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국내여행가이드

그 섬에는 오랜 그리움이 머문다

거울속의 내모습 2016. 10. 17. 01:03

한에서 차로 갈 수 있는 섬 중 가장 북서쪽에 위치한 섬. 북녘 땅과의 거리가 불과 3km 이내인 섬. 새벽 내내 대남방송이 들려오는 섬. 이러한 점 때문에 교동도는 그동안 주민 외에 일반인의 발길이 드문 섬이었다. 군사 지역이라 마음대로 드나들 수도 없었다. 최근에야 강화도와 이어지는 교동대교가 생기고 출입제한도 완화돼 찾는 이들이 늘었다지만, 여전히 교동도의 길에는 고요함과 함께 왠지 모를 그리움이 지난다.

교동도 월선포에서 강화나들길 9코스가 시작된다. 뒤로 교동대교가 보인다. Ⓒ신희수 기자

이제는 가까워 진 섬, 교동도

분명 다른 느낌이다. 그간 섬이란 섬은 많이도 찾아다녔고 교통이 뜸한 곳도 어떤 방법으로든 들어갔다 나왔지만, 교동도만큼은 약간 달랐다. 평소에는 잘 들어보지도 못한 섬을 처음 알게 된 건 2년 전, 마침 ‘교동대교가 개통됐다’ 해서 차를 끌고 신나게 강화도 북쪽 끝으로 향했다. 그런데 다리 입구에서 보초를 서고 있던 병사에게 보기 좋게 퇴짜를 당했다. 어두컴컴한 밤이었기 때문이다. 당시만 해도 일몰 후 30분부터 일출 전 30분까지는 교동도 출입이 금지됐었다.

그때의 기억 때문일까, 개인적으로 교동도는 마치 ‘쉽게 가지 못하는 금단의 장소’라는 인식이 머릿속에 자리를 잡았다. 이번에도 트레킹 취재를 위해 교동도로 향하는데 아침인데도 괜스레 불안감이 들었다. 시간이 한정돼 있어 최대한 빠르게 움직여야 한다는 마음에서였다. 결국 동행한 사진기자와 협의해 '캠핑을 추가해 시간에 쫓기지 말고, 여유 있게 하루 더 있자'고 결정했다.

교동도에 들어가려면 임시출입증을 받아야 한다. 자정부터 오전 4시까지는 통행이 제한된다. Ⓒ신희수 기자
그렇게 서울에서 2시간여를 달려 교동대교 입구에 다다랐다. '여기 출입신청서를 적어주십쇼.' 보초병의 말에 따라 이름, 연락처, 목적을 차례대로 작성해 신분증과 함께 제출한 후 임시출입증을 발급 받았다. 명함 크기의 임시출입증은 교동도를 빠져나올 때 다시 제출해야 하기 때문에 잘 간직하고 있어야 한다. 출입증에는 교동도의 출입 시간(일출 전 30분~일몰 후 30분)이 적혀 있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보초병에게 물었다.

'언제 다시 나올 수 있나요?'

'00시부터 04시까지만 제외하면 아무 때나 가능합니다.'

오면서 걱정했던 것을 단번에 무색하게 하는 답변이 들려왔다. 최근에 출입제한이 많이 완화된 것이다. 다소 벙찐 표정을 얼른 감추고는 교동대교로 진입했다. 2014년 7월에 개통된 교동대교는 총 길이 3.44km·왕복 2차로의 규모로, 배로 오가야 했던 예전에 비해 훨씬 수월하게 이동할 수 있도록 만들어줬다. 마음속으로 그 고마움을 전하며 교동도로 들어섰다.

교동도의 과거를 마주하다

이번 교동도 트레킹의 시작점은 월선포다. 교동도 동남쪽에 위치한 월선포는 강화도와 가까워 얼마 전까지도 선착장으로 이용됐던 곳이다. 이 때문에 ‘교동도 선착장’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그 흔적은 포구 바로 앞에 있는 ‘월선포 대합실’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비록 지금은 배가 다니지 않아 폐쇄됐지만 하나의 추억거리로 남았다.

