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모스와 어우러진 화순 고인돌공원
오마이뉴스 이돈삼 입력 2015.09.04 14:30
[오마이뉴스 이돈삼 기자]
▲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화순 고인돌공원. 옛 추억을 떠올려주는 코스모스 활짝 핀 길을 걸으며 선사시대로 여행할 수 있는 곳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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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스모스 하늘거리는 풍경은 가을과 직결된다. 김상희의 노래 덕분이다. 하지만 코스모스는 본디 6월에서 10월 사이에 핀다. 한여름에 피는 것이 비정상만은 아니다. 코스모스 활짝 핀 풍경에서 가을의 향기가 물씬 묻어난다. 지난 8월 28일 전남 화순이었다.
화순 고인돌공원에 코스모스가 활짝 피었다. 공원으로 들어가는 길목, 관광안내소 부근 7만 ㎡에 코스모스가 지천이다. 하얗고 연분홍과 진분홍 빛깔의 코스모스에다 노란 황화코스모스까지 피어 형형색색의 꽃물결을 이루고 있다.
고인돌을 보러가는 길섶에도 코스모스가 줄지어 피어 있다. 코스모스 향기 그윽한 길을 걸으며 수백 기의 고인돌을 보면서 가을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꽃길이 선사시대의 무덤인 고인돌과 어우러져 아름답다.
'고인돌 왕국', 바로 여깁니다
▲ 화순 고인돌공원의 감태바위 채석장. 포개진 고인돌이 흡사 사람의 형상을 닮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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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인돌공원 곳곳에 널브러진 고인돌. 평지가 아닌 산자락에 분포돼 있는 것이 특징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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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0년 12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전남 화순과 전북 고창, 경기 강화의 고인돌군 가운데서도 가장 눈에 띈다. 고인돌의 숫자도 숫자지만, 화순에는 돌을 캐고 무덤을 만들기까지의 과정을 알 수 있는 채석장이 있기 때문이다.
대개 고인돌은 들녘이나 평지에 많다. 그래서 옛날 어린이들의 놀이터로 인기였다. 들녘에서 일하던 어른들의 새참 장소로도 활용됐다. 하지만 화순의 고인돌은 산속에 모여 있어서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 세계에서 가장 큰 고인돌로 알려진 핑매바위. 화순 고인돌공원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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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핑매바위 주변 풍경. 산길을 따라 걸으며 만날 수 있다. 자동차를 타고도 지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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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 바위의 밑을 보면 크고 작은 돌들이 떠받치고 있다. 틀림없는 고인돌이다. 당시 10톤의 바위를 옮기는데 100여 명이 동원됐다는 게 학자들의 주장이다. 이 바위를 옮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동원됐을지 짐작하기도 버겁다.
핑매바위에 얽힌 전설
▲ 화순고인돌공원의 선사체험장. 고인돌의 덮개돌을 끌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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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고인돌공원의 마당바위 채석장. 산 중턱에 자리하고 있다. 나무데크 계단으로 연결돼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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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고할미는 천불천탑을 다 쌓은 줄 알고, 갖고 가던 돌을 그 자리에다 쏟아버렸다. 이렇게 쏟아버린 돌이 핑매바위 윗편에 있는 각시바위 채석장이 됐다. 마고할미는 그 가운데 가장 큰 돌 하나를 집어서 핑 내쳤는데, 그게 핑매바위라는 얘기다.
핑매바위 위에는 또 구멍이 하나 뚫려 있다. 여기에다 왼손으로 돌을 던져 넣으면 아이를 낳지 못하던 아낙네가 아이를 갖는다는, 결혼을 하지 못한 이는 결혼을 한다는 전설도 서려 있다. 민초들의 삶속에 함께했던 고인돌이다.
핑매바위는 고인돌공원의 중간쯤에서 만난다. 고인돌공원은 화순군 도곡면 효산리 모산마을에서 춘양면 대신리 지동마을까지 4km 구간을 일컫는다. 모산마을에서 지동마을 방면으로 보검재 삼거리를 지나 왼편에 자리하고 있다.
