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 진 ♡/세계여행가이드

구불구불 알록달록 느릿느릿 마음을 훔치는 도시, 샌프란시스코

거울속의 내모습 2016. 7. 1. 21:20

 

ㆍ미국인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곳

 

자유와 평화를 상징하는 도시, 세계의 거부들이 모여 사는 금융 허브이자 IT 본고장 실리콘 밸리가 있는 곳, 물가가 가장 비싼 도시지만 미국인들이 가장 살고 싶어하는 도시,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다. 샌프란시스코는 울림과 여운이 있는 도시다. “샌프란시스코에 간다면 머리에 꽃을 꽂으세요, 평화를 사랑하는 이들을 만날 거예요.” 1960년대 말 스콧 매켄지가 열정적으로 불렀던 <샌프란시스코> 노랫말처럼 꽃을 들고 반전, 평화를 외쳤던 도시다. 샌프란시스코는 크기가 서울만 하다. 그 도시의 일상이 궁금했다. 자전거와 차를 타고 도시를 둘러본 뒤 배를 타고 바다도 구경했다. 오래된 전차가 거리를 어슬렁거리고, 슬로푸드가 넘쳐났다. 샌프란시스코는 화려하고 빠르고 번잡한 미국의 여느 도시와는 시간의 흐름이 확연히 달랐다. 느릿느릿 자전거와 자동차와 배를 타고 들여다본 샌프란시스코는 제각각의 표정으로 다가왔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연을 그대로 살린 언덕의 도시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차를 타고 롬바드 거리를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저 멀리 푸른 바다가 손짓을 한다.

  샌프란시스코는 자연을 그대로 살린 언덕의 도시다. 오르막과 내리막 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차를 타고 롬바드 거리를 천천히 내려가다 보면 저 멀리 푸른 바다가 손짓을 한다.■ 자전거 타고 건너는 금문교

한국인들은 미국 서부로 여행을 가면 대개 로스앤젤레스(LA)와 시애틀부터 발 도장을 찍는다. 샌프란시스코는 스쳐 가는 여행지일 뿐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아마도 ‘한국식’으로 먹고 마시고 놀 만한 곳이 많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샌프란시스코에는 자극적이지 않은 즐거움과 친절한 사람들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주홍빛 금문교(Golden Gate Bridge)다. 1800년대 미국인들은 금을 찾아 캘리포니아로 달려왔다. ‘골드러시’ 당시 샌프란시스코만을 지칭하던 골든게이트 해협에 금문교가 놓였다. 페리가 유일한 교통수단이던 해협에 다리가 생기면서 미국인의 꿈과 희망도 완성되었다. 금문교를 자전거를 타고 건너기로 했다. 목적지는 편도 2시간 거리의 소살리토였다.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금문교.

   자전거를 타고 건너는 금문교.

소살리토는 세계 갑부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유명하다. 언뜻 보기엔 소박하지만 2~3층 단독 저택들은 우리 돈으로 200억~300억원대를 호가한다. 페이스북 창업자인 마크 저커버그도 이곳에 산다.

자전거 페달을 천천히 밟았다. 바다를 옆에 끼고 해안도로를 달리자 붉은빛이 감도는 다리가 보였다. 백과사전에서 보던 그 금문교였다. 다리의 총 길이는 2800m. 인천대교가 1만8380m, 서해대교가 7000m, 한강에서 가장 긴 서강대교가 1700m니 그 규모가 대충 짐작될 것이다.

자전거를 금문교에 세우고 멀리 바다를 내려다봤다. 파도가 꽤 높다. 검은 슈트를 입고 덩치 큰 파도를 가르는 서퍼들이 개미보다 더 작아 보였다. 아찔하면서도 멋진 광경이다.

내리막길로 접어들자 그곳이 바로 소살리토라는 걸 직감할 수 있었다. 푸른 숲을 따라 알록달록한 유럽풍 저택들이 나타났다. 언덕 위에 자리 잡은 집들은 주변 풍광과 잘 어울려서 격조가 있었다.

넋을 잃을 만큼 푸른 바다가 자꾸 따라와 자전거는 수도 없이 멈춰야 했다. 이곳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 출렁거리던 마음들이 금세 고요해지겠다. 통 큰 나눔을 실천한 저커버그의 ‘발심’도 어쩌면 이 작고 아름다운 소살리토의 풍경에서 영향을 받은 것일지 모르겠다.

 

 

 

소살리토 인근 아름다운 동네 티뷰론.

   소살리토 인근 아름다운 동네 티뷰론.■ 배를 타고 ‘부두 39번’으로

소살리토에는 유명한 수제 햄버거집이 두 곳 있다. 서서 먹는 곳과 앉아서 먹는 곳.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면? 나는 앉아서 먹는 집을 골랐다. 나파밸리 버거 컴퍼니(Napa Valley Burger Company)에 들어가 치즈버거를 주문했다. 맛은? 입안이 서걱거린다고 해야 하나, 첫맛은 글쎄다. 버거킹과 맥도널드에 길들여진 입맛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친환경 쇠고기로 만든 수제버거는 씹을수록 담백했다. 고구마와 감자튀김에 자꾸 손이 갔다. 얇게 저민 바삭한 튀김 맛은 정말 끝내줬다.

