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이스터섬, 모하이와 함께한 1주일

거울속의 내모습 2016. 6. 25. 23:57

이스터섬, 모하이와 함께한 1주일

 

밖으로, 나를 찾아서 떠난 지구 방랑자 4인의 오지 여행기. 오늘의 방랑지는 서태지의 ‘모아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점 찍은 곳. 못난 얼굴들을 보러 30kg의 배낭을 메고 칠레의 이스터 섬으로 향했다.

이스터 섬, 전설 속 모아이를 만나러 페루와 볼리비아를 여행하는 지난 두 달간, 내 최대 관심사는 화장실과 샤워였다. 화장실의 낮은 수압 혹은 화장실 부재 덕에 남의 ‘변’을 원 없이 봤으며, 샤워는 뜨거운 물이 안 나오거나, 뜨거운 물만 나와 신음해야 했다. 30kg의 배낭을 메고 극한을 체험해서 나를 정화하겠다는 ‘오만함’은 남미에 온 지 1주일 만에 깨졌다. 그렇게 두 달간 페루와 볼리비아를 거쳐, 처음으로 휴식을 취한 곳이 칠레의 이스터 섬(Easter Island)이다.

이곳에선 당연히 섬 여기저기 산재한 ‘모아이’를 보는 것이 여행 스케줄의 최우선이다. 모아이 채석장이 있는 라노 라라쿠(Rano Raraku), 15개의 거대한 모아이를 볼 수 있는 아우 롱가리키(Ahu Tongariki) 등 모아이가 어떤 형태로 몇 개가 있는지 표시된 ‘모아이 지도’를 들고 찾아 다닌다. 숙소와 상점들이 모인, 섬의 유일한 마을인 앙가 로아(Hanga Roa)에서 먼 곳이라면 자동차를, 가까운 곳이라면 걷거나 자전거를 대여한다. 시내라고 해 봤자 차 경적 한 번 울릴 일 없이 한적해 자전거나 바이크를 타기에도 위험하지 않다. 방목하는 말과 소가 도로를 점령하곤 하지만 양보하면 된다. 가만히 있으면 말들이 만져 달라고 곁에 다가오는데, 그만큼 여기에선 서로 해를 입히거나 끼치지 않음을 알고 있다. 편안하다.이스터 섬은 칠레에서 3700km 떨어진 섬이다. 산티아고에서 비행기로 5시간 걸리고, 시차도 2시간이니 다른 나라라 해도 될 지경이다. 항공편도 LAN(칠레항공) 독점이라 60만~100만원을 호가한다. 마지막까지 굳이 여기를 가야 할지 고민했지만, 서태지의 ‘모아이’ 뮤직비디오를 보면서 마음을 굳혔다. 2008년에 나온 ‘모아이’는 이스터 섬의 모아이를 배경으로 탄생한 곡이며, 그곳에서 뮤직비디오도 촬영했다. 누군가 “제주도 같다”는 허망함을 전해왔지만, 바람이 세고 현무암이 많고 모아이가 돌하르방을 조금 닮았다는 것 말고는 완전히 달랐다. 옛 원주민들이 이곳을 ‘세상의 배꼽’이라 생각할 정도로 어디를 둘러봐도 막막한 태평양, 누군가 용기를 내 항해를 떠났어도 끝없는 바다에 좌절했을 이 엄청난 ‘위치’가 마음에 들었다. 어릴 적, 지구본을 돌려 가고 싶은 나라를 손가락으로 찍었다가 열에 하나는 나왔던 태평양, 그곳의 작은 섬에 와 있다는 기묘함 말이다.

 

 

 

이곳에서 가장 자주 나눈 대화는 모아이에 얽힌 미스터리다. 5m나 되는 모아이에 모자는 어떻게 올렸는지(굳이 왜 모자를 씌웠는지), 대체 어디서 그리 큰 돌을 구했는지 등등…. 솔직히 좀 불편했다. 굳이 왜 이런 일을 벌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는지, 이 코 크고 턱이 긴 못난 돌에 정이 가지 않았다. 한 여행자는 “아무도 정확한 사실은 모르잖아. 그때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왜 섬에 이렇게 많은 모아이들이 있는지 이야기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재미있는걸”이라고 했다. 그게 많은 사람들이 이 못난 얼굴을 계속 보러 오는 이유일 거다. 특히 모아이 너머로 지는 노을은 어디에도 없는 풍경이라 저녁이면 많은 사람들이 해변가의 모아이로 몰려든다. 이스터 섬엔 아름다운 해변도 많다. 하얀 백사장의 아나케나(Anakena)가 유명하지만 발품을 팔면 ‘시크릿 비치’에서 몰래 쉴 수도 있다. 파도는 태평양에게 ‘싸다귀’를 맞는 기분일 정도로 세지만 그 또한 즐기면 될 일이다. 바위가 많아 위험한 데도 서퍼들이 많은 이유이기도 하다. 1주일 내내 머문 텐트에선 쏟아지는 별, 파도소리와 함께 잠들었다. 이곳에선 텐트에서 장기간 머물러도 좋다. 밤낮의 기온 차가 크지 않고, 습도도 거의 없다. 가끔 비가 내리지만 짧고 굵다. 여행자들은 밤마다 텐트 앞에 앉아 파도소리와 함께 술을 마셨다. 심신이 지쳤던 나는 다시 ‘여행력’을 끌어모았다.

 

 

 

김나랑한 가지 일에 10년을 쏟았으니 일단 놀기로 했다. 10년 경력의 매거진 피처 에디터 직을 그만두고 얼마 전 6개월 동안 남미 여행을 떠났다. 막상 와보니 6개월은 부족해 아웃 티켓을 취소했다.

기억에 남는 또 다른 여행지칠레의 이슬라 네그라(Isla Negra). 파블로 네루다는 칠레에 석 채의 집을 소유했는데, 가장 좋아했던 집이 이슬라 네그라에 있다. 소음이라고는 부서지는 파도뿐인 조용한 마을이다. 바다를 사랑한 시인인 만큼 집에는 온갖 바다 관련 조각과 그림들이 가득하다. 네루다의 수집품을 보는 것도 재미있고, 집 옆의 레스토랑에선 네루다가 즐겨 먹었다는 붕장어 수프를 훌륭하게 내놓는다.내 여행의 잊지 못할 기록가장 숨 쉬기 힘들었던 여행지인 페루 와라스(Huaraz)의 69호수. 해발 3600m의 고산 지대인 와라스도 숨이 가빠 고산병 약을 먹었는데, 안데스산맥의 4800m에 자리한 69호수를 등반하다 저승을 보았다. 다섯 걸음마다 숨을 몰아쉬어야 했고, 동료는 산소호흡기를 처방받았다.여행길에 의외로 유용한 아이템와이어. 심야버스를 탈 때 가방과 나를 묶어 ‘딥 슬립’할 수 있었고, 빨랫줄로도 쓸 수 있다.언젠가 해 보고 싶은 여행자메이카에 가서 레게 머리를 하고 춤추고 싶다.내가 떠나는 이유내내 편안한 것보단 가끔 짜증 나고 귀찮아야 진짜 사는 것 같다.

 

 

 

EDITOR 김아름,김영재,김은희

ART DESIGNER 변은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