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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소록도 천사 할머니 ,&2 우리는 모릅니다. 에티오피아가 우리에게 어떤 나란지.. .

거울속의 내모습 2016. 2. 12. 18:40

                              소록도 천사 할머니


△ 좌: 마리안느 스퇴거 수녀 △ 우: 마가렛 피사레크 수녀


얼굴이 문드러지고 손발이 잘려나가는 가장 끔찍한 병, 한센병
사람들은 한센인을 신조차 버렸다 하여 가까이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소록도에 그들을 가둬놓고 사람들에게 가까이 오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어린 사슴을 닮았다고 하여 '소록도'라 부른 전남 고흥의 외딴 섬은
1916년 한센병 환자들을 격리하면서 저주의 섬이 되었습니다.

그때, 지구 반대편 오스트리아에서 소록도를 찾은 두 천사가 있었습니다.
마리안느 스퇴거와 마가렛 피사레크 수녀입니다.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 국립간호학교 출신인
두 수녀는 기숙사 룸메이트였다고 합니다.

1959년 마리안느 수녀가 소록도에 첫발을 디딘 3년 후인
1962년 마가렛 수녀가 소록도를 찾았습니다.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꺼리던 한센인들을
고국 오스트리아 구호단체에 의약품 지원도 요청하며
마음의 상처까지 치료해 줬습니다.

환자들이 말리는데도 약을 꼼꼼히 발라야 한다며
장갑도 끼지 않고 상처를 만졌습니다.
오후엔 손수 죽을 쑤고 과자도 구워서 바구니에 담아 들고
마을을 돌았습니다.

소록도 사람들은 전라도 사투리에 한글까지 깨친
두 수녀를 '할매'라고 불렀습니다.
꽃다운 20대부터 수천 환자의 손과 발이 되어 살아왔는데,
지금은 여든 할머니가 됐습니다.

숨어서 어루만지는 손의 기적과, 보이는 선행 또한 조심스러워 하여
두 사람은 상이나 인터뷰를 번번이 물리쳤지만,
오스트리아 정부 훈장은 주한 오스트리아 대사가
섬까지 찾아와서 어쩔 수 없이 받았다고 합니다.

병원 측이 마련한 회갑잔치마저 '기도하러 간다'며 피했습니다.
두 수녀는 본국 수녀회가 보내오는 생활비까지
환자들 우유와 간식비, 그리고 성한 몸이 돼
떠나는 사람들의 노자로 나눠줬습니다.

또 한센인 자녀를 위한 유아원을 운영하는 등
보육과 자활정착사업에도 헌신하였습니다.

그랬던 두 수녀가 고령으로 인해 더는 봉사할 수 없게 되자
지난 2005년 40여 년간 머물렀던 소록도를 편지 한 장만 남긴 채 떠났습니다.
두 수녀의 귀향길에는 소록도에 올 때 가져왔던
해진 가방 한 개만 들려 있었다고 합니다.

'나이가 들어 제대로 일을 할 수 없게 되어 떠납니다.
이곳에 부담을 주기 전에 떠나야 한다고 동료들에게 이야기해 왔는데
이제 그 말을 실천할 때라 생각했습니다.'

'부족한 외국인으로서 큰 사랑과 존경을 받아 감사하며
저희의 부족함으로 마음 아프게 해드렸던 일에 대해 용서를 빕니다.'
는 내용이었습니다.

한센병 환우들의 아픔이 서린 섬을 희망의 섬으로 바꿔놓은 두 수녀.
상처로 얼룩진 사람들을 진정한 사랑으로 보살핀
하늘에서 보내준 천사였습니다.



두 분 수녀님이 소록도에 놓고 간 마음 고이 간직하겠습니다.
두 분의 헌신을 본받아 더 크게 나누고
더 많이 나누고 더 자주 나누겠습니다.
편견을 갖지 않고 두려워하지 않겠습니다.

비록 갚을 수 없을 만큼 큰 사랑을 나눠주셨지만,
봉사를 통해 작게나마 그 사랑에 보답하겠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오늘의 명언
헌신이야말로 사랑의 연습이다. 헌신에 의해 사랑은 자란다.
-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 -


= 따뜻한 댓글은 다른 가족님께 힘이 되는 소중한 글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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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모릅니다. 에티오피아가 우리에게 어떤 나란지..


