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억새 산행과 가야 고분군 산책..창녕 여행 마무리는 부곡온천에서
우포늪은 경남 창녕군 4개 면에 걸쳐 있는 국내 최대 내륙습지다. 1998년 람사르협약(습지에 관한 국제협약)에 등재되었고, 이듬해는 환경부에서 습지보호지역, 2011년에는 천연보호구역으로 지정해 보호하고 있다. 인간의 간섭이 엄격히 제한된 새들의 천국, 겨울 우포늪을 다녀왔다.
▦소들이 노닐던 소벌, 그리고 사라진 풍경들
‘우포가 어디지?’ 우포늪이 람사르협약에 등재될 당시 주민들의 반응은 이랬다고 한다. 대대로 이 늪에 기대어 살아온 지역 주민들이 부르던 지명은 ‘소벌’이었다. 아침에 늪 가장자리에 소를 풀어 놓으면 하루 종일 뻘을 돌아다니며 알아서 풀을 뜯고 해질녘에 집으로 데려오던 곳이었다. 그러니까 소벌은 ‘소들이 노닐던 뻘 밭’이라는 해석이다. 우포늪생태관이 자리잡은 맞은편 지명은 소목마을, 늪으로 튀어나온 지형이 마치 소의 머리 형상이라는 것도 ‘소벌’이라는 지명을 뒷받침한다. 그 당시 주민들의 의견을 조금이라도 반영했다면 우포(牛浦)라는 억지 한자이름 대신 소벌 혹은 소벌늪이 됐을 거라는 게 김경 ㈔소벌생태문화연구소 소장의 얘기다.
‘늪, 땅바닥이 우묵하게 뭉떵 빠지고 늘 물이 괴어 있는 곳. 진흙 바닥이고 침수 식물이 많이 자란다.’ 사전적 정의와 달리 우포늪의 첫인상은 맑은 호수에 가깝다. 한 겨울에도 일정한 수량을 유지하도록 늪 하류에 얕은 보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지금 우포(소벌)ㆍ사지포(모래벌)ㆍ목포(나무벌)ㆍ쪽지벌로 구분된 4개의 늪도 제방으로 분리되기 전에는 큰 비가 내리면 자연스레 하나가 되는 구조였다.
덕택에 여행객들은 뻘에 빠질 걱정 없이 제방을 연결한 탐방로를 이용해 어렵지 않게 우포늪을 둘러볼 수 있게 되었다. 약 8.4km에 이르는 탐방로는 유어면 세진리에 있는 생태관을 출발해 대합면 주매리, 이방면 안리와 옥천리를 돌아오는 순환코스로 걸어서 3시간 정도 걸린다. 자전거로 둘러볼 수 있도록 대여소도 운영하고 있다. 이마저도 번거로우면 주변 마을에 차를 대고 짧은 코스를 걷는 것도 방법이다. 탐방로는 충분히 넓지만 차량 통행은 금지다.
요즈음 우포늪의 최대 볼거리는 겨울철새들. 우포늪생태관에서 가까운 대대제방은 수심 50~60㎝의 드넓은 소벌이 한 눈에 들어오는 곳이다. 사방이 트여 풍광은 시원하지만 새들의 휴식처로는 부적당하다. 제방이 끝나는 부분, 뻘이 일부 드러난 가장자리에 새들이 몰려있다.
주매리의 우포늪 생태체험장에 차를 대고 조금만 걸으면 가까이서 새들을 관찰할 수 있는 조망포인트에 닿는다. 우선 사지포제방에서는 모래벌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새들을 바로 코앞에서 볼 수 있다. 습지보호구역 환경에 익숙해진 듯, 이곳의 새들은 인기척에도 놀라거나 도망가지 않는다. 해코지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이 경계의 거리를 좁힌 듯하다. 제방 끝자락의 작은 솔숲 언덕에 오르면 버드나무 군락이 펼쳐진다. 잡목과 수풀이 우거진 이 지역은 누가 봐도 야생동물들이 몸을 숨기고 먹이활동을 하기에 딱 좋은 곳이다.
주매제방에서 소목나루로 이어지는 구간에서는 거리는 다소 멀어지지만 더 많은 새를 볼 수 있다. 버드나무 군락이 울타리를 두르고 있어 자연스레 아늑한 쉼터가 형성된 모양새다. 가장 개체가 많은 큰기러기 무리 사이로 큰고니가 우아하게 헤엄치고, 한편에선 대백로가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물속을 주시하고 있다. 먹이다툼인지 사랑놀이인지 알 수 없지만, ‘구구~~ 꽉꽉’ 쉼 없이 들려오는 새들의 울음소리에 넋을 놓는다. 햇살 좋은 오후에 제방 벤치에 앉아 쉬노라면 새들의 천국에 초대받은 느낌이 들 정도다.
