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로의 시간여행, 로텐부르크의 잠들지 않는 크리스마스

 

 

첫눈이 내리고 라디오에서캐럴 음악이 흘러나오면 누구라도 마음이 들뜨기 시작한다. 그건 우리에게 크리스마스가 늘 함께 하지 않기때문일지도 모른다.아쉬운 추억들을 뒤로 하고 우린 다시 1년이 지나야 새로운 성탄의 낭만을 나눈다. 하지만 독일 남부 로만틱 가도에는 1년 중 언제라도크리스마스를 즐길 수 있는 마을이 있으니 그곳은 바로 로텐부르크옵 데어 타우버 Rothenburg ob der Tauber!

독일어로 '붉다'는 뜻의 로트(Rot)와 '성'이란 뜻의 부르크(Burg)를 이름으로 쓰는 이 작은 도시. 여행자들은 아우토반에서 멀리 성체가 보이기 시작할 때부터 왜 이도시를 붉은 성이라 부르는지 금세 깨닫게 된다.

유럽에 남아있는 중세의 마을 중 가장 전형적인 성체의 발전과정과 형태를 보존하고 있는 곳으로 역사적 가치가 높은 로텐부르크는 독일 로만틱 가도(로만티쉐 슈트라세) 여행의 정점이다.로만틱 가도란 로마로 가는 길이란 뜻이다.독일 국토의 중남부를 관통하며 중세 프랑크푸르트와 같은 무역의 거점 도시를 출발한 상인들 또는 성지 순례자들이 지나던 뷔르츠부르크, 로텐부르크, 퓌센을 이은 길인데, 이들 도시는 남부 독일 특유의 붉은 지붕과 동화 속에서나 나올듯한 전통 목재 가옥들이 사랑스러워 낭만가도라고도 부른다.

천천히 걸어도 20분이면 성체를 횡단할 수 있는 규모의 마을이지만 골목을따라 여유있게 거닐며 오랜 세월 성체의 이야기들을 찾아다니다보면 중세로의 시간여행은 빠르게 지나간다. 프랑켄 지방의 음식과 와인, 바이에른의 맥주를 맛보며 성벽과 골목을 따라 그 흔적을 남긴30년 전쟁이야기도흥미진진하다. 옛 시청사 종탑에 오르거나 부르크가르텐에서 타우버 골짜기의 경치를 바라보는 것도 좋지만 오늘 소개할 로텐부르크의 명소는 크리스마스 마을 속 또 하나의 크리스마스 마을'케테 볼파트 Käthe Wohlfahrt'이다.

마을 중심에 있는 마르크트플랏츠(시장이 열리는 광장)에서 시청사를 끼고돌면 과거 이 마을에서 가장 유력한 가문들이 살던 길인 헤른가쎄가 나온다. 유럽에서 가장 잘 알려진 크리스마스 장난감 가게는 바로 이 골목의 출발점에 자리잡고 있다.매일 가게 앞을 지키고 서 있는 빨간 선물트럭이 쉽게 그 위치를 알려주며 여행자들의 발길을 이끈다.

입구에 들어서서 수 십마리의 동물 인형들이 바삐 움직이며 일상을 보내는 귀여운 마을모형을 발견했다면 크리스마스 마을이 시작된 것. 여기까지만 사진 촬영이 허용되고 내부는 사진과 비디오 촬영이 일체 금지된다. 특별 허가를 통해 촬영된 사진들과 함께 '케테 볼파트'의 내부를 전격 공개해볼까?

밖에서 볼 땐 이렇게 넓은 공간이 건물 내부에 펼쳐져 있으리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이나 그 규모와 전시품들의 종류가 방문자들을 압도한다. 미로처럼 구불구불 이어진 복도와 계단을 따라 독일 남부에서 생산해내는 크리스마스 장난감들의 향연이 펼쳐진다.

