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국내여행가이드

호수와 산 바다..싱그러운 봄노래

거울속의 내모습 2016. 3. 19. 23:47

속초는 우리나라 동해 관광지의 대명사로 통한다. 동해와 설악산 등 전국에서 손꼽히는 관광지를 보유하고 있고,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짠 호수라 불리는 석호도 두 곳이나 있다. 영랑호와 청초호가 그곳이다. 겉으로 보기엔 일반 호수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다가가면 바로 짠 내음을 느낄 수 있다. 거대한 바다를 모태로 생긴 자신들은 일반 호수와는 다르다는 듯 첫인상부터 강렬함이 느껴진다.

강원 속초 영랑호는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모래가 만의 입구를 막아 생긴 석호다. 영랑호에 있는 리조트 20층 식당에선 설악산과 동해, 호수를 조망할 수 있어 천하 절경이라는 감탄이 절로 나온다.


석호는 모래 해안에서 바닷물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며 모래가 만(灣)의 입구를 막아 생기게 된다. 그러다 장마 등으로 육지 쪽 수량이 급격히 늘어나면 호수 물이 모래로 막혔던 입구를 뚫고 바다로 나가게 된다. 뚫린 입구를 통해 바닷물이 호수 안으로 들어오고 나가기를 반복해 입구는 다시 모래로 막히게 된다. 이런 움직임이 수천 번 반복되면서 석호는 바닷물만큼 짜진 않지만 민물이라고 하긴 힘든 염도를 가지게 된다.

영랑호는 이 같은 석호의 특징이 잘 살아 있다. 한 호수 내 육지 쪽과 바다 쪽은 염도 차이가 난다. 바다 쪽에 갈매기가 몰려 있고 해초가 물밑에서 자란다. 육지 쪽엔 고니나 백로 등이 놀고 갈대가 우거져 있다.

영랑호를 둘러싼 산책길은 약 8㎞로, 호수 주변을 구경하며 걸으면 두세 시간 정도면 충분하다. 영랑호 산책길은 벚나무로 뒤덮여 있다. 속초는 북쪽에 있다 보니 봄이 늦다. 아직 꽃망울만 맺힌 정도이지만 4월이면 영랑호는 벚꽃으로 둘러싸여 봄을 만끽하기에 제격이다.

걷기가 부담스럽다면 스토리자전거 투어도 좋다. 문화자연해설사가 모는 전기자전거를 타고 여행객은 뒷좌석에 편하게 앉아 1시간가량 설명을 들으며 영랑호를 둘러볼 수 있다.

강원 속초 영랑호의 범바위.


영랑호에서는 범바위를 빼놓을 수 없다. 웅크리고 앉은 호랑이 모습과 비슷해 붙여졌다. 계단을 따라 1∼2분 정도 오르면 범바위에 오를 수 있다. 바위에 오르면 돌 무더기 사이로 영랑정이 서 있다.

범바위에 오르면 동쪽으로는 영랑호, 서쪽으로는 설악산 전경을 조망할 수 있다. 영랑호에서 볼 수 있는 경치의 감동은 천 년이 넘는 시간을 뛰어넘는다. 신라 때 화랑 ‘영랑’이 동료와 이곳을 지나다 호수의 아름다움에 매료돼 풍류를 즐겼다는 얘기에서 호수의 이름이 유래한 것을 보면 말이다.

범바위를 내려와 밑에서 바위를 올려다보면 상어, 물개, 똬리 튼 구렁이 등의 모양으로 보인다. 보는 사람마다 다르니 정답은 없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범바위 주변은 무속인들이 몰려들어 그들이 꽂아 놓은 각종 깃발과 장식으로 울긋불긋했다고 한다. 범바위가 덩치만큼이나 영험한 기운이 있는 존재로 여겨진 것이다.

범바위를 지나 10분 정도 자전거를 타고 가면 장천마을이 나온다. 설악산에서 흘러내린 시내가 석호와 만나는 장천천이 흐르는 마을이다. 석호와 장천천 사이에서 진귀한 장면을 볼 수 있다. 염분이 있는 호수에서 민물로 올라오는 황어 떼다. 물보다 물고기가 더 많은 모습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속초의 또 다른 석호인 청초호는 ‘아바이마을’과 연관이 깊다. 6·25전쟁 당시 1·4후퇴 때 국군을 따라 내려온 함경도 지역 주민들은 청초호와 바다 사이 모래톱에 정착했다. 곧 고향으로 돌아갈 거라 생각한 피란민들은 모래를 파 움막을 짓거나, 미군부대 인근에 널린 박스를 주워 오고 부서진 배 등을 엮어 삶의 터전을 세웠다. 하지만 전쟁이 끝나도 돌아가지 못했다. 남자들은 배를 타 물고기를 잡고, 여자들은 물고기를 내다 팔아 생계를 이어갔다. 힘들게 살던 이 마을은 갯배 등이 드라마 ‘가을동화’ 배경으로 등장하며 유명해져 관광지로 변했다.

강원 속초 설악대교 밑으로 수로가 뚫려 큰 배들이 청초호 안으로 오갈 수 있게 됐다.


아바이마을엔 옛 흔적이 여전히 남아 있다. 상점들 사이로 좁은 골목이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피란민들이 의지할 곳이 이웃 피란민밖에 없다 보니 집을 다닥다닥 지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이다.

청초호는 이제 호수라기보다는 바다가 육지 속으로 파고 들어와 있는 만으로 변하고 있다. 청초호와 바다 사이 사구를 없애 큰 배들이 지날 수 있도록 수로가 조성됐기 때문이다. 아바이마을이 있던 곳으로, 이들은 이곳에서 수로를 기준으로 다시 남북으로 갈라지게 됐다. 수로 조성 전에는 모래톱을 따라 음식점 등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었다. 조성 후엔 속초관광수산시장과 갯배로 연결된 북쪽 아바이마을은 관광지로 여행객이 여전히 북적이고 있지만 수로 건너편 남쪽 마을은 일반 어촌 마을로 변해 버렸다.

속초=글·사진 이귀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