소살리토에서 샌프란시스코로 돌아올 때는 배를 탔다. 배에 자전거를 싣고 소살리토를 뒤돌아봤다. 바위에 앉아 데이트를 즐기는 연인이 더 없이 행복해 보였고, 푸른 잔디에 아무렇게나 누워 책을 읽고 강아지와 산책을 즐기는 노부부들이 정겨웠다. 이태리의 카프리섬 같기도 했고, 캐나다 동부의 작은 항구 도시를 닮은 것도 같다. 소살리토는 하늘마저 푸른 바다를 닮았는지 파란 햇살을 흩뿌리고 있었다.

 

 

 

부두39(Pier39)에서 만난 검은 바다사자떼.

   부두39(Pier39)에서 만난 검은 바다사자떼.

넓은 바다로 나가자 갑판은 각지에서 온 외국인 관광객들로 북적였다. 배가 항구에 닿을 즈음 말로만 듣던 검은 바다사자 떼를 만날 수 있었다. 녀석들은 제 깜냥껏 자리를 차지하고 엎드려서 일광욕을 즐기고 있었다. 그 모습이 한없이 평화로워서 문득 인간과 동물은 어디까지 공존할 수 있을까, 그런 생각이 떠올랐다. 도착지는 부두 39번(Pier 39)이었다. 영국의 빅벤이 연상되는 뾰족하고 높은 건물 안에 친환경 상점들이 줄지어 선 마켓이었다.

 

 

 

클램차우더 수프.

   클램차우더 수프.

저녁은 근사한 레스토랑의 해산물로 정했다. 피셔먼스 워프(Fisherman’s Wharf)에 있는 170년 전통의 ‘프랜시스칸 크랩(Franciscan Crab)’에서 큼지막한 대게를 ‘흡입’했다. 시큼한 빵 속에 게살을 듬뿍 넣은 클램차우더 수프는 담백했다. 손가락을 쪽쪽 빨아가며 허기를 채웠다.

■ 자동차 타고 구불구불

언덕으로샌프란시스코의 시계는 느렸다. 동부의 뉴욕이나 워싱턴 DC처럼 분주하지도, LA와 라스베이거스처럼 현란하지 않았지만 안온함이 있었다. 해가 뜨고 해가 질 때는 어딜 가나 여유와 낭만이 흐른다. 출퇴근길 사람들의 옷차림은 댄디하면서도 가벼웠고 표정은 밝았다.

렌터카를 빌렸다. 줄을 서야 맛볼 수 있다는 빵을 사기 위해 아침 일찍부터 서둘렀다. 미국인들이 극찬한 ‘타르틴(Tartine) 베이커리&카페’는 듣던 대로 간판이 없었다. 출근 전인데도 사람들은 줄을 서서 주문을 기다렸다. 옆 테이블의 두 남자는 카푸치노를 마시며 새로운 디자인 개발을 놓고 열띤 토론을 벌이고 있었다. 크루아상이 입안에서 살살 녹았다. 발동하는 식욕을 주체할 수 없어 소시지와 베이컨을 얹은 토스트까지 정신없이 먹어치웠다.

 

 

 

브런치가 유명한 레스토랑 라 노트.

   브런치가 유명한 레스토랑 라 노트.

샌프란시스코는 언덕의 도시다.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언덕들과 오르막 내리막길이 끝없이 이어진다. 케이블카로 불리는 오색빛 전차들이 자연을 그대로 살린 구릉을 따라 구불구불한 도로를 마차처럼 달린다. 샌프란시스코에서 운전대를 잡으면 저절로 여유가 생긴다. 속도를 내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번은 가봐야 한다는 롬바드 거리(Lombard Street)로 향했다. 도로 면허시험장 S자 코스가 따로 없었다. 핸들을 이리저리 꺾느라 식은땀이 났다. 급경사에서는 차가 수직낙하하는 줄 착각할 정도다. 웬만한 운전실력이 아니면 쉽지 않겠다.

야경을 보기 위해 트윈 픽스(Twin Peaks)로 차를 몰았다. 도심은 초고층 빌딩 숲이나 휘황한 네온 불빛보다 그저 평화롭고 고요한 항구 같은 느낌으로 다가온다. 밤늦게 ‘부에나 비스타’에서 아이리시 커피를 마셨다. 진한 위스키 맛에 홀려 오래도록 자리에 앉아 도시의 풍경을 감상했다.

“아침 안개는 차갑지만, 나는 개의치 않네/ 나의 연인이 기다리고 있는 샌프란시스코/ 바람에 넘실거리는 푸른 바다의 저쪽/ 내가 그대 곁으로 돌아갈 때/ 샌프란시스코여, 그대의 황금 태양을 나를 위해 비추어다오.”(토니 베닛 ‘I Left My Heart In San Francisco’)

샌프란시스코는 한번 발을 들이면 마음을 두고 갈 만큼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도시다.

 

<샌프란시스코 | 정유미 기자 youme@kyunghyang.com>