크리스마스트리장식은 언제부터 시작되었을까?
1600년 이후부터 독일에서는 점차 귀족들과 중산층 가정 사이에서 크리스마스트리를 꾸미기 시작했다. 그 무렵 트리 장식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밀랍으로 만들어진 양초는 값이 매우 비싸 부유층 사이에서만 사용되었다. 1807년 나폴레옹의 동생인 제롬이 크리스마스트리에 값진 선물들을 장식한 이후 성탄카드나 과자, 선물 등으로 나무를 꾸미는 것이 유행처럼 번진다. 특히 남부 독일 티롤지역이나 검은 숲 지역은 전통적으로 목재를 가공하는 기술이 좋아 수공예 목재 장식이나 깃털, 종이를 말아 만든 장난감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졌다.

크리스마스 장식이 독일에서 유난히 발전한 데에는 몇가지 이유가 있다.

먼저 혹독한 겨울을 보내기 위해 독일의 마을들은크리스마스 마켓을 필요로 했다는 점이다. 따뜻한 벽난로가 안에서 타오를 것만 같은 장난감 목조 가옥을 바라보고 있노라면그 추운 시절 마음만이라도 따스해지지 않았을까?하는 생각이 든다. 마을 사람들이 함께 모여 글뤼바인(뜨거운 와인)과 계피향의 구운 과자를 즐기는 사이 마켓은 자연스레 장식품이나 초,장난감 선물을 구입하는 곳으로도 발전하게 되었다.

독일인 특유의 동화적인 세계관도 꼽을 수 있는데 연간 전통 축제를 즐기는 독일사람들의 순박함과 집집마다 정원 위에 놓아 두길 좋아하는 난쟁이 조각상들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된다.

여기에 독일의 장인정신과 손재주를 빼놓을 수 없으니 큼직한 그들의 손에서 펼쳐지는 놀라운 솜씨가 뉘른베르크(로텐부르크에서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바이에른 제2 규모의 도시)와 인근 프랑켄 지방의 도시를 장난감의 도시로 알려지게 했다.

↑ 출처: 로텐부르크 크리스마스 박물관

↑ 출처: 로텐부르크 크리스마스 박물관

높이가 8m에 이르는 회전 장식트리와 흰 눈으로 뒤덮인 크리스마스 마을 곳곳에 어떤 장난감들이 있는지 살펴볼까?

티롤지방의 전통 복장을 입고 곰방대를 들고 있는 나무 인형들은 호두까기인형과 함께 자주눈에 띈다. 겉보기엔 귀여운 장난감에 불과할 것 같지만 알고보면 재미있는 기능이 숨어있다. 인형의 아랫부분을 분리하면 내부에 작은 향초 받침이 숨어 있다.

여기에 작은 향을 올려두고 불을 붙이면 이 곰방대 인형은 입에서 연기를 뿜으며 실내의 방향장치 역할을 톡톡히 한다.

그밖에도 눈을 끄는 장식품과 인형들의 향연은 끝이 없으니 잠시 둘러보고 나올 생각으로 크리스마스마을에 들어간 친구를 기다리려거든 어딘가에서 슈니발(Schneeballen: 눈덩이 모양의 로텐부르크 전통과자)에 커피 한 잔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길 권한다.

나누어줄 선물이 이렇게 많으니 로텐부르크의 산타클로스는 할일도 많았겠다.
여기서 잠깐, 독일의 산타클로스에 대해 알아볼까?
독일의 산타클로스는 다른 이름을 가졌으니 성 니콜라우스라한다.
그의 기원은 니콜라우스란 이름을 가진 두 명의 인물과 관련되어 있는데 첫번째 인물은 미라(서아시아의 고대 도시) 지방의 주교로 4세기에 살았던 인물이며, 또 한명은 수도원장으로 564년에 죽었던 인물이다. 두 인물의 캐릭터가 하나로 합쳐지는 과정을 거쳐 12월 6일을 성 니콜라우스 축일로 지키던 유럽의 나라가 많았다. 가난한 어린이들을 위해 선물을 나누어주었다는 니콜라우스 성인의 선행을 기린 것이다. 니콜라우스는 그의 시종인 루프레히트와 함께 다녔는데 원래 그는 심술궂은 아이들을 혼내주기 위해 아래 사진과 같이 회초리와 자루를 들고 다녔다.

