中, 국제법과 규범 무시하고 난사군도 비행장 건설 강행
힘에 의한 중화주의 부활 예고
남중국해 실효적 지배 강화땐 항해의 자유 위축 불가피
미국 등 뒤에서 구경만 하기엔 우리 에너지 안보가 위태롭다
남중국해에 일고 있는 긴장의 파고가 심상치 않다. 중국이 베트남, 필리핀, 말레이시아, 브루나이와 영유권 다툼을 벌여 온 난사 군도(스프래틀리 군도)에 작년부터 대대적 매립공사를 진행하고 비행장을 세 군데나 건설하면서 남중국해 분쟁의 불길이 지펴졌다. 중국의 거침없는 위압적 행보에 주눅 든 연안국들은 미국의 등 뒤로 숨어들고 있다. 미국은 영유권 분쟁에서는 중립을 지키면서도 남중국해에 대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려는 중국의 조치에 대해서는 ‘항해의 자유’ 작전으로 맞서는 모습이다.
이 분쟁은 언뜻 특정 도서(島嶼)의 영유권과 그 지역 항행질서에 관한 국제법적 시비로 보일 수 있으나 그 바탕에는 동아시아의 안보질서 재편을 둘러싼 미중(美中) 간 대립과 전략적 경쟁이 자리 잡고 있다.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려면 중국의 행동이 역내 평화와 안정에 던지는 함의(含意)를 짚어볼 필요가 있다.
첫째, 중국이 힘을 이용한 현상(status quo) 변경을 강행하는 데 문제가 있다. 동아시아 질서를 중국에 유리한 방향으로 재편하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는 세력은 실력으로 제압하거나, 상대의 주권과 국익을 침해하는 것도 개의치 않겠다는 의도를 드러낸 것이다. 주변국에 위협이 되지 않는 인자한 강대국이 되겠다고 수없이 다짐해온 ‘화평굴기(和平굴起)’ 주장의 진정한 속내와 함께 힘의 논리가 지배할 중화질서의 예고편을 보여준 것과 다름없다.
둘째, 중국식 일방주의(unilateralism)의 부활을 예고한 것이다. 중화주의는 일방주의의 원조(元祖)다. 중국은 역외 세력이라는 이유로 미국의 남중국해 개입을 거부할 뿐 아니라 동아시아정상회의나 아세안지역안보포럼(ARF) 같은 다자회의에서 의제로 삼는 것조차 반대한다. 이해관계를 공유하는 나라들이 연대해 중국에 대항하는 구도를 막고, 분쟁 당사국들과 개별 협상을 통해 각개 격파하는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셋째, 중국의 꿈을 실현하는 데 걸림돌이 되는 국제법과 규범은 무시하겠다는 뜻이다. 필리핀 정부가 중국을 제소함에 따라 네덜란드 헤이그의 상설중재재판소는 10월 남중국해 분쟁에 대해 관할권이 있다고 결정하고 법적 시비를 가리는 절차에 착수했으나 중국은 이를 거부했다.
중국이 남중국해 군도를 U자형의 ‘9단선(段線)’으로 연결해 그 안에 있는 모든 도서의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과 이를 실력으로 점거한 것은 다른 문제다. 특히 썰물 때만 수면 위로 나타나는 간조노출지(low-tide elevation·LTE)인 수비 환초(Subi Reef)와 미스치프 환초(Mischief Reef)에 활주로를 건설하면서 법적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LTE는 중국이 가입한 해양법협약상 섬으로 인정될 수 없고 독자적 영해를 가질 수 없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은 인공섬 주변 12해리 이내 수역을 영해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항행의 자유는 공해에선 제약을 받지 않지만 영해에서는 연안국의 평화와 공공질서 또는 안전에 해가 되지 않는 무해통항(innocent passage)만 허용된다. 따라서 완전한 항행의 자유를 주장하는 미국과 중국은 충돌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끝으로 남중국해의 군사화 문제다. 군사시설을 건설하면서 “군사화는 않겠다”는 중국의 약속을 신뢰할 나라는 없다. 인공섬에 건설한 비행장이 미국과의 전쟁에서는 군사적 가치가 별로 없는 취약한 고정 표적에 불과하지만 평시에는 남중국해와 인근 지역에 군사력을 투사하고 지배권을 확립할 거점으로 활용될 수 있고, 이는 자유항행을 위축시킬 수밖에 없다.
