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파리 뉴올리언스
카페 뒤 몽드에서 맛보는 네모난 명물 도넛 베녜
바게트 안에 탱글탱글 새우 살이 가득 포보이
프리저베이션 홀 루이 암스트롱 후예들의 멋진 공연
메종 부르봉 이색 칵테일 마시며 즉흥 연주에 흠뻑
미시시피 강을 떠다니는 증기 유람선미국 남부 루이지애나 주 뉴올리언스는 칵테일 같은 도시다. 여러 술이 섞여 새로운 색과 맛을 내는 칵테일처럼, 다양한 색과 문화를 품고 있다. 미시시피 강 유역 항구 도시인 뉴올리언스는 음악의 도시이기도 하다. 노예로 끌려온 흑인들의 애환이 밴 음악이 클래식과 만나 재즈라는 장르를 낳았다. 재즈와 더불어 새즈락(sazerac) 같은 칵테일도 등장했다. 유럽과 아프리카 식문화가 어우러져 크리올 요리가 발달했다. 그래서 뉴올리언스는 미국의 파리, 딕시랜드(Dixieland), 빅 이지(Big easy), 크레센트 시티(Crescent City) 등 수많은 애칭으로 불린다. 별명만큼이나 이국적인 매력이 가득하다.
잭슨 광장은 프렌치 쿼터의 중심이자 뉴올리언스 여행의 시작점이다
푸른 빛이 도는 어스름 속에 더욱 빛나는 버번 스트리트미국의 파리, 프렌치 쿼터에 반하다
뉴올리언스가 ‘미국의 파리’라 불리는 이유는 프렌치 쿼터(French Quarter) 곳곳에 오롯이 남아 있는 프랑스의 흔적 덕분이다. 부르봉 왕조에서 유래한 버번 스트리트(Bourbon Street)같은 지명이나 파스텔 톤의 고풍스러운 건축 양식이 미국의 여느 도시와는 확연히 다르다. 1682년 프랑스가 뉴올리언스에 깃발을 꽂으며 몰려온 이민자들이 이곳에 집을 짓고 정착한 까닭이다. 1803년 나폴레옹이 토머스 제퍼슨 대통령에게 루이지애나 주를 팔기 전까지 프랑스령이었다. 지금도 프렌치 쿼터엔 그 시절에 지어진 발코니가 우아한 건물, 발코니에 매달린 알록달록한 화분이 여행자의 눈길을 끈다.
미국령이 된 이후 다양한 인종과 문화가 섞이며 크리올 음식이 발달했다. 스페인어 ‘크리오요(criollo·지역 토박이)’에서 유래한 ‘크리올(Creole)’은 원래 미국 남부에 정착한 프랑스나 스페인 정착민의 후손을 일컫는 말이다. 지금은 유럽, 아프리카, 인디언의 식문화가 어우러져 만들어낸 ‘뉴올리언스의 토속음식’으로 통한다. 대표적인 크리올 음식으로는 베녜(beignet), 포보이(po’boy), 검보(gumbo)가 있다.
뉴올리언스 대표 샌드위치 포보이
세월이 흘렀지만 프렌치 쿼터는 여전히 뉴올리언스의 중심이다. 이름난 카페, 레스토랑은 물론 잭슨 광장(Jackson Square), 프렌치 마켓 등 명소도 여기 다 모여 있다. 햇살이 쏟아지는 아침, 뉴올리언스의 명물 베녜를 찾아 나섰다. 베녜란 하얀 슈거 파우더를 듬뿍 뿌려 먹는 네모난 도넛으로 ‘카페 뒤 몽드(Cafe de Monde)’가 원조다. 영화 ‘아메리칸 셰프’에서 주인공이 정통 베녜를 먹어보고 싶다는 아들을 데리고 간 곳이다. “천천히 먹어. 생의 첫 베녜는 다신 못 먹어. 세계 어디서도 이 맛은 못 내”라는 영화 속 대사가 떠올라 1인당 한 접시를 주문했다. 함께 맛볼 프랑스식 밀크커피, 카페오레도 잊지 않았다. 주위를 둘러보니 테이블마다 눈처럼 하얀 슈거 파우더를 뿌린 베녜와 카페오레가 놓여 있다. 달아서 다 못 먹으면 어쩌나 했지만, 막상 먹어보니 갓 튀겨 폭신한 식감에 단맛이 어우러져 자꾸만 손이 갔다. 그렇게 내 생의 첫 베녜는 혀 위에 고소하고 달콤한 기억을 남긴 채 순식간에 위 속으로 사라졌다.
