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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할머니, 꼭 기억할게요 . '2.다 공주가 될 수는 없다

거울속의 내모습 2015. 8. 1. 23:14

                 할머니, 꼭 기억할게요



꿈도 웃음도 많던 한 소녀가 있었습니다.
이 웃음이 많던 17세 소녀가 꿈꾸는 20살은
그저 남들처럼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이었습니다.
그와 결혼을 하고 애도 낳아 알콩달콩 살아가는
생각만 해도 벅찬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그런 소녀에게 느닷없이 찾아온 어둠의 손길
그 손길은 소녀의 꿈을 짓밟았고 웃음을 앗아갔습니다.
소녀는 그렇게 채 피어보기도 전에 모든 걸 빼앗겼습니다.
지금부터 그녀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1941년, 하얗고 앳된 얼굴의 소녀와
세 명의 친구들이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나타난 일본인에게
세 명의 친구들과 함께 끌려갑니다.
보내달라고 애원하며 울고 또 울었지만,
어디로 달려가는지 모를 트럭은 멈추지 않았습니다.

소녀는 4년 동안 부산과 일본, 대만을 거쳐 홍콩, 중국,
베트남, 싱가포르, 인도네시아를 끌려 다니며
강제로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해야만 했습니다.
말도 안 되는 4년 간의 비극이 그녀의 모든 삶을 무너뜨렸고,
새하얗던 소녀의 얼굴은 어느새 흙빛으로 변해갔습니다.

목숨을 걸고 도망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극악무도한 일본군에게 다시 잡혀
때릴 데도 없는 어린 소녀를 때리고 또 때렸습니다.

그렇게 지옥 같은 4년을 보낸 소녀는
1945년 일본으로부터 대한민국이 해방되던 그날,
드디어 고국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때 소녀의 나이는 21살, 너무도 꽃다운 나이였습니다.




꿈에도 그리던 대한민국에 돌아왔지만,
그녀는 고향으로 향할 수 없었습니다.
그토록 그리워했고 미치도록 가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습니다.

"집에는 부끄러워서 못 가겠어..."

다시 일어설 수 없게 무너뜨린 일본인들의 만행에
그녀가 꿈꾸던 장밋빛 삶은 핏빛으로 채워졌고,
17살 이후로 행복함에 크게 웃어본 일은 단 한번도 없었습니다.
결국 그녀는 부산, 마산, 서울 등에서
식당 일과 파출부 일을 하며 마지 못해 살아왔습니다.

시간은 흘렀고, 17살이었던 소녀는 91세의 할머니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음속 한을 풀지 못한 채
2015년 5월 27일, 한 많은 숨을 거뒀습니다.

그녀는 죽음을 앞둔 마지막 순간까지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냥 남들처럼 결혼해서 애 낳고 그렇게 살고 싶었어"

웃음 많던 소녀의 작고 소박했던 꿈은
결국 이루지 못하고 꿈으로 남긴 채 눈을 감은 그녀.
그녀의 이름은 '이효순'...

그렇게 일본인에게 꿈을 짓밟히고, 웃음을 빼앗긴
그 소녀들이 이젠 쉰 다섯(52) 분 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그녀들의 소원은 단 하나.
원하지 않은 삶을 살게 한 그들에게 진심 어린 사과를 받는 것...

천벌은 아닐지언정 당연히 받아야 할 사과조차 받지 못하고 떠난
故 이효순 할머님과 먼저 떠난 분들의 명복을 빕니다.