우리에게 남중국해 분쟁은 강 건너 불이 아니다. 남중국해는 우리의 사활적 이해관계가 걸린 생명선이다. 국내에서 소비하는 에너지의 90% 이상을 남중국해를 통해 들여오는 나라에 항행의 자유는 에너지 안보의 근간이고, 에너지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는 나라에 에너지 안보는 바로 국가안보다. 중국과 미국 간에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사활적 국익을 수호할 것인지 포기할 것인지 간의 선택이자, 국제법에 따른 해결과 힘을 통한 해결 간의 선택인 것이다.
미국을 앞세우고 그 뒤에 숨어서 구경만 하고 있기에는 우리의 몸집과 이해관계가 너무 크다. 박근혜 대통령이 동아시아정상회의에서 항행의 자유와 비(非)군사화를 언급한 것은 그간의 어정쩡한 입장에서 진일보했다는 점에서 평가할 만하다.
천영우 객원논설위원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 아산정책연구원 고문
[신연수의 직언直口]중국산 TV가 안방을 점령하는 날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4월 28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성난 시민들이 마거릿 대처 전 총리의 동상을 밧줄로 끌어내리는 모습의 삽화를 실었다. 1990년대 초 공산정권이 붕괴한 후 레닌과 스탈린의 동상이 끌어내려지는 모습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었다.
FT는 ‘대처 시대의 종언’이란 칼럼에서 “공기업 민영화와 규제 완화라는 그의 자유주의 정책은 금융위기의 원인을 제공함으로써 역사적 정당성을 상실했다”고 비판했다. 최근 영국 경제는 나아졌지만 대처에겐 여전히 제조업을 무너뜨리고 금융위기를 불렀다는 평가가 따라다닌다.
대처의 동상이 끌어내려진 이유
요즘 한국은 30년 전 영국 대처 총리 시절과 비슷해 보인다. 1980년대 영국은 “고임금으로 제조업 분야에서 중국과 경쟁할 수 없다. 서비스경제로 가야 한다”는 논리가 팽배했다. 대처 정부는 제조업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노력하지 않고 규제 완화를 통한 ‘금융 빅뱅’에 중점을 뒀다.
그 결과 런던은 세계적인 금융도시로 컸지만 제조업을 하던 다른 지역들은 피폐해졌다. 경제가 무너지고 빈곤층이 늘어난 지역에는 범죄 마약 가정해체가 따랐다. 런던에는 은행가 변호사 컨설턴트 등 고액 연봉자가 늘었으나 대부분의 국민은 마트 계산대나 콜센터 같은 단순 서비스직밖에 구할 수 없다(다니엘 튜더 ‘익숙한 절망 불편한 희망’).
한중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지난달 30일 국회를 통과하자 “인구 14억 시장이 열렸다”며 환영 일색이다. FTA는 우리한테만 기회가 아니고 중국 기업들에도 기회다. 중국은 한국 시장을 통해 한층 빨리 경쟁력을 높일 것이다. 세계를 제패한 한국의 스마트폰 TV 자동차 냉장고 같은 제품들이 5∼10년 안에 국내에서도 찬밥 신세가 될 수 있다. 더 큰 문제는 그 다음이다. 중국은 우주항공 의약 고속철도 같은 첨단산업에서도 이미 우리를 앞질렀다.
신흥국 경제가 발달하면서 생산시설이 옮겨 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흐름이다. 세계 제조업의 중심은 산업혁명의 발상지인 영국에서 미국, 독일과 일본, 그 다음은 한국 중국 등으로 옮겨 왔다. 이 과정에서 영국은 손을 놨지만 독일과 일본은 제조업을 고부가가치 산업으로 재탄생시켰다. 독일과 일본 사람들이 경기침체 속에서도 안정된 삶을 누리는 것은 제조업이 만든 일자리 덕이 크다. 반면 서비스업 비중이 커진 미국과 영국은 소득양극화 빈곤 범죄 같은 사회문제에 시달린다.