가장 오래된 아파트와 직거래 시장뉴올리언스에서 꼭 맛봐야 할 메뉴로 손꼽히는 베녜
카페 뒤 몽드에서 건널목 하나만 건너면 잭슨 광장이다. 광장 정면에는 1718년 프랑스령 시절 건설된 세인트루이스(St. Louis) 대성당이, 성당의 왼쪽과 오른쪽에는 카빌도(Cabildo)와 프레스비테르(Presbytere)가 서 있다. 그중 카빌도는 1803년 나폴레옹과 제퍼슨 대통령이 루이지애나 주 매매 계약을 체결한 역사적인 장소다. 광장 중앙은 위풍당당한 앤드루 잭슨 장군의 기마상이 장식한다. 미국 7대 대통령을 지낸 잭슨 장군은 뉴올리언스 전투를 승리로 이끈 인물이다. 광장 주변은 캐리커처를 그리는 화가, 거리 공연을 위해 악기를 매만지는 밴드, 타로카드 점술가 등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서일까. 공기 속에 예술가들의 활력이 넘쳤다. 광장 건너편 모퉁이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아파트 중 하나인 ‘퐁탈바 아파트(Pontalba Apartments)’가 우아한 자태를 뽐낸다. 프렌치 마켓도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이란 수식어가 붙는 시장이다. 미국 최초의 직거래 시장으로 1771년 세워졌다. 1800년대 초 큰 태풍 때문에 건물이 훼손돼 가판 형태로 시장 명맥을 이어왔다. 시장 안에는 신선한 채소와 과일뿐 아니라 기념품과 옷, 액세서리 가게와 카페가 한데 어우러져 있다.
프렌치 쿼터를 거닐다 출출해지면 크리올 음식을 맛볼 차례다. 간단하게 즐기기엔 포보이가 제격이다. 바게트에 구멍을 내서 그 안에 튀긴 굴이나 새우, 고기, 채소 등을 넣어 만든 뉴올리언스 대표 샌드위치다. 그중에 제일 인기 메뉴는 새우 포보이로 부드러운 빵과 탱글탱글한 새우 살이 환상의 조화를 이룬다. 양이 푸짐해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다. 빵보다 밥을 선호한다면 해산물과 고기 채소를 넣은 걸쭉한 국물에 밥을 쓱 비벼 먹는 검보나 해산물 고기 볶음밥과 비슷한 잠발라야가 좋다.
미시시피 강과 함께 흐른 뉴올리언스 역사
뉴올리언스의 또 다른 애칭은 크레센트 시티다. 미시시피 강이 휘감아 도는 뉴올리언스의 지형이 초승달을 닮아 붙여진 별명이다. 크레센트 시티의 진면목을 보기 위해 나체스(Nachez)에 승선했다. 오래전 목화와 사탕수수를 실어 나르던 증기선이 유람선으로 변모했다. 게다가 나체스를 타면 재즈 공연을 즐기며 2시간 동안 미시시피 강을 돌아볼 수 있다. 미시시피 강은 나일 강과 아마존 강에 이어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다. 길이가 무려 6210㎞로 미네소타주에서 시작해 뉴올리언스까지 흐른다. 50개 주 중 31개 주에 걸쳐 있어 ‘어머니의 강’으로도 불린다. 인디언 말로 ‘위대하다’는 뜻을 품고 있다.