코스가 시작되는 곳에서 기념으로 스탬프를 찍어 본다. Ⓒ신희수 기자
월선포는 ‘강화나들길 9코스’의 시작점이기도 하다. 강화도 곳곳을 두르는 강화나들길은 2011년, 교동도에도 지선이 확장됐다. 교동도에는 총 2개의 코스(9·10코스)가 조성됐으며 각각 ‘다을새길’, ‘머르메 가는길’이라는 이름도 붙었다. 그중에서도 교동도의 가장 높은 산인 화개산(259m)과 옛 추억이 서린 대룡시장을 지나는 9코스-다을새길을 따라가기로 결정했다. 그렇다고 그 길만 따르지 않고 때때마다 볼거리가 많은 곳으로 넘나들기로 했다.

월선포에서 배낭을 메고 본격적인 교동도 트레킹을 시작한다. 다을새길의 본래 진행방향은 반시계 방향이지만, 교동읍성을 먼저 보기 위해 그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바다와 육지의 경계를 이루는 제방을 따라 난 길이다. 이곳에서는 방금 건너 온 교동대교와 강화도를 바라보며 걸을 수 있다.

교동도 길을 걷다 보면 정겨운 풍경이 연신 펼쳐진다. Ⓒ신희수 기자
제방길을 따라 30분을 걸으니 돌과 흙으로 이루어진 큰 구조물이 눈에 띈다. 교동읍성이다. 흔히 읍성은 지방행정 관아가 소재한 곳에 주로 축성되었다고 하는데, ‘이 작은 섬에는 어쩐 영문일까’ 궁금증이 든다. 스마트폰으로 바로 찾아보니, ‘과거에는 교동도가 한반도 중앙에 위치하고 중국과 가까운 지리적 장점 때문에 교통과 경제적·군사적 요충지였다’는 결과가 나온다.
과거 교동도를 지키는 역할을 하던 교동읍성. 현재는 반원 형태의 홍예문만 남아 있다. Ⓒ신희수 기자
이를 증명하는 단서는 읍성과 가까운 거리에 있는 남산포에도 있다. 남산포는 1633년 경기·황해·충청 3도의 수군을 총괄하는 ‘삼도수군통어영(三道水軍統禦營)’이 설치된 곳이다. 비록 지금은 그 흔적이 미세하고 읍성마저도 많은 부분이 유실됐지만, 이 둘은 당시 교동도의 중요성을 알게 하는 대목이다.

남산포에 남아 있는 함선계류석과 사신당을 둘러본 뒤, 대룡시장을 향해 북쪽으로 길을 이어간다. 시장까지의 3km 길 옆으로는 주로 논밭이 이어진다. 마침 벼가 익기 시작하는 초가을이라 온통 초록색 사이로 듬성듬성 진한 노란색이 석였다. 그 한 가운데를 걸으며 푸르른 풍경 속에 풍덩 빠진다.

여름 내내 푸르렀던 벼가 초가을이 되자 알알이 영글기 시작했다. Ⓒ신희수 기자

실향민들의 애환이 깃든 대룡시장

교동도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대룡리에 들어서자 주위 풍경이 약간 바뀐다. 상가들이 연이어 나타났지만 모두 3층을 넘지 않는 높이다. 여느 시골 읍내 같은 분위기. ‘대룡시장’을 알리는 간판을 따라 골목길로 들어가니 더욱 정겨운 모습들이 숨어 있다. 마치 1970~80년대로 돌아간 듯, 세월을 그대로 안은 단층 건물들이 좁은 골목길을 따라 다닥다닥 붙어 있다.

대룡시장은 6·25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피난을 온 실향민들이 조성한 곳이다. 1960년대 교동도의 주민이 1만2천명(현재 약 3천명)이 넘었을 때는 시장이 가장 번창했다. 현대로 오면서 자연스레 쇠퇴했고 모습도 예전에 비해 많이 달라졌지만, 옛 정취만큼은 그대로다. ‘교동이발관’, ‘동산약방’ 등 초창기부터 이어진 가게들의 주인장은 이제는 하나 같이 머리가 모두 백발이 되었지만, 그저 묵묵히 그 자리를 지켜가고 있다. 그들의 애환이 깃든 대룡시장 곳곳을 살피며 추억을 남겨 본다.

