게 웃었다.
“설마, 모래폭풍이 몰려오는 건 아니겠지”하고 있는데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더니 하늘이 흔들렸다. 저 멀리서 누런 모래 알갱이들이 기둥처럼 용솟음치는 게 보였다. 말로만 듣던 모래폭풍이었다. 중앙차선은커녕 도로 경계를 표시하는 흰색 차선도 보이지 않았다.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거대한 폭풍이었다. 사막에서의 꿈 같은 하룻밤을 위해 달려온 이방인은 거친 사막 폭풍 앞에서 기가 질렸다.
낙타를 타고 사막을 걷는 모습. |
빗방울에서 모래 냄새가 진동했다. 우박 같은 모래 알갱이들이 차창을 두드렸다. 뜨겁게 달궈진 프라이팬 위에서 콩이 튀는 소리를 냈다. 관광객들이 버린 검은 비닐봉지와 페트병들이 미친 듯이 날아다녔다. 맞은편에서 오는 차량의 비상등조차 분간할 수 없었다. 시속 60~70㎞의 바람은 육중했고 차는 더 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 없었다. 속수무책, 여행자들은 차 안에서 숨을 죽인 채 폭풍이 잦아들기만 기다릴 뿐이었다.
모래폭풍에 갇힌 5분이 50분처럼 느껴졌다. 또다시 빗방울이 떨어졌다. 다행히 모래기둥은 100m쯤 떨어진 마을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운전석 너머 창밖으로 모래구름이 피어오르는 게 보였다.
휴게소에서 긴장을 풀고 숨을 골랐다. 대여섯살쯤 돼 보이는 아이들 10여 명이 우르르 달려왔다. 모두 맨발이었다. 사진을 찍어달라며 앞다퉈 송전탑으로 기어오르더니 누런 이를 드러내며 포즈를 취했다. 사막의 모래폭풍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표정이었다.
■ 사막에서의 하룻밤
야영오후 5시쯤 영화 <아라비아 로렌스>와 <마션>의 배경이 된 그 사막에 도착했다. 멋진 일몰을 보기 위해 지프로 갈아탔다. 지프 한 대가 옆을 지나가는데 비행기 이륙 소리를 냈다. 사막은 대해처럼 망망해서 두 눈으로 거리를 가늠할 수가 없었다. 멀찌감치 자리를 잡은 지프들이 개미만 하게 보였다.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암석 기둥들이 미로처럼 늘어서 있고, 코끼리, 토끼, 타이타닉호 등을 닮은 각양각색의 붉은 바위들이 병풍처럼 펼쳐졌다. 4000년 전 그려졌다는 암각화는 지금도 또렷했다. 가만히 손으로 어루만져보았다. 고대인들이 이 붉고 뜨거운 바위에 새기고 싶었던 꿈은 무엇이었을까. 그들의 붉고 뜨거운 기운이 전해지는 듯했다.
고대 유물들이 가득한 요르단 고고학박물관. |
지프 운전사가 “이곳에 오면 반드시 차 맛을 봐야 한다”며 전통 텐트촌으로 안내했다. 전통차는 홍차와 비슷했지만 달콤했다. 차 한잔을 마시는데 텐트촌 앞 모래언덕에서 젊은 백인 남성 한 명이 눈밭에서 뛰놀듯 뒹굴고 있었다. 일행인 영국인 여성이 “그가 사막을 보더니 미쳤다”며 까르르 웃었다.
장미꽃처럼 붉은 사막에 선홍빛 노을이 천천히 내려앉았다. 사막에서 보는 일몰의 아름다움은 직접 보지 않으면 어떤 말로도 설명되지 않는 그런 아름다움이다. 연인들이 모래언덕에 올라 어깨동무를 한 채 석양을 응시하는 모습이 한 폭의 그림 같다. 해가 지평선 너머로 떨어지자 사막이 어둠을 받았다. 유목민들이 살던 텐트에 짐을 풀고 맨발로 모래를 밟았다. 한낮의 열기는 거짓말같이 사라지고 시원한 모래가 발가락 사이로 감겨왔다.
어느새 날이 흐려졌는지 은하수는 잠깐 흐르다 말았고 ‘쏟아지는 별’은 끝끝내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아쉬웠지만 일출이 보상해주리라 기대하며 잠자리에 들었다. 사막 야영은 불편한 게 많았다. 모기떼와 옆 텐트의 코 고는 소리가 거슬리고 모래 때문에 입안이 서걱거렸다. 정주할 수 없었지만 사막을 떠날 수도 없었던 베두인들의 험난했을 여정이 떠올랐다.
새벽 5시, 멀리서 들리는 아랍인들의 기도소리에 눈을 떴다. 텐트를 열어젖히는 순간, 나도 모르게 탄성을 질렀다. 하늘은 별바다였다. 애초부터 셀 수 없으니 이곳에선 ‘별 헤는 밤’ 같은 말이 필요 없겠다. 새벽 6시, 별들이 사라지고 자줏빛 모래산이 모습을 드러냈다. 혹성탈출이 따로 없었다.
6시30분, 하얀 구름 떼 사이로 붉은 해가 얼굴을 내밀었다. 사막에서의 일출은 바다와 달랐다. 붉게 타오르며 이글거리지 않았다. 조용히, 아주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는데도 장엄했다.
한명 두명 여행자들이 눈을 비비며 텐트 밖으로 나왔다. 핀란드에서 왔다는 안나 마리는 “요르단 방문이 두번째인데 처음 왔을 때 보지 못했던 아름다움을 계속 발견한다”며 행복해했다.
“병든 나무처럼 생명이 부대낄 때/ 저 머나먼 아라비아의 사막으로 나는 가자…/ 그 열렬한 고독 가운데/ 옷자락을 나부끼고 호올로 서면/ 운명처럼 반드시 ‘나’와 대면케 될지니…”(유치환 ‘생명의 서’)
삶이 무력하거나 따분할 때 낯선 땅에 ‘나’를 던져보는 것도 괜찮다. 원시 그대로의 폭풍과 고요가 있는 사막이면 더욱 좋다. 와디럼이 그런 곳이다.
요르단은 모래바람이 계속 불기 때문에 목이 따갑고 아프다. 흡연 천국이라 실내 공기도 좋지 않다. 날씨마저 건조해 물을 들고 다니며 많이 마셔야 한다.
올리브오일로 만든 딥소스. |
대중교통은 불편한 편이다. 렌터카를 빌려야 하는데 하루 3만~5만원선이다. 암만 시내에는 하루 5000원에 숙박할 수 있는 게스트하우스도 있다. 호텔은 1박에 10만원선이다.
한국과의 시차는 6시간이며 전압은 220V를 쓴다. 화폐 단위는 디나르이지만 달러를 쓸 수 있다. 영어로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여행은 11~3월이 좋다. 뜨거운 모래바람이 심해 선글라스와 자외선 차단제, 스카프는 꼭 챙겨가야 한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할 수 있으므로 두툼한 옷도 필요하다. 항공기 직항편은 없다. 인천에서 카타르 도하까지 9~10시간가량 비행한 뒤 요르단 암만행으로 갈아타고 3시간30분여쯤 더 가야 한다.
<와디럼(요르단) |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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