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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윤정의 웰컴 투 발트3국] 노래혁명으로 전 세계 감동시킨.. 작지만 강한 나라

거울속의 내모습 2017. 3. 27. 22:43

겨울의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면 성 바오로 교회부터 여명으로 물든다/아침을 맞는 역동적인 도시 풍경/세계서 손꼽히는 IT 강국/소비에트연방서 독립을 위해/1991년 국민 200만명이 600km 인간띠로 하나가 됐다

 

라크베레성은 13세기 독일 기사단들이 건설한 성으로 요새 같은 중세 성곽의 형태가 잘 보존되어 있다.

 

지난밤 국경선을 넘어 도착한 에스토니아는 온통 하얀 눈으로 뒤덮인 겨울왕국이었다.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어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는 타르투(Tartu)로 향하는 길은 소복이 쌓인 눈으로 포근하게 잠들어 있었지만, 시내로 접어들자 밝고 경쾌한 대학도시답게 활기에 넘쳤다. 시내 곳곳에 눈길을 끄는 재미있는 조각상들이 서있고 작은 바와 카페는 사람들로 북적거려 추운 날씨와 흰 눈을 무색하게 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시청 앞 광장의 ‘키스하는 학생상’이었다. 눈으로 뒤덮인 분수대 위에서 젊은 연인이 우산을 쓰고 열정적인 키스를 나누는 이 동상은 젊음이 넘치는 타르투를 상징하는 듯했다.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이 있어 창의적이고 과학적인 문화를 지니고 있는 에스토니아 타르투의 야경.


에스토니아는 발트 3국 중 가장 북쪽에 있어 북유럽에 가까운 문화를 지니고 있으며 빙하의 영향으로 낮고 평평한 지대 위에 있다. 북쪽과 서쪽은 발트해에 닿아 있으며 동쪽으로는 러시아, 남쪽으로는 라트비아와 접경을 이룬다. 발트 3국과 함께 1940년 소비에트연방에 편입된 에스토니아는 1991년 노래혁명으로 불리는 평화적인 시민혁명을 통해 독립을 쟁취했다. 당시 리투아니아 빌뉴스에서 에스토니아 탈를 잇는 600㎞는 독립을 노래하며 손에 손을 맞잡은 200만 시민의 인간띠로 하나가 됐다. 이들의 독립에 대한 열망은 세계인들에게 커다란 감동을 주었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뛰어난 20세기 아르누보 양식의 성스러운 건물 중 하나인 성바오로 교회


타르투의 이른 아침은 활기찼다. 직장과 학교를 찾아 분주하게 움직이는 사람들 사이로 여행객의 여유를 누리며 도시를 걷는다. 늦게 일어난 겨울의 태양이 서서히 떠오르면서 성바오로 교회가 붉게 물든다. 에스토니아에서 가장 뛰어난 20세기 아르누보 양식의 성스러운 건물 중 하나다. 대학도시답게 오래된 대학 건물과 공원 사이로 유명한 작가들의 조각상과 기념비들이 자리 잡고 있다. 공원 한쪽에 서 있는 아버지와 아들 동상이 이채롭다.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경하는 이상적인 부자의 모습을 담고자 했다고 한다. 짓궂은 낙서가 아쉬웠지만 하얀 눈에 파묻혀 서로의 손을 꼭 쥐고 있는 두 부자의 모습이 추운 겨울에도 외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들과 아버지가 서로를 인정하고 존중하는 이상적인 부자의 모습을 담은 조각상.


타르투에서의 짧은 일정을 마치고 떠오르는 햇살을 받으며 라크베레(Rakvere)로 향했다. 13세기에 지어진 성곽의 유적이 잘 보존된 라크베레는 휴양지와 농축산물로 유명한 조용한 농촌 도시다. 눈으로 뒤덮인 고속도로를 달리던 중 언덕 눈밭 위에 커다란 물소가 당당한 모습으로 서 있는 것이 보였다. 라크베레를 상징하는 ‘타르바스’라 불리는 물소 동상이다. 

 

2002년 도시 건설 700주년을 기념하여 만들어진 물소상은 높이 3.5m, 너비 7.1m의 크기로 두 뿔을 높이 세우고 의연하게 서 있었다.

