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시계
한 남자가 얼음 공장에서 일하고 있었다.
공장 안은 기계 소리와 작업자들의 목소리로 언제나 소란스러웠다.
게다가 바닥은 톱밥과 얼음조각들이 서로 뒤섞여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남자는 시간을 보려고 시계를 봤더니,
손목에 있어야 할 시계가 없어진 것이었다.
어딘가에 풀어놓은 것 같은데,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내가 생일 선물로 준 시계이기 때문에 찾으려고 노력했지만,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결국, 식사시간이 되어 식당으로 내려갔고,
식사하는 내내 잃어버린 시계 때문에 마음이 무거웠다.
집에 가서 아내에게 변명할 생각을 하니 마음이 더욱 편치 않았다.
그리고 다시 작업장으로 향했는데, 뜻밖의 일이 벌어졌다.
작업장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청년이 있는데,
남자의 시계를 들고 공장 입구에서 주인을 찾고 있는 것이었다.
그는 반갑고 고마운 마음에 청년에게 물었다.
"내가 그렇게 찾았을 땐 보이지 않던 시계였는데, 어떻게 찾은 거지?"
청년은 남자를 보며 대답했다.
"식사시간이 돼서 기계를 끄고 모두가 식당으로 내려갔어요.
조용한 공장 안에서 책을 보려고 자리를 잡았는데,
어디선가 재깍재깍 시계 소리가 들리더라고요.
소리 나는 쪽에서 톱밥을 헤쳐봤더니 그 속에 시계가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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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사는 세상은 너무나 바쁘고 분주하게 돌아갑니다.
일과 생활에 필요한 소음들이긴 하지만,
그 속에서 벗어날 겨를도 없이 살아갑니다.
그래서 정작 들어야 할 것,
꼭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지나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아무리 바빠도 한 번쯤 하늘을 보는 여유를 가져보세요.
그럼 들리지 않던 바람의 속삭임도 들리고,
뜨거운 줄만 알았던 태양의 따사로움도 느끼게 될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속도를 줄이고 인생을 즐겨라.
너무 빨리 가다 보면 놓치는 것은 주위 경관뿐이 아니다.
어디로 왜 가는지도 모르게 된다.
- 에디 캔터 -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한반도, 강뉴부대원 누구도 억지로 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힘없는 나라의 설움을 누구보다 잘 알았던 그들,
그들은 자신들이 겪은 아픔을 다른 사람이 겪지 않길 진심으로 바랐습니다.
아시아의 어느 곳에 있는 아주 작은 나라조차..
에티오피아가 이탈리아에 침략당했을 때,
힘이 없어 이 세계 어느 나라도 자신들의 조국을
도와주는 나라가 없었습니다.
약한 나라의 서러움을 너무나도 잘 알기에 사랑하는 가족을 뒤에 두고,
대한민국을 향한 군함에 올랐습니다.
지금으로부터 65년 전,
1951년 4월 13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Janmeda 광장에서는
비범한 출정식이 열렸습니다.
위기에 처한 한국을 돕기 위해 에티오피아 최강의 강뉴부대를
한국으로 파병하기 위한 출정식이었습니다.
셀라시에 황제는 출정식에서
"우리 에티오피아가 항상 추구해왔던, '세계평화를 위한 집단안보',
그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대들은 오늘 장도에 오르는 것이다.
가서 침략군을 격파하고, 한반도에 평화와 질서를 확립하고 돌아오라.
그리고 이길 때까지 싸워라, 그렇지 않으면 죽을 때까지 싸워라."
같은 시각 광장에는 불세출의 영웅 셀라시에 황제의 연설을 들으며,
전의를 불태우는 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Desta와 Mekonen 형제였습니다.
그들은 진실한 마음으로 침략자를 무찌르고
세계평화를 지키겠노라 다짐했습니다.
그 날 알았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
그래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지켜주지 않으면 두 다리 뻗고 잠을 잘 수 없을 것 같아서입니다.
Desta와 Mekonen 형제는 군함을 타고 일면식도 없는 나라를 지켜주기 위해
죽음이 기다리는 한반도로 떠났습니다.
황제근위병이라는 멋진 자리도 버리고
총알과 포탄이 빗발치는 죽음의 땅으로 기꺼이 자원해서 떠난 것입니다.