과거 황해도에서 피난 온 실향민들의 애환이 그대로 깃들어 있는 대룡시장. Ⓒ신희수 기자

북녘 땅이 보이는 화개산에 올라

화개산 초입에 피어난 이름 모를 노란 꽃이 등산객들을 반겨준다. Ⓒ신희수 기자
대룡시장에서 잠시 한숨을 돌린 뒤 다시 길을 이어가기 위해 다을새길 지도를 펼쳐든다. 순환형 코스인 다을새길은 이제 화개산과 교동향교를 지나 출발지였던 월선포까지 닿으면 끝이 난다. 그런데 순간 고민이 든다. 앞서 교동도에 들기 전 계획했던 캠핑을 하기 위한 장소를 찾아야 하는데, 사실 교동도에는 화개산 정상 외에는 마땅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또한 화개산 정상에서 하루를 보내면 교동향교와 화개사를 보지 못하기에 결국 결단을 내린다. 지나온 길을 다시 돌아가 역방향으로 오르기로. 이렇게 하면 교동향교와 화개사를 거쳐 화개산 정상에 오를 수 있다.
화개산은 높이가 낮지만 정상 부근의 경사는 꽤 가파르다. Ⓒ신희수 기자
‘무슨 헛고생이냐’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어차피 시간도 넉넉하니 전혀 문제 되지 않는다. 여유 있게 다시 읍내리 방향으로 30여 분을 걸어 교동향교 길로 진입한다. ‘국내 최초의 향교’라는 수식어로 더 알려진 교동향교는 1127년에 지어졌다. 900년 가까이 세월이 흐른 곳을 천천히 살피며 옛 성현들의 지혜를 헤아려 본다.
정상 부근에 다다르자 안개가 더욱 심해졌다. 결국 북녘 땅은 희미하게만 보였다. Ⓒ신희수 기자
교동향교 왼쪽으로 난 길은 화개사와 화개산 등산로로 곧장 이어진다. 아쉽게도 화개사 출입문이 굳게 닫혀 있어 바로 등산로를 오른다. 화개산(259m)은 교동도에서 가장 높아 정상에 서면 북녘 땅을 포함해 사방이 한눈에 들어온다. 다른 곳에서는 쉽게 접할 수 없는 풍경을 볼 생각에 발걸음이 빨라진다. 낮은 산이라 쉬엄쉬엄 올라도 30분이면 정상에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캠핑 장비로 가득한 무거운 배낭을 메고 오르려니 발이 무겁기만 하다. 또 화개산은 경사가 가파른 곳도 많아 마치 높은 산을 오르는 듯한 느낌이다. 게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미세먼지가 더욱 심해져 기대했던 시원한 전경마저 보이지가 않는다.
정상에 올라 망원경을 보지만 기대했던 북녘 땅은 희미하기만 하다. Ⓒ신희수 기자
아쉬움 속에 정상에 오르니 넓고 평평한 지형이 나타난다. 그 중앙에는 정상을 알리는 입목과 전망배치도, 망원경이 서 있다. 미세먼지 탓에 북녘 땅은 형상만 희미하게 보인다. 기대를 버리지 않고 텐트를 쳐 놓고 마냥 기다려 보지만, 밤이 되면서 해안가 특유의 안개까지 깔리며 그야말로 ‘하얀 지옥’에 갇혀버린다. 그렇다고 다시 내려가지도 못하는 참으로 난감한 상황. 밤 늦은 시간이 되자, 북한에서 내보내는 대남방송 소리까지 더해져 오싹한 분위기마저 조성된다.

결국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곳의 섭리에 따른다. 우리야 단 하루지만 교동도 주민들은 매일 같이 이런 일들을 겪을 것 아니겠는가. 새벽 내내 계속되는 강한 어조의 낯선 소리가 구슬프게 마저 들리는 건 왜일까.

