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알로하, 힐링 트래블

거울속의 내모습 2015. 6. 5. 23:15

심신이 어지러운 여자가 하와이 오아후 섬으로 '치유 캠프'를 떠났다. 그늘진 마음을 밝히는 햇살과 설명할 수 없는 에너지가 교차하는 파라다이스에서의 여정을 풀어 놓는다.

워터맨들이 사랑하는 터틀 베이에서 열린 글로벌 요가 & 뮤직 개더링.

만성 피로는 마감만큼 무거운 숙제였다. 책상 앞에 웅크린 채 모니터를 노려보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머리는 지끈지끈 아프고 다리는 혈액순환이 안 돼 퉁퉁 붓는 일이 다반사. 그러던 차에 하와이 관광청으로부터 반가운 초대장이 도착했다. 요가, 음악 그리고 헬시 푸드가 맛깔스럽게 버무려진 일종의 멘탈 치유 페스티벌인'원더러스트(Wanderlust)'로 같이 떠나자는 거였다. 그리하여 8시간의 비행(오아후 섬→서울 노선은 역풍으로 2시간이 더 걸린다)을 거쳐 당도한 오아후 섬은 두 번째 방문. 지난해 허니문으로 첫발을 내디딘 이래로 '알로하'의 고장은 특유의 활달한 에너지와 눈부신 환대로 내 마음 속 힐링 아지트 상위에 랭크된 터였다. 세계 최대 규모의 쇼핑몰과 각국에서 몰려든 여행자들을 위한 다국적 레스토랑, 완만한 해안선을 따라 즐길 수 있는 풍부한 수상 액티비티 프로그램. 하와이를 구성하는 섬 중 대다수의 인구가 밀집해 있는 오아후 섬은 말하자면 '어번 메트로폴리스'와 아름다운 컨트리 사이드의 양극단을 오가는 이중 매력의 소유자인 셈이다.

베라 왕의 손길로 완성한 객실과 최상의 편안함을 선사하는 스파로 유명한할레쿨라니.

페스티벌에 참여하는 마지막 밤을 제외하고 이번 여정 내내 머무르는 곳은 와이키키 해변과 도보로 10분가량 떨어진 부티크 호텔와이키키 파크(Waikiki Parc)다. 1층엔 노부 마쓰히사(Nobu Matsuhisa)의 체인 레스토랑 노부가 자리하고 있어 밤늦은 시각까지 하와이 힙스터들의 방문이 끊이지 않았다. 객실에 입성해 어느 정도 주변 정리를 마친 뒤에 바로 맞은편의 자매 호텔할레쿨라니(Halekulani)스파로 달려갔다. 비행기 안에 구겨져 있느라 경직된 근육을 풀어주기 위해 하와이식 전통 마사지 로미 로미(Lomi Lomi)를 받기 위함이었다. 본래 하와이 원주민들 사이에서 가족 단위로 계승돼 오던 로미 로미는 '사랑의 손' 또는 '마술사의 마사지'라고불리는 비밀스런 마사지다. 단순히 근육을 풀어주는 차원이 아니라 손끝으로 가슴까지 기운을 불어 넣는 일종의 고차원적인 테라피에 가깝다. 뭔가에 취한 듯 내 몸을 음미(!)하는 테라피스트의 손길이 뭔가 다르긴 달랐다.

1야외에서 펼쳐진 플라잉 요가 레슨.

2추성훈의 아내이자, 일본 최고의 모델인야노 시호가 SNS에 올리며 널리 전파됐던'패들 요가'도 조기 마감될 정 도로 인기.

3본래 아사이 볼의 기원은 하와이! 싱싱한 슈퍼푸드로 원기를 충전했다.

4후끈한 육체 운동 이후엔 화끈한 음악으로 분위기를 전환.

'진짜' 하와이의 얼굴다음날 이른 오전 근사한 라군을 품고 있는힐튼 하와이언 빌리지(Hilton Hawaiian Village)에서의 서핑과 함께 공식 일정이 시작됐다. 오아후 섬엔 서핑을 우선순위로 두고 찾는 무리가 꽤 많다. 이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이곳은 항시 '낙낙한 높이의 파도가 준비돼 있어서' 다양한 레벨의 서퍼들의 파도타기에 맞춤식으로 대응할 수 있는 곳이라고. 때문에 동쪽으로 카피올라니 공원부터 서쪽으로 힐튼 하와이언 빌리지까지 이어진 와이키키 해변 곳곳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서핑보드를 들고 바다에 뛰어드는 사람들을 목격하기 쉽다. 나 또한 "막상 파도에 오르면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와이키키 비치 액티비티'의 마이크 머레이의 권유(꼬임)에 넘어가 난생 처음 서핑에 도전하기로 했는데! 요약하자면 납작 엎드려 있다가 파도가 다가오기 직전에 몸을 조금씩 일으켜 중심을 잡는 게 전부. 이것만으로 파도의 지배자가 되는 것이 가능할까 의구심을 품게 하는 오리엔테이션 이후엔 롱보드와 함께 바다 한복판에 덩그러니 내동댕이쳐졌다.