열정적인 무대를 선보이는 메종 부르봉의 재즈 연주자들
맥주를 홀짝이며 재즈 연주를 듣다 보니 이 배를 타고 시카고와 뉴욕으로 떠났을 연주자들이 떠올랐다. 제1차 세계대전으로 뉴올리언스가 군항이 되자 일자리를 잃은 재즈 음악가들은 미시시피 강을 따라 시카고와 뉴욕으로 떠났다. 그렇게 뉴올리언스에서 태동한 재즈는 미시시피 강을 타고 미국 전역으로 번져 나갔다. 재즈뿐만이 아니다. 뉴올리언스에서 생산된 목화와 사탕수수도 증기선을 타고 미국 구석구석으로 배달됐다. 뉴올리언스의 역사는 미시시피 강과 함께 흘러왔다.
재즈 선율이 흐르는 버번 스트리트
뉴올리언스 버번 스트리트에 밤이 내려앉으면 도시의 맥박이 달라진다. 어스름 속에 더욱 조명을 환히 밝힌 건물들은 더욱 빛난다. 사람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속속 몰려든다. 여기가 낮에 본 그 거리가 맞나 두리번거리는데, 어디선가 밴드가 나타났다. 거리는 무대가 되고 행인은 관객이 돼 한바탕 재즈 공연이 펼쳐졌다. 저절로 어깨가 들썩여졌다. 쓰러질 듯 허름한 건물 앞엔 사람들이 일렬로 서 있었다. 가까이 가보니 루이 암스트롱을 비롯해 내로라하는 음악가들이 거쳐간 ‘프리저베이션 홀(Preservation Hall)’이 아닌가. 암스트롱의 후예들은 오늘도 멋진 공연을 선보일 터였다.
잭슨 광장 주변에선 거리 연주자들도 흔히 볼 수 있다
정처 없이 걷다가 열린 창 너머로 흘러나오는 재즈 선율에 자석처럼 끌려간 바는 ‘메종 부르봉(Masion Bourbon)’이었다. 뉴올리언스 양대 칵테일인 새즈락과 허리케인을 한 잔씩 주문하고 익살스러운 보컬과 진지한 연주자들의 즉흥적인 연주에 빠져들었다. 새즈락은 버번위스키를 베이스로 한 달콤 쌉싸름한 맛이 특징이고, 허리케인은 오렌지, 레몬 향이 나는 럼 베이스의 칵테일이다. 재즈 문외한도 허리케인 같은 박수를 부르는 멋진 연주였다.
좀 더 재즈에 흠뻑 빠져들고 싶어 프리츨스 유러피언 재즈 클럽(Fritzel’s European Jazz Club)을 찾았다. 1831년에 지은 오래된 건물 안은 바깥과는 전혀 다른 세상이었다. 과거에 시간이 멈춘 듯한 공간에 오직 재즈만이 흘렀다. 관객들은 파도를 타듯 재즈를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다. 덩달아 리듬에 맞춰 발을 구르고 고개를 흔들었다. 연주자들도 지금 이 순간 세상에서 가장 즐겁다는 표정으로 서로 눈빛을 교환하며 음을 맞췄다. 피아노, 베이스, 드럼, 트럼펫의 음이 한데 어우러졌다. 여러 가지 술이 섞여 새로운 맛을 만들어내는 한 잔의 칵테일처럼.
■여행 정보
인천 국제공항에서 뉴올리언스 루이암스트롱 공항까지는 직항이 없다. 어느 항공사를 이용하든 미국 주요 도시를 거쳐 뉴올리언스로 가야 한다. 공항에서 시내까지는 셔틀버스로 연결된다. 뉴올리언스의 볼거리는 프렌치 쿼터에 오밀조밀 모여 있어 도보로도 충분히 둘러볼 수 있다. 프렌치 쿼터 외 지역으로 이동할 땐 빨간 스트리트카를 타면 된다. 빨간 스트리트카는 언뜻 관광객 전용처럼 보여도 현지인이 애용하는 교통수단이다. 외곽 지역의 주요 명소를 둘러보고 싶다면 원하는 곳에 내렸다 탈 수 있는 시티투어 버스를 이용해도 좋다.
뉴올리언스=글·사진 우지경 여행작가 travelette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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