늦은 저녁이 되자 섬 특유의 안개가 자욱해진다. 여기에 북한의 대남방송까지 들려 오싹한 분위기가 조성된다. Ⓒ신희수 기자

Information – 교동도 트레킹

□교동도 다을새길(강화나들길 9코스)

교동대교가 생기기 전, 강화도와 교동도를 이어주는 배가 닿던 월선포 선착장에서 출발해 숲길을 거친 뒤 교동향교, 화개산, 대룡시장 등 교동도의 명소를 차례로 지나는 트레킹 코스다. 총 20개 코스로 구분되는 강화나들길의 9번째 코스로, 지난 2011년 개통됐다. 코스 중간마다 강화나들길을 알리는 알림판과 표식이 있으며, 스탬프가 비치된 곳도 있어 ‘강화나들길 스탬프 투어’를 즐길 수도 있다. 9코스 중간 지점인 대룡시장에서는 강화나들길 10코스(17.2km·6시간 소요)도 이어져, 각자의 상황과 조건에 따라 트레킹 계획을 짜면 된다.

·코스 : 월선포~교동향교~화개사~화개산~석천당~대룡시장~남산포~교동읍성~동진포~월선포

·거리 : 16km

·시간 : 약 6시간 소요

·문의 : 사단법인 강화나들길(전화 032-934-1906, 홈페이지 www.nadeulgil.org)

□화개산(259m)

평탄한 지역이 많은 교동도에서 가장 높은 화개산을 오르는 길은 크게 3가지다. 읍내리 화개사에서 시작되는 길, 고구리 교회에서 시작되는 길, 대룡리 교동중·고등학교에서 시작되는 길로 나뉜다. 모두 1km 내외의 길이기 때문에 산행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고 난이도도 높지 않지만, 경사가 꽤 있는 곳도 있다. 고구리쪽에서 오르는 길이 비교적 완만한 편이다.

날씨가 좋은 날 화개산 정상에 서면 사방으로 시원한 전경이 펼쳐진다. 정상에는 망원경이 설치돼 있어 북쪽 땅을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를 가질 수 있으며, 정자도 있어 주민들의 쉼터로도 활용되고 있다.

□교통

교동도와 강화도를 잇는 교동대교는 군사적인 이유로 자정과 오전 4시 사이에 통행이 금지된다. 이 시간을 제외하고 교동대교 입구에서 출입증을 받은 뒤 드나들 수 있다. 자가용을 이용하면 서울역에서 출발해 약 2시간이면 교동도에 닿을 수 있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려면 강화터미널에서 교동도 월선포를 오가는 ‘교동70’ 버스를 타면 된다. 강화터미널에서 첫차는 오전 6시 10분, 막차는 오후 8시 30분에 출발하며, 월선포에서는 첫차 오전 6시 55분, 막차는 9시 15분에 출발한다. 양 노선 모두 하루에 총 11회 운행되며, 편도 기준으로 약 45분 소요된다.

<교동도 문화재>

□교동읍성

과거 교동도의 주민을 보호하고 군사적·행정적인 기능을 수행한 고을성. 1629년(조선 인조 7년)에 축조됐으며, 당시 둘레는 약 430m, 높이는 약 6m였다. 동·남·북 3곳에 성문을 두었고, 각 문에는 망을 보기 위한 문루를 세웠다. 동문은 통삼루, 남문은 유량루, 북문은 공북루라고 불렸는데, 현재는 세 문 모두 남아 있지 않다. 동문과 북문은 언제 없어졌는지 확실하지 않으며, 남문인 유량루는 1921년 폭풍으로 인해 무너져 반원 형태의 홍예문만 남아 있다.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577 외 8필지

·유형 : 인천광역시 기념물 제 23호(1995년 3월 1일 지정)