그렇게 도착한 한국의 상황은 그들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열악했습니다.
무엇보다 고통스러웠던 건,
에티오피아에선 단 한 번도 맞이한 적 없던 추위와 눈이었습니다.
Mekonen씨는 한국전쟁 당시 사진을 볼 때마다,
그 날의 추위를 결코 잊을 수 없다고 했습니다.
65년이란 세월조차 기억을 지울 순 없었나 봅니다.
힘들 때마다 선명하게 떠오르는 그 날의 기억들이
바로 어제처럼 느껴진다고 하셨습니다.
형의 죽음, 헛된 죽음이 되지 않길 간절히 바랐지만 소용없었습니다.
계속되던 치열한 전투 중 형의 전사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믿을 수 없었고 믿고 싶지 않았지만,
형의 시신은 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만큼 포탄으로 훼손돼 있었습니다.
"침략자에게 항복이란 있을 수 없다."던 명령대로
죽을지언정 항복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형은 죽음으로 승리를 안겨준 것입니다.
세계평화를 위해 가족의 만류도 불구하고 한반도로 향했던
Desta라는 젊은이는 그렇게 영원히 가족의 곁을 떠나게 된 것입니다.
1년이 지나 2차 강뉴부대가 도착하자,
1차 강뉴부대는 조국 에티오피아로 돌아갔습니다.
전장에서 간절히 돌아가고 싶었던 조국이었지만
형의 죽음을 안 형수가 어린 자식 Dereje Desta를 놓고 집을 나가버리면서
형의 집안은 순식간에 풍비박산이 나 버렸습니다.
졸지에 조카는 고아가 돼버린 것입니다.
알아주길 바라서 자원한 전투는 아니었지만,
외면받을 거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가족도, 당사국도, 조국도 형의 죽음을 슬퍼하는 이는 없었습니다.
동생 Mekonen은 혼자 돌아온 것이 너무나 미안하고 마음 아팠습니다.
그래서 형의 뒤를 따르고자 4차 강뉴부대로 다시 지원하였습니다.
그러나 막상 한반도로 와 보니,
휴전상태가 되어 형의 뒤를 따를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게 다시 조국으로 돌아왔고,
에티오피아는 7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가 되었습니다.
또, 공산주의자들의 쿠데타가 일어나 공산국가가 되었습니다.
공산주의와 싸우기 위해 자원했던 강뉴부대원들은 재산을 몰수당하고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으며 살아가게 됩니다.
그래서 한반도를 위해 싸웠던 참전용사들은
가장 가난한 나라 중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돼 버렸습니다.
믿을 수 없는 현실은 65년이 지난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다른 나라는 몰라도 대한민국은 알아줘야 했습니다.
한국전쟁 65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그 덕에 대한민국은 눈부신 발전을 거듭하고 있지만,
에티오피아는 아직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나라로 멈춰있기 때문입니다.
계속되는 가난과 핍박으로 동생 Mekonen는 힘없는 노인이 돼 버렸고,
형 Desta씨의 무덤은 아무도 찾지 않는 어딘가에
방치된 채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사실 많은 분께서 돌아가셔서
이제 만나고 싶어도 만날 수 없는 분들이 대부분입니다.
전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을 지켜주기 위해 목숨 바친 아프리카의 젊은 영웅들.
더 늦기 전에 따뜻한 하루는 지난 20년 동안 매년 그분들을 도왔던
이상욱 님과 함께 직접 만나 뵙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후원금을 전달해 드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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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장 후원계좌 (예금주 : 더좋은세상 따뜻한하루)
- 우리은행 : 1005-202-544061
- 국민은행 : 652301-01-5697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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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에 후원하기를 통하여 따뜻한 응원 댓글과
도움의 손길을 부탁하겠습니다.
현재 확인된 분들은 257명 정도로 파악되고 있습니다.
따뜻한 하루에서 내년 2월 직접 그분들을 찾아갈 것입니다.
더 늦기 전에 감사와 도움을 드리고자 합니다.
대한민국 국민이 존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그분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뜻한 하루와 함께 그들의 마음을 기억해 주세요.
지금 그들이 흘리는 눈물을 우리가 닦아 드려야 합니다.
그럴만한 자격이 있는 분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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