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 타 ♡/좋은글 보기

1.또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 .&2.6·25 남침 공모한 중국의 역사왜곡

거울속의 내모습 2016. 10. 13. 22:07

★또 역대 최악의 청년실업… 巨野가 나서면 해법 있다

실업률에 관한 거의 모든 통계가 최고치를 경신했다. 지난달 청년실업률 9.4%는 통계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한 1999년 이후 9월 기준으로 가장 높고, 전체 실업률 3.6%도 11년 만에 최고치다. 수출 부진에 해운·조선 구조조정까지 겹쳐 실업자는 100만 명에 육박했다. 실업률이 거의 매달 ‘최악’을 갈아 치우면서 고용대란이 본격화하는 조짐이다.

앞으로가 더 문제다. 국내 1, 2위 기업인 삼성전자와 현대자동차에 갤럭시 노트7 생산 중단과 차량부품 결함 파문이 동시에 터졌다. 협력업체에 미칠 영향까지 감안하면 제조업 고용시장은 더 위축될 것이 분명하다. 주력 산업의 간판 기업들조차 제 앞가림에 급급한 마당에 정부가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일자리를 더 만들라고 강요하기도 어렵다. 수출부진→내수부진→고용부진이 이어지고 있지만 통화·재정정책을 통한 해법도 쉽지 않다. 11조 원 규모의 추가경정예산이 국회를 통과한 것이 불과 얼마 전이다. 정부는 공공기관 투자 확대 등으로 10조 원 규모의 추가 부양책을 마련하고 있으나 재정을 쏟아붓는 미봉책으로 일자리를 늘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

 이제야말로 거야(巨野)가 청년들의 고통을 덜어줄 때다. 강원도 충북도 세종시 광주시 등 야당 소속 단체장들까지 14명의 시도지사가 공동 명의로 촉구한 20대 국회 1호 법안이 규제프리존특별법이다. 이것만 입법이 돼도 에너지 신산업과 드론을 전략산업으로 선정한 전남, 탄소산업과 농생명 분야를 전략산업으로 정한 전북에 각각 2만여 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 2020년까지 전국에 21만 개의 일자리가 생겨난다는 게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구 결과다. 야당은 규제 완화를 거악(巨惡)이나 되는 양 반대하지만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이 다투어 구애하는 전남북에서도 간절히 원하는 법을 가로막는 것은 이 정권이 밉다고 나라와 국민에게 죄를 짓는 것과 다름없다. 

 청년이 취업할 자리가 없는 데는 대기업과 공기업의 정규직 ‘귀족 노조’를 과도하게 보호하는 경직된 노동시장 구조 탓도 크다. 올 하반기에만 30차례의 부분파업과 전면파업으로 곤욕을 치른 현대자동차가 1996년 아산공장 이후 20년 동안 국내에 완성차 공장을 신설하지 않고 해외에 공장을 짓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청년 백수’에게 취업의 길이 열릴 수 있도록 두 야당이 노동개혁 관련 법안 통과에 과감히 협조한다면 야당을 보는 국민의 눈도 달라질 것이다.

Read more:
http://news.donga.com/3/all/20161012/80764305/1#csidx42e16e82cabef1d8762647f706dcb2a
Copyright © LinkBack








 6·25 남침 공모한 중국의 역사왜곡


침략전쟁” 옛 소련 문서로 진실 드러나
“정의로운 전쟁” 미화했던 시진핑, 미중관계악화하자 영화,드라마, 애니메이션으로 뒤늦게 “抗美援朝 전쟁” 홍보  
한국에 끼친 상처 사과는커녕 시대착오적 역사왜곡 중단해야

 6·25전쟁은 김일성 스탈린 마오쩌둥 3인의 사전 공모로 시작된 침략전쟁이었다는 사실이 소련 붕괴 후 공개된 구(舊)소련 비밀문서에서 밝혀졌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20여 년이 지난 지금 새삼스럽게 6·25를 미국에 대항해 북한을 도운 ‘항미원조(抗美援朝)전쟁’이라고 열을 올리면서 영상물을 통해 적극 홍보하고 있다.

 시진핑 국가주석은 부주석 때인 2010년, 중국의 6·25전쟁 개입을 과거 마오쩌둥처럼 ‘위대한 항미원조전쟁’이라 부르면서 ‘평화를 지키고 침략에 맞선 정의로운 전쟁’이라고 미화해 국제적 물의를 빚었다. 당시 후진타오 정부는 그의 견해가 중국 정부의 정론(定論)이라고 해명하면서도 미국을 의식해 이 무렵부터 이 같은 표현의 사용을 자제하기 시작했다. 특별한 경우 말고는 6·25를 지칭할 때 ‘조선전쟁’이라는 중립적 용어로 부르고 ‘항미원조’를 소재로 하는 영화나 TV 드라마도 검열을 통해 일절 억제했다.  

