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국내여행가이드

마이산 북부~남부, 구석구석을 탐방하다

거울속의 내모습 2017. 1. 13. 00:10


1억년 전 시작된 어느 연인의 이야기

수마이봉과 암마이봉은 오랜 세월동안 서로 바라보기만 할뿐, 함께할 수 없는 비운의 주인공이다.
진안으로 향하는 인적 드문 국도를 지나다 보면 두 귀를 쫑긋 세운 듯 홀연히 나타난 마이산과 눈을 마주하게 된다. 마이산의 두 봉우리는 진안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이곳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 창문을 열다가, 나른한 오후 공원에서 산책하다, 혹은 무심코 하늘이 보고 싶어 고개를 돌리다가도 나란히 마주한 두 연인을 만난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어도 바라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슬픈 로맨스는 그 어떤 이야기보다 애틋하다.

[글 사진 -조윤식 기자]

마이산 취재를 위해 진안 시내를 거쳐 관리사무소가 있는 북쪽의 마이산관광단지로 향했다. 이미 진안에 도착했을 때부터 보였던 수마이봉(680m)과 암마이봉(686m)이 이정표가 되어주듯 시야를 맴돌고 있었다. 티 없이 깨끗한 땅 위에 솟아난 두 봉우리는 그렇게 낯선 이방인을 맞이해주었다.

진안사람들의 오래된 정원

마이산관리사무소에서 함께 산행할 해설사 심태영씨와 지질공원사무소의 전지민씨를 만났다. 한적한 평일 아침이었지만 관광단지는 행사준비와 도로공사에 분주했다.

'북쪽에도 관광단지를 조성하고 올해부터 공사를 시작했어요. 아직 도로포장도 끝나지 않았고, 상가들도 더 들어와야 하지만 조금씩 관광단지다운 모습으로 바뀌고 있답니다. 게다가 단풍철이 겹쳐 요즘은 매일같이 바쁘네요.'

마이산은 여러 개의 등산로와 탐방코스로 코스로 나누어져 있어, 선택에 따라 다양한 산행을 즐길 수 있다.
도립공원, 전라북도기념물, 국가지정문화재 등 마이산을 수식하는 단어는 많다. 현재는 지질학적 특색에 강점을 두어 국가지질공원 인증을 추진 중이고, 이후 유네스코 세계지질공원 등재에도 힘쓸 예정이다. 앞으로 마이산의 변화가 더욱 주목되는 이유다.

이번에 산행할 코스는 마이산을 찾는 대부분의 방문객이 이용하는 탐방코스다. 마이산 북부안내소부터 남부안내소까지 이어진 약 4.5km의 이 길은 은수사, 탑사, 탑영제, 금당사 등 마이산의 관광명소를 모두 거치면서 암마이봉까지 오르내릴 수 있다.

마이산탐방로는 암마이봉을 제외하고 걷기 좋은 오솔길이다.
산행기점인 북부사무소에서 암마이봉 등산로가 난 천황문까지 가기 위해서는 두 가지 방법이 있다. 탐방로 초입의 작은 호수인 사양제를 지나는 것과 연인의 길로 오르는 방법이다. 취재진은 최근 조성한 마이산전망대가 있는 연인의 길을 택했다. 전망대에서 마이산의 두 봉우리를 한눈에 바라볼 수 있기 때문이다.

약 1.9km의 연인의 길은 가볍게 산책할 수 있는 임도로 되어있다. 가을철에는 좁은 길 사이로 단풍나무가 붉게 물들어 숲길을 걷는 재미가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사양제 방향으로 가기 때문에 인적이 드물어 마치 지도에 없는 곳을 탐험하는 느낌마저 든다.

임도를 따라 15분 정도 올라가면 작은 정자와 벤치가 놓인 전망대가 나타난다. 최근에 지어진 전망대는 한적했다. 그러나 나란히 마주한 두 봉우리의 진면을 보려면 이만한 장소가 없다.

