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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강 보중의 이포보 둘러 보기

거울속의 내모습 2015. 7. 29. 21:17

                       4대강 이포보

 

 

 

 

 

 

보의 위쪽 자전거 도로입니다

 

 

 

전망대 내부의 모습, 냉방시설이 잘되있어 오늘이 7월28일 삼복중인데도 아주시원했읍니다

 

 

 

 

 

 

 

보를 우회해서 물고기들이 자유로이 다닐수 있게 어도를 내주었읍니다.

 

 

 

                 

                       보우트 를 실어나르는 트레일러 입니다.

 

               

                      아래쪽에서 올려다본 전망대

 

 

                 

                     전망대 옥상 모습 

 

 

 

 

 

 

 

 

 

 

 

 

 

 

 

 

 

 

 

                 

                      이포나루 전경  강건너쪽에도 나루터가 보입니다.

 

 

 

그옛날의 유명했던 마포나루와 더불어 명성이 대단했던 이포나루가 오늘은 주인없는

빈배만 쓸쓸히 나루터를 지키고 있읍니다.  세월이란 무심한것이지요!

 

 

                  이포나루의 역사

 

여주시는 고구마, , 땅콩 등의 지역 농·특산품을 알리는 축제로 오는 8일부터 11일까지 제15회 여주오곡나루축제를 개최한다. 기존 여주쌀고구마축제와 진상명품축제를 합쳐 모든 곡식을 이르는 오곡과 과거 이곳 남한강의 가교 역할을 했던 나루를 한데 묶어 오곡나루라는 명칭이 만들어졌다. 

남한강을 끼고 있는 여주는 오랜 시간에 걸쳐 중부내륙지방과 한양을 이어주는 수상 교통의 중심지로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조선 4대 나루터에 서울의 광나루와 마포나루 그리고 여주의 조포나루와 이포나루가 들어갈 정도로 여주가 수상물류의 거점 도시로 번성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천년의 역사를 간직한 이포나루 긴 세월 서민들의 애환 함께해

여주는 삼국시대부터 이용됐던 이포나루를 포함하여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며 형성된 대략 12개의 나루터가 여전히 역사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다.

고려시대에의 나루터로는 새나루(단현동) 조포나루(천송동) 여주나루(홍문동) 이호나루(강천 이호리)가 있고, 조선시대의 것으로는 우만나루(우만동) 양화나루(능서 내양리) 창남나루(점동 대오마을) 흔암나루(점동 흔암리) 천남나루(대신 천남리) 찬우물나루(흥천 상백리) 등이 있다.

비교적 큰 나루터들은 나라의 조세를 운반하는 조운의 성격이 강했고 마을의 작은 나루들은 서민들의 발이 되고 생활의 터전이 되었다. 그래서 자연스레 나루터 주변으로 사람들이 모이면서 상업이 번창했는데, 특히 이포나루는 1991년 이포대교가 완공되기 전까지 버스도 배를 태워 운반할 정도로 이 지역의 중요한 교통의 요충지로 수백 년 동안 그 역할을 톡톡히 해왔다.

나루터가 많은 지역이니 만큼 사건사고도 많았다. 가장 큰 사건은 19631027일 안양시 흥안초등학교 학생과 교사 등 49명의 생명을 앗아간 조포 나룻배 침몰 사고다. 이날 사고는 신륵사로 소풍 온 학생들이 조포나루에서 배를 타고 반대편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70명 정원에 그 두 배인 137명을 태운 배가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침몰하는 바람에 일어난 인재(人災)로 안타까움을 더해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