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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누나와 앵무새 .& 2.엄마, 내 신발은?

거울속의 내모습 2015. 8. 2. 23:38

                     누나와 앵무새




어머니께서 지병으로 누워 계신지 몇 해가 지날 무렵이었습니다.
그런 어머니가 어느 날,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곱게 빗어 쪽진 뒤
우리 남매를 불러 앉혔습니다.
마치 돌아오지 못할 여행이라도 떠나는 사람처럼
얼굴에 슬픔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정수야, 누나를 부탁한다.
네가 누나의 목소리가 돼줘야 해. 그럴 수 있지?"
"엄마, 왜 그런 말씀을 하세요. 그러지 마세요."

어머니는 말 못하는 누나가 마음에 걸려
차마 눈을 감을 수 없다며 제 손을 꼭 잡고 당부하셨습니다.
며칠 뒤 어머니는 그렇게 우리 남매의 손을 하나로 맞잡고는
돌아오지 않을 먼 곳으로 영영 떠나셨습니다.

그로부터 10년이 지나게 되었으며,
저는 먼 친척의 도움으로 야간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습니다.
그 후, 서울에 직장을 얻은 저는 누나와 함께 서울로 상경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퇴근 후 집에 돌아오고 있는데
동네 한쪽 잘 보이지 않는 곳에 누나와 아이들이 모여있었습니다.
무심히 돌아봤는데 누나가 앵무새 한 마리를 놓고
동네 아이들과 무엇인가를 하는 것이었습니다.
신경 쓰고 싶지 않아 집으로 들어가려던
제 귓전에 알아들을 수 없는 앵무새 소리가 들렸습니다.

"주주..주..주우..."
앵무새도 아이들도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내고 있었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 후로도 동네 아이들과 누나 그리고 앵무새는
동네 한쪽에 모여 알 수 없는 소리를 내는 일을 반복했습니다.
"웅얼웅얼" "주우..주주…주우.."

모처럼 쉬는 날, 마치 천식 환자처럼 그렁대는 앵무새는
내 늦잠을 방해하고 신경을 건드렸습니다.
"제발 저 앵무새 치워버릴 수 없어?"
누나에게 얼음장처럼 차가운 표정으로 쏘아붙였습니다.
누나는 그런 제 태도에 난감한 표정이었지만,
애써 못 들은 척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렇게 또 며칠이 흐른 어느 날,
누군가의 반복되는 말에 잠이 깨버린 전,
소스라치게 놀라고 말았습니다.
"생일..추커.. 생일.. 추카!"
앵무새는 분명 그렇게 말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누나가 건네준 카드에는
단정한 글씨로 이렇게 쓰여 있었습니다.
"생일 축하한다. 내 목소리로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었는데.."
"생일..추커.. 생일.. 추카!"
목소리가 없는 누나가 저에게 난생처음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앵무새에게 그 한마디를 훈련 시키기 위해
누나는 그렇게 여러 날을 동네 아이들에게 부탁하여
연습을 하고 있던 것이었습니다.
전, 쏟아지는 눈물을 애써 감추려 고개 숙여
미역국만 먹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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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가 나에게 등을 돌려도, 가족만은 당신 편입니다.
그렇게 가까운 가족에게 살가운 말 한마디 해주는 게 가장 쑥스럽죠?
당신의 부모도 형제도 모두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가족이 먼저 다가오길 기다리지 말고 내가 먼저 표현해 보세요.
표현하지 않아도 그 마음 충분히 알겠지만,
표현해 준다면 입가에 행복한 미소가
떠나지 않을 것입니다.


# 오늘의 명언
형제자매가 있는 사람은 자신이 얼마나 운이 좋은지 몰라.
물론 많이 싸우겠지, 하지만 항상 누군가 곁에 있잖아,
가족이라 부를 수 있는 존재가 곁에 있잖아.
- 트레이 파커 -

                  

 

                          엄마, 내 신발은?




일곱 살 때쯤 일일 것입니다.
어머니는 막내인 저를 유난히 저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어느 날 시장에서 예쁜 운동화를 한 켤레 사주셨습니다.
어머니는 제게 운동화를 신겨주시고는
머리를 쓰다듬으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껴 신으렴"

그러나 전 엄청난 개구쟁이였기에
아무리 튼튼한 신발이라도 금발 닳아 구멍이 나버리곤 했습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아껴 신으란 말씀을
처음 하시며 사준 신발이기에 나름 조심해야 한다는 생각이
머릿속에 맴돌긴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 근처 가구점을 친구들과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가구점 앞에는 오래된 책상과 의자들이 수북이 쌓여 있었습니다.
하나같이 호기심 많고 개구쟁이인 저와 친구들이
그걸 보고 그냥 지나칠 리 없었겠죠.

우리는 의자 하나, 책상 하나 밟으며
꼭대기까지 올라가고 있었습니다.

"와르르 쿵"

의자와 책상 더미가 우리들의 무게를 견디지 못해 무너졌고,
저는 그대로 땅바닥에 뒤통수부터 떨어져
순간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전 그 와중에도 아픈 것보다 더 머릿속에 맴도는
한 가지가 있었습니다.

"내 신발.. 내 신발"

뒤로 넘어지면서 운동화 한 짝이 어디론가 날아가 버린 것입니다.

"아껴 신으렴, 아껴 신으렴.."
어린 마음에 아픈 것도 잊을 정도로
혼이 날까 봐 두려웠던 것 같습니다.

소란스러운 소리를 듣고 달려 나오신 어머니는
피투성이가 된 제 모습을 보고 소스라치게 놀라셨습니다.
그리고는 저를 안고 병원으로 있는 힘을 다해 뛰어가셨습니다.

엄마 품에 안겨 잠시 정신을 잃었던 제가
병원에서 깨어나 어머니를 찾자
어머니께서는 저를 꼭 안아주셨습니다.

그 와중에도 엄마에게 물었습니다.
"엄마, 내 신발은?"
"걱정하지 마! 엄마가 찾아 놓았어."

어머니는 제가 크게 다치지 않은 것만으로도
하늘에 감사한다며 몇 번을 말씀하셨습니다.

제 뒷머리에는 아직도 그때 생긴 흉터 자국이 있습니다.
이 흉터는 어머니에게 진 사랑의 빚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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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한없이 크게만 느껴졌던 어머니.
그 시절 어머니만큼 무서운 존재가 또 있었을까요?

그런데 돌이켜보면 어머니는 크게 혼낸 것도 몇 번 안 되고,
또 정말 화가 끝까지 나서 혼낸 적도 몇 번 없는 것 같습니다.

그저 어머니의 존재감이 너무 커,
그 사랑의 크기만큼 어머니가
가장 엄한 존재가 된 것뿐이었습니다.

어머니의 어깨가 좁아지고
등이 굽어 키가 작아져 어릴 적처럼 한없이 커 보이지 않는다고요?
그건 자식이 컸기 때문이란 걸 잊지 마세요.
어머니는 언제나 변함없이 처음부터 그대로였고,
변한 건 자식일 뿐입니다.


# 오늘의 명언
사랑받고 싶다면 사랑하라, 그리고 사랑스럽게 행동하라.
- 벤저민 프랭클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