'어때요, 말의 귀처럼 솟은 두 봉우리가 제대로 보이죠? 재미있는 점은 마이산을 바라보는 방향에 따라 그 모습이 변한다는 거예요.'

마이산 탐방로코스는 진안고원길 1구간에 속해있어 탐방로 곳곳에서 이정표를 확인할 수 있다.
마이산 남쪽과 북쪽에서는 두 봉우리를 함께 볼 수 있지만 동쪽에서는 수마이봉이, 서쪽에서는 암마이봉이 서로를 가려 관찰자의 위치에 따라 모습이 달라진다. 이처럼 시시각각 변하는 산의 모습을 찾아보는 것도 마이산이 주는 또 다른 즐거움이다. 울긋불긋한 단풍 사이로 사이좋게 서 있는 봉우리를 한참 바라본 후에야 발걸음이 떨어졌다. 이제는 저곳을 직접 오를 차례다.

자연이 감추어둔 암마이봉을 오르다

암마이봉은 지난 2004년부터 2014년까지 10년간 자연휴식년제를 시행했다. 수억 년 역사 속에 고작 10년이라는 휴가는 짧은 시간이었겠지만 한동안 사람의 발걸음이 멎어진 산은 깨끗하게 회복되었다. 암마이봉을 오르려면 먼저 두 봉우리 사이의 고개인 천황문으로 가야 한다. 마이산을 남북으로 통하는 천황문은 금강과 섬진강의 분수령을 이루며 산행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한다.

암마이봉을 오르는 심태형씨와 전지민씨. 이들 뒤로 우뚝 솟은 수마이봉이 보인다
봉우리를 가까이서 보자, 가장 먼저 산을 이루는 역암이 눈에 띈다. 역암이란 자갈이 진흙이나 모래에 섞인 퇴적암을 뜻한다.

중생대 백악기에는 크고 작은 호수가 한반도와 그 주변을 따라 많이 분포해 있었는데, 진안 분지도 이에 속했었다. 호수였던 진안 분지에 상류로부터 자갈이 흘러들어 쌓이다가 세월이 흐르면서 흙과 모래가 뒤섞였다. 그러던 것이 약 6~7천만 년 전, 지각변동으로 서서히 융기되어 솟아올라 현재와 같은 모습이 되었다. 암마이봉 정상에서 발견된 민물고기와 다슬기 등의 화석이 이곳이 호수였던 사실을 증명하고 있다.

'퇴적역암은 다른 지역의 산이나 바다에서도 종종 볼 수 있지만 마이산만큼 규모가 큰 곳은 없습니다. 또 마이산에는 역암이 퇴적되면서 뚫린 구멍인 타포니(Tafoni)도 넓게 형성되어 있어요. 퇴적역암에서의 타포니는 단연 세계적인 규모입니다.

천왕문에서 암마이봉 정상을 오르내리는 시간은 약 40분, 높이가 낮다고 쉽게 생각하면 안 된다. 우선 역암은 우리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화강암에 비해 단단하지 못하고 미끄럽다. 심지어 암마이봉 등산로는 길이 좁고 경사도 급해 만만히 보면 큰코다치기 십상이다.

숨을 헐떡거리며 오르기를 20여 분, 곧 수마이봉을 조망할 수 있는 전망대가 나타난다. 남성적인 매력의 수마이봉은 마치 커다란 우주선 같았다. 그 아래쪽을 자세히 내려다보면 화엄굴이 보인다. 화엄굴은 수마이봉 100m쯤 지점에 암벽이 떨어져 나가 생긴 굴로 속에는 석간수가 떨어져 고인 샘물이 있는데, 이 물을 마시면 득남을 한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그러나 현재는 낙석 위험으로 인하여 길을 통제해 멀리서 바라볼 수밖에 없다.

10년간의 자연휴식년제를 마친 암마이봉은 깨끗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전망대 갈림길에 서 있는 사람 키만한 돌탑을 지나 5분 정도 오르면 암마이봉 정상에 닿는다. 암마이봉 정상의 하이라이트는 마이산 산군과 진안시내 전체를 조망할 수 있다는 점에 있다.