 

 


물소상을 지나쳐 라크베레성(Rakvere Castle)에 다다랐다. 13세기 독일 기사단들이 건설한 성으로, 요새 같은 중세 성곽의 형태가 잘 보존돼 있다. 성 주위로 누군가가 발자국을 찍어 놨다. 나 역시 넓은 눈밭에 한 발짝 한 발짝 내딛는 발자국으로 한글 단어를 써놓고 기념 촬영을 했다. 눈밭에서 노닐어서인지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한참 시간을 즐기다 관광안내소가 위치한 중앙 광장으로 들어섰다. 중앙 광장에는 라크베르 관광안내소가 있다. 관광객을 위한 안내 서비스를 제공하기도 하지만 기념품과 작은 선물을 구입할 수 있었다.

 

라크베레는 13세기에 지어진 성곽의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고 휴양지와 농축산물로도 유명한 조용한 농촌 도시다.


성 내부에는 독일기사단의 당시 활동 모습과 라크베레의 역사를 볼 수 있는 전시물 등 다양한 볼거리가 전시돼 있었다. 고문하는 모습 등 중세의 잔인함이 익숙하지는 않지만 수백년 전을 엿볼 수 있었다. 라크베레성 근처에는 19세기 말 마을 주민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볼 수 있는 시민의 집 박물관도 있다. 라크베레는 다른 도시와 달리 2004년에 현대적인 도심이 완성되기 전에는 소박한 시골 마을이었다.

 

 


마을 광장에는 내가 좋아하는 현대 작곡가 아르보 패르트의 동상이 서 있다. 작곡가가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것을 기념하기 위해서 세워졌다. 아르보 패르트는 에스토니아를 대표하는 작곡가로서 합창곡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의 음악은 영화의 배경음악으로도 등장한다. ‘벤저민 브리튼을 추모하는 성가’는 마이클 무어의 ‘화씨 9/11’에서 테러 직후 장면의 배경음악으로 쓰였다.

 

소비에트 시대의 첫 국립공원인 라헤마 국립공원은 늪지대와 울창한 숲, 아름다운 호수로 이뤄져 있다.


라크베레에서 멀지 않은 탈린에 도착하기 전, 라헤마(Lahemaa) 국립공원에 들렀다. 소비에트 시대의 첫 국립공원인 라헤마 국립공원은 늪지대와 울창한 숲, 아름다운 호수로 이뤄져 있다. 또 발트해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해변, 석회암 절벽을 가르는 강과 폭포들이 유명하다. 특히 라헤마는 유럽에서 가장 중요한 삼림 보호 지역 중 하나이며 많은 동물이 살고 있다. 국립공원의 남쪽에 위치한 큰 숲은 사슴, 야생 멧돼지, 갈색곰, 살쾡이, 여우 등 야생동물의 서식지다.

 

눈으로 덮인 발트해의 아름다운 해안선과 해변.


특히 숲의 악동으로 천덕꾸러기가 된 에스토니아 비버도 이곳에 넘친다. 멸종위기 동물인 비버를 보호했는데, 개체수가 급격히 늘어났다고 한다. 강을 막고 댐을 건설하는 비버의 특성으로 한겨울에도 홍수 피해를 일으키고 토양 생태계에도 심각한 영향을 주고 있다. 에스토니아 정부가 다시 비버 사냥을 장려하고 있다고 하니 생태계 복원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국립공원 중심부에 있는 전통이 가득한 아름다운 팔름세 궁전은 13세기 덴마크인들이 지은 성곽에 있었다. 지금 모습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국립공원 중심부에는 전통이 가득한 아름다운 팔름세 궁전이 있다. 13세기 덴마크인들이 지은 성곽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 모습은 18세기에 지어진 것이다. 현재 에스토니아에 남아 있는 궁전 중 가장 아름답다고 한다. 공원 내 하이킹을 위해 조성된 나무 길을 걸으며 공기에서 느껴지는 맑은 에너지를 가슴 깊이 담는다. 맑은 공기를 품에 안고 다음 목적지인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으로 향했다.

 

 

여행가·민트투어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