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를 제패하고 대제국을 세웠던 원대한 기상과 여유 그리고 혹독한 환경 속에서도 결코 버리지 않는 인간 존중의 따뜻함이 공존하는 땅, 몽골. 그곳으로의 여행은 두고두고 떠올릴 그리움의 시작이다
1 그림 같은 몽골의 초원과 가축들. 2 말과 함께 세계를 제패했던 민족답게 몽골인들이 특히 아끼는 가축이 바로 말이다. 3,4,5 몽골의 초원에는 에델바이스(3)를 비롯한 들꽃들이 가득하다. 6 어머니의 바다라고 불리는 홉스굴 호수.
나는 몽골에서의 삶과 여행을 늘 그리워한다. 몽골에서 살며 그들 언어를 배우고, 풍습을 익히고, 함께 먹고 자며 지낸 시간이 언제나 그립다. 고비의 황무지와 홉스골 호수, 테를지 국립공원, 다르항 가는 기찻길에서 보던 게르(천막집)가 눈에 선하다. 초원에 셀 수 없을 만큼 많이 피어 있던 에델바이스도 ‘소중한 추억’을 더한다. 몽골 초원에서 눈으로 보던 바람도 눈앞에 어른거린다. 멀리서 다가오는 바람은 ‘휘’ 소리와 함께 초원의 풀을 눕히며, 볼을 애무하고 지나갈 때 사람의 눈에 흔적을 남긴다. 휘휘한 겨울밤엔 사각사각 눈 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마치 귀뚜라미가 날개를 비비대는 소리처럼 들린다. 여름밤에는 은하수가 내를 이루어 흘러가듯 하늘을 가로지르고, 초원의 밤에는 유성우가 마구마구 떨어져 바구니에 밤하늘의 별을 가득 담을 수 있을 것 같다.
언제나 그리운 몽골에서의 시간들
지나가는 나그네를 무작정 불러들여 아이락(일본인이 마유주라고 잘못 번역했음)을 권하는 몽골 노인의 순수한 인심이 생각난다. 길을 잃을까 봐 떠나가는 손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 문 밖에서 기다려주는 주인의 인정도 그리워한다. 혹시라도 길을 잘못 들면 말을 타고 한나절을 달려와 바른 길을 알려주고 가는 젊은이의 친절함도 잊지 못한다. 가다가 배가 고프면 먹으라고 귀한 아롤(유제품)을 싸주던 주인 여자의 손길도 아련하게 떠오른다. 가난하지만 함께 살아야 한다는 칭기즈칸 때부터 내려오는 인간 존중의 삶이다. 모든 일에서 인간이 중심이고, 그 밖의 것들은 모두 인간에게 도움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생각도 참 좋아했다. 밤이면 달빛 아래 둘러앉아 수수께끼를 풀고, 우리의 밤 윷놀이처럼 샤가이(양의 복사뼈)를 던지면서 놀던 때도 그립다. 고비를 달리는 낙타의 거친 숨소리엔 위대한 몽골인의 천 년 역사가 녹아 있고, 므릉에서 홉스골 호수로 가는 산길에서 본 늑대의 날카로운 눈빛에선 몽골인의 기상을 느낀다. 국내선 여객기의 프로펠러 소리와 겹쳐지는 뚱뚱한 몽골인의 넓은 가슴도 나에겐 인상적이었다. 분초를 다투며 사는 우리와 달리 모든 약속 시간을 “마르가시(내일)”란 말로 넉넉하게 잡는 그들의 생활이 여유롭고 정겨웠다. 조금 안다고 아는 체하지 않고 겸손을 담아 “미트구이(모른다)”라고 정확하게 답하던 소녀의 얼굴에 낀 홍조가 노을에 오버랩 된다. 조금만 있어도 덜 가진 자를 온갖 짓으로 억누르고 모욕하는 ‘갑질’에 신물이 나 여행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거침없이, 아무것도 없지만 당연한 듯 “바학구이(없다)”라고 말하는 그들이 더 당당하다. 가진 것보다 더 큰 자존심과 세계를 제패했던 영광을 지닌 그들이 더 원대한 꿈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겨울처럼 혹독한 몽골의 경제 위기,
서로에게 가장 좋은 것은 바로 여행
올해가 몽골로 여행 가기 가장 좋은 해일 것이다. 우리도 경험했던 외환 위기로 몽골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얼마 전에는 몽골도 우리 국민이 나섰던 ‘금 모으기’와 비슷한 운동을 시작했다. 국민 모두가 고난을 극복하기 위해 팔을 걷고 나섰다. 1990년 개방 이후 어려운 적도 있었지만 대체로 성장을 이어오던 몽골 경제가 최근에 자원의 국제 가격이 하락하면서 어려움에 처했다. 1달러라도 더 필요한 그들에게 도움도 줄 수 있고 높아진 달러 가격으로 효율적으로 여행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와 같이 몽골 반점을 가진 그들이 고난과 어려움을 이겨나가도록 도와주는 사랑이 필요하다. 몽골인은 4계절 이야기를 자주 한다. 혹독한 기후와 맞서 살며 얻은 지식 때문이리라. 봄과 관련해 몽골인은 “설날 다음은 봄”이라는 말을 즐겨 사용한다. 또 “변덕 심한 어린 여성 같은 날씨”라고도 말한다. 