사실 좋은 기후와 높은 파도 외에도 하와이가 서핑 천국이 된 데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다. 해변에서 수백 미터 떨어진 위치까지 수심 1m 안팎의 해저 평면이 이어진다는 점. 우리나라의 동해안, 제주도에 비해 따뜻한 수온 또한 나 같은 '서핑 초짜'의 불안함을 어느 정도 덜어준다. 그럼에도 일렁이는 바다 위에서 믿을 것이라곤 롱보드 하나뿐인 상황이 영 기쁘지만은 않다. 양팔을 노 삼아 줄기차게 저어야 했으므로 평소 쓰지 않던 팔 근육이 욱신거렸다. 바짝 긴장한 상태로 파도와의 사투에 대비해 보았으나 역시나, 대실패! 파도에 휩쓸려 가라앉을지 모른다는 공포감에 질끈 눈부터 감았고 서너 차례의 실패로 쭉 이어졌다. 한참을 파도에 다가가고 쓸려가기를 반복했을까. 우여곡절 끝에 파도 위에 서는데 성공했다. '그래, 이 맛에 서핑을 하는 구나'라는 감탄사가 절로 새나올 정도로 발가락 끝까지 짜릿함이 퍼졌다.

광활한쿠알로아 랜치.

뭍으로 돌아와선 훌라를 배우기 위해 카피올라니 공원으로 향했다. 살랑살랑 잔걸음에 맞춰 흔드는 야외에서의 엉덩이 춤은 뭐랄까, 박자보다 '필'이 더 중요한 듯했다. 이날의 행보가 하와이의 대표 문화를 즐기기 위함이었다면 이후의 이틀간은 섬의 동서남북으로 이동하며 와일드 라이프를 체험할 수 있는 스케줄이었다. 고대 하와이 혼령들이 영혼의 세계에 뛰어들어 조상과 만나는 곳으로 알려진 와이아나에에서의 스노클링, 오아후 섬에서도 신성시되는 곳이자 영화 <쥬라기 공원>에 등장해 잘 알려진쿠알로아 랜치에서의 ATV 체험은 허클베리 핀의 모험처럼 흥미진진했다. 특히 "우르르 쿵쾅" 울퉁불퉁한 산길을 기세등등하게 질주하고 다녔던 ATV 체험은 여행에서 돌아온 뒤에도 떠오를 정도로 요긴한 경험이 됐다.

5정열의 해변, 와이키키로 가는 길.

6무스비, 포키 등 하와이에서 꼭 먹어야 할 것들.

7로컬 음식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하와이.

노스 쇼어에서의 보디&소울 액티비티한편 와이키키에서 카메하메하 하이웨이를 타고 북으로 질주하다 보면 노스 쇼어에 다다른다. 이곳이 바로 이번 하와이 원정의 하이라이트인 원더러스트의 무대. 페스티벌은 매년 수차례씩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를 떠돌며 열리는데 그때마다 세계적인 명상 수련가와 요가 마스터를 동반해 다채로운 심신 안정 프로그램을 꾸린다. 그뿐 아니라 지역 고유의 건강 먹거리와 함께 DJ 뮤직 쇼까지 펼치니 '요가, 음악, 건강'이라는 3위일체를 겨냥한 집단 치료 세션이라 불러도 좋겠다. 올해로 오아후 섬에서만 세 번째 열리는 페스티벌은 운이 좋으면 해안선 끝까지 기어 나오는 거북이를 볼 수 있는터틀 베이 리조트(Turtle Bay Resort)일대에 고루 퍼져서 요가는 물론 요즘 대세인 패들 요가, 카약킹, 바이킹 트렉 등 시간대별로 나뉜 프로그램 중 원하는 것을 선택해 참여하는 방식.

이날 가장 먼저 시선을 잡아끈 수업은 요가마스터 시바 레아(Shiva Rea)의 지도로 난이도가 높은 빈야사 요가를 낮은 주파수의 '덥(Dub)' 음악에 맞춰 하는 시간. 한국에서처럼 다같이 같은 동작하는 데 급급해하지 않으면서 여유 있게 따라 할 수 있는 속도라 마음에 들었다. 물 흐르듯 흘러가는 연속 동작 사이사이엔 쉬지 않고 호흡하는 게 중요하다는 그녀의 조언에 귀 기울여 몸의 언어를 듣는 데 몰입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집중력도 높아졌다. 이후 호기심에 도전한 '패들 요가'는 말 그대로 물 위에 떠 있는 서프 보드에서 하는 요가로 균형 잡기가 절대적으로 중요하다. 아무래도 땅에서 하는 요가보다 세세한 근육을 더 많이 사용하다 보니 배에 힘이 잔뜩 가해져 힘들긴 하지만 자연과 함께 한다는 점이 뭐니 뭐니 해도 매력적이었다. 뿌리째 흔들린 내 몸과 마음의 균형을 찾으러 떠난 하와이에서의 여정은 돌이켜보건대 자신을 가장 투명하게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정작 나는 아무 애도 쓰지 않았는데, 너그럽게 품어주는 듯한 느낌. 하와이는 그런 섬이었다. 처음부터 친근하게 뭐든 다 보여줄게, 하고 말하는 것처럼." 요시모토 바나나의 문장처럼 하와이에서 지낸 지난 5일간, 나 또한 그저 하와이 리듬에 몸을 맞춰 숨쉬고 움직였을 뿐이다. 그리고 하와이는 그만큼의 환대로 텅텅 빈 가슴을 채워줬다. 서울에 돌아와서 빡빡한 일정에 또다시 마음이 급급해질 때마다 하와이에서 보낸 기억을 떠올리며, 조금은 여유로워지자 다짐해 본다.

editor 김나래 photo 안형준,ALI KAUKAS,KATE HARRIS,COURTESY OF HALEKULANI(www.halekulani.com),O'AHU VISITORS BUREAU(www.visit-oahu.com), WANDERLUST FESTIVAL(oahu.wanderlustfestival.com) DESIGN 하주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