·문의 : 032-930-3625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읍내리 비석군

교동향교와 화개산으로 갈라지는 길목에 자리한 비석군. 과거 교동도 곳곳에 흩어져 있던 선정비나 영세불망비 등을 한 자리에 모은 것이다. 1970년 새마을 사업이 한창일 때 교동도의 역사를 정립한다는 뜻에서 옛 교동도의 관문이었던 남산포길 옆으로 이전됐다가 1991년 다시 지금의 자리로 옮겨졌다. 현재 조선시대 교동도의 목민관 수군절도사, 삼도통어사, 도호부사, 방어사 등의 비석 총 33기가 세워져 있다. 그중에는 ‘거사대’라는 특별한 양식의 비 3기도 포함되어 있다.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139

·문의 : 032-930-3625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교동향교

한국 최초의 향교. 1127년(고려 인종 5년), 화개산 북쪽에 처음 자리 잡았으나 1747년(조선 영조 17년)에 현재의 위치(읍내리 148)로 옮겨졌다. 조선시대에는 교관이 교생을 가르치는 공간의 역할을 했지만, 현재는 석전봉행(釋奠奉行)과 분향만 올려지고 있다. 건물로는 명륜당과 동재, 서재, 대성전, 동무, 서무 등이 있다. 최근에는 매주 토요일마다 ‘우리집 가훈 쓰기’, ‘고유례 체험’ 등 방문객을 대상으로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148

·유형 : 인천광역시 유형문화재 제 28호(1995년 3월 1일 지정)

·문의 : 032-930-3625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화개산 봉수대

화개산 정상으로 향하는 9부 능선에 다다르면 등산로 바로 옆으로 한 무리의 돌무더기를 볼 수 있다. 이는 돌을 직사각 모양으로 쌓아 단을 만든 화개산 봉수대로, 규모는 높이 2.5m, 가로 8m, 세로 6m이다. 과거 이 지역의 통신시설 역할을 했던 화개산 봉수대는 남쪽으로는 강화도 덕정산(320m), 동쪽으로는 강화도 봉천산(291m)과 연결됐다. 현재는 봉수대는 무너지고 터만 남아 보존되고 있다.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읍내리 산47

·유형 : 강화군 향토유적 제29호(1986년 4월 1일 지정)

·문의 : 032-930-3625 (강화군청 문화관광과)

<교동도 대룡시장>

‘60년 세월’ 가득한 대룡시장의 대표 가게, '물건이 아닌 옛 정취를 사가세요~'

교동도 중심에 자리하고 있는 대룡시장은 1950년 한국전쟁 때 황해도 연백군에서 잠시 피난을 온 주민들이 분단 이후 돌아가지 못하게 되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고향에 있던 연백시장을 따라 만든 시장이다. 지난 60년의 세월동안 교동도 경제의 중심지 역할을 했으나, 최근에는 인구 감소와 노쇠화로 많이 쇠퇴했다. 그럼에도 옛 정취를 간직한 대룡시장을 여러 매체어서 주목한 이후 새로운 출사지·관광명소로 탈바꿈했다. 특히 2014년 개통된 교동대교 덕분에 접근이 쉬워져 관광객들이 늘어나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시장의 유일한 약국, 동산약방

대룡시장의 유일한 약국, 동산약방. Ⓒ신희수 기자
대룡시장에 단 하나 남은 약국. 시장에서 가장 연장자이기도 한 주인장 나의환(85세) 할아버지는 이 약국을 55년이나 운영해 왔다. 반 백년이 넘는 세월을 증명하듯 약국 곳곳에 옛 정취가 가득하다. 약국에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약 보관함에는 1960년대 유행하던 영양제 ‘몰트헤모구로빈’이 크게 적혀 있다(물론 그 안에 보관된 약은 최신 것이다). 손님들이 앉아서 기다리는 짙은 갈색의 나무의자도 50년이 훌쩍 넘었단다. 나의환 할아버지는 '예전 시장이 한참 흥할 때는 손님도 많았다고. 이제는 다 늙어서 소일거리로 하는 거지, 뭐'라며 과거를 덤덤히 회상했다.
동산약방의 주인장, 나의환 할아버지. Ⓒ신희수 기자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8