박근혜 정부는 ‘경제활성화’를 강조한다. 그러나 정작 내용을 보면 ‘코리아 블랙프라이데이’ 같은 손쉬운 대증요법에 매달린다. 박 대통령이 관광진흥법과 의료 관련법을 빨리 통과시키라고 재촉하는 것은 봤어도 제조업 경쟁력을 어떻게 높일지 토론하는 모습은 못 봤다. 물론 서비스업도 발전시켜야 한다. 그러나 관광에 의존하는 그리스나 이탈리아는 경제가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제조업 무너진 영국 닮아간다
최근 국내에서 생산하는 ‘메이드 인 코리아(Made in Korea)’ 대신 국내 기업들이 해외에서 생산하는 ‘메이드 바이 코리아(Made by Korea)’로 국가의 산업전략을 바꾸겠다는 얘기가 나온다. 미국이 ‘제조업 부활’을 외치고 중국은 “2025년까지 첨단 제조업 강국이 되겠다”는데 우리는 ‘메이드 인 코리아’를 포기하겠단다. 한국은 올해 사상 처음 제조업 매출이 마이너스로 떨어졌고 수출도 크게 줄었다. 경고음이 강하게 울리고 있다. 이 정부도 대처처럼 제조업을 망가뜨린 정권이라는 역사적 평가를 받게 되면 어쩔 것인가. 지금 문제는 서비스업이 아니라 제조업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기자의 눈/김민]가면보다 가면 뒤의 폭력이 문제인데
스파이더맨, 오징어, 말 모양 등의 가면을 쓴 시민 20여 명이 모여들었다. 1일 오전 경기 수원시 새누리당 경기도당 앞에서다. 이들은 ‘자유롭게 모여 떠들 자유를 달라’, ‘집회의 자유에는 복장의 자유도 포함된다’는 구호를 외쳤다. ‘복면금지법 발의 규탄 기자회견’을 위해 모인 민주노총 경기본부를 비롯한 시민단체 회원들이었다.
작가 이외수 씨도 트위터에 ‘복면금지법 통과되면 복면가왕도 종방되나요’라며 집회 때 복면 착용을 금지하는 집시법 개정안 추진을 비꼬았다.
야당이나 일부 단체는 ‘복면 착용’도 자유라고 주장한다. 집회의 자유는 곧 집회 현장에서 어떤 복장이든 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논리도 펴고 있다. 대한민국은 누구나 알듯 집회뿐 아니라 어느 자리에서든 원하는 복장을 착용할 수 있다. 그런데도 시위 폭력을 막기 위해 금지한다는 집회 때 복면 착용 금지를 놓고 일상의 자유를 침해하는 것으로 왜곡하는 행태가 국회와 온라인 공간에서도 성행하고 있다. 복면 착용 금지가 어떤 의미인지, 왜 나왔는지 잘 알면서 애써 정부 여당만 공격하겠다고 나서는 건 오히려 대중의 반감만 살 뿐이다.
지난달 14일 서울 광화문에서 폭력 시위를 만든 쇠파이프와 밧줄, 사다리 등이 경찰을 공격하고 경찰버스를 부쉈다고 모두 사용이 금지되진 않는다. 정상적으로 사용하면 시민 생활에 도움을 주는 도구인 까닭이다. 결국 누구의 손에서 어떤 용도로 쓰이느냐가 관건인 셈이다.
배관공 손에 들린 쇠파이프는 누군가의 불편을 해소해 줄 터이고 이를 복면 시위대가 들면 공권력을 무너뜨려 민생 치안을 불안케 하는 건 분명하다. 날씨가 추울 때는 모자와 커다란 목도리로 얼굴을 가리고 황사가 날리면 마스크도 써야 한다. 그럴 때 그걸 못하게 하는 정부는 이 세상에 없다.
하지만 마치 이런 일상의 생활 도구 사용까지 막는 법을 만드는 것처럼 현실을 호도하는 선전선동이 여기저기서 불을 뿜고 있다. 입으로는 자유를 외치면서 마음속으로는 익명의 폭력을 응원하는 건 아닌지 의심스럽다. 집회 때 굳이 손에 쇠파이프를 들 생각만 아니라면 언제 어디서든 복면 쓸 자유가 허용되니 안심하고 착용하시라는 말을 하고 싶다.
김 민·사회부 kimmi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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