 

그러나 시진핑 정부가 출범해 남중국해 문제로 미중관계가 악화하자 금년 봄부터 사정이 달라졌다. 중국은 올 5월 방송망을 통해 반미적 TV 드라마 ‘38선’을 방영하고, 9월에는 추석을 맞아 상업영화 ‘나의 전쟁’의 극장 상영을 허가했다. 18일부터는 ‘가장 사랑스러운 사람’이라는 어린이용 애니메이션 영화를 BTV(베이징텔레비전) 만화 채널에서 방영할 예정이다. 영화 ‘나의 전쟁’의 경우 한국을 관광하는 중국 참전 군인들이 버스 안에서 “50년 전에는 여권이 아닌, 홍기(紅旗)를 들고 서울에 왔었다”는 등 한국을 모멸하는 홍보물을 텔레비전에 방영해 중국 국내외에서 큰 물의를 빚었다. 홍콩의 한 인터넷 TV는 이를 ‘중국의 수치’라고 맹비난했다.

 중국 정부의 6·25전쟁에 대한 공식 견해는 드라마 ‘38선’의 첫 회 도입부의 내레이션에 잘 나타나 있다. 즉, ‘1950년 6월 25일 새벽 분열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폭발해 미국의 공개적인 참전으로 조선반도의 내전이 국제화했다’는 것이다.

 실제로는 마오쩌둥이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처음부터 6·25전쟁에 개입했다. 이 사실은 서방 학자들과 쉬쩌룽(徐澤榮·일명 데이비드 추이·중산대 교수), 선즈화(沈志華·화둥사범대 교수) 등 양심적인 중국 학자들에 의해 소상하게 밝혀졌다. 이 때문에 쉬쩌룽은 당국의 미움을 사 간첩죄로 11년간 감옥살이를 했다. 그는 특별사면으로 석방된 다음 한국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중국은 한국 국민에게 끼친 상처에 대해 사과하고 보상해야 하며 그것이 (한중 우호의)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중국의 전쟁 개입은 단계적이었다. 첫째, 마오쩌둥은 전쟁 1년 전인 1949년 5월 중공군에 배속된 3개 조선인사단을 김일성의 요청에 따라 북한군에 이양하기로 결정해 남침 때 인민군의 최전방 공격부대가 되게 했다. 이때 마오는 김일성 특사에게 무력통일계획을 자세히 묻고 필요한 경우 중국이 도울 수 있다고 밝혔다.

 둘째, 1950년 4월경 스탈린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김일성에게 마오쩌둥의 지원 약속을 전제로 남침계획을 승인하자 마오는 한 달 후 베이징을 방문한 김일성에게 남침작전 때 외국 군대가 개입하면 북한군을 지원하겠다고 약속했다. 이로써 김일성의 남침은 가능해졌다. 이에 대해 쉬쩌룽 박사는 “스탈린은 한국전쟁의 연출자이자 감독이었다. 그는 육상선수를 훈련시켰을 뿐 아니라 제1주자인 김일성의 바통을 이어받을 제2주자 마오쩌둥까지 예비해 두었다”라고 지적했다.  

 셋째, 1950년 6월 말 미국의 파병 결정이 나자 마오쩌둥은 북한군의 남한 점령을 서둘러 완료하기 위해 조기 참전을 희망했다. 그는 중국의 즉각 참전을 간절히 바라던 김일성에게 스탈린을 설득하라고 권유했다. 그러나 스탈린은 6·25를 내전으로 가장하기 위해 유엔군의 북한 진격 이전 중국의 참전을 불허했다. 마오는 이 무렵 동북군구 소속의 조선족 장교 200명을 인민군간부 교육을 위해 북한에 보냈다.  

넷째, 마오는 1950년 10월 참전한 중공군이 다음 달 유엔군의 크리스마스 공세를 저지하는 데 성공하자 스탈린의 지시에 따라 남한 ‘해방작전’을 명령했다. 중공군은 서울을 함락하고 평택까지 남하했으나 유엔군의 맹렬한 반격에 못 이겨 후퇴한 것이다. 중국 정부는 자국민들, 특히 2세들마저 속이는 시대착오적인 역사 왜곡을 중지해야 한다.

※필자는 지난해 발간한 저서 ‘6·25전쟁과 미국’(청미디어)에서 6·25전쟁의 발발 및 전개과정에 대해 상세히 밝힌 바 있습니다.



남시욱 객원논설위원 세종대 석좌교수

Read more:
http://news.donga.com/3/all/20161013/80764560/1#csidxa484e3768a981a4bf8c4112a8c78d4a
Copyright © LinkBa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