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나 버스, 작은 오토바이라도 사람들은 구겨 앉는다. |
델리에서 버스를 타고 매클라우드 간지까지 오랜 시간을 달려왔다. 산이 주는 기운과 평온함이 지친 몸을 달래주면서 쉴 수 있게 해준다. 티베트 음식도 입맛에 잘 맞고, 선선한 날씨도 좋아서 기약 없는 쉼이 시작됐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계속 흘러갔다. 붙잡을 필요도 없고, 아쉬워할 이유도 없다. 때로는 카메라도 내려놓고, 펜도 내려놓을 필요가 있다. 티베트 수도승을 따라서 산을 넘어 보기도 하고, 찻집에 앉아서 생각을 비우기도 하고, 방 안에서 꼼짝도 안 하고 누워서 책만 읽기도 했다. 여행자가 많은 도시에서는 새로운 만남과 헤어짐이 있어서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자각과 함께 ‘떠나야 할 때’를 알게 된다. 하지만 이곳에는 스쳐 지나가는 여행자도 별로 없다. 오기 힘든 곳이고, 인도 여행에서 특별히 북인도만 루트에 넣을 경우에만 오는 곳이다. 장기 여행자들은 이곳에 사는 사람과 섞여서 최대한 몸을 감추고 지낸다. 그래서 ‘떠나야 할 때’를 잊고 여행이라는 단어조차 망각해버린다.
물들인 발과 샤리 색, 그리고 장신구가 인도 여인네를 말해준다. |
달라이 라마가 머무는 거처가 있지만, 워낙 바쁜 분이라서 보지는 못했다. 젊은 티베트인은 한국이 일본으로부터 독립한 역사에 상당한 관심이 있다. 그들은 티베트의 정신적 지주인 달라이 라마가 평화를 지향하기에 더더욱 다른 나라가 관심을 가져야만 한다고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독립에 관해서 이야기하면서 갑자기 울컥해진다.
아이를 안은 엄마 모습. |
매클라우드 간지에서 새벽 버스에 오른 날은 충분히 쉬고 나서 갑작스러웠다. 새벽 별이 떠나는 버스 위로 반짝였다. 황금 사원이 있는 암리차르로 향했다. 황금 사원은 시크교 사원이다. 여행자에게 숙식을 제공해주는 곳이다. 외국 여행자보다는 인도 여행자가 많아서 외국 여행자는 어느 정도 기부함으로 향하게 한다. 식사는 다 같이 이뤄지고 정해진 시간에 가야 한다. 의도하지 않게 수도승들과 같은 생활을 하게 된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뛰어놀다가도 카메라를 바라본다. |
그리고 다시 델리로 향했다. 인도를 떠나야 할 때, 혹은 인도에 들어올 때 들르게 되는 곳이다. 뭄바이나 콜카타 공항을 이용하기도 하며, 드물게 남인도 도시로 들어가기도 한다. 델리행 비행기 노선이 가장 다양하고, 이동경로를 생각했을 때 편의성을 위해서 델리로 많이 오게 된다. 델리 공항은 모든 인도 공항이 그렇듯이, 비행기 표가 있어야만 공항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공항 안에는 흡연공간이 없으며, 잠깐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 밖으로 나가면 어디서든 피울 수 있다. 입국하는 층에는 공항 문앞에 사람들이 진을 치고 있다. 공항에서 나왔을 때, 제일 먼저 느끼는 공기 중에 있는 냄새를 맡게 된다. 어느 나라에 가든 도착해서 맡는 냄새가 그 나라 향을 느끼게 해주며, 첫인상을 남긴다. 인도는 특히나 향이 확실히 느껴진다. 향신료와 잎담배나 담뱃잎 향이 공기에서부터 퍼져 나온다. 반대로 여행을 마치고 공항으로 들어갈 때는 익숙해져 버린 냄새가 느껴지지 않는다. 그만큼 이미 인도에 익숙해졌다.
집 안에 있는 아이 모습. |
인도는 몇 달을 여행했는지 상관없이 익숙해졌다고 생각해도, 다음에 다시 찾았을 때는 새롭게 만들어준다. 어차피 인도에 대해서 다 알 수는 없다. 그런 건 처음부터 욕심 부리지 않았다. 여행 왔을 때, 그때만큼만 인도를 보면 된다. 사실 알면 알수록 어려워지는 곳이 인도라는 나라다. 있는 것만 느끼고 오면 가벼운 마음으로 여행할 수 있지만, 무언가를 얻으려 한다면 힘들어진다.
인도에서 자주 볼 수 있는 파란 대문은 브라만 계급을 상징했으나, 오늘날에는 의미가 없다면서도 눈에 띄게 보인다. |
인도에 대해서 혹자는 위험하다고 하고, 더럽다고 한다. 한쪽 측면만 보고 말할 수는 없다. 그래서 호불호가 갈리는 여행지가 인도다. 여행에서 위험요소가 없는 나라는 없다. 그렇다고 여행하면서 목숨까지 걸고 할 수는 없는 일이다. 위험요소를 줄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한다. 외교부에서 지정한 여행지 분류표는 수시로 국제정세에 따라서 변한다. 여행 가기 전에 점검해보고 여행지를 결정해야 한다.
기본 교통수단이 되는 오토릭샤. |
그럼에도 인도로 여행을 떠나는 여행자는 아직도 많다. 저렴한 여행경비나 책에서 미화된 이야기 때문만은 아니다. 세계 여행자들이 모여드는 인도에는 그만 한 매력이 있다. 어떤 아이가 무심히 던진 말 한 마디가 멍하게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 이유를 알아내려고 애쓰는 자신이 허망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생각을 더 많이 하게 해주고, 더 많은 인내심과 이해심을 나도 모르게 길러준다. 사실 이런저런 이유를 대보려고 해도 맞는 말은 아니다. 어쩌면 미화된 인도 이야기책 한 권을 읽는 편이 나을 수도 있다. 그래도 떠날 사람은 떠나고, 떠나지 않을 사람은 떠나지 않는다.
인도에서 보는 색은 다양하다. 염색 천으로 만든 옷에서 진한 원색과 집에 칠해진 물감, 그리고 음식에 넣은 향신료와 색이 눈을 어지럽게 만든다. 그 어지러움이 현기증으로 오기보다는 총천연색에서 오는 충격이다. 다양한 색처럼 다양한 사람이 있고, 그에 따른 이야기가 있다. 떠날 사람에 속하는 필자는 또 다른 인도 색을 만나기 위해서 다시 인도를 찾을 것이다.
짜이 한 잔은 어디서든 기분 좋게 해준다. |
인도 공항에서 한 시간 넘게 검문을 당하면서 지칠 대로 지치고, 그 당시에는 다시는 인도를 찾지 않으리라 다짐했지만, 또 언젠가는 다시 찾아올 것을 안다. 마지막으로 짜이 한 잔을 마시면서 인도를 떠났다. 진한 짜이 향이 아직도 마음에 맴돈다.
여행작가 grimi79@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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