'서쪽에서 바라보면 고금당과 비룡대를 잇는 마이산의 주능선이 보여요. 그 뒤로는 진안 시내가 펼쳐져 있죠. 특히 비룡대에 있는 코끼리 모양의 바위는 역암과 타포니가 만든 합작으로 이 일대에서도 가장 큽니다.'

암마이봉 답사를 마치고 올라왔던 길로 다시 내려가는 일은 아쉬움에 여러 차례 걸음을 멈추게 한다. 다시 천황문에 도착해 조금 전 올랐던 봉우리를 바라보았다. 숱한 세월은 견뎌낸 바위만이 우리를 내다보고 있었다.

암마이봉 정상에서 바라본 비룡대. 코끼리 모양의 바위는 자연이 만들어낸 거대한 작품이다.

신화와 환상이 만들어낸 탑사

천황문에서 계단을 내려 도착한 은수사는 하늘과 가장 가까운 절이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천황문 남쪽으로 내려선 명당자리, 수마이봉 바로 아래 지어진 은수사 태극전에는 조선 태조가 꿈에 금척을 받은 설화를 그린 <몽금척도>가 있고, 용상 뒤에는 마이산을 쏙 빼닮은 <일월곤륜도>가 그려져 있다.

은수사에서 내려가는 길, 왼쪽으로 암마이봉 남쪽 면과 뒤편의 수마이봉이 보인다.
이 사찰은 태조 이성계가 조선 건국을 고민하던 중 100일 기도를 드렸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가 기도를 끝마칠 때쯤에 꿈속에서 신선이 나타나 황금자를 주며 '이 자로 삼천리강산을 재봐라'라고 말한 뒤 사라졌다. 꿈에서 깨어난 이성계는 이 땅을 다스리라는 현몽을 직시하고 조선 건국을 결심하게 되었다.

절 한편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600살 넘은 커다란 청실배나무 한그루가 심어져있다. 이 나무는 태조 이성계가 백일기도 후, 돌배를 먹고 씨를 뱉었는데 발아하여 자랐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이외에도 은수사에는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줄사철나무 군락이 있다. 진안의 천연기념물 네 개 중 두 개가 은수사에 있다는 점이 사찰의 깊이를 대변해준다.

가까이서 바라본 타포니의 모습. 자갈층이 퇴적되면서 생긴 무수한 구멍들이 눈에 띈다.
작은 나무들이 심어진 길로 내려가면 곧 암마이봉 아래 탑사에 닿는다. 이갑룡이라는 기인이 홀로 쌓아 올렸다는 마이산 탑사의 돌탑은 인간의 108번뇌를 상징해 총 108개의 석탑이 있었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일부가 무너져 내려 현재는 80여 기만이 남아있다. 크고 작은 돌들로 이루어진 돌탑은 기이하게도 균형이 맞아 비바람에도 흔들리지 않고 굳건히 서 있다. 탑사 주변 암마이봉 하단에 발달한 타포니 군락은 돌탑과 함께 신비로운 분위기로 좌중을 압도한다.
마이산에서 타포니 지형이 가장 발달한 탑사 부근. 거대한 구멍 속에 누군가 돌탑을 쌓아 놓은 흔적도 보인다.
'탑사의 하이라이트는 사찰 뒤편의 제일 큰 돌탑 두기에요. 인간 혼자의 힘으로 쌓아 올렸다고 믿기 힘들 정도로 견고하고 아름답죠.'

하늘을 향해 뻗어 나간 돌탑은 끝없이 올라가고자 하는 인간의 염원을 나타내는 듯했다. 자연과 인간이 만든 판타지는 산에 깃들어 무수한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 이야기는 전설이 되어 많은 여행자들을 낯선 땅으로 이끌고 있었다.