▲ 관청바위 채석장의 고인돌 덮개돌. 월곡저수지와 어우러져 더 아름답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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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순 고인돌공원에 활짝 핀 코스모스. 관광안내소 주변 2만여 평에서 코스모스로 꽃물결을 이루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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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 중턱에 있다. 산정까지 나무데크로 계단이 놓여 있어서 쉽게 오를 수 있다. 여기에 덮개돌로 쓰일만한 바위가 차곡차곡 포개져 있다. 넓고 평평해서 마당바위라 이름 붙었다. 오래 전 가까운 학교 학생들의 소풍장소였다.
관청바위 채석장도 있다. 월곡저수지 바로 앞에 자리하고 있다. 마당바위와 달리 평지에 가까운 곳이다. 크고 작은 덮개돌이 널려 있다. 돌을 캐내던 흔적도 뚜렷하게 남아있어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관청바위는 옛날 나주목사를 뵈러 가던 보성원님이 여기서 잠시 쉬면서 관청 일을 봤다고 이름 붙었다.
감태바위 채석장도 볼만하다. 포개진 큰 바위가 언뜻 눈사람 모양을 하고 있다. 여기에도 덮개돌을 떼어낸 흔적이 남아 있다. 돌을 떼어내려고 파놓은 홈도 뚜렷하다. 고인돌도 지천이다. 탁자식 고인돌과 기반식 고인돌, 개석식 고인돌까지 즐비하다. 고인돌 전시장이라 불릴만하다.
▲ 감태바위 채석장 부근의 고인돌 전시장. 갖가지 모양의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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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화 코스모스와 어우러진 화순 고인돌공원. 산길을 따라 코스모스와 고인돌이 흩어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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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공원 부근에 가볼만한 곳도 많다. 능주는 고려 초부터 조선 인조 10년(1632년)까지 능성현이었다. 인조의 생모인 인현왕후 구씨의 시조가 태어난 관향이라고 '능주목'으로 승격됐다. 능주목은 264년 동안 지속됐다.
능주목의 첫 목사 부임을 기념하는 죽수절제아문이 복원돼 있다. 당시 관아의 동헌 정문으로 지어진 것이다. '죽수'는 능주의 다른 이름이었다. 이 문이 능주면사무소 앞에 있다. 당시 능주목을 굽어봤을 고목도 즐비하다. 옛 능성현과 능주목의 흔적을 희미하게나마 찾을 수 있다.
▲ 옛 능주목의 고장이었음을 알리는 표지석. 화순 능주면사무소 앞에 세워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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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석강변에 자리하고 있는 영벽정 풍경. 강물과 조화를 이룬 누정이 예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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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주면 관영리에 영벽정도 있다. 맞은편 연주산의 자태가 지석강 물에 비춘다고 해서 이름 붙었다. 누정 앞으로 흐르는 강변과 조화를 이룬 풍치가 빼어나다. 능주면 천덕리에 주자묘도 있다. 주자는 남송 때 주자학(성리학)의 틀을 다졌다. 주자학은 조선조 500년 동안 절대적인 영향을 끼친 학문이다.
혁명 음악가로 알려진 정율성의 흉상도 능주초등학교에 있다. 능주초교는 정율성이 다녔던 학교다. 활짝 핀 코스모스와 함께 선사시대부터 조선, 근대에 이르기까지 역사여행을 할 수 있는 화순이다.
▲ 주자묘에 서 있는 주자 동상. 화순군 능주면 천덕리에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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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능주초등학교에 세워져 있는 정율성 흉상. 정율성은 중국 혁명 음악가로 알려져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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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화순 고인돌공원 찾아가는 길
호남고속국도 동광주나들목에서 광주외곽순환도로를 타고 광주대학교로 간다. 여기서 화순 도곡 방면으로 817번 지방도를 타고 도곡온천지구를 지나 효산 삼거리에서 능주 방면으로 좌회전한다. 도곡면 소재지를 지나 오른쪽으로 고인돌공원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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