·전화 : 032-932-4234

□‘고무신 사세요~’ 중앙신발

중앙신발 현관에 붙어 있는 재미난 포스터. Ⓒ신희수 기자
유쾌한 광고 포스터로 단연 눈길을 끄는 신발가게. ‘조선 나이키란? 고무신입니다’라는 재미난 글귀와 옛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엿장수 그림이 가게 문짝에 다닥다닥 붙어 있다. 모두 주인장의 솜씨다. 가게 안쪽은 이름답게 운동화, 장화, 고무신, 구두, 슬리퍼 등 각종 신발들로 빼곡하다. 이처럼 중앙신발은 지난 35년간 교동도 주민들의 발을 편하게 해 줬다. 최근에는 외지 손님도 많이 늘었다. 주인장은 '최근 대룡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이 옛 추억을 되살리고자 고무신을 하나씩 사 간다'고 전했다.
중앙신발에는 고무신, 구두, 슬리퍼 등 각종 신발들이 넘쳐난다. Ⓒ신희수 기자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8-1

·전화 : 032-932-4163

□‘윙~’ 바리깡 소리의 추억, 교동이발관

교동이발관의 주인장 지광식 할아버지. Ⓒ신희수 기자
가수 은지원이 삭발을 했던 바로 그 이발소. 60년 가까이 이어진 이곳의 현 주인장은 지광식(78세) 할아버지. 말이 ‘현 주인장’이지 다른 이발사 2명이 개업한 이곳에서 처음 이발 기술을 배워 지금까지 55년 넘게 끌고 왔으니 ‘그의 이발소’라 하는 것이 더 맞는 말이다. 지광식 할아버지는 '처음에 취직해서 3년간 조수를 하며 어깨 너머로 배웠지. 군대 전역하고는 내가 이 이발소를 사서 지금껏 한 거야'라며 그 사연을 설명했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교동이발관은 아직 대부분이 옛 방식 그대로다. 13년 전 한 방송사에서 처음으로 촬영을 한 이후 지금까지 서른 번 이상 여러 매체에 소개되기도 했다. 이 때문에 교동시장을 찾는 관광객들은 머리카락을 깎지 않아도 꼭 한 번 들렀다 가는 ‘유명 관광지’가 된 지 오래다.
교동이발관 내부. Ⓒ신희수 기자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9-1

·요금 : 조발+커트 10,000원 / 커트 9,000원 / 학생 7,000원 / 세발+드라이 5,000원 / 조발+염색 20,000원

□쌍화차에 계란 ‘탁’, 교동다방

교동다방의 대표메뉴, 계란 노른자 띄운 쌍화차. Ⓒ신희수 기자
시장의 사랑방 역할을 하는 다방. 테이블은 4개밖에 없지만 교동도 주민이나 외지 관광객들이 끊임없이 드나들어 그 옛날 여느 다방처럼 정겨움이 가득한 곳이다. 다방 안으로 들어서면 우선 천장과 양 벽면을 뒤덮은 방문후기 종이에 한 번 놀란다. 허영만 화백의 그림에서부터 각 분야의 유명인사가 남기고 간 사인이 곳곳에 붙어 있다. 그리고 또 다른 벽면에 손글씨로 써 붙인 메뉴 숫자에 두 번 놀란다. 얼추 세어도 30여 가지가 넘는다. 이중에서도 단연 인기가 많은 메뉴는 바로 쌍화차. 물보다 건더기가 많은 쌍화차에 싱싱한 날계란을 띄워 마시면 그야말로 금상첨화다. 정이 많고 부끄러움도 많은 전남수 사장은 '그리 퍼주니까 돈을 못 번다'며 농담을 한다.
부끄럼이 많아 좀처럼 고개를 돌리지 않던 교동다방 전남수 사장. Ⓒ신희수 기자
교동다방의 메뉴는 자그만치 30여 가지가 넘는다. Ⓒ신희수 기자
·주소 : 인천 강화군 교동면 대룡안길54번길 44-8

·전화 : 032-932-4085

·메뉴 : 쌍화차 6,000원 / 각종 즙 5,000원 / 각종 차 3,000원

※일요일 오전에는 운영하지 않는다.

권상진 기자 / dhunhil@emountai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