서로 그리워할 뿐 다가갈 수 없구나

은수사를 지나 10여 분 정도 내려가면 탑영제라는 작은 인공호수가 나타난다. 탑영제라는 이름은 탑사의 돌탑이 비치고 암마이봉과 수마이봉의 그림자가 비치기 때문에 지어졌다. 40년전 쯤, 마이산 주변에 마을이 여러개 있었는데 화재가 자주 일어났다고 한다. 어느 날 이곳을 지나던 스님이 마을 사람들이 화재로 걱정을 많이 하자 '물의 기운을 만들어야 불의 기운이 강한 마이산에서 더 이상 화재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마을사람들이 힘을 모아 땅을 파고 물을 채워 호수를 만들자, 더는 화재가 일어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탑사의 돌탑이 비친다는 인공호수 탑영제.
남부관광단지에 이르자 어느덧 해가 지기 시작하고, 식당과 상점가에 북적였던 발걸음도 차츰 잦아든다. 수평선 너머로 지지 않을 것 같던 해가 떨어지자 두 봉우리가 만들어 낸 그림자가 온 세상을 드리운다. 그 숭고한 기다림을 한낱 인간이 어찌 알까. 바라만 볼 뿐 더 이상 앞으로 다가갈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애절한 두 연인만이 여전히 그 자리에 남아있다.

*산행 정보

산행코스

마이산북부관광안내소~연인의 길~천황문~암마이봉 정상~천황문~은수사~탑사~탑영제~금당사~마이산남부관광안내소

산길

마이산 산행코스는 산책로 같은 탐방로부터 산군을 넘나드는 등산로까지 다양하지만 서로 얽혀있기 때문에 산행자의 기호와 산행난이도에 따라 다양하게 오를 수 있다.

마이산의 가장 대표적인 코스는 북부와 남부를 관통하여 탑사와 은수사 등을 둘러보는 탐방코스와 서쪽 합미산성에서 출발하는 종주코스다. 남부에서 출발하면 관광안내소 근처와 금당사, 탑영제 등지에서 능선으로 오르는 길이 다양하게 나있다. 이곳에서 탑사와 은수사 등 마이산 관광지와 주능선 상인 비룡대에서 바라보는 장쾌한 풍경을 결합해서 다양한 코스를 잡을 수 있다. 마이산은 주변 관광자원이 풍부하고, 산 곳곳에 숨겨진 이야기를 들으며 걷는 즐거움이 있어 산행뿐만 아니라 여행지로도 제격이다. 산행코스와 관광시설에 대한 자세한 정보는 마이산도립공원 홈페이지(maisan.jinan.go.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암마이봉 정상의 억새군락.

주변 볼거리

금당사 신라 헌강왕 2년(876년) 혜감대사가 창건하였다고 전해지는 금당사는 마이산 남부 진입로에서 매표소를 지나면 바로 왼쪽에 있다. 극락전에는 수천 년 넘은 은행나무를 깎아서 만든 금당사목불좌상(지방유형문화제 18호)과 가로 5m, 세로 9m 크기의 괘불탱화(보물 1266호)가 있다. 이 괘불을 걸고 기우제를 지내면 반드시 비가 온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또한 이곳에는 백제시대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당사 3층 석탑(지방문화제자료 122호)이 있다.

금당사.

탑사 마이산 관광 중심지인 탑사는 남부관광코스 입구에서 걸어서 30분이면 닿기 때문에 접근성이 좋아 연중 관광객으로 북적인다.

탑사에는 이갑룡이라는 도인이 홀로 쌓은 108개의 돌탑이 있는데 몇 개는 소실되어 현재 80여 기가 남아있다. 그중에서도 돋보이는 것은 암자 뒤편이 거대한 두 개의 돌탑이다. 또한 탑사 주변은 타포니 지형을 가장 자세히 관찰할 수 있어 지질학적으로도 가치 있다. 하산 길에 남부관광단지의 식당에서 진안의 특산물인 인삼과 흑돼지를 이용한 요리를 먹어보는 것도 좋다.

조윤식 기자 / marchisiyun@emount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