그 뒤 1825년부터독일권에서는 '피가로의 결혼' 공연을 통해그 캐릭터가 굳어지며 니콜라우스는 크리스마스 아버지Father Christmas로도 불리며 전 유럽으로 펴져나간다. 산타클로스란 이름은 신대륙으로 간 네덜란드 사람들에 의해 변형된 것으로 알려져있다. 정리하자면 독일에서 선물을 주고받는 풍습은 크리스마스 이브가 아닌 12월 6일 또는 그 하루 전날 밤이며, 털북숭이에 자루를 짊어진 니콜라우스의 모습은 그의 하인이었던 루프레히트의 모습이 전해진 것. 훗날 코카콜라의 홍보전략에 의해 이제 니콜라우스의 옷은 붉은색으로 바뀌어 우리에게 각인되었다.종교개혁이 거세지며 니콜라우스 축일을 비롯한 성인들을 기리는 축일이 독일의 많은 도시들에서 거부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자녀들도 1535년 니콜라우스의 선물을 받았다고 전해진다. 아이들의 동심에 니콜라우스의 추억을 심어주고 싶은 아빠의 마음은 500년 전루터에게도 별반 다르지 않았나보다.

부르크가르텐 위에 꽃이 피고 그 위에 거침없이 누워 휴식을 갖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내 카메라 렌즈에 들어왔다. 이토록 한가한 로텐부르크에서도 어김없이 5월 말이면 '마이스터트룽크'축제가 성대하게 개최된다. 30년 전쟁이 한창이던 1631년 성을 함락시키는데 성공한 구교측의 육군원수 틸리(Tilly)는 다음날 해가 뜨면 거센 대항전으로 로텐부르크를 지켜내던 성 내의 신교도들을 죽이고 마을을 불태우라 명령했다.틸리 장군은 그날 저녁 내내 승리의 술잔을 기울였다고 한다. 프랑켄 와인의 매력에 흠뻑 빠져들었었는지 그는 기분 좋게 취해 특별한 제안을 한다. 이미 그의 나이도 칠순을 넘어섰으니 어쩌면 과거 젊음의 혈기로 독일의많은 도시들을 정벌하며 지나온 세월의 무상함을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그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있는 도시의 대표들을 향해 말한다. "누군가 내가 따라 준 와인을 한번에 들이킬 수 있다면 나는 이 성을 불태우지도 않고 신교도들을 모두 죽이라 명했던 말도 거두어들이겠다." 그리고는 커다란 통에다가 와인을 따르기 시작한다. 그 양은 3.25l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때 나서서 그 술을 들이킨 이가 전임 시장이었던 '게오르그 누쉬'였다. 이날의 거대한 '원샷'으로 도시를 구해낸 누쉬는 3일간 잠자리에 들고난 이후에야 겨우 해장을 했다고 전해지며 시민들은 매년 5월에 민중 축제를 열어 이 역사적인 날을 기념하고 있다.

'위대한 들이킴'이란 뜻의 마이스터트룽크 축제는 올해 5월 22일부터 25일까지 열렸다.

↑ 마이스터트룽크 축제가 열리는 역사의 중심 시청사와 연회관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로텐부르크로 향하는 이 여행길에서 오전에 먼저 들르는 여행지는 여행자들에게 조금은 생소한 도시'젤리겐슈타트 Seligenstadt'이다.