소벌과 쪽지벌을 구분하는 징검다리 부근 산마루에 오르면 소벌에 형성된 얕은 뻘 둔덕이 길게 이어진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예전의 우포늪은 홍수 때는 물이 차고, 건기에는 바닥이 드러날 정도로 물이 빠지는 지형이었다. 주민들은 이 시기에 맞춰 늦가을에 보리 마늘 양파 등을 파종하고 봄에 수확하는 방식으로 농사를 지어왔다. 물에 잠길 때마다 쌓이는 풍부한 유기질 덕분에 따로 거름을 할 필요도 없었다.
우포늪에서 사라진 또 하나의 풍광은 뻘 밭 조개잡이다. 김경 소장은 1997년 이전만 해도 여름철이면 200여명의 주민들이 매일같이 뻘에 들어가 논고둥(우렁이)과 조개를 몇 가마씩 잡았다고 회고했다. 서해안 갯벌에서나 볼 수 있는 진풍경이 이곳의 일상이었다. 습지보호구역으로 지정한 뒤에는 이를 전면 금지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이후 조개도 줄고 우포늪을 찾는 새들도 줄어들었다. 5년 전 최대 1만 4,000여 마리에 달했던 겨울철새가 올해는 현재까지 약 3,500여 마리 정도만 날아왔다. 김 소장은 소규모 농사와 조개잡이, 풀을 뜯는 소들의 활동이 사라진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생태의 순환고리에 인간도 포함할 것인가, 일체의 간섭을 배제할 것인가의 문제죠. 이곳에서만큼은 오랫동안 생태의 일부였던 인간활동을 무시한 일률적인 환경규제가 오히려 뻘을 죽이고 생물다양성을 해치는 역효과를 내고 있습니다.” 한겨울에도 파릇한 보리밭을 배경으로 뻘에서 조개와 참붕어를 건져 올리는 우포늪, 아니 소벌의 한가로운 풍경이 자꾸만 아른거린다.
▦화왕산 억새 산행 피로는 부곡온천에서
늦가을 마지막 억새 장관을 기대하고 창녕의 대표 관광지 화왕산(757m)에 올랐다. 늦어도 한참 늦었다. 상대적으로 바람이 약한 곳을 빼면 솜털 하나 없이 앙상한 줄기만 남아 있다. 세차게 능선을 오르는 바람에 시리도록 맞서다 헛헛하게 스러진 억새군락을 걷는다. 문명이 거세된 듯한 풍경 때문에 이곳은 허준, 대장금, 왕초, 상도 등 수많은 사극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정상에서 옥천매표소로 이어지는 능선에는 허준 드라마 촬영세트가 원래 있었던 산마을인 듯 자리잡고 있다.
화왕산 정상에서 억새보다 먼저 보는 것은 화왕산성, 움푹 패인 분지를 감싼 능선 따라 연결된 석성이다. 가야시대부터 축조했을 것으로 추측되는 성은 조선시대에 이르러 임진왜란 때 곽재우 장군이 의병의 본거지로 활용했다. 정상 습지에 삼지구천(三池九泉), 3개의 연못과 9개의 샘이 있었기에 가능 했으리라. 지금은 분지 중앙에 정사각형 연못 하나가 폐사지처럼 남아 있다. 창녕조씨 시조의 득성(得姓)설화가 전해지는 곳이다.
화왕산을 내려오면 잊혀진 왕국, 가야의 흔적을 만난다. 산중턱에서부터 군청 뒤편까지 300여기의 고분이 분포하는데 현재 40여기를 복원해 ‘교동ㆍ송현동 고분군’으로 명명했다. 1919년까지 일본 학자 세키노 타타시에 의해 11기가 발굴됐는데 이 과정에서 마차 20대, 화차 2대 분량의 금장신구ㆍ마구ㆍ무기 등이 유출됐다. 국립중앙박물관과 일본 도쿄국립박물관 소장한 일부를 제외하면 아직까지 소재가 확인되지 않고 있다. 5~6세기에 만든 것으로 보이는 분묘는 조성방식에서 신라와 차이가 있어 독자적인 세력을 갖춘 비화가야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창녕에서 하루를 묵을 요량이면 읍내보다는 부곡온천이 선택의 폭이 넓다. 물놀이 시설을 갖춘 리조트부터 콘도, 호텔, 모텔 등을 합해 8,000여명이 숙박할 수 있는 시설이 밀집해 있다. 모든 숙박시설이 온천수를 사용하는 것은 당연지사, 부곡온천은 78℃로 국내 최고 수온을 자랑하는 유황온천이다. 창녕군청에서 약 18km, 중부내륙고속도로 영산IC에서는 7km 거리다.
창녕=최흥수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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