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국내여행가이드

적막한 겨울산중에 반가운 눈손님

거울속의 내모습 2016. 12. 16. 22:32
색바랜 나뭇잎과 홀로 선 정자는 한폭의 수묵화
설탕처럼 내려앉은 눈으로 기암절벽의 절경은 한층 더 빛난다
여기에 반해서 원효대사·의상대사·최치원·이황도 머물렀나보다
                  
청량산 도립공원 입석에서 어풍대 방향으로 산행을 하면 첫 전망대에서 밀성대를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에서 보면 밀성대와 정자가 이루는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한다. 이곳은 고려 공민왕이 훈련을 하다 명령을 듣지 않거나, 도망치다 붙잡힌 병사들을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려 처형한 곳이다.
하루아침에 세상이 변했다. 새로운 세상이 시작됐다는 듯 흰 눈이 대지를 덮었다. 색바랜 나뭇잎과 앙상한 나뭇가지로 휑했던 풍경이 밤새 내린 눈으로 하루 만에 다른 세상이 됐다. 온갖 흉하고 더러운 것들을 덮어 새로운 세상을 열겠다는 듯하다. ‘순수’가 떠오르는 흰 눈이 소복이 쌓인 길에 발자국을 낸다. ‘뽀드득뽀드득’ 누구도 걷지 않은 눈길을 걸으며 겨울에만 들을 수 있는 소리에 빠져든다.
                   

산이 많은 경북 봉화는 눈이 많은 곳이다. 경북이지만 강원도와 비슷한 날씨를 보이는 곳이다. 눈을 기대하고 가지 않았던 봉화에서 밤새 내린 눈으로 예상치 못한 설경을 마주하게 됐다.
봉화에서 눈 덮인 산길을 걸어야만 설경을 마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차로도 충분히 갈 수 있는 곳이 있다. 범바위 전망대다. 청량사 인근으로 나있는 35번 국도를 타고 가면 된다. 빙빙 회전을 돌며 올라가는 길이다.

청량산의 설경
눈이 오면 바로 제설작업을 해 승용차로도 오를 수 있다. 하지만 많이 온다면 통제될 수 있는 곳이다.
범바위라는 지명은 조선 고종 때 선비 강영달이 선조 묘소를 바라보며 절을 하다 호랑이를 만났는데, 맨손으로 잡았다는 얘기에서 유래한다. 전망대 옆에 바위가 서 있는데, 호랑이 형태를 찾기는 힘들다. 호랑이 모습이었던 바위는 도로를 개설하면서 훼손됐다고 한다. 대신 바위 위에는 호랑이 조형물이 서있다.
                   

경북 봉화 범바위전망대에서는 낙동강이 만든 물돌이 모습이 펼쳐진다.
                  
전망대에서는 낙동강이 만든 물돌이 모습이 펼쳐진다. 물돌이를 중심으로 물길이 태극 문양을 이루며 휘돌아 나간다. 가능하다면 범바위 전망대는 동트기 전 찾는 것이 좋다. 설경과 더불어 운해, 일출 풍경을 함께 담을 수 있다. 신선까지는 아니더라도 속세와는 잠시 떨어져 있는 감흥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량산 어풍대에서는 산 속에 웅크리듯 자리 잡은 청량사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전망대를 내려와 청량산으로 방향을 잡는다. 원효대사, 의상대사, 최치원, 김생, 이황 등 우리 역사에 획을 긋는 인물들이 찾은 곳이다. 단순히 한번 들른 곳이 아니다. 산에서 묵으며 수양을 했다. 그만큼 멋진 풍광을 품고 있는 곳이다. 겉보기엔 쉬워 보이나 정작 산을 오르면 쉽지 않고, 봉우리마다 기암절벽을 품고 있어 빼어난 자태를 뽐내 외유내강의 선비와 같은 산이다.
                  

청량산 도립공원의 제일 안쪽에 있는 입석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바위로 된 오르막길을 오르다 보면 청량사 가는 길과 어풍대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어풍대로 방향을 튼다. 계단이 이어진다. 좀 많다. 계단을 오르면 첫 전망대를 맞는다. 남쪽으로 봉우리 하나가 불쑥 솟아 있다. 축융봉이다. 청량산 주요 봉우리와 반대편에 있는 봉우리다. 봉우리 아래편으로 보면 산길이 나 있는 것처럼 보이는데 산성이다. 
                   
고려 때 공민왕이 홍건적 침입으로 개경을 버리고 복주(현재 안동)를 임시수도로 삼은 뒤 방어를 위해 쌓은 산성이다. 산성을 따라 시선을 이동하면 정자가 보인다. 정자 부근 절벽을 밀성대라 부른다. 전망대에서 보면 밀성대와 정자가 이루는 풍경이 한 폭의 수묵화를 연상케 하지만, 이곳은 공민왕이 훈련하다 명령을 듣지 않거나, 도망치다 붙잡힌 병사들을 처형한 곳이다. 이들을 절벽에서 밀어 떨어뜨렸다고 한다.
                   
                  
경북 봉화 청량산 응진전 뒤편 절벽 위에는 작은 바위 동풍석이 불안하게 놓여 있다. 사람이 밀거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긴 하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바위다.
산을 좀더 오르면 절벽 위에 놓인 암자를 만난다. 응진전이다. 의상대사가 수련을 한 곳으로 뒤편 절벽 위 불안하게 놓인 작은 바위 동풍석이 있다. 사람이 밀거나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긴 하지만 절대 떨어지지 않는다는 바위다.
                  
                  
응진전을 지나 평탄한 길을 따라가면 산 속에 웅크리듯 자리 잡은 청량사가 눈에 들어온다. 청량사 전경을 볼 수 있는 어풍대다. 어풍대 주위 바위틈으로 물이 고인 장소가 있다. 최치원이 이 물을 마시고 총명함을 얻었다는 설화가 내려오는 곳이다.
          
청량사에서는 줄기가 세 갈래로 나눠 자라는 소나무와 돌탑, 산봉우리가 이루는 풍경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김생굴, 자소봉으로 올라 능선을 타고 하늘다리 방향으로 올라가거나 아니면 청량사로 바로 내려가도 된다. 청량사로 방향을 튼다. 먼저 만나는 것은 청량정사다. 퇴계 이황은 청량산을 ‘우리 집안의 산’이라는 뜻의 ‘오가산(吾家山)’이라 불렀을 정도로 애정이 있었다. 도산서원을 이곳에 지을 것도 고려했다고 한다. 
                  
후학들이 이 같은 스승의 마음을 기려 이황이 머물며 학문을 연구하던 자리에 청량정사를 세웠다. 청량정사를 지나 청량사에 들어선다. 유리보전 등이 유명하지만, 그보다 탑 주변에 있는 소나무 한 그루가 눈에 띈다. 뿔이 세 개인 소가 절을 지은 후 죽자 돌무덤을 만들어줬다.

이후 그 자리에서 소나무가 자랐는데, 삼각 뿔처럼 소나무 줄기가 세 갈래로 나눠 자라고 있다. 소나무와 돌탑, 산봉우리가 이루는 풍경에 빠져든다. 산 너머 붉게 물든 하늘을 바라보며 하루를 마감한다.

봉화=글·사진 이귀전 기자 frei5922@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