- 이 글은 스브스 뉴스를 재구성 각색한 글입니다 -

 

 

                  다 공주가 될 수는 없다


초등학교 3학년 때의 일입니다.
학교 연극의 공주 역을 맡아 몇 주 전부터 어머니와 함께
열심히 대사 연습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집에서는 아주 쉽게 술술 외워지던 대사가
무대에 서기만 하면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끝내 선생님이 나를 조용히 부르시더니 공주 대신
해설자 역으로 바꿔서 해 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부드럽게 말씀하셨지만
나에겐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날 점심시간에 집으로 달려간 나는 어머니께
학교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말씀 드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어머니는 내 불편한 심기를 알아채셨는지
보통 때처럼 대사 연습을 하자고 안 하시고
정원에 나가 산책이나 하지 않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위로 뻗어 올라간 장미 덩굴이 푸르름을 더해 가던 봄날이었습니다.
거대한 느릅나무들 밑에는 노란 민들레 꽃이 마치
어떤 화가가 황금빛을 칠해 놓은 것처럼 군데군데 피어 있었습니다.
어머니는 무심하신 듯 민들레 꽃에 다가가더니
한 포기를 뽑으면서 말씀했습니다.

"잡초들은 다 뽑아 버려야겠다.
이제부터 우리 정원엔 장미꽃만 길러야겠어."

"그렇지만 나는 민들레가 좋아요.
엄마. 꽃들은 다 아름다워요. 민들레 꽃까지도."

나는 항의했습니다.
잠시 후, 어머니께서는 진지한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시며 말씀하셨습니다.

"그래 맞아. 꽃은 어떤 꽃이든 그 나름대로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그렇지?"
나는 내가 어머니의 생각을 바꿔놓은 것을 기뻐하며 머리를 끄덕였습니다.
어머니는 또 이런 말을 덧붙였습니다.

"사람도 마찬가지란다.
누구나 다 공주가 될 수는 없는 거야.
그러니 공주가 되지 못했다고 부끄러워할 필요는 없단다."




내 괴로움을 눈치채셨다는 걸 알게 된 난 홀가분해진 마음으로
학교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며 울음을 터트렸습니다.
어머니는 조용히 내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면서
내게 힘을 주려는 듯 미소를 지어 보이셨습니다.
이어 내가 이야기책을 큰 소리로 읽어 주는 것을
얼마나 좋아하는지를 상기시키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훌륭한 해설자가 될 수 있을 거야.
해설자 역도 공주 역 못지 않게 중요한 역할이란다."

몇 주일이 지나면서 나는 어머니의 끊임없는 격려에 힘입어
새로 맡은 역에 대해 자부심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점심시간이면 내가 외울 해설을 되풀이해서 읽었으며
또 학예회 날 입을 옷에 대해 어머니와 얘기를 나누었습니다.

드디어 학예회 날 저녁,
무대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나는 긴장되고 불안했습니다.
그 때, 선생님께서 내게로 오셨습니다.
"어머니께서 이걸 전해 달라고 하셨다."
선생님께서는 내게 민들레 한 송이를 건네 주셨습니다.

민들레는 꽃잎 끝이 말리기 시작했고 줄기도 시들시들했습니다.
그러나 그 민들레를 바라보며
어머니께서 밖에 계시다는 생각을 하니 자부심이 되살아났습니다.
연극이 끝난 후 나는 내 무대 의상의 앞치마에 찔러 두었던
민들레를 가지고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어머니는 그 꽃을 두 장의 종이 타월 사이에 끼워서
사전 속에 눌러 두셨습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시들어 버린 꽃을 고이 간직하는 사람은
아마 우리밖에 없을 거라고 하시면서 웃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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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에 하찮은 것은 없다.
사소한 것 역시 없다.
나름대로 다 존재하는 이유가 있다.
작고 하찮은 일이란 없다.

지금은 알 수 없겠지만 그 작고 하찮은 것들이
위대한 성취와 다 연결되어 있다.
보잘것없는 그것에 큰 것이 다 담겨 있다.

나에게 주어진 오늘이라는 이 시간,
나에게 주어진 일,
나와 스쳐 지나간 그 사람,
그러한 것들이 결국 부메랑처럼 돌아온다.

- '한 번쯤은 위로 받고 싶은 나' 중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