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페루의 속살 우아라즈2(http://www.hankookilbo.com/vv/51fbdd669d4f46f4b3269d2c6d374118/4)에서 이어집니다.
오늘의 투어 갈무리
투어명 : 차빈 데 우안타르(Chavin de Huantar)/라구나 데 케로코차(Laguna de Querococha)
대표 코스 : ①라구나 데 케로코차(Laguna de Querococha) > ②투넬 데 카우이쉬(túnel de Cahuish) > ③차빈 데 우안타르(Chavín de Huántar)
차빈 가는 길.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페루편이 있다면 이 정도가 아닐까?
라구나 데 케로코차로 가는 길, 평온한 대초원과 뾰족한 설산의 대비다. 팜파 데 부에노스 아이레스(Pampa de Buenos Aires).
캄포 산토 데 융가이를 나선지 10분쯤 되었을까. 투어 버스가 멈춰 섰다. 말 그대로다. 엔진이 구역질을 해대듯 털털대더니만 결국 급정거했다. 남미에선 그다지 대수롭지 않다. 해결책이 나올 때까지 별을 헤아리거나 길바닥에서 과감히 화장실 용무를 보거나 다른 기다림의 방식을 택했다. 본의 아니게 늦어진 저녁 식사는 중국 음식. 왕실 급 음식을 대접한다는 뜻의 중국음식점, 치파 디나스티아(chifa Dinastía)에서다. 음식으로 우아라즈를 기억할 만큼 맛과 양, 질에서 실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여정이 낳은 허기와 고산 지역의 추위는 기름기로 격하게 위로 받고 있었다.
동네 전체가 정전이 난 상황에서도 비상전력으로 풀 가동되던 치파 디나스티아. 물개박수를 치고야 말았다.
우아라즈가 위치한 안카쉬 주엔 산 만큼 호수도 많다. 옥 빛 오아시스로 소문난 라고 69(Lago 69), 전문 등반가에게나 어울리는 라구나 추루프(Laguna Churup) 등 손에 꼽히는 호수만도 예닐곱이다. 꼭 인간과 같다. 어느 하나 같지 않고 밉지 않다. 호수의 얼굴도, 성격도, 품도 다르다는 걸 우아라즈는 가르친다.
둘째 날의 첫 코스도 라구나 데 케로코차(Laguna de Querococha) 호수였다. 초행길이 주는 감동은 언제나 싱싱하다. 도심에서 벗어난 아스팔트 길은 산속으로 뻗어나갔다. 설산을 왼쪽과 오른쪽에 번갈아 두고 구불구불, 마음은 길쭉길쭉 늘어났다. 길은 대초원의 수평적 무한함과 설산의 수직적 리듬이 변주했다. 설산에 가까이 더 가까이, 눈을 깜빡이는 시간조차 아까운 환상의 질주다.
“어, 어, 와!”
감성 충만한 탄성과 함께 동승한 여행객의 눈이 왼쪽 창가에 붙었다. 라구나 데 케로코차는 그 누구도 예측하지 않았을 때 기습적으로 등장한다. 푸카라유(Pucaraju)와 야나마레이(Yanamarey) 산 앞으로, 햇빛은 호수에 은빛 구슬을 만들고 있었다. 해발 3,980m, 남성성이 물씬 풍기는 참 잘생긴 호수다. 신비한 자연에 스토리를 넣기 좋아하던 선인은, 이곳 호수 절벽의 푹 꺼진 지형을 페루의 지도 모양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설산의 기개가 충만하다. 설산은 나와 세상을 감정하듯 내려다보고 있었다. 내내 간담이 서늘했다.
우아라즈에서 라구나 데 케로코차로의 드라이브, 설산과 대초원의 랑데부.
호수를 둘러싼 잘생긴 환경에 매혹되는 호수, 라구나 데 케로코차.
침식 작용으로 자연 발생한 지형은 (애써 말하자면) 뚱뚱한 페루 지도 정도 되겠다.
그 길을 따라 다시 달렸다. 가이드는 종착지가 오늘의 하이라이트인 차빈 데 우아타르(Chavín de Huántar) 유적지임을 밝히고 서둘러 착석했다. 왜? 살기 위해서임을 뒤늦게 깨달았다. 호수와 유적지를 잇는 미명의 산길에 유일한 이름이 있다. 투넬 데 카우이쉬(túnel de Cahuish), 해발 4,516m에 떠있는 터널이다. 투어 버스는 하늘로 행진한 뒤 터널을 지나 예수상과 마주하자마자 고공 낙하한다. ‘아멘’을 외쳐야만 했다. 흡사 어린아이가 산등성이에 제멋대로 그린 길 같다. 타이어 아래 낭떠러지, 창문 옆 산비탈이다. 무지막지하게 자연을 밀어버리는 인간의 광기는 불가능한 듯 보였다. 자연에 고분고분 순응한 길이다. 구릉을 무규칙으로 채운 다랑논의 한가운데에 불시착한 듯 마을이 보였다. 잉카 이전의 문명, 차빈(Chavín)이 발 아래였다.
터널을 지나자마자 공포의 드라이브를 예감하는 전조. 곧 신을 찾게 된다.
볼 수도 없고, 안 볼 수도 없고. 차 시트에 껌 딱지처럼 붙거나 앞 좌석 등받이에 얼굴을 파묻거나.
0 영화 ‘모터사이클 다이어리’의 페루 편. 아이가 끼어 있다.
차빈은 안데스 북부 고산지대에서 강성했던 선사시대 문명이다. 두 개의 강을 젖줄로 한 모스나(mosna) 협곡에 터를 잡았다. 자연유산이 차고 넘치는 곳이다. 기원전 900년 즈음 세워진 차빈 데 우아타르는 차빈의 종교와 정치를 주관한 유적지다. 차빈 박물관(Museo Nacional Chavín)에서 실제와 재연 유물로 기본 지식을 쌓은 뒤 바로 현장 답사에 투입됐다. 아, 시대적 간극이여. 지도는 능선 아래 3개의 광장을 두고 여러 신전이 에두른 모양새로 표시하고 있지만, 육안으로는 어제 본 듯한 바위요, 돌덩이다. 그럼에도 세월의 승자도 있다. 신전 내 란존(El Lanzón)처럼 동물과 인간을 융합한 신을 상징화한 돌 조각은 명징하다. 여기서 페루는 지혜로운 조상의 후손임을 찾고 있었다. 저지대와 고지대의 경작물을 모두 얻는 지리적 위치, 빛과 통풍까지 고려한 설계, 우기에 대비한 배수 시스템 등 여러 증빙을 내걸며 오늘도 그 시대를 역추적 중이다.
대략적인 위치만 던져주는 유적지. 박물관 내 소장 유물과 비교, 상상하는 기술을 요한다.
신전 내는 앞사람 꽁무니를 따라다니게 하는 스산한 기운의 키 낮은 미로.
동물인가, 사람인가. 차빈을 대표하는 신을 상징화한 란존. 차빈 데 우아타르는 신탁을 받는 장소이기도 하다.
오직 버스의 ‘쌍라이트’에 의지해 고개를 넘어 돌아왔다. 먼 과거로부터 현재로, 눈에 붕대를 감고 달리는 길이다. 3시간여 걸려 도착하니 오후 8시 30분. 내일의 투어는 호흡 곤란을 일으킬 거라 엄포를 들은 네바도 파스토루리(Nevado Pastoruri) 트래킹이 끼어 있다. 마침표 없는 기나긴 하루였다.
강미승 여행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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