1951년 4월 13일 에티오피아 아디스아바바의 Janmeda 광장에서 열린 출정식.
위기에 처한 나라를 돕기 위한 강뉴부대 파병 출정식이었습니다.

그들이 돕고자 하는 나라는 다름 아닌 대.한.민.국!
약한 나라의 서러움을 너무나 잘 아는 그들은
6.25 전쟁이 발발한 아시아의 또 다른 약한 나라를 돕기 위해
그곳으로 향하는 군함에 몸을 실었습니다.

강뉴부대는 16개국 참전군인 중에서도 가장 용감하게 싸웠습니다.
5차에 걸쳐 6,037명의 참전 하였고,
123명의 전사자와 536명의 부상자를 냈지만,
단 한 명의 포로도 없었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이기거나 죽거나 둘 중 하나만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253번의 전투에서 253번의 승리를 거두게 됩니다.

어떤 참전용사들은 월급을 에티오피아로 보내지 않고,
부대 안에 '보화원'이라는 보육원을 만들어
전쟁고아들과 음식을 나누어 먹고,
잠을 잘 때는 두려움에 떠는 아이들을 옆에서 지켜줬다고 합니다.




강뉴부대원들은 이름도 모르는 나라로 목숨 바쳐 싸우기 위해 떠났습니다.
그러나 누구 한 명 강제로 향한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중의 전쟁터로 향한 형제가 있었습니다.
Desta와 Mekonen, 조국 에티오피아가 위기에 처했을 때를 생각하며
세계 평화를 위한 집단안보를 실천하기 위해
황제근위병이란 멋진 자리도 버리고, 만류하는 가족들까지 뒤로한 채
죽음이 기다리는 땅을 향해 형제가 뜻을 같이한 것입니다.

64년이 지난 바래진 사진 뒤에 암할릭어의 친필로
그들의 심정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었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열악하였다.
무엇보다도 생전 처음 겪는 눈이라는 물체가
하늘에서 내려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였으나,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떠난 전쟁터에서 형 Desta씨는 싸늘한 주검이 되었습니다.
조국을 위한 것도 아니고, 가족을 위한 것도 아닌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위해 정말 목숨을 바친 것입니다.




한국 전쟁 발발 후,
목축업으로 살아가던 에티오피아에서는 7년간 계속된 가뭄으로
가축들이 떼죽음을 당했습니다.

우리나라 1인당 국민소득이 80달러가 채 되지 않았을 때,
1인당 국민소득 3,000달러가 넘었던
에티오피아 경제가 기울기 시작한 것입니다.

멩게스투라는 군인은 그 틈을 타 쿠데타를 일으켜
에티오피아는 공산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산주의와 싸우겠다고 스스로 지원했던 강뉴부대원들은
말할 수 없는 핍박을 받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6.25 참전 용사들은 세계에서 가장 가난한 에티오피아,
그 에티오피아에서도 더욱 비참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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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통장 후원계좌 (예금주 : 더좋은세상 따뜻한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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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단에 후원하기를 통하여 따뜻한 응원 댓글과
도움의 손길을 부탁하겠습니다.




따뜻한 하루는 가만히 있을 수 없었습니다.
1차 모금을 진행하여 강뉴부대원 후손들로 구성된 합창단도 만들고,
장학금 지원을 위해 방법을 모색했습니다.

1차 모금 때 많은 분이 후원을 해주셔서 1천만 원을 모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2월 16일 따뜻한 하루가 그분들께 후원금과
대한민국 국민의 마음마저 함께 전달하기 위해
따뜻한 하루 가족 3분과 함께 에티오피아로 떠나기로 했습니다.

그런데 생존해 계시는 강뉴부대원을 위한 긴급 생계비 지원과
강뉴합창단과 장학금 지원 등을 하기 위해서는
금전적으로도 마음으로도 모아야 할 것들이 더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2차 모금을 진행하려고 합니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그들에게 희망을 찾아줄 수 있는 작은 빛이 필요합니다.
그들을 도와주시고, 또 그들의 사연을 널리 알려주세요.
따뜻한 하루가 끝까지 함께 돕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