설날 무렵 기온은 영하 30℃ 이하로 내려가며 ‘세계 여성의 날’인 3월 8일에도 최저 기온은 영하 20℃를 밑돈다. 그럼에도 봄을 노래하는 것은 긍정적인 삶을 살겠다는 몽골인의 다짐이다. 지금부터 우리는 봄을 즐길 준비를 하지만 몽골의 봄은 아직도 멀리에 있다. 이 무렵 기후의 변화는 엄청 변덕스럽다. 저장해둔 식량도 거의 동나 가축에게서 새 젖을 짤 때까지 몽골인의 삶은 정말 팍팍하다. 보릿고개를 경험하지 못한 세대에게는 실감이 덜하겠지만 이때가 몽골에서는 ‘젖고개’이다. 몽골인이 가장 좋아하는 계절, 여름에는 몽골 어디를 가나 풍요롭다. 가는 곳마다 먹을 것이 그득그득 쌓여 있고 가축은 통통하게 살지고, 물산은 넘쳐난다. 집집마다 가축의 젖을 짜서 만든 유제품이 그릇마다 가득하다. 이때는 남녀노소를 가리지 않고 모두 생산에 동원된다. 7월 중순에 3일을 쉬는 이 나라 최고의 축제 ‘나담’에는 모두가 맘껏 즐긴다. 낯모르는 사람이 찾아와도 집집마다 아이락을 한 사발씩 내놓는다. 어디를 가나 사람이 넘쳐 교통편과 숙박시설을 찾기 어려운 계절이다. 이때는 초원에 생기가 가득하다. 한편으로는 ‘화무십일홍’을 잘 알아 혹독한 겨울을 대비하는 유목민의 손길이 매우 바빠지는 시간이다. “나담 이후 가을”이라는 말이 있어 생산을 독려한다. 기나긴 겨울을 날 채비를 서두르고 가을의 끝자락에는 살찐 양을 잡아 집집마다 갈무리한다. 겨울이 되면 몽골인들이 표현하는 “81일간의 길고 혹독한 겨울”을 넘겨야 한다. 황소 뿔이 얼어서 부러진다는 추위가 올 때면 초원의 모든 것이 얼어붙는다. 하지만 생명은 질겨 그 혹독한 기간에도 양들은 앞발굽으로 눈을 헤쳐 부썩 마른 풀잎을 뜯어 먹으며 견딘다.
인구 증가 정책의 일환인 공녀에 얽힌 이야기
역사 이래 몽골족은 인구 증가가 최우선 정책이었다. 힘이 있을 때는 인구를 증가시키기 위해 점령국에서 아이를 생산할 수 있는 공녀를 받아들였다. 그에 얽힌 이야기도 참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기황후와 한나라 왕소군 이야기를 들 수 있다. 기황후는 고려 여인이 원나라에서 황녀까지 올랐던 것으로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여기서 유래한 것이 ‘환향녀(還鄕女)’ 이야기란다. 환향녀가 음이 변해 ‘화냥년’이 되었다고들 말한다. 한편 중국의 4대 미녀 중 한 명인 왕소군은 한나라 궁녀였다. 그녀는 미모가 특출했고 성품도 온화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나라는 몽골족과 화친하는 외교 수단으로 궁녀를 보내기로 약속했고 초상화를 보고 간택하는 관례에 따라 그녀가 낙점되었다. 그런데 이때의 선발이란 미녀를 뽑는 것이 아니라 일종의 추녀 경쟁이었는데, 미모의 왕소군이 선발돼 황실이 발칵 뒤집혔다. 초상화를 그리던 화공들이 뇌물을 받은 궁녀들의 얼굴은 곱게 그리고 뇌물을 건네지 않은 궁녀들은 아무렇게나 그렸던 것이다. 왕소군이 몽골로 떠나기 전 인사차 황제를 찾아온 날 황제가 왕소군을 보고는 기겁을 했다. 눈이 부실 정도로 아름답고 단정한 용모였다. 남에게 주자니 아깝고 갖자니 부담되는 그런 여인이 아니라 품에 안고 있기도 아까운 여신 같은 궁녀였다. 눈물을 흘리며 떠나는 왕소군을 인계하는 황제의 가슴은 찢어졌고, 왕소군이 오히려 황제를 위로해야만 했다. 왕소군이 떠난 뒤 황실에는 피바람이 불었다. 뇌물을 받고 그림을 그린 화공은 물론, 그동안 황실에서 자행된 뇌물죄를 다 밝혀냈다. 왕소군의 무덤과 동상은 내몽고 자치주의 수도인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 외롭게 서 있다. 그녀는 죽어서도 고향의 푸른 초원을 잊지 못했다. 비록 몸은 메마른 내몽고 땅에 묻혔지만 무덤에는 푸른 풀이 돋아난다고 한다. 그래서 무덤 위의 정자 이름도 ‘청총각’이다.
1 유목민인 몽골인들에게 가축은 무엇보다 귀중한 재산이다. 2 테르힌차강노르 캠프. 3 우리와 비슷한 몽골 전통 씨름. 4 고비 사막을 가로지르는 낙타들.
'♡ 사 진 ♡ > 세계여행가이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살고 싶은 곳과 여행하고 싶은 곳, 그 사이 어딘가 쿠바 (0) | 2017.03.31 |
---|---|
잉카의 심장부..페루 '신성한 계곡' 초간단 정리1 (0) | 2017.03.30 |
[박윤정의 웰컴 투 발트3국] 노래혁명으로 전 세계 감동시킨.. 작지만 강한 나라 (0) | 2017.03.27 |
잉카 이전의 문명, 차빈(Chavin) 유적지를 가다 (0) | 2017.03.09 |
시간이 멈춘 도시,쿠바 뜨리니다드 (0) | 2017.03.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