잘 알려져 있는 관광도시가 아닌 이 마을은 막상 둘러보면 숨겨진 여행지로의 매력이 가득한 인구 2만여 명의 작은 도시이다. 특히 1200년 전부터 이 자리를 지키고 있던 베네딕트 수도원의 정원은 사과, 배, 포도, 무화과, 홉(맥주의 원료)을 비롯해 각종 작물들이 가꾸어지며 근면한 자급자족을 일구던 수도원의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5분에 한 차례씩 마인 강을 건너는 연락선이 다니는 강 건너 옆 마을은 하나우라는 도시로 이곳은 18세기 말 그림형제(야콥 그림Jacob Grimm/ 빌헬름 그림Wilhelm Grimm)가 태어나 자란 곳이다. 젤리겐슈타트에서는 마인 강가와 수도원, 역사지구를 거닐며 그림형제의 이야기와 독일 동화이야기, 독일인들의 일상을 이야기 나눈다. 그림 형제가 독일 땅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며 수집해 세상에 내놓은 동화들 중에는 백설공주, 잠자는 숲 속의 공주, 헨젤과 그레텔, 개구리 왕자, 브레멘 음악대, 라푼젤, 하멜른의 피리 부는 사나이 등이 있다. 이처럼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독일 민담의 기원과 동화라는 테마는 크리스마스와 함께 로맨틱가도가 이어진 도시들 곳곳에 잘 녹아있는 듯하다.

'로만틱 로텐부르크'투어에 참석한 여행자들은 이 낯선 도시를 향하는 아침이면 여행책자에도 거의 소개되지 않는 곳을 방문한다는 것에 조금은 의아해하다가도 전통 목조건축물들이 즐비한 구시가지의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연신 카메라에 마을의 아름다운 모습들을 담아내기 바쁘다. 이 작은 도시는 특히나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거의 파괴되지 않은 구시가지를 보존하고 있기에 더욱 특별한 매력을 뽐내는 곳이다. 골목 구석구석 집을 지어나가던 옛사람들의 아름다움에 대한 추구, 건물의 세심한 구조와 골목이 이루는 조화를 보고 있노라면 분명 독일인들은 예부터 자신들이 사는 집과 마을 그 자체를 스스로의 정체성으로 여기며 중요시했음을 알게 된다.

시청사가 서 있는 마르크트플랏츠에서는 매주 수요일마다 재래시장이 열리고 토요일이면 와인 축제를 방불케하는 왁자지껄 이웃 주민들과의 만남이 가능한 장이 선다. 이 광장에서 불과 100m도 떨어지지 않은 곳에 올해로 271년 역사를 가진 맥주 양조장이 있으니 그 이름은 '글랍스브로이 Glaabsbräu' 이다.

현재까지 글랍Glaab이란 성을 가진 가문이 경영하고 있는 가족기업 형태의 양조장으로 남부 헤센 주에서는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한다. 독일에서도 오직 젤리겐슈타트 인근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전통 양조장의 신선한 맥주를 맛본 여행자들은 진짜 맥주의 순수함이 무엇인지 체험해볼 수 있다.

프랑크푸르트에서 출발해 아우토반을 따라 로맨틱 가도로 향하는 하루 여행. 젤리겐슈타트의 마인 강가 역사지구를 지나 로텐부르크의 성벽길을 산책하기까지 펼쳐지는 놀라운 동화의 세계, 초여름 가장 아름다운 중세로의 시간여행을 떠나보는 건 어떨까?

▶ 중세로의 시간여행, 로만틱 로텐부르크투어 미리보기

글쓴이 김원호 가이드는..

대학에서 영화를 전공한 후 독일에서 7년째 살고 있다. 독일과 독일인을 오래 바라보며 독일에 대한 애정을 갖게 되었고 그 애정을 바탕으로 여행자들에게 독일의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고 있다.매일같이 여행자들과 함께 아우토반을 달리는 유로자전나라 독일지점의 지점장이자 가이드로 활동하고 있다.

제공 : 유로자전거나라

관련여행 : 유로자전거나라